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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태(2020-04-06 06:04:41, Hit : 457, Vote : 12
 주일설교 (2020/04/12): 살리시는 하나님 (열왕기상 17) (누가복음 7) (사도행전 20) (살전 4) (요한계시록 21)

주일예배: 2020/04/12
설교주제: 살리시는 하나님


(월요일 묵상) (열왕기상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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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이 일 후에 집주인인 그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18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게로 와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나이까 (하니)
19  엘리야가 그에게 그의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받아 안고
    자기가 거처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서 (그 아이를) 자기 침상에 누이고
20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어찌하여 주께서  
    내가 머물고 있는 이 집 주인인 과부에게 이런 재앙을 내리사
    과부의 아들을 이렇게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21  엘리야가 그 아이의 몸 위로 세 번 (자기 몸을)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혼이)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22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23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아래층) 방으로 내려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아났느니라 (하니라)
24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참으로 진실한 줄을 아노라 하니라


(화요일 묵상) (누가복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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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읍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라
12  예수께서 성문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죽은 사람은 한 어머니의 외아들이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더라
    그 성의 많은 사람이 그 과부와 함께 (상여를) 따라 나오거늘
13  주께서 그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상여를) 멘 자들이 걸음을 멈추고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  죽었던 젊은이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16  모든 사람들이 (그 일을 목격하고)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나타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찾아와 주셨다) 하더라
17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수요일 묵상) (사도행전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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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8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11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12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목요일 묵상) (데살로니가전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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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형제(자매)들아 우리는 잠든 사람들에 관하여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을 가지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는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는데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잠든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실 것을 믿노라
15  우리는 주께서 직접 일러 주신 말씀대로 너희에게 이것을 전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사람들이
    이미 잠든 사람들보다 결코 앞서지 못할 것이니라
16  주께서 큰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이끌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되리라 그리하여 우리는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말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라


(금요일 묵상) (요한계시록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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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또 (그 후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는데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니라...
3   내가 (그때) 들으니 하늘 보좌에서 큰 음성이 울려 나오는데 이르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
4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몸소 닦아 주시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죽음을 슬퍼하여)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이전에 있던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사라져 버렸음이라)
5   그때에 하늘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너는 이 모두를 다 기록하라 하시니라




이상태 (2020-04-06 06:14:31)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절망에 빠진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 하지 말라
보라 너희들의 하나님께서 친히 오사 너희를 일으키시리라 하라
윤사랑 (2020-04-06 07:39:32)  
죽은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한시라도 배신없이 믿는자가 되는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홍은기 (2020-04-06 15:47:38)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17:18)

이 여인의 원망을 통해서 극히 이기적인 제 마음을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엘리야가 아니었다면 스스로 목숨을 버리려고 했던 그녀였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매끼니 마다 하나님의 권능을 몸소 체험했지만
자신에게 닥친 불행 앞에서는 곧 바로 본연의 모습으로 이토록 빨리 돌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하나님 앞에 원망했던 제 인생의 무수한 날들을 돌아봅니다. 두려움의 순간마다 원망하고 울기만 했습니다.
이제부터 절망의 순간을 마주할 때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은혜들을 기억하며
이후로도 베풀어주실 은혜를 엎드려 구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이선미 (2020-04-06 18:19:09)  
사르밧 과부 아들의 생명을 두고 하나님께 간구한 엘리야.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어 응답하신 하나님. 엘리야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나의 삶 속에서 맛보기 원합니다. '믿음의 기도'로
하나님께 구하고 '순종의 삶'으로 하나님을 높이어...'들으시고'
'살리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영혼이 소성하는 하루 하루를
살게 하옵소서.
임성희 (2020-04-06 20:32:21)  
고난의 끝을 두번씩이나 경험한 이 과부가 복이 있어보입니다.
그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기아로 죽었을 아들과 자신은 마르지 않는 가루와 가름을 얻고
병든 아들은 다시 살아 났고
자신은 이제 참 하나님을 만났으니 복된 여인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 과부가 하나님을 찾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와 다를 바 없이 불평을 하며 긴 고통의 기간을 이겨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할 것이라는 생각에 감사를 드립니다.
백은지 (2020-04-07 00:29:38)  
전 세계적인 전염병 사태로 생사의 기로에 그리고 생업의 위기에 처하여 하루를 살아가는 곳곳의 지체들을 위해 간절한 중보 기도 하기 원합니다. 저희들의 부르짖는 기도 소리를 들으사 주의 기적과 같은 역사가 속히 있기를 간구 합니다.
박지은 (2020-04-07 02:53:13)  
병이 든 아들을 지켜보는 과부의 하루하루...
그리고 그 아들의 죽음을 확인한 그 순간
과부가 느꼈을 슬픔, 분노, 죄책감과 원망은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에 엄청난 괴로운 시간들이지 않았을까...

인간은 이러한 고난 가운데 현재의 슬픔의 시간을 건너뛰고
미래로 향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나약한 존재들임을 더욱 깨닫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시간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주님, 고통 가운데 함께 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받아주시는 주님을 바라봅니다.
고난가운데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닥칠때에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해주시길 간구합니다
진문균 (2020-04-07 03:19:31)  
주님 앞에 모든 것을 아뢰고 구하길 원합니다.
이과훈 (2020-04-07 03:36:15)  
하나님께서는 필요하면 죽은 사람도 살리십니다. 우리는 어느 때라도 이것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이에 더하여 본문은 그런 능력이 충만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집주인은 자신의 아들의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며 감정의 고저가 여과없이 드러납니다. 아들이 병으로 죽었을 때는 하나님과 엘리야를 원망합니다 (18). 원래 자신과 아들이 식량이 부족해서 죽을 작정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12) 아들의 죽음을 하나님과 엘리야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18)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살아나자 엘리야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4).
본문의 집주인과 저의 신앙의 깊이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집주인은 하나님께서 시련을 주시면 하나님을 원망했다가 문제를 해결해 주시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고백들과 상반되는 모습입니다. (주시는 자도 하나님이시고 거두는 자도 하나님이시라고 했던 욥, 바빌론 왕의 명령을 어기며 목숨을 건 상황에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를 말했던 다니엘의 세 친구,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주시되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 했던 예수님을 포함한 믿음의 고백들은 고난이나 위협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좋은 본이 됩니다.) 저 역시 어려운 때에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지만 그것이 쉽지 않음을 느낍니다. 그럴수록 하나님께서 생사를 주관하시고 능력이 많으신 분임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비가 풍성하셔서 집주인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들을 살리는 기적을 베풀어 주신 분임도 기억하겠습니다.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기억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을 지키고 믿음을 지키도록 성령님 도와주세요. 도우실 성령님 기대합니다.
장은경 (2020-04-07 05:58:27)  
하나님이 먹이시고 돌보시는 은혜를 경험하지만..죽음이라는 고난이 닥치니 원망과 고통속에서 어찌할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과 나의 믿음을 봅니다. 또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엘리야의 모습을 봅니다.
고난이 지나면 또 어떠한 시련들이 올지 모르는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믿는 자녀로 그 과정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하며 새로운 믿음과 새노래로 고백하며 지혜롭게 이겨내는 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살피시고 돌보시며 먹이시는 하나님..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이인범 (2020-04-07 07:41:24)  
여인은 엘리야가 아들을 살리고 나서야 하나님과 또 하나님의 말씀의 참된 것을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이미 지난 본문에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기적을 통해 죽을 상황에 처한 자신들을 살렸음에도 말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이 참된 것을 아는 것이 이렇게나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그 과정 가운데 과부는 자신의 마음에 솔직합니다. 좌절의 순간에는 좌절을 표하고 원망이 나올 때는 원망합니다.
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사람의 말에 순종에 행동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제 마음에 솔직하지만 또 결국 순종할 수 있는 그 삶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이인범 (2020-04-07 07:55:47)  
1. 본문을 읽다보면 엘리야가 계속해서 그 과부의 가정에 머문 것 같이 느껴집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곳을 돌아다니며 또 기적을 베풀게 하시다가 돌아오게 하셨는지,
아니면 한동안 그 과부집에서 계속 머물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만일 계속 함께 했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죽기 전에는 병을 낫는 기적을 허락하지 않으셨을지,
왜 엘리야는 아들이 죽은 뒤에야 하나님께 기도했는지,
계속 기도했는데 아들이 죽은 후 엘리야가 울부짖으며 기도하자 응답하신 건지...
의문을 갖습니다.

2. 열왕기상 17장에 나온 엘리야와 과부의 이야기에는 아들의 말이나 생각이 나오지 않습니다.
기적을 경험한 아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 혹시 하나님을 알게되고 엘리야의 선지자 생도가 되지는 않았을지,
의문을 갖고 상상을 해봅니다.
박지은 (2020-04-07 09:47:27)  
1. 오늘 월요일 본문에 나온 이 아이는 몇살이었을지 생각해봅니다.
어머니의 품에 안겼다가 엘리야의 품에 안길 수 있으면
어린 아이이지 않을까 유추해봅니다.

2. 이 과부는 굶주림과 궁핍을 겪고나서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
집에 가루와 기름이 끊이지 않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주일설교말씀속에서 목사님께서 말해주셨듯이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이 과부의 믿음과
“믿음의 도약”이란 무엇인지 함께 볼 수 있었습니다.

월요일 본문에서는 이 과부가 더욱 큰 고난을 겪어냅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병에 걸려 죽게되는것을 보게됩니다.
이 상황속에서 이 여인이 겪어낸 고난의 강도는
더욱 강해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믿음의 도약을 인생의 어려움 가운데에서 경험하게된다면
고난의 강도 역시 함께 도약하는것일까요?

3. 엘리야는 다락방에서 머물러 있다고 나오는데
이 시대의 다락방은 어떠한 방이었을까 궁금합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지붕 위에 있는 조그만한 공간이었을까요
아니면 손님을 위한 공간이었을까요?
제가 아는 다락방은 마가의 다락방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강은 (2020-04-07 10:12:38)  
1. 17절) 이 당시 아이는 어떤 병에 걸렸기에 숨이 끊어질정도로 위중한 상황에 놓였던 것 일까요?
극심한 가난 속에 아무 음식도 먹지 못하다가 갑작스레 음식을 먹은 것과 혹시 관련이 되어있을지,
혹은 면역력 약화 등의 이유 때문일지... 여러 가지 경우를 생각해보며 아이가 걸린 병의 종류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2. 21절) 엘리야는 숨이 끊어진 아이를 살려달라며 그 '아이의 몸 위로 자기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며'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여기에서 엘리야의 행동에 주목을 하게 됩니다. 엘리야가 세 번 엎드렸던 것은 마치 오늘날의 우리가 기도회 때 주님을 삼창하며
부르짖는것과 비슷한 맥락일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왜 세 번 주님을 부르며 기도하게 되었을까요? 성경에서 숫자 3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또 예수님을 사랑한다 세 번 고백한 사건들을 포함하여 성경 전체에 등장하는 여러 개의 주요 사건들은
숫자 3과 관련되곤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개념을 통해 3이 완전한 숫자라고 여겨지기 때문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러기에는 성자의 존재 이전인 구약시대에도 3과 관련된 사건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이것이 알맞은 해석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엘리야가 세 번 엎드리며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신 이 사건을 통해서 그 '세 번' 반복되는 행동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에 대한 답이 궁금합니다.
장동은 (2020-04-07 11:12:25)  
과부의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 이제 한 고비 넘겼다 했더니 아들이 병으로 죽는 슬픔이 찾아옵니다. 우리 삶이 늘 그런듯합니다. 산너머 산..뭐하나 해결된듯 싶으면 또 다른, 아니 더 큰 시련이 찾아옵니다. 내게 닥친 어려움으로 인해 숨이 가쁘고 답답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며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 나를 위해 응답해주신 기도에도, 거절하신 기도에도 늘 감사하며 한걸음 한걸음 주님과 가까워지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는 제가 되고 싶습니다.
박준혁 (2020-04-07 11:50:01)  
God, I know that I do not know everything, but You are everything in my life.
God, I know You love me throughout everything I encounter in my life.
Thank You for protecting me, and thank You for leading me this far in my life.
권모세 (2020-04-07 13:19:54)  
고난의 시간은 매번 인간의 예상에서 항상 벗어나는 것 같습니다.
과부가 엘리야를 만나 식량으로 부터 자유로워졌을 때에
곧 아들을 잃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한 치 앞 미래도 모르는 연약한 인간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넘어지지 않는 것이 이상하고 좌절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 같습니다.
고난 가운데 주님 앞에 부르짖을 때,
저에게 다시 얼어날 힘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정은선 (2020-04-07 13:45:57)  
하나님을 모르던 한 인간이 하나님을 나의 구주로 모시게 되는 과정을
보는 것 같습니다. 처음 과부는 엘리야를 만났을 때 당신의 하나님이라
말하면서 하나님라는 분이 계시다는 것은 아는 것 처럼 보여졌습니다.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기적과 은혜도 경험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 인해 내 죄를 생각나게 하신다는 구절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 다음은 가장 소중한 아들을 잃게 되는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그 회복을 경험하고 당신의 입에 있는 말씀이 참으로 진실한 줄 안다고 고백합니다.
떨어지지 않았던 기름과 가루의 체험보다 더 복된 고백임을 압니다.
필요를 채우시고 우리의 영혼을 만져 가시는 주님, 고난 가운데 일지라도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가시는 주님이심을 기억하고
어떤 상황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홍은기 (2020-04-07 13:49:38)  
주님은 슬픔에 잠겨있는 과부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보시고 불쌍히 여겨 주셨습니다.
남편을 먼저 잃고, 이제 자식마저 잃은 여인이었습니다. 의지할 데가 없는, 그 어떤 소망도 남아있지 않은 가련한 여인을 주님은 위로해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상여꾼들이 메고 있는 관을 향해 손을 내미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이 행동은 무척 조심스러운 부분이었습니다. 시신이나 심지어 관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부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스스로 부정해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먼저 다가가셨습니다.

하나님, 불쌍히 여기시고 먼저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찾아와 내밀어주신 그 손을 바라봅니다. 힘겨운 고통과 절망 속에 있는 이들의 아픔까지도 넉넉히 품어주심을 믿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위로해주지 못할 때 우리를 향해 내미시는 그 손길을 붙잡게 하시고 그 사랑을 힘입어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하여주옵소서.
이선미 (2020-04-07 18:27:37)  
아들의 죽음으로 말할 수 없은 슬픔에 잠긴 나인 성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신 주님. 고통 당하는 작은 자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긍휼의 주님을 바라봅니다. 연일 이어지는 비보로 몸과 마음이 절망
속에 파묻혀 가는 우리에게 "일어나라" 말씀하시는 주님. 주님의 말씀
의지해 일어나게 하옵소서. 일어나 앉아 말도 하고 주변을 섬기는
오늘 되게 하옵소서.
임성희 (2020-04-07 21:25:48)  
소망이 끊어 진 것처럼 보이던 상황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 차는 상횡을 맞은 과부처럼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교만하기가 이루 말 할 수 없는 인간이 아주 작은 바이러스 하나에
죽어나가며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주님만이 이 일의 열쇠를 가지고 계심을 압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기를 기도합니다.
윤사랑 (2020-04-07 21:27:23)  
작녁에 미국에 있다 잠시 한국으로 나갔습니다.
그때 기도원을 갔는데, 그 기도원에선 죽은자도 살리는 곳이였습니다.
죽은자도 살아났던곳입니다.
죽은자도 살리시는 하나님,
조금도 흝트러진 맘을 없게 해주시고, 좋은 맘만 주세요.
박지은 (2020-04-07 23:00:45)  
죽음조차 주님 앞에서는 그저 잠과 같음과
거친 폭풍조차 주님의 말씀앞에 순종하는것을 보며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진정한 하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두려움가운데 우리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삶속에 회복의 역사가 있기를 원합니다.
백은지 (2020-04-07 23:19:06)  
세상의 가장 낮은 자 과부의 아들이 죽음을 보시고 그 삶을 긍휼히 여기사 다가와 다시 일으키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바라보기 원합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 하시사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주께서 가장 낮고 참옥한 모습으로 십자가에서 처형 당하여 죽으심을 기억합니다..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었던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기억합니다. 우리를 영원토록 지키시는 주님의 사랑안에 두려워 않고 믿음으로 일어나는 한 주가 되기를 기도 합니다.
장은경 (2020-04-08 00:32:00)  
경제적으로도 힘들고 사회적으로도 약자였을 과부에게 외아들은 전부였을 텐데..그 아들의 죽음까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고통스러웠을것 같습니다. 그 마음을 함께 공감하시고 아파하시며 위로하시고,,가까이 가시어 손까지 데시며 살려주시는 예수님..
어제 뉴스에서 자신의 가족이 병원에서 바이러스로 죽었지만 시신도 받지 못해 병원 울타리 밖에서 울부짖는 여인을 보며 마음 아파했던게 생각납니다.사회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을 장사하지 못하고 냉동창고에 쌓아두고 있는 지금의 상황들을 보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주님의 마음을 공감하게 하소서..그 마음으로 내 손이 따르게 하소서..작은 손길들을 통해 어두운 세상 속에서도 주님 찾아주시고, 일으키시며, 살리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찬양하게 하소서.
진문균 (2020-04-08 02:16:34)  
부활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며 지내는 기간이 되길 원합니다.
이인범 (2020-04-08 05:52:18)  
하나님께서 절망에 빠진 과부를 찾아와 돌보셨습니다.
과부의 아들을 살리심과 동시에 과부의 삶 또한 살리셨습니다.
절망에 빠진 자를 일으키시는 방법은 하나님의 뜻에 달려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삶을 살게하실 하나님을 믿고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새 힘을 주세요.
최정진 (2020-04-08 07:48:57)  
마태복음 13장 23절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아멘
장동은 (2020-04-08 07:52:36)  
주께서 그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우리의 슬픔을 아시고 불쌍히 여겨 주시는 예수님..세계곳곳에서 신음하고 흐느끼는 이웃들에게 찾아와 주셔서 위로해 주시기 원합니다. 그런 예수님을 전하길 원합니다.
박지원 (2020-04-08 11:08:19)  
1. 예수님깨서 그 아이가 불쌍하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그 과부를 불쌍히 여기사’ 라고 기록되어있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아이가 불쌍해서 살려주신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어머니가 안타까워 살려주셨다는 것이 의아했습니다.

2. 이 아들을 살리셨을 때에는 다른 부활기적들에서와는 다르게
아무도 먼저 예수님께 살려달라고 부탁하지 않은 점이 특이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나서셔서 아들을 살려주셨는데
이 사건의 어떠한 점 때문에 이런 차이가 나는지 궁금했습니다.
박준혁 (2020-04-08 11:22:35)  
The flowers from the trees are getting blown away by the wind.
I feel very sad because I know that we will not be able to see each other as family
and as church members before these flowers die out.

There are many scriptures of widows and mothers mourning the deaths of their children.
I recently saw my mother crying at my bedside because I was sick.
The pain that my mom and I felt was quite intense,
but I know that the pain of losing a child is far worse than what we went through.
I pray and look to God to turn any sorrow into joy.
It will take time, but I pray that He will give me strength to be patient.
최평화 (2020-04-08 13:02:06)  
1.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그 곳에 부활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영적으로 뿐만 아니라 육적으로 또한 정신적으로도 말입니다.
과부가 외아들을 잃었을 때에 얼마나, 어떠한 타격을 입을지를 여러면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의 어머니에게 주며"라고 월요일과 화요일 묵상 구절에 적혀 있는데요 그 아들을 받은 과부에게 그 "선물"이 어떠한 의미와 영향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2. 내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 되어 과연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깨닫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일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3. 월요일 말씀에 과부가 자기 죄를 생각나게 했다라고 하는데요 어떤 죄였을지 궁금합니다.

어두움에 빛을 바라시는 하나님, 우리 가운데 빛을 비추어 주시고
저희도 또한 이 세상 가운데 빛을 바라는 사람이 되게 하시옵소서.
"let your light shine before others, that they may see your good deeds and glorify your Father in heaven." Matthew 5:16
홍은기 (2020-04-08 14:40:27)  
유두고 사건을 보면서 어려운 일들이 생길때 제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돌아보았습니다.
그러한 때 요동하여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바울처럼 오히려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길 원합니다.
믿음의 눈을 들면 우리의 주변에는 어떠한 모습으로든지 하나님의 위로가 항상 함께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함께하는 동역자들을 붙여주셔서 험난한 전도의 길에 동행케 하셨습니다.
또한 죽었던 청년 유두고를 다시 살리심으로 오히려 그 사건이 바울 자신과 모든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고 또 우리를 도우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나아갑니다..
이선미 (2020-04-08 18:01:59)  
사고로 죽음에 이른 청년을 두고 그의 움직임 없는 몸을 주목하며
소란한 시람들 사이에서 그 안의 생명을 주목하여 침착한 바울을
봅니다. 위기의 상황에 보이는 현상에 압도되어 절망하지 않기
원합니다. 보이는 것 너머의 생명을 믿어 소망 잃지 않기 원합니다.
무서운 기세로 번져가는 바이러스에 압도되 갈팡질팡 하지 않게
하옵소서.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는 선포를 바울의 입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게 하옵소서.
윤사랑 (2020-04-08 19:27:56)  
오늘 말씀중에 생명이 그에게 있다 라고 기억에 남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고 살리십니다.
죽은자가 살아난자를 생각하며 한시라도 위대하심을 잊지 않겠습니다.
임성희 (2020-04-08 20:30:07)  
아들을 잃어버리는 과부의 심정을 이해 할 수도 없지만
아마도 사람의 생명이 끝나는 것은 모든 소망이 사라지고 되돌릴 수 없는 끝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죽음이라는 것이 혼과 영의 분리로 보고 동요하지 않는 엘리야, 예수님 그리고 바울에게서
알지 못할 하나님의 큰 그림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죽은 것처럼 보이나 생명이 여전히 있음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나의 삶에서 큰 파도를 서핑하며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죽은 듯 보이나 그 안에 생명 있음을 알게 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이광태 (2020-04-08 23:51:45)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의지합니다. 주의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아주세요. 아멘.
박지은 (2020-04-09 01:00:09)  
소란스럽고 부산한 생각들과 마음들을 내려놓고
모든 생명과 능력과 소망이 주님께 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삶 곳곳에 위로를 심어놓으신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기 원합니다.
장은경 (2020-04-09 01:51:13)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사랑으로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소서.
저의 연약한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어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께 의지해 신실하신 말씀
믿고 충실히 살아가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백은지 (2020-04-09 02:42:10)  
‘(생명)이 그에게 있다’ 바울이 엎드려 안고 말하되
엎드려 안는 모습이 마치 유두고의 생사를 확인 하는 듯한 모습처럼 보여 집니다. 멀리서 말한것이 아니라 유두고가 있는 곳 까지 내려가 가까이서 봅니다. 바울의 강론을 들으러 모인 자들에게는 유두고의 생명이 거두어 진것으로 확인 되었는데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 그들과 달리 바울은 어떤 이유로 유두고에게 (생명)이 있다고 말하였을까 생각해 봅니다. 바울이 내려가는 사이에 유두고의 숨이 돌아온 것일까요? 바울이 보는것은 달랐던 것일 까요? 엎드려 안아 주님의 말씀을 가만히 듣고 믿음대로 선포한 것일까요?..
눈으로 보여지는 것에 치우쳐 낙심하지 않기 원합니다. 오직 생명의 십자가를.. 바라 보기 원하며 기도합니다.
최정진 (2020-04-09 03:33:38)  
이 시련들을 통해 주님의 목적하심은 무엇입니까, 이를 통해서 주님이 주시는 축복은 무엇인지 기대하며 나아갑니다.
이과훈 (2020-04-09 07:17:00)  
삼 일째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본문에서 유두고라는 청년은 낮 동안 고된 노동을 했음에도 말씀을 사모해서 모임에 참여했고, 밤 늦게까지 계속되는 바울의 강론을 듣다가 (7)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창에서 떨어져 죽게 됩니다 (9). 이대로만 끝났다면 황당하고 허탈했을텐데, 유두고는 바울을 통해 다시 살아나게 되고 (10)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말씀을 나눴습니다. 유두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사람들이 위로를 받았다 (12) 고 성경은 말합니다.
유두고의 부활이 다른 사람에게 위로가 되었다는 말씀이 가슴에 남습니다. 아마도 이 사건이 하나님과 그의 말씀이 실제로 능력이 있음을 나타내는 표적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처럼 능력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제가 믿습니다. 이것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래서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저의 달려갈 길을 충성되이 감당하겠습니다. 성령님 함께 해주셔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허락해 주세요.

덧붙여, 유두고의 죽음 전후에 큰 변화가 없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러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합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심리적, 물리적 간격을 넓히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과 같은 절망과 슬픔을 느낄수도 있지만, 그것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형제 자매들이 함께 떡을 떼고 조화롭게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본문에서 말씀을 쫓는 것이 그 비결일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으니, 모두가 함께 하나님께 시선을 향함으로써 이 시기도 잘 견뎌내고 이 어려움을 지나간 이후에도 일상생활을 잘 회복함으로써 서로에게 위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윤사랑 (2020-04-09 07:38:52)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땨 구름타고 오신다 하셨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예수님을 맞이할수 있도록, 부활절날 모든 죄를 회개하는 저가 되겠습니다
이인범 (2020-04-09 08:41:28)  
유두고의 부활을 통해 많은 사람이 위로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한곳에 머물지 않고 주변에게 퍼져나가는 것을 믿습니다.
그 살리신 능력과 그를 통해 전해지는 위로를 보기 원합니다.
박지원 (2020-04-09 10:26:55)  
바울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말씀을 나누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또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얼마나 열심히 경청하고 있었을지...
많은 등불로 밝혀진 이 다락방 속, 사람들의 뜨거움이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유두고의 갑작스런 낙사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경악하고,
그 방의 분위기가 뒤숭숭해지는 모습이 상상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을 허락하셨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처음부터 유두고가 떨어지지 않고, 뜨거운 분위기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질 수는 없었던 걸까?
바울의 말씀 선포로는 전할 수 없었던 큰 메세지를 주시려던 걸까?
유두고가 죽은 부분에서 '어? 왜? 갑자기?' 하는 의문을 품었다가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라는 부분에서 저도 함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습니다.
박지은 (2020-04-09 10:28:19)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처음에 이 말씀구절을 읽었을때에는
유두고가 살아났으니 기쁜 마음에 그것을 “위로”로 표현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또 어떻게 보면 끔찍한 사건을 목도한 모두에게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는 “위로”이겠다 생각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을 통해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위로”를 받았을지
계속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혹시 다른 의미가 있지는 않을까?

유두고가 살아나서 위로가 되기도 했겠지만
각기 다른 신분이나 각자의 독특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다락방에 모인 다양한 사람들이
공통으로 모두 피할 수 없는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지금이나 그때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모든 인간들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행하신 이 기적은
그들에게 부활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계기,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계기가 아니었을까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소중한 계기가 주어졌기 때문에
“위로”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죽은 사람도 잠든 사람처럼 깨우시는
능력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되시니 우리가 기뻐합니다.
우리에게 그 부활을 믿고 살아갈 수 있게
예수 그리스도로를 통해 참 소망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삶속에 두려움이 늘 있고
그 두려움이 우리를 잡아 삼키려할때가 많지만
소망을 가지고 하루하루 살아가기 원합니다!
이인범 (2020-04-09 11:09:55)  
1. 바울은 다음날 떠나야하는 상황에서도 드로아의 사람들과 함께 모여 강론을 했습니다.
바울이 각 교회에 쓴 편지들에는 각 교회가 처한 상황에 맞는 내용의 가르침이 담겨있었습니다.
드로아에 교회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곳의 사람들에게는 어떤 말씀을 했을지 궁금함이 생겼습니다.

2. 청년 유두고의 부활의 영향을 생각해봤습니다. 찾아보니 드로아는 예루살렘과 멀리 떨어진,
지금의 터키에 위치하는 곳입니다. 이곳 사람들중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예수님의 기적들을
본 사람은 드물 것 같고, 사도들의 기적 또한 접한 사람이 얼마 없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듣기만 한 이곳의 사람들이 유두고의 부활을 보며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 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확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 같고, 이는 이 지역 복음 전파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하지만 드로아의 교회에 대해서는 들은 것이 없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해졌습니다.
이강은 (2020-04-09 11:16:04)  
1. 사도행전 20장에서 바울이 유두고를 살려낸 사건을 보며 우리는 다시 한 번 살리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말씀은 죽은 사람도 다시 살려내시는 하나님의 능력, 그 능력을 행하는 바울, 그리고 이를 통해 위로 받는 사람들에게 주로 초점 맞춰져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말씀을 여러 번 읽어보며 무엇보다도 유두고가 떨어져 죽기 전의 상황에 대해 유심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밤새 바울의 강론이 이어지던 이 현장은 어떤 분위기였을까요? 모임에 있던 사람들은 바울에게 어떤 질문을 하고 있었을까요?
하루 종일 일을 하고 피곤함에 지친 일꾼들조차(유두고와 같은 사람들) 바울의 강론을 듣기 위해 모였던 것을 미루어 보았을 때
바울에 대한 그들의 관심이 매우 높았을 것이라 유추해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바울의 손을 통해 기적을 보여주셨었던 일에 대해 물어보거나
바울이 전하는 예수님은 언제 다시 오시는 것인지 궁금해하지 않았을까요?
만약 제가 그 모임에 있었다면 저 역시 바울이 이 자리에서 새로운 기적을 행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또 앞으로 하나님이 행하실 일들이 무엇인지 바울을 통해 듣기 원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지은 (2020-04-09 11:16:36)  
1.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엘리야 (왕상 17:21)와 엘리사 (왕하 4:34,35)의 경우가 생각이 납니다.
그렇다면 사도행전에서 나온 바울의 행동은
구약 예언자들을 흉내냈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그것보다는 깊은 연민과 긍휼의 마음으로
모든 심정을 다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리는 자세로 보여집니다.

2. “주께서 큰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큰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가 과연 어떤 소리일까 생각해봅니다.
오늘 밖에 천둥과 번개가 친것처럼
자연의 재해를 통해 나타나는 소리일까요?
정은선 (2020-04-09 11:32:01)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기적을 행하시며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셨던 것들을
들여다 봅니다. 사람들이 받은 위로는 어떤 위로였을지.... 아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되신다는 것에서 오는 참 평안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우리의 지식과 경험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설마 죽은 사람이 살아나겠어.. 하는 마음에서 그 장면을 지켜봤던 사람도 많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죽은자도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 그 전능하신 하나님을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박지원 (2020-04-09 11:42:19)  
데살로니가전서 4장 15-17절을 보며,특히 그 안에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이끌려 올라가.."
라는 구절을 보며, 이때 당시 크리스찬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그들의 생애 안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확신이 있기에 초대교회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들고 나와
서로와 나눌 수 있었지 않았을까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또한 아직까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는
어떤 자세로 기다려야 할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권모세 (2020-04-09 14:35:23)  
(수요일 묵상)
인간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가늠하기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들이 다락방에 모여 앉아 바울의 말씀을 들을때에
그 중에 누군가 죽을 줄을 생각이나 했을까요.
또, 죽은 뒤, 그 사람이 부활할 것이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유두고의 죽음은 목숨을 걸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알고있다는 살피고 있다는 커다란 위안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저희에게 필요한 것을 먼저 아시고 배풀어 주님,
제게도 주셨고 주실 위로들에 감사함을 잃지 않길 소망합니다.
홍은기 (2020-04-09 15:49:35)  
많은 어려움이 인생의 걸림돌이 되어 넘어뜨리려 할 때
주님의 부활가 재림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잃지 않길 원합니다.
현재의 고난의 벽을 뛰어 넘어 영원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영적 디딤돌임을 믿습니다.
이 진리 안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주님 안에서 기쁨을 잃지 않길 소망합니다.
최평화 (2020-04-09 15:57:17)  
육신이 죽어도 영적인 생명은 계속 된다는 것을 마음속에 새기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 생명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기쁜 마음으로 주를 모시며 소망을 갖고 늘 살기를 원합니다.
또한 매일 매일 충성되이 맡겨주신 달란트로 일하고 하나님의 열매 맺으며 거룩해져 가기를 기도합니다.
이선미 (2020-04-09 19:12:29)  
주님을 모르는 사람처럼...삶과 죽음 사이에 경계선을 그어 놓고
위축되게 살지 않기 원합니다. 사망의 권세에 휘둘리며 망연자실하지
않기 원합니다. 살아있는 동안에도 죽어서도 항상 주와 함께 있을 것을
믿.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게 하옵소서. 소망의 말로 서로
위로하며 영원에 잇대어 하루 하루를 살게 하옵소서.
이광태 (2020-04-09 23:04:51)  
주님과 함께 그리고 먼저 떠난 자들과 함께 천국에서 거할 날을 소망합니다. 주의 사랑받는 자로 영원히 살기를 원합니다. 아멘.
박지은 (2020-04-10 00:37:03)  
영원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
주님의 품안에 거하는것이 어떤것인지 조금씩 맛보며
주님안에서 진정한 평안과 위로를 얻고
하루하루 주님곁으로 더욱 나아가는 삶을 살게 도와주세요!
이인범 (2020-04-10 03:14:23)  
성경 곳곳에 나온 부활의 사건들을 듣고 믿음으로,
특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것을 믿음으로
우리도 다시 살게될 것을 믿습니다.
직접 부활을 목격하지는 못했어도, 수많은 증인들의 증언으로
그 신비를 사실로 받아드립니다.
그 믿음이 날마다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길 기도합니다
최정진 (2020-04-10 06:06:15)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야고보서 1장 1절, 2절 말씀 아멘.
정은선 (2020-04-10 11:47:15)  
부활에 대한 사실을 믿음으로서
더 소망이 있는 삶을 살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 하신 이 세상에서의 삶 가운데
하루하루 맡겨주신 시간과 달란트를 잘 사용하게 하옵시고
영원히 주와 함께 있는 그 부활을 믿음으로 오는 평안을
이 세상의 삶에서도 누리리를 기도합니다.
권모세 (2020-04-10 12:32:39)  
부활의 소망으로 죽음으로 부터 저희를 자유케 하신 주님,
죄많고 어리석은 저도 이 자리로 불러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사실 인터넷으로 서로의 묵상을 나누는 것은 블루밍턴에 와서
처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하루 묵상을 위해 홈페이지까지
들어오는 것 조차 힘들었고 지금도 까먹고 지나치는 날이 허다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두란노 강론에서 큐티를 하며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나눔을 말하시는 지 조금은 알게된 것 같습니다.
죽음의 두려움은 물론이고 작은 삶의 걸림돌도 이겨내지 못할 때에
다른 분들의 나눔이 많이 힘이 됐던 것 같습니다.
모두가 가시많은 인간이지만 주님안에 거할 때
서로가 서로의 위안이 되길 기도합니다.
홍은기 (2020-04-10 14:28:07)  
이 현실이라는 현장 속에서 도피하지 아니하고 여전히 고난 중에도 버티되
주님과 더불어 치열하게 살아나갈수록
우리의 기다림은 영원을 향한 목마름으로, 간절한 기도로, 주님으로 인한 기쁨으로 바뀌어질 것입니다.

만물을 새롭게 하실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세상이 점점 더 각박해져가고 위협적이더라도
기다림과 목마름이 언젠가 주님의 위로와 상급으로 열매 맺힐것을 믿습니다.
윤사랑 (2020-04-10 16:42:06)  
언제나 함께 계시고 맞는길로 인도하시는것을 믿습니다
이선미 (2020-04-10 18:58:05)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려...눈물 골짜기를 지나시는 주님.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주시려...십자가에 달리시는 주님.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부활의 기쁨에 이르기 원합니다.
'죽어야 사는' 복음의 진리 안에서...세상을 향해 죽고
하늘나라를 향해 사는 자 되게 하옵소서.
이광태 (2020-04-10 23:08:21)  
주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를 갈망합니다. 주의 나라를 이 땅에서 확장하는 데 우리를 사용하소서. 아멘.
백은지 (2020-04-11 01:16:17)  
어떤 상황 속 일지라도 긍휼과 사랑으로 함께 하시며 두려움과 애통의 자리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는 주님만을 바라볼 수 있기 원합니다. 오직.. 하늘나라를 향한 애통이 심령 속 있을 수 있기를 원하며 기도 합니다.
장은경 (2020-04-11 04:11:0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 자 같이 세상의 폭풍 앞에 두려워 하지 않게 하소서.
주 안에 우리는 하나임을 잊지 않고 그 위로와 소망안에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과 믿음으로 구원의 소망을 함께 나누며 헛되지 않는 삶을 살아내기를 소망합니다.
이인범 (2020-04-11 04:25:28)  
부활을 통해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나아가기 원합니다.
새로워지는 만물 가운데 나도 포함되어
그 자리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길 원합니다
박준혁 (2020-04-11 04:25:44)  
Today, my sister and I studied the short story “The Japanese Quince”.
The story is about a man who decides to try something different from his regular,
strict lifestyle and go for a walk around a garden.
There, he sees his neighbor and starts a conversation.
While they talk, he sees a strikingly similar appearance that he and his neighbor share.
They are wearing the same clothes, have the same facial features, and have the same occupation as a businessman.
He suddenly feels a sense of self-consciousness and disgracefulness
because he knows his neighbor is thinking that he is foolish for leaving his house and breaking his schedule.
He goes back home because he feels guilt and depression, but at the same time,
his neighbor feels the same way, and leaves for his home also.

God, You give me the chance to live a new life, and You invite me into a life full of love and security.
However, I am too scared to follow You and live the way that I should in order to live with You eternally.
Because of my weakness and selfishness, I go back into my strict, sinful life of comfort.
God, help me regain strength in order to live with You, and love You with all of my heart.
박지은 (2020-04-11 08:24:24)  
하나님의 나라에 나의 소망을 두며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이 땅에서
성실히 할 수 있기 원합니다!
최정진 (2020-04-11 10:57:26)  
주님, 나 자신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정 반대의 길로,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세요.
정은선 (2020-04-11 13:04:39)  
지나가버릴 세상의 일들로 슬퍼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온전히 새롭게 하실 주님을 기대하며
예수님의 “부활”을 다시 한 번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이선미 (2020-04-11 19:16:58)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예수님과 함께 살아날 것을
기대합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생명의 하나님' 안에서 마른 뼈와
같던 몸과 마음에 부활의 주님을 옷 입혀 주옵소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아버지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김나영 (2020-04-11 22:02:48)  
빛으로 오신 주님,
저희와 함께 하시며 새로운 생명으로 이끄시는 주님께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저희또한 빛의 길로 가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주일설교 (2020/04/19): 여호와의 만찬 (이사야 25) (마가복음 5) (요한복음 11/12) (출애굽기 24) [79]
주일설교 (2020/04/05): 먹이시는 하나님 (열왕기상 17) (열왕기하 7) (요한복음 6) (빌립보서 4) (시편 34)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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