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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태(2020-04-27 04:40:17, Hit : 521, Vote : 9
 주일설교 (2020/05/03): 여호와의 언약 (이사야 55) (예레미야 32) (에스겔 37) (마태복음 11) (잠언 22)

주일예배: 2020/05/03
설교주제: 여호와의 영원한 언약


(월요일 묵상) (이사야 55)
========================
3   이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옛적에) 다윗에게 약속했던 확실한 은혜이니라
4   보라 내가 그를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그를 온 세상 민족들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느니라
5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들을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들이 네게로 속히 달려오리라
    이는 너의 여호와 하나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를 지극히 높이시고 영화롭게 하셨기 때문이니라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여호와께서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한 자들은 이제 그들의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들은 그들의 생각을 버리고/돌이키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8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화요일 묵상) (예레미야 32)
==========================
1   유다 왕 시드기야가 왕위에 오른 지 열째 해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재위 열여덟째 해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2   그때에 바벨론 왕의 군대는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었고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 왕의 궁중에 있는 경비대 안에 갇혔으니
3   이는 예레미야가 예언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줄 것이니 그가 이 도성을 차지할 것이라
4   그리고 유다 왕 시드기야는 갈대아인 (바벨론 군대의) 손에 붙잡혀서
    반드시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지게 되리라 ...
5   바벨론 왕은 시드기야를 바벨론 땅으로 끌고 갈 것이라 그리고 시드기야는
   (후에 언젠가) 내가 다시 그를 돌아볼 때까지 거기에 포로로 붙잡혀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하였더니) 유다 왕 시드기야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와 같이 예언을 하느냐 하고 그를 가두었음이었더라 (6-35)

36  지금 너희가 "예루살렘 도성은 적군의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긴 바 되었다"라고 말하는 이 예루살렘 성에 대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37  보라 내가 장차 때가 이르면 내가 큰 분노로 말미암아 그들을 쫓아 보내었던
    온 세상 모든 곳에서 그들을 불러 모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
38  그때에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 (39)
40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리라 (그들과 맺으리라) ... (41)
42  내가 이 백성들에게 이런 큰 재앙을 내린 것 같이 앞으로 내가 그들에게
    약속한 모든 복을 풍성하게그들에게 내리리라
   [이는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43-44)


(수요일 묵상) (에스겔 37)
========================
1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붙들어 올려
    어떤 골짜기로 데리고 가서 한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2   여호와께서 나를 그 뼈들이 널려 있는 사방으로 다니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 도처에 뼈가 심히 많이 흩어져 있는데 바짝 말라 있더라
3   그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인자야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물으시기에
    내가 대답하되 "여호와 하나님이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니라 (4-14)

15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6  인자야 너는 막대기 하나를 가져다가 그 위에 "유다와 그의 짝 이스라엘 자손"
    이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가져다가 그 위에는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모든 족속이라 써라" (17-20)
21  너는 네 동족들에게 선포하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이 끌려가서 살고 있는 온 땅의 여러 곳에서
    데리고 나오며 뭇 나라들 가운데서 모아서 고국 땅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22  그리고 난후 고국 땅 이스라엘의 산에서 그들이 한 나라 한 민족을 이루고
    한 왕이 그들을 다스리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으로 갈라지지
    아니하며 다시는 두 나라로 나누어지지 아니할지라 (23-24)

25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그의 조상들이 살았던 땅에 그들이 거주하되
    그들과 그들의 자자 손손이 영원히 거기에 거주하게 될 것이요 나의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영원한) 왕이 되리라
26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맺으리니 그것은 영원한 언약이 될 것이라 또
    내가 그들을 견고하게 세우고 번성하게 하며 내 성소를 그들 가운데 세워
    영원히 이어지도록 하리니
27  내가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 두어 항상 그들과 함께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28  내 성소가 영원토록 그들 가운데 있을 그때에 온 세상 모든 민족이
    내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다 하라


(목요일 묵상) (마태복음 11)
==========================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금요일 묵상) (잠언 22) (전도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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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마땅히 행할 올바른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서도 그 길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15  아이들은 미숙하여 미련한 짓을 많이 하느니라
    징계의 회초리로 잘 다스리면 어리석음을 쫓아내리라
17  너희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잘 들으라
    그리고 지혜자의 가르침을 네 마음에 늘 새겨 둘지어다

1   범사(모든 일)에 다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에 다 알맞은 때가 있느니라 (2-10)
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이상태 (2020-04-27 04:57:57)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을 주려는 것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의 소망을 주려는 것이니라
박지원 (2020-04-27 10:33:34)  
목사님께서 이번 설교 말씀에서 목사님께서 언급하신
(**)[이런 집단 행동이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을까...
긍정적 측면이 있었을까... 의견들을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에 대한 생각을 생각을 나누어보겠습니다.

중세시대에는 성당이 도피성과 ‘비슷’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도피성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성당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살인을 저지른 자라 해도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흑사병이 유행하던 당시 사람들은 성당, 혹은 신자들의 모임에서
어떠한 ‘신성’에 의해 보호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특히 그 때 당시 병을 죄나 사단과 연결해서 생각했던 시기에
그 믿음은 더욱 컸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모임이 그들에게 주었을 심리적 안도감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에 대한 잘못 된 믿음이
그들에게는 상당한 심리적 안도감을 주었을 것 같습니다.
박지원 (2020-04-27 10:50:08)  
이어서 그 뒤에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왜 교회들이 우리 사회의 모범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가 교회를 염려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을까...
진지하게 의견들을 나누어보면 좋겠습니다.] 에 대해 나누어보겠습니다.

이전 질문에 대한 답과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 과격한 의견일 수 있지만, 제 생각에 이러한 상황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믿음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실거야’라는
원인과 결과를 무시하는 잘못된 생각에 기반한 ‘믿음’으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물론 믿음이 있는 사람들에게마저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과, 기본적인 이치를 무시한채로
막무가내로 믿음(으로 보이는) 행위만을 강요하는 일부 때문에
모범이 되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인범 (2020-04-27 10:50:42)  
이번주 설교 본문에 있는 흑사병이 퍼지는 가운데 행한 집단 생활의
긍정적인 면을 생각해봤습니다. 특별히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를 통해
겪는 경험과 연결해서 생각해봤습니다. 지금은 의학이 발달해서 사람들과의
접촉을 줄이는 것이 질병의 전파를 막고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로인해 집에서 머무는 시간을 갖더라도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사람들과 교류가 완전히 끊기지 않고 서로의 소식을 들으며
이 기간을 함께 지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흑사병이 돌던 시대의 사람들은 집에서 머물게 되면 정말로
고립되어 버립니다. 흑사병에 대한 두려움과 병든 자들의 아픔,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경험한 슬픔은 혼자서 감당하기엔 너무나
큰 문제였을 것 같습니다. 혼자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도 그 어려움은
견디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함께 모이게 되면 이 순간을 통과하는 것이
혼자가 아니라는게 마음에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하루를 견뎌내는
힘이 될 것 같습니다. 홀로 외로운 곳에서 언제 병에 걸리게 되어 아프게 될지,
죽게 될지 모르는 상황을 두려워하며 기다리는 것보다는 함께 하나님을
붙잡고 기도하며 서로를 보살피며 흑사병을 나름대로 대응해 가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고 또 가장 생기 넘치게, 역동적으로 흑사병과 싸울
힘을 얻는 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결론적으로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죽게된 것이 안타깝지만 그 시대 의학 배경과 상황에서는 최선이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박지은 (2020-04-27 10:51:40)  
*주일설교 말씀에 목사님께서 올려주신
흑사병에 관한 내용을 올립니다.

1. 흑사병이 돌았던 절망적인 시기에
신자들이 모여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말씀을
나누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우선,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말씀은
시편 23편 나오는 구절들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모여서 시편 말씀이나
시편 말씀과 같은 말씀을 보며
힘과 위로를 얻지 않았을까요?

오히려 위로를 얻고
힘써 살아가려 했던 사람들이 모인 모임으로
감염이 확산된것이라
더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박지은 (2020-04-27 11:01:52)  
2. 사회의 모범이 되지 못하는 우리 교회들의 현실을 마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모범적인 교회는 어디일까 생각해보던 와중에
엄마와 함께 사도행전 11장,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린 사람들이 있는
안디옥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때 예루살렘을 포함한 로마전역에 큰 기근이 들면서
국가적 재난이 일어납니다. (개역성경에서는 “흉년” 새번역에서는 “기근”이라고 표현되어있더군요)
국가적 재난앞에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무엇을 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기도를 했거나 모여서 예배했다고 나오지 않습니다.
또는, 이 국가적 재난이 하나님이 내리시는 심판이라고 회개한것같지도 않아보입니다.
그들은 그저 형편대로 자신의 몫을 정해서 유대, 즉 예루살렘교회에 구제금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실행했다고 분명히 누가는 기록합니다.

안디옥 교회의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재난이 하나님의 심판인지 아닌지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누구 때문에 일어났는지 그리고 누구에게 탓을 돌릴 것인지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기근을 이길 수 있게 해달라고 함께 모여서 예배했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형편이 닿는 대로 가진 것을 모아서 예루살렘교회에 구제금을 보냅니다.
안디옥에도 흉년이고 자신들도 어렵지만,
그들은 이 국가적 재난 앞에 자신보다 더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돌아보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코로나19라는 재난 앞에서
우리에게 제시해주는 모범적인 모습인것 같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재난 가운데 하나님을 탓하고,
남을 탓하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원망 섞인 물음들이 많이 생깁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을때라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할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강은 (2020-04-27 11:02:27)  
*목사님의 주일 설교 말씀을 읽으며
흑사병이 유행하던 시대의 집단 모임,
그리고 오늘날 코로나가 유행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 교회의 대처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유럽 전역에 흑사병에 대한 공포가 퍼져있을 때
신자들이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모여서 기도를 올리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로인해 집단병은 더욱 크게 확산됩니다.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그들의 행동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을 찾기 어려워 보이긴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병에 걸려 죽어가면서도 마냥 절망적으로만 무너져가지 않고,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이 예배와 기도를 통해 조금이라도 희망을 붙잡고 살아갈 수 있었더라면
그들의 모임이 아주 의미없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개신교의 많은 교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 예배를 강행하는 것을
과거 흑사병 시대를 겪던 사람들의 생존에 대한 간절함 혹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까요?
과거와 다르게 현재 우리는 전염병의 확산 원인과 예방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묵과하고 기도로만 이겨내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흑사병 시대의 사람들의 '무지'와는 다른 '무모함'이라는 생각이 들기도합니다.

혼란한 상황속에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기도로 간구해야함은 옳지만
이럴때 일수록 교회가 사회에 모범이 되어 어려운 사태를 이겨내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들게 되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어떤 것이 올바른 믿음의 행동인지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박지은 (2020-04-27 11:54:47)  
*제가 한가지 까먹은게 있어
하나 더 추가적으로 올립니다.

제가 올렸던 첫번째 질문
“흑사병이 퍼지고 있을때 예배하고 기도하려 모인 사람들은
어떤 말씀을 나눴을까요?”에 관해
마태복음 10장 28절 말씀 또한
인용되지 않았을까 나누었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 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홍은기 (2020-04-27 13:35:44)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내 생각대로 하기도 하고 하지 않기도 합니다. 내 판단대로 멈추기도 하고 달려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 생각과 내 판단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결정하고 순종하며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생각을 내 잣대로 재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고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길을 온전히 따르는 복된 그리스도인으로 오늘을 호흡해 나가겠습니다.
눈앞에서 두렵게 하는 실체가 무엇인지 바르게 분별함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분량을 성실히 살아가겠습니다.
이선미 (2020-04-27 17:20:39)  
나의 생각에 파묻혀 사는 것을 경계하기 원합니다. 나를 고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흘려 듣는 우매함에서 벗어나기 원합니다.
편한 것을 좋아하고 아픈 것을 피하려는 본성을 다스리게 하옵소서.
고치 속의 나방을 나비 되게 하시려는 아버지의 뜻을 믿고
순종하게 하옵소서.
윤사랑 (2020-04-27 18:03:00)  
저번에 저희교회에서 "여호와께 돌아가자" 라는 찬양 했던것이 기억납니다.
욕심과 악한 마음을 버리고 여호와께 돌아가는 자가 되도록 도와주세요.
임성희 (2020-04-27 22:26:29)  
어제 말씀과 오늘 말씀을 통해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하게 합니다.
예배조차 드릴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이
하나님이 어떤 메세지를 주시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집에서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시는 모습.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예배를 드리기를 기도합니다.
진문균 (2020-04-27 22:38:03)  
매일 같이 여호와를 찾고 부르는 삶이 되길 원합니다.
이광태 (2020-04-27 23:52:00)  
주를 찾고 부릅니다. 주를 향할 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길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아멘.
윤소영 (2020-04-28 00:33:27)  
오늘 하루도 여호와 나의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며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하며 순종 하길 기도 합니다.
성령님 도와주세요. 아멘.
백은지 (2020-04-28 00:50:43)  
세상은 기독교를 염려하고 인정하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실리를 따져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유익을 추구합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누구의 탓만을 하며 서로가 서로를 추적하기에 급급한 아비규환 입니다. 교회가 이러한 세상으로부터 판단되어 진다는 것이 그들의 우려가 되어진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프고 부끄럽습니다. 사회가 교회를 바라보는 염려와 시선에 급급한 대처를 하는것이 아닌 우리 기독교인들이 교회가 먼저 세상을 품어 그들의 형편과 상황을 살펴 대쳐 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들로 하여금 사랑의 모범됨을 보일 수 있기 위해 진정으로 해야할 일 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권세들은 우리의 깨어짐과 흩어짐을 바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닫음으로 믿음의 연약한 신자들이 교회를 떠날 수 있음을 염려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간과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문은 닫혀도 그리스 안에 묶임바 된 우리를 먼저 친히 찾아오시는 주님과의 관계는 결코 끊을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비록 예배당에 모여 함께 말씀을 나누고 찬양을 할 수는 없지만 공동체가 말씀으로 묶이어 더욱이 서로를 위해 중보하며 돌아보는 사랑의 모임이 지속 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이 시기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 찾으며 서로를 격려하여 믿음이 성숙 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자녀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바이러스가 주는 공포의 넘어 우리에게 실질적인 괴로움과 두려움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더불어 생각 해봅니다. 나의 약함으로 인해 주의 뜻안에 바로 서지 못함을 주께 고백합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환난의 종류를 분별하고 대처 할 수 있는 지혜의 눈과 용기를 주께 구하며 기도합니다. 주가 주신 지혜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주의 자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 합니다.
박지은 (2020-04-28 01:09:09)  
우리의 생각과 뜻보다 크고 놀라운 계획을
펼치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다른것을 내 마음속에 두며
하나님과 멀어져가는 삶을 택하지 않고
나의 삶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 되길 원합니다.
이과훈 (2020-04-28 02:31:05)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이 우리에게 최선임을 기억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뜻을 따라 높이기도 하고 낮추기도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허락하신 확실한 은혜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내릴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겠습니다. 제 인생을 돌보아주세요.
이강은 (2020-04-28 04:09:51)  
주님께서는 영원하고 확실한 말씀을 주시지만
이를 믿지 못하고 무너지는 제 자신을 볼때가 많습니다.
나의 생각보다 훨씬 크고 깊은 하나님의 생각을 의심치 않고
순종하며 그 길을 따라갈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세요.
또한 우리의 악한 마음과 행동을 버리고 우리 가까이 계신 주님께
돌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장은경 (2020-04-28 04:40:10)  
공의롭고 완전하신 하나님..한없이 연약하고 어리석은 우리를 긍훌히 여기시어 지금도 여전히 영원한 구원의 은혜안에 살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언약의 성취의 때는 알수 없지만 한없이 부어주시는 부르심의 은혜에 순종하며 나의 생각 나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겸손히 은혜를 사모하며 하루하루 성실히 따르는 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최평화 (2020-04-28 05:36:35)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여호와께서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이인범 (2020-04-28 06:27:49)  
하나님의 생각은 나의 생각과 다르고 하나님의 길은 나의 길과 다르다는 생각이
가끔은 하나님께서 나에게로부터 멀리 떨어져 계신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합니다.
멀리서 지켜보시며 그 길이 아니라고 얘기하시는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떠올립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땅에 오셔서 친히 함께, 먼저 고통받으신 예수님을 떠올립니다.
이순간 나의 삶에도 함께하고 계실 것을 믿고 붙잡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길로 갈 수 있게 인도해주시길 기도합니다.
박지원 (2020-04-28 09:56:36)  
(**) [종교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과 종교인들의 신앙생활 그리고 특히
종교 행사와 예배의 형식 등과 관련하여 앞으로 어떤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을까...
우리의 생각들을 함께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인터넷 예배가 성행하면서 사람들의 기호가 더욱 극명하게 나누어질 것 같습니다.
간편함과 효율을 추구하고 테크놀로지를 다루는데 익숙한 사람들은
현재와 같은 예배를 지향할 것 같습니다.
반면에, 불편하더라도 예배의 형태와 완성도를 중요시 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예배를 지향할 것 같습니다.
이에 따라 다양한 성도들의 바람을 맞추어주는
다양한 형태의 교회와 생기고 다양한 예배가 드려질 것 같습니다.
이강은 (2020-04-28 10:44:32)  
주일 말씀)
배경 [2]에 목사님께서 제기해주신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1. 코로나 이후 교회와 관련하여 커다란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을거라 예상합니다.
여러 방면에서의 변화가 있겠지만 저는 그 중에서도 교회에서의 사람들의 모임이 어떻게 변화될지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가 함께 떡과 잔을 나누던 성찬식은 어떤 식으로 진행될까요?
예배 후에 모두 모여 친교식사를 할 수 있을까요?
아마 사람들이 모여서 했던 것과 관련한 많은 부분들이
형식적으로만 진행을 한다거나 아예 생략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되더라도 다수의 사람이 모이는 것에 대한 공포가
우리사회에 한동안은 여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현장예배보다는 온라인 예배를 선호하는 성도들이 많아질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2. 코로나로 인해 인디애나주에 Stay-at-home Order가 내려진지도 한달이 지났습니다.
외출 제한으로 인한 일상의 변화는 저에게 매우 크게 느껴집니다.
학교가 문을 닫은 이후로 저는 제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피아노 연습을 못하게 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물론 학교에서 전자피아노를 배급해주어 그것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한계가 많습니다)
일상의 가장 큰 부분이 이전처럼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니, 저는 요즘 불안함을 자주 느끼곤 합니다.
제 전공과 더 나아가 저의 가까운 미래에도 직결되어 있는 문제가
크게 타격을 받고 있기 때문에 빠른 시일내에 이 상황이 나아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박준혁 (2020-04-28 11:53:44)  
Today, I thought to myself, “Why is it hard for people
to hold Sunday worships services at home during this time?
Is it because there is no pastor? Is it because the number of people at home is small?
Is it because there isn’t any accompanied music with the piano, drums, and guitars?

It is evident that adjusting to a completely different lifestyle is difficult.
However, these excuses are not good enough for us to plainly give up on worshipping God.
For example, my mom once told me that many churches in Korea have been kindly producing
“가정에서 드리는 명절 예배” which consists of guidelines to worship at home a week ahead of the holiday season.
If people can take the initiative to do this during the holiday season,
we should be able to worship God at home even during this unprecedented, troubling time.
박준혁 (2020-04-28 11:54:12)  
This Sunday, 이선미 사모님 gave us a sermon on Isaiah 55:6.
She told us that in these hard times, we should try to seek
the Lord and focus on our relationship with God.
Isaiah 55:6 was also in Tuesday of last week’s scriptures.

I believe that God is wanting me to meditate and remember this passage.
God, help me in this time of hardship, and help me to remember that You are with me all the time.
정은선 (2020-04-28 12:12:09)  
긍휼히 여겨주시고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는 주님
항상 같은 자리에 한결같은 마음으로 계셔주셔서 감사합니다.
요동치는 세상과 저의 마음 가운데 주님의 뜻을 먼저 묻고
나아갈 수 있는 자 되기를, 인도하시는 길이 어딘지 모르더라도
먼저 순종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홍은기 (2020-04-28 13:51:33)  
예레미야는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나라가 멸망 직전에 놓였을지라도,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옥살이를 하고 있을지라도, 바벨론에 끌려가 노예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실지라도
인정하고 수용하고 그 자리를 지킵니다.
어떻게 이런 상황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불평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을 그대로 수용할 수 있을까요?
만일 저에게 예레미야가 처한 상황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행동할 지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어찌 이런 일이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이 나라에 일어날 수 있느냐며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예레미야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임에도 기대와 다른 현실의 문제를 수용할 수 있었을까 ...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와같은 마음을 예레미야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40~41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하나님...저에게도 이런 말씀을 심어주시고 새겨주세요....
이강은 (2020-04-28 15:10:17)  
예레미야 32장)
지금 당장 이스라엘 백성의 눈에 그들이 있는 땅은 그저
바벨론에게 빼앗긴 땅, 사람도 짐승도 없는 황폐한 땅으로 보이겠지만
주님께서는 다시 이 땅에서 사람들이 밭을 사게 될 것이며,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도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의 약속을 주십니다.
그 뿐만 아니라 큰 재앙을 받은 만큼, 이에 못지 않은 모든 복을 베풀어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우리도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았던 것처럼
현재 우리의 삶이 황무지 가운데 놓여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할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베풀어 주시리라 약속해주십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황폐한 땅의 한 가운데에서도
주님께서 베푸실 복을 기대하며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이선미 (2020-04-28 17:37:10)  
포로생활 중인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소망의 말씀을 일상에서 단절되어 갇힌자 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습니다. 육적인 만남이 금지되는 이 때를 '영적인 만남의 시간' 삼기 원합니다. 바쁜 일상이 멈춘 이 때를
쓸모없는 바쁨의 거품을 걷어내는 시기 삼기 원합니다. 이웃과 거리를
두며 지내는 지금이 아버지와 가까와 지는 때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일상을 회복시켜 주실 때...'거듭난 백성'으로 아버지 앞에 서게 하옵소서.
윤사랑 (2020-04-28 18:50:04)  
잘못된 길을 가지 않고 하나님의 길로 갈수 있는 자가 되고싶습니다.
하나님앞으로 돌아갈수 있는자가 되도록 오늘 하루도 잘 도와주세요.
김나영 (2020-04-28 20:54:16)  
함께하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단절의 시기를 준비의 과정으로 현명하게 보내길 기도합니다.
박지은 (2020-04-28 21:04:42)  
이스라엘 백성의 끊임없는 하나님에 대한 배반으로 인해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역시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내버려두시지 않으시고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것에 대한 소망의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
하나님을 배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부끄러운 모습들을 돌아봅니다.
하지만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회복의 의지가 담긴 약속들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그것을 믿고,
그 믿음에 기반한 순종을 하루하루 실천 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세요!
박지은 (2020-04-28 21:08:47)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많은 교회들이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포함한 이 세상의 많은 성도들은
신앙생활에 있어 크고 작은 변화들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해보고 싶은 부분은 “교회”에 대한 인식의 변화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저 교회 (안)다녀요” 또는 “저 교회 (안)나가요” 라는 말을 쓰는데
교회를 생각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것은 건물, 또는 장소입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시작된 온라인 또는 가정예배가 계속된다면
이제부터는 교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한 장소나 건물이 연상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이기에 힘쓰며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행위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주의 이름으로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함께하신다는 말씀도 기억하겠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우리가 자유하게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할 수 있는 길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열어 놓으신것 같습니다.

혹시 그동안 빌딩이나 건물의 개념에 갇혀서
예배드리는 행위만을 예배라 정의하며 신앙생활하지는 않았는지,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순간에도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영과 진리로 예배할 수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다시금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갈 결정적인 기회가 생긴것이 아닐까요?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한 몸,
즉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 된 교회의 지체로 부름 받아서
모이기에도 힘쓰지만, 동시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고,
편지가 되어 나누어짐으로-전하여짐으로-흩어짐으로
복음이 땅끝까지 이르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복음이 땅끝까지 이르게 되는
놀라운 일의 일꾼들로 사용되길 소망합니다.
장동은 (2020-04-28 22:19:40)  
보라 장차 때가 이르면....우리를 멸하게하려 하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려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주님의 때를 인내함으로 기다리는 제가 되기를 원합니다..
백은지 (2020-04-28 23:23:59)  
모든 시선 주님께 드려 살아계시는 하나님을..함께하시는 성령님을 느낄 수 있는 한 주간이 되기를 기도 드립니다.
이인범 (2020-04-28 23:36:48)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뜻을 전하셨지만
그 말씀이 사람들에 마음에 곧바로 온전히 전달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대로 계획을 하나씩 이루시며
바벨론을 통해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다시 모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드리지 못하는 동안에도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꾸준히 말씀하시고 역사하고 계심을 믿고 그 음성에 마음을 열 수 있게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이광태 (2020-04-28 23:53:03)  
주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기를 원합니다. 주의 때에 주의 방법으로 이루실 것을 기대합니다. 아멘.
윤소영 (2020-04-29 00:04:50)  
어려운 시기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나의 겉과 속 모두 하나님의 사람으로 더 단단해지질 기도합니다. 아멘
진문균 (2020-04-29 00:09:01)  
주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평안 가운데 지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과훈 (2020-04-29 05:20:05)  
하나님께서는 그 하신 말씀을 지키십니다. 그것은 심판과 회복의 약속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예레미야 32장에서는 굉장히 안좋은 상황들이 묘사됩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를 통해 선포되는 말씀들이 대조적입니다. 초반에는 바벨론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는 상황에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했는데, 시드기야왕이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는 예언이 반복되며 이것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 선포됩니다 (3-5). 그런데 그 말씀이 이루어진 후에 황폐해진 예루살렘에서 선포된 말씀에는 회복과 축복이 담겨있습니다 (37-42). 오늘 본문이 알려주는 것은 공의를 따라 심판하시기에 엄격해 보이는 하나님이 실제로는 사랑이 가득한 분이고 우리에게 아낌없이 축복을 주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말씀을 따라 예루살렘이 훼파되어 희망이 없어보이는 때에 축복과 회복을 약속하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도 잃지 않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보니 안타깝기도 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눈에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일들도 손쉽게 극복하게 하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축복과 능력을 아낌없이 부어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음으로써 이 통로를 가로막습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 왕때처럼) 강대한 타국의 군대들을 물리친 전력이 있음에도 그 능력을 가로막은 것은 시드기야왕이었습니다.예언을 무시하고 예언자를 박해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망하게 된 상황에서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은 회복과 축복을 약속하는 예언으로 표현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회복하는 “그때에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 (38)” 라고 말씀하십니다. 고국으로 귀환하는 것, 물질적인 복을 받는 것에 더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것을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회복입니다.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숨통을 틔어주심을 발견하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상황을 뛰어 넘어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해주세요. 오늘도 힘 주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장은경 (2020-04-29 05:28:35)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땅에 심으리라.

예레미야의 슬프고 애통함의 기도에 하나님의 슬프고 애통하시는 마음과 위로와 반드시 회복하심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우리가 기쁘지 않고 괴로울때..하나님도 기쁘시지 않으시며..괴로워 하심을..기뻐하실 때가 있으셨을까..
기쁨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시며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으시고 가꾸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니 지금의 나의 모습과 드리는 마음들이 정말 부끄럽고 죄스럽습니다.
끊임없이 말씀하시며 그 마음과 뜻을 따라 한마음 한 뜻으로 따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현실에 고통과 슬픔들 속에서도 그것을 넘어 우리에게 지금도 말씀하시며 이루시는 그 뜻에 한 마음으로 슬퍼하며 애통해 하며 기도하는 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뜻을 구하며 제 몸과 마음이 변화되고 행하게 하소서.
박준혁 (2020-04-29 07:43:45)  
배경 [3] 우리는 신앙생활 가운데 이러한 "의문을 품은 적이 없는가"
함께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Sometimes, I ponder upon my own identity,
whether I identify as myself a Korean or an American.
Recently, due to the COVID-19 outbreak,
these thoughts have increased since our family
is not eligible to receive help from neither the Korean nor the American government.

I also ponder upon my religious identity, as we identify ourselves as children of God.
We say that we get help and protection from God,
but sometimes the protection that we see from governments seems more helpful.
If I am a child of God, I feel like I should be protected from even a small droplet of water.
However, it sometimes feels like He is putting me in and out of water.
윤사랑 (2020-04-29 08:31:41)  
오늘 말씀은 어렵지만,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이강은 (2020-04-29 09:07:50)  
주일말씀)
배경[3]에 제시하여주신 '의문'과 관련한 생각을 나눕니다.

저는 아직 이스라엘 백성들이 민족 정체성과 신앙관에 의문을 품게 되었던 사건에 비할만큼의
커다란 트라우마적인 상황을 겪어본 적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일상중에 가끔 하나님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될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해주시고 있는가?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이 확실한 것일까? 하나님은 왜 믿지 않는 자들을 더 형통케 하실까? 와 같은 생각이 들곤합니다.
어쩌면 이런 생각을 꽤나 자주 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반성도 됩니다.

이런 의문을 품고 살아가는 가운데 이번 주 이사야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지 않고, 다시 그들의 땅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게 하신 일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하나님의 계획은 그 무엇보다 완전하지만
때때로 우리가 무지하여 그 계획을 헤아리지 못한채 이와 같은 의문을 품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박지은 (2020-04-29 10:18:52)  
**코로나19로 인한 개인적인 심리적, 육체적 변화?

우리가 코로나 19로 인해 “갇힌” 상황에 있는지도 거의 한달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저는 학교의 모든 수업들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노트복 또는 핸드폰 스크린 사용기간이 코로나 사태19 이전보다 현격히 늘어났습니다.
최근에는 눈이 아프다던지, 머리가 아파서
개인적으로 운동을 그닥 좋아하지 않지만 억지로라도 한번씩 산책을 나가곤 합니다.

오늘도 저녁을 먹고 공부를 하다가 산책을 나갔는데요,
잎사귀들의 푸른 초록이 제 눈을 정화시켜준다는 느낌을 처음 받았습니다.
작년의 나무들과 크게 다를것 없는 잎사귀일텐데
요즘 많이 지친 제 눈이 푸른 초록의 색감의 잎들과
아름다운 하늘로 인해 잠시 쉴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계속 걷다가 주변에 있는 집들로 눈을 돌렸습니다.
신기하게도 많은 집들이 집 구조가 훤히 다 보일정도로 블라인드를 활짝 열어놓고 있어서 놀랐습니다.
그전에는 블라인드를 치면 더 쳤지 확 열어놓고 있는것은 드물었으니까요.
동네 사람들도 아마 계속 집에만 있다보니
밖을 향한 그리움을 블라인드를 통해 엿볼 수 있었습니다.


2. 개인적으로는 이번 사태로 인해 시간의 여유가 조금 더 생기면서
전에는 공부를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한국과 중국의 역사,
특히 삼국지에 대한 공부를 조금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삼고초려” “도원결의” 또는 “파죽지세” 같이 흘려들었던 사자성어들이
어디서 부터 유례되었는지 알게되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성경속 왕들의 이야기와 그들 곁에 있었던 선지자들과
이미지가 조금씩 겹치는 이야기들도 있어서 더 흥미로웠습니다.
(여전히 한자로 이 사자성어들을 쓸줄은 모르지만요 ^^)


3.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인간들의 활동량이 줄어들면서 자연이 회복하고 있다는 소식들을 종종 접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국제적 멸종위기인 리들리 바다거북은 산란을 위해
인도 동부 오디샤 주 해안에 10년만에 다시 출현하였고,
태국에서는 관광객을 피해 숨었던 듀공 무리가 헤엄을 치고 있다고 합니다.
대기오염도와 이산화질소 수치도 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인간의 이기적인 활동으로 인해 자연이 많이 아파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더욱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박지은 (2020-04-29 10:19:08)  
**신앙생활 가운데 우리의 신앙관에 대한 의문을 품은 적이 없는가?

4.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나?”라고
가장 강하게 생각이 들었던 적은 엄마가 미국에서 추방당하셨을때입니다.
그때의 상황은 정말 앞이 깜깜하다 못해 돌아보면 어떻게 버텼는지 의아할때도 있습니다.
많이 울었던 기억, 그리고 하나님을 많이 찾았던 기억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그 고통가운데 깨닫게 하시고, 함께하시고, 또 위로하셨구나 싶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아픈 현실들을 마주할때
여전히 원망스러운 마음이 드는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동아프리카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70년만에 최악의 사막 메뚜기들의 침입을 받아
황페해져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미국처럼 잘 사는 나라들로 버티기 힘든 현실인데
메뚜기 때에 이어 코로나까지 겪어내야만하는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을 생각하면 마음의 의문을 품게됩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얼마나 인간의 생각과 다르시기에 이러한 고난을 허락하시는가…

저는 우리 하나님께서 보살피시는 하나님임을 배워왔고 또한 그렇게 믿습니다.
그러나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빠른 시일내에 찾을것이라고 생각되진 않습니다만…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깨달음을 주실것을 믿으며
잠잠히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을 허락해주시길 간구합니다.
홍은기 (2020-04-29 12:43:01)  
**"[오호라] 모두 와서 음식을 (사) 먹어라 / 돈을 내지 말고 값도 지불하지 말고 포도주와
젖을 거져 마셔라"는 외침이 나의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내가 어렸던 시절에 누군가가
길 거리에서 이렇게 외쳤다면 길 가던 사람들이 특히 걸인(乞人)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
을까... 지금까지도 내전(內戰) 중에 있는 시리아의 난민촌(難民村)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외친다면 난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 [우리들이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목사님께서 지난 주 설교에 언급하신 "보릿고개"라는 단어를 아이들이 질문했습니다.
어떤 분위기로 이 단어를 설명할까…고민하다가 노래를 한 곡 들려주었습니다.
(최근에 한국에 트로트 열풍이 불면서 “보릿고개” 라는 노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있다고
들었습니다) “야야 뛰지마라 배 꺼질라 가슴 시린 보릿고갯길 …초근목피의 그 시절….
주린배 잡고 물 한바가지 배 채우시던….”
아이들이 이 가사를 처음에는 쉽게이해하지 못했는데 노래를 들으며 설명해주니
몹시 가슴아파했습니다. 목사님께서 한국 전쟁 후 어려웠던 시기를
설교에서 언급해주신 장면들과 함께 생각해보았습니다.
덧붙여 난민촌에 대한 생각들과, 난민촌을 영상으로 보았던 것들 중에
기억에 남는 것들을 나눠보았습니다.
얇은 방수포 천막으로 겨우 움막 형체를 갖추고, 기본적인 식수, 전기 시설도 없이 살아가는 모습…
어린 소녀들이 밤에 불도없는 화장실을 사용하다 폭행을 당할까봐 두려워하는 모습...
많은 소녀들과 여성은 학대와 폭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낮에도 비닐 움막을 벗어나고 싶지 않아 하는 장면…..
어떠한 이정표도 없이 비닐 움막으로 가득한 난민촌은 마치 미로와도 같고…
신발도 없이 땔감을 구하러 멀리 갔다가 베이고 멍이 들고, 뱀이나 다른 야생 동물을 만나고...

커다란 물탱크를 싣고 화물차가 서고, 운전사가 물이 도착했다고 소리를 지르자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물을 담아가기 위해 각자의 움막에서 그릇이 될 만한 것들을 들고 달려옵니다.

그러나 누군가 “[오호라]길 거리에서 모두 와서 음식을 먹고 거져 마시라”고 한다면
성경속 장면 처럼 ... 예수님이 난민 촌에 오셔서 소리를 지르셨다면...
(그 사람이 정말 먹을 것들을 가지고 와서 외쳤다면 반응했겠지만)
아무것도 가지진 않은 채 소리를 치고 있다면
고된 난민 생활속에서 미쳐가는 정신 병자 취급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의견을 냈습니다.
또는 이들에게는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소리가 더 필요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저희들에게도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당장 필요하지만
” 코로나 재앙이 종식됐다!!!” 라는 소식이 더욱 절절한 것처럼 …말입니다.
정은선 (2020-04-29 13:34:39)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선포 되어집니다. 나는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시드기야의 행동을 보며 느낍니다.
많은 재앙과 아픔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은 회복시킬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용서하시고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김사합니다.
홍은기 (2020-04-29 14:34:40)  
이스라엘을 완전하게 회복시킨 하나님,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하나님
우리와 화평의 영원한 언약을 맺어주시고,
우리를 더욱 더 견고하고 번성하게 해주시겠다는 바로 이 말씀에 힘을 얻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닥친 상황이 아무리 어렵다하더라도 희망을 버리지 않게 하옵소서.
마른 뼈들을 하나님의 생기로 일으키시고 살려내신 주님, 우리들의 영혼이 마른 뼈와 같사오니,
우리에게 생기를 허락하시고, 새 힘과 새 생명을 허락하옵소서.
이강은 (2020-04-29 15:18:01)  
에스겔 37)
하나님께서는 여러곳에 끌려가서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다가
그들의 고국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며, 남북으로 갈라져있던 그들로 하여금 한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을 약속해주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주님이 우리에게도 화평의 언약을 주실 때에 귀를 기울여 듣을 수 있길 원합니다.
그리고 그 언약의 때에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됨'을 깨닫고,
주님의 성소를 우리 가운데 영원히 지킬 수 있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일컬음 받기 이전에, 우리를 죄악으로 더럽히는 마음속의 온갖 우상들을 버리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선미 (2020-04-29 16:32:31)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신 하나님...약속하신 대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어 우리 몸을 거룩하신 아버지의 처소 삼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들 하나 하나가 십자가 그늘 아래
거하며 '아버지의 백성'으로 이 땅을 살게 하옵소서. 마른 뼈 같은 삶에
힘줄을 입혀 주시고 살을 채워 주시는 '성령충만의 은혜'를 매일 체험
하게 하옵소서.
임성희 (2020-04-29 20:29:11)  
말라 소망이 보이지 않는 뼈들이 살아나게 하심과
영원히, 영원한, 영원토록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기로 하신 약속의 말씀이
이 땅에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는 우리에게도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광태 (2020-04-29 23:19:29)  
주의 확실한 약속, 영원한 언약을 믿고 의지합니다. 주의 은혜 얻게 하소서. 아멘.
윤소영 (2020-04-29 23:50:40)  
성령님 도와주셔서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일들을 보게 하시고
나의 삶이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붙잡고 흔들리지 않게 도와주세요. 아멘.
박지은 (2020-04-30 00:25:44)  
야곱과 다윗, 그리고 많은 믿음의 선조들...
그들의 이름과 그들과 맺으신 언약들을 기억하시며
끝까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려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어떠한 환란 가운데에서도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을 잊지 않기 원하며
분열된 나라가 아닌 하나된 나라처럼
하나님과 늘 함께할 수 있는 자녀들 되기 원합니다.
백은지 (2020-04-30 00:40:05)  
에스겔 37
마른뼈와 같은 우리의 삶에 찾아오셔 회복시키고 일으키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주의 거룩한 백성 되어 살아 갈 수 있기를 기도 합니다.



_P.S. 저의 월요일 묵상 글 중 관련한 맥락의 뜻으로 흔히 사용되는 (‘아비규환’) 올린 글이 있습니다..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까지 미처 깊이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지은자매님 덕분에 급히 찾아 보았어요..지은자매에게 감사하며 혹시라도! 놀라셨거나 불편함을 느끼신 분이 있었다면 너무나 죄송하다는 맘 전하고 싶어요..사자성어 사용이 미숙한 한 청년의 해프닝으로... 머릿속 지우개를 꼭 부탁 드리며.. 부디 너그러히 웃고 넘어가 주신다면 감사 드리겠습니다! ^^...._
이과훈 (2020-04-30 01:44:01)  
하나님께서는 마른 뼈도 살리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이는 포로로 잡혀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큰 희망이 됩니다. 그 능력이 있는 하나님께서 처소를 공유할 정도로 가까이 계시며, 영원토록 함께 할 것이라 하십니다 (27-28).
희망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요즘 부정적인 말을 많이 내뱉고 있던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곁에 계시며 그 말들을 들으셨다면 마음이 아프셨을 것 같습니다. 상황은 변한 것이 없지만 절망 가운데 소망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저도 희망과 소망을 말하기로 다짐합니다. 눈에 보이는 변화는 아직 없지만 하나님께서 선하신 뜻과 약속을 따라 제 삶을 한치의 실수도 없이 인도하고 계심을 믿겠습니다. 성령님께서 제 마음과 입술을 지켜주시기를 구합니다.
이인범 (2020-04-30 02:49:58)  
이미 생기를 잃고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바짝 말라가는 마른뼈가 생각이 납니다
그 뼈가 다시 살지는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생명이 다시 불어넣어지길, 생수가 흘러 뼈들을 적시길 기도합니다
장은경 (2020-04-30 05:19:54)  
인간의 눈에는 절망이고 죽음의 끝일뿐인 마른뼈들 가득한 골짜기에서 하나님은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에 능력이 있고..생명이 있고..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금도 말씀하시며 우리 모두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마르고 굳어있는 내 영혼에 매일같이 말씀하시며 사랑으로 심으시는 손길안에서 살아나
주어진 내 역할에 충실히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이강은 (2020-04-30 06:56:17)  
Q.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가 살아나는 환상에 관련한 구절을 읽으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을 통하여 뼈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이 말씀 이후 뼈들이 움직이며 연결되더니 그 위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가죽이 덮여집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겨난 것들 속에 생기는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그러자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고 그들이 살아 일어나 큰 군대를 이루게 됩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처음에 말씀하실 때에도 그들에게 생기를 넣을 것이라 하셨는데
왜 처음 말씀을 통해서는 뼈들에 생기가 들어가지 않았을까요?
두번째 말씀하셨을 때야 비로소 그들에게 생기가 들어가 살아나게 되는 상황이 약간 의아했습니다.

영혼이 살아나는 데 있어 '생기'가 매우 중요함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을까요?
(이 말씀에서 '생기'라는 매우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보아 이것이 중요한 요소인 것으로 보이긴 합니다)

혹은 말씀 여러군데에 등장할 때마다 조금씩 다른 의미로 말씀하신 것인데,
번역과정에서 이 모든 단어가 '생기' 한 가지로 표현이 된 것일까요?
(영어성경에는 이 단어가 주로breath로 나오지만 spirit, wind로 표현되어 있기도 합니다)
윤사랑 (2020-04-30 06:59:20)  
하나님께서 아낌없이 주실때,
전 아낌없이 예배랑 찬양을 하겠습니다.
박준혁 (2020-04-30 08:18:12)  
While reading Ezekiel 37:3, I wondered why Ezekiel answered differently than
how most people would answer the question God asked.
He didn’t say “Yes, the bones will come back to life” or “No, the bones will not come back to life.”
He said, “Sovereign Lord, you alone know.”

Peter also answers in a similar way to Jesus’ question when Jesus asks him if he loved Him.
Peter didn’t answer “Yes, I love You Jesus” or “No, I do not love You Jesus”,
but he answered “Yes Lord, You know that I love You” (John 21:15).
Why do they reply in this manner towards God and Jesus? Is it for politeness?
Or is it to show their faith?
박지은 (2020-04-30 09:08:02)  
[구약성경 <에스더>서는 귀향하지 않고 바벨론의 살던 곳에 그대로
남았던 사람들과 후손들의 이야기입니다.] (**) [왜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벨론
땅에 그대로 남아 있기로 했을까... 함께 생각들을 나누어보면 좋겠습니다.]

이 질문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엄마가 시편 126편을 읽어보라고 하셨습니다.

농부가 물기를 많이 머금은 촉촉한 땅에만 씨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마른 땅에도 씨를 뿌리고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것처럼,
시인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결단을 하면서
예루살렘으로 가는것이 마치 마른 땅에 씨를 뿌리는 것 처럼
쉽지 않을지라도 풍성한 결실을 맺게 해주실 것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결단을 모든 사람들이 한것은 아닌듯 싶습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들 하는데
정말로 바벨론 땅에서 돌아오지 않고, 거기에서 계속 산 사람들도 많습니다.
처음에 갈 때는 끌려서 갔을지라도, 거기서 수십 년을 살게 되면
적응하여 살아갔을테고, 어느 정도 재산도 형성하게 되지 않았을까…
돌아가면 페허와 같은 예루살렘을 다시 재건해야 하는데
그 불편한 삶을 하기 싫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70년간 포로생활을 했다면,
80 또는 90세 정도 되는 분들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 또는 기억이 있을지 몰라도
거의 대부분은 이미 바벨론의 삶에 익숙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조금 다른 측면에서 보아도
지금도 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는
외국에 익숙해버린 2세대 아이들 때문인 경우가 많으니
아이들의 적응문제를 고려했을때도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에 남아있길 원했을것 같다고 생각됩니다.
박지은 (2020-04-30 10:00:44)  

지난주 주일 설교때 목사님께서 소개해주신 바벨론 유적지에서 발견된 고레스 원통은
포로로 잡혀왔던 사람들을 돌려보낸 고레스 왕을 칭송하는 내용이 담겨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고레스 왕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고레스 왕은 신앙이 좋아서 이런 일을 하게 되었을까요?
물론 하나님의 직접적인 감동으로 움직였을수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역사하실때가 많으니
혹시 그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운 사람이 있을까요?

다니엘서를 찾아서 보았더니
바사 왕 고레스가 바벨론을 점령했음에도
다니엘을 그대로 총리에 둔것은 그에 대한 큰 신뢰가 있었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그런 다니엘이 고레스로 하여금 예레미야의 말을 알게 하고, 이런 정책을 수행하도록 권하지 않았을까요?
제가 요즘 상상력이 너무 많아져서 그런지, 아니면 최근에 삼국지를 보아서 그런지,
다니엘이 어떠한 역할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박준혁 (2020-04-30 10:21:18)  
God brought Ezekiel to the cliff of death.
I wondered, “How did Ezekiel feel while seeing the dry bones in front of him?”

A few days ago, I read a prayer from a missionary named Horace Grant Underwood.
He came to 조선 and saw the barren country.
I felt like Horace Grant Underwood’s perception of 조선 was similar to the what Ezekiel saw.

From that day on, Missionary Horace Grant Underwood
prayed that the land of Korea (조선) would become a land full of grace.
He was excited for the future that the Lord has planned for the land of Korea
and spiritually hoped that the day of happiness would soon come for Korea.
박준혁 (2020-04-30 11:02:30)  
Horace Grant Underwood’s Prayer:
Lord, nothing is visible at this moment.
Lord, you have planted us on this barren and poor land,
where not even a single tree can grow tall enough.
It is such a miracle that we could come to this land across the wide wide Pacific Ocean.
Nothing is visible, though, in this land on which we seem to have been dropped off by your hand.

Only stubbornly stained darkness can be seen.
Only Korean people chained with poverty and superstition can be seen.
They don't even know why they are chained, what suffering is.
They just distrust us and express anger to us as we tell them how to take away their suffering,
which is not suffering to them.

The thoughts of Korean men are invisible.
The mind of this government is invisible.
We are afraid that we may not have any more
opportunity to see the women commuting on Kamas(-a cart carried by men).
And we do not see what to do.

Yet, Lord! We will obey.
We believe that you begin your work as we humbly obey,
And that the day will come when our spiritual eyes will see your work,
According to your Words, "Faith is being sure of what we hope for and certain of what we do not see..."

We believe that we will see the future of the faith of Korea.
Although we are as if standing on a desert with bare hands,
Although we are condemned to be Western devils,
We believe that the day will come when they
will rejoice with tears realizing that they are one with our spirit in Christ,
and that we all have one Kingdom and one Father in Heaven.


Although there is no church to worship you, no school to study,
Although this land is filled with doubt of suspicion, contempt, and disdain,
We believe that in the near future this land will become a land of blessing
홍은기 (2020-04-30 11:36:15)  
1.이사야 , 예레미야 , 에스겔 이번 주 본문 안에
[영원한 언약]이라는 단어가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다고 아이들이 찾았습니다.
여기에서 언약은 시내산 언약과 같은 약속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아닌가? 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예레미야 31장 31절)이 있음을 바로 보여주고 싶었으나,
왜 새 연약을 하나님께서 세우셨는지, 이스라엘 역사를 생각해보자고 했습니다.
이번 주 본문에 영원한 언약을 계속 말씀 하시는 이유도 생각해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을 불러 주시고, 하나님께서 일방적인 언약을 맺어주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영원한 언약을 맺어 주심으로,
그 언약의 은총이 영적인 이스라엘 자손인 우리에게까지 임하게 해주셔서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홍은기 (2020-04-30 11:42:59)  
2. 최근 우리가 지금 집에 갇혀있는 상황이다 보니
아이들이 예레미야가 경비대 안에 갇혀있는 것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왜 갇혔는지에 대해 본문을 살펴보다가...
예레미야가 전해야하는 내용들이 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민족을 버린 선지자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면 왕도 불안하고 백성들도 불안해지고 군인들은 사기가 떨어질 것이질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매국노의 발언을 하나님이 시키시는 것에 아이들이 한숨을 푹 쉬었습니다.
홍은기 (2020-04-30 11:56:07)  
3. 지금 우리의 삶은 포로중인가, 귀환을 했는가, 회복중인가...?
지은 준혁이가 자신들의 삶을 이야기 하면서
바벨론 포로 생활 같기도 하고, 다시 귀환한 백성같기도 하고
여전히 바벨론에 머무는 백성같기도하고. 귀환 후 회복중인 존재인 것 같기도하고...
모든 과정이 믹스 되어있는 인생 같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영원한 언약을 소유한 백성으로 살 수 있을지....

하나님께서는 죄를 범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바빌론으로 포로로 보내셨지만,
그들을 돌아오게도 하시고, 회복도 시켜주셨습니다.
그들이 이방 땅에서 70년 동안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것은 매일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시고, 그들의 심령을 새롭게 하여 주셨습니다.
또한 그들과 새로운 언약을 맺어주심으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해 주신 것을 재확인시켜 주시고,
영원한 예루살렘을 세워주실 것도 약속해 주셨습니다.
죄에 빠져 있던 우리를 건져주시고, 다시 돌아오게 해 주시며,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평생 주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감을 통해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며,
매일매일 신실하게 살아감으로 오늘이 내일을 위한 디딤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인범 (2020-04-30 13:32:20)  
1. 예레미야 32장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에 포로로 보내시고
때가 이를 때 다시 불러모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이 예언을
전해듣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창세기 15장에 있는 말씀이 생각났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들이 애굽에서 400년을 괴롭힘 당한 후에 하나님께서
구하실 것을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가게되었을 때는 4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약속의 땅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걸 생각하면 이번에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려서야 다시 돌아오게 될 지 모르는 두려움에 예레미야의 말을 더욱 믿기 힘들어
했을 것 같습니다.

2. 에스겔 37장의 말씀을 보니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어졌던 이스라엘이 하나로 통일되고
모든 열두 지파의 자손들이 함께 나라를 이루며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후의 상황을 보면 이 말씀이 정말 이루어지는 것 같아보이지 않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열 지파는 이방민족과 피가 섞여 잃어버린 지파들이 되어버렸고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살던 땅은 오랜 기간 다른 나라들의 지배를 받고 현재까지도
분쟁지역으로 남아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예언으로
받아드리고 있을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이강은 (2020-04-30 17:38:58)  
하나님,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알게하여 주심에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가 되어 하나님을 바로 알게 해주시고,
기꺼이 주님의 멍에를 메는 자가 되도록 도와주세요.
이선미 (2020-04-30 18:00:56)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를 부르시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지치고 눌린
몸과 마음을 이끌고 나아갑니다. 주님을 반신반의 하며 나 자신이
주인 이기를 고집하는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며. 부르심에 응하게
하옵소서.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를 위해 예비하신 '온전한 쉼'을
얻게 하옵소서.
홍은기 (2020-04-30 18:07:42)  
나 같은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의 온유하심과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내려와 기꺼이 십자가의 멍에를 매신 주님의 겸손하심에 감사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배우기에 힘쓰겠습니다. 그리하여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의 말씀 안에서 진정한 쉼을 누리게 하옵소서.
이광태 (2020-04-30 23:16:15)  
주께로 나아가 이끄시는 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삶의 열매 맺게 하소서. 아멘.
윤소영 (2020-04-30 23:32:59)  
나의 마음이 쉼을 찾고 있습니다. 주님께 나아갑니다.
내 모든 짐을 주님께 내려놓기를 원합니다. 성령님 도와주세요. 아멘.
진문균 (2020-04-30 23:56:29)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이 인도하시는대로 동행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박지은 (2020-04-30 23:58:52)  
이 땅에서 직접 보여주신 겸손하시고 온유하신 주님의
모든 가르침들을 마음속에 새기기 원합니다.
늘 함께하시는 주님께 의지해
진정한 쉼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백은지 (2020-05-01 00:25:26)  
주님께 배우기를 주시는 말씀 알기에 갈급함이 나의 마음속 더욱 있을 수 있기 원합니다. 주시는 은혜안에..주님 안에서 쉼을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해주세요.
이과훈 (2020-05-01 01:34:24)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통로가 되어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27). 이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연결되어 그의 뜻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은혜는 개인의 능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25).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어린 아이들도 그 뜻을 알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25). 우리 뜻대로 할 수 없음을 확인하지만 이것이 우리에게 무력감을 주기보다는 평안을 줍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28). 우리에게 멍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29) 무거운 것은 그리스도께서 책임져 주시고 가벼운 것을 남겨 주시니 우리의 마음이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28, 29).

믿음으로 사는 맛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합니다. 먼저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해주신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아는 것이고, 그 다음은 이 은혜로 인해 우리의 마음이 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을 안다고 우리의 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짐을 지는 마음가짐이 달라집니다. 그리스도께서 책임져 주시기에 충성을 다해 그 짐을 감당하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이것을 마음에 새겨 맡기신 일에 충성을 다하되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도와주세요. 제 마음을 지켜주실 성령님을 기대합니다.
장은경 (2020-05-01 05:23:40)  
영원히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구원의 은혜를 누리지 못할 우리에게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잔치에 초청하시는 하나님..감사합니다.
하나님 앞에 저를 올바로 보게 하소서. 온전한 회개가 이루어 지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겸손히 십자가의 은혜를 믿어 주님께 나아가게 하소서.
나의 생각과 판단과 이해로 헛되고 헛된 나의 멍에를 벗기시고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의 온유하심과 겸손을 베우며, 함께 하시는 주님께 의지하여
주시는 평안가운데 때에따라 이루실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이인범 (2020-05-01 06:24:43)  
마태복음 11장 28절만 보면 예수님께 나아가면 마냥 쉴 수 있고 편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절에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멍에를 매고 배워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그리하면 "마음"이 편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시간이 갈수록 많은 것들이 무겁고 어렵기만한 것 같습니다
그 마음의 평안과 짊어진 짐의 "가벼움"을 느끼며 감사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나를 부르는 그 목소리를 듣게 도와주세요
윤사랑 (2020-05-01 08:02:54)  
저는 아이들을 교육하는 선생님입니다.
아이들을 올바른길로 인도하는 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은선 (2020-05-01 09:41:18)  
나의 짐을 들어주시겠다는게 아니라 와서 나의 멍에를 매라
하시는 주님, 그리고 쉼을 주시겠다고 하는 주님.
하나님께서 나의 짐을 내려주고 편안하게 해주실 그런 분으로 생각한 적은
없었는지 뒤돌아보며 회개합니다.
그리르도의 가르침 , 그 말씀의 멍에를 지고 주님과 함께 걸어가기를 기도합니다.
박지은 (2020-05-01 11:05:29)  
이번주 동안 묵상했던 말씀들을 살펴보면
“예언서 말씀의 향연”이란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사야, 예례미야, 그리고 에스겔로 이어지는 말씀들을 연달아 묵상했습니다.

군대가 이스라엘을 포위하고, 백성들은 끌려가고,
에스겔은 바짝 마른 뼈들이 있는 골짜기를 향하고…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어렵고 조금 힘이 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언약과 회복의 말씀에 집중을 해야하지만
이스라엘의 처참하고 황폐한 멸망의 배경으로 인해
마음이 계속 무거웠습니다.

그러다 오늘 다시 한번 월요일부터 천천히 말씀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전도서의 말씀 중에 제 마음속에 꽃힌 구절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왜 우리에게 언약이 필요한지,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이 왜 우리에게 큰 감격을 주는지에 대한
갈증이 조금 풀리는듯 합니다.
“아 그렇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사람이 도저히 다 알 수 없을 뿐더러
우리가 측량할 수 없게 하나님께서 만들어놓으셨구나…”
그러니, 한치 앞도 모르는 이 어두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할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언약,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 살아가야하지 않을까요?

“수고하고 짐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주님! 어떠한 고통의 골짜기에서나 앞길을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로의 초대를 통해 우리가 살아갈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길잡이가 되어주시겠다고 하니,
부르심에 응답하여 주님을 따라 살고 싶습니다.

말씀의 힘을 새삼 느끼는 밤입니다.
연약한 우리를 버려두시지 아니하고
언약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번주 성경속 다양한 본문들을 통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박지은 (2020-05-01 11:06:37)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태복음 말씀에 나오는 이 “쉼”은 어떠한 쉼일까 궁금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공허한 마음을 채우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돈이 있어도, 명예가 있어도, 권력이 있어도
그 마음을 온전히 채울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전도서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우리에게 심어놓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오직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만 채우실 수 있는
우리의 마음, 그리고 오직 주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쉼이 무엇인지
깨닫고 체험할 수 있기 원합니다.
박지은 (2020-05-01 11:31:00)  
목사님께서 주일설교때 언급해주신 ”희년"(Jubilee) (레위기 25 장)에 관한 질문을 올립니다.

희년이 가까워지면 금융거래가 마비가 되지 않았을까요?
갚아야 할 것이 있는 채무자는 희년을 빌미로 채무불이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채권자는 희년을 이유로 돈을 빌려주기를 꺼려해서 금융의 마비가 오지 않을까요?
마치 지금 코로나로 경제가 멈춘 것 같은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이강은 (2020-05-01 11:58:37)  
마태복음 11장)
1. 25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하나님은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신다'고 합니다.
이 구절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이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였습니다.
'이것'이 가리키는 대상을 찾기위해 앞의 말씀을 살펴보았으나, 문맥상 24절에서 다른 말씀이 마무리되고
25절에서 새로 시작되기에 앞의 말씀에서 '이것'이 지시하는 것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리하여 25절 뒤에 나온 말씀들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27절 말씀을 읽어보면, 아버지가 아들을 알고, 아들이 아버지를 아는 것은 서로간에 관계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며,
그 관계는 예수님만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연결해 주실 때 형성될 수 있음을 알게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예수님을 우리의 구원자로 보내주시고, 이를 영원한 언약을 통해 약속하셨던 것,
그것이 바로 25절에서 말씀하시는 '이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의 말씀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했던 '영원의 언약'에 이어,
목요일 말씀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심으로 말미암아 그 언약을 이어가시며
또한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해주심을 보여주고 계신다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제 머릿속에 그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해해도 괜찮은 것일까요?)
이강은 (2020-05-01 12:02:25)  
2. 25절을 이해하는데에 이에 더불어 한 가지 더 궁금한 점이 생겼습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기에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이라면
마땅히 '이것'을 깨우칠 만한 능력이 있어 보이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십니다.

지혜롭고(wise) 슬기롭다(prudent 혹은 learned 등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는 단어에서
사실 부정적인 뉘앙스가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라 말씀하신 것은
바리새인이나 율법학자들과 같이 율법으로만 살아가며 스스로 '지혜롭다'하는 그들의 교만함을 반어적으로 표현하시기 위함일까요?

이와 대조를 이루는 '어린 아이들'은 절대적으로 아버지에게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전한 마음을 가진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언약, 즉 예수님을 통한 구원을 주시겠다는 말씀이 아닐까 하며 이 구절을 이해해 보았습니다.
홍은기 (2020-05-01 12:11:08)  
**당시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여러가지 상황을 생각해봅니다. (포로로 잡혀가지 않고)
그대로 유다 땅에 머물러 살고 있었던 백성들과 바벨론에서 돌아 온 백성들이 평화롭게
서로 도우며 살았을까... 아니면 그들 사이에 토지소유/ 경제활동/ 소득분배 등등을 둘러
싸고 심각한 갈등(葛藤)이 있었을까? [이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바벨론에서 귀환하는 이들은 유다에서 자기들의 옛 땅과 기득권을 가지려 하지 않았을까요..
반면 유다에 남은 백성들과 제사장들은, 그들이 돌아올 경우 재산권을 요구할 것으로 보고
내심 귀환자들을 반기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들 사이에 재산권 주장으로 사회적인 긴장감이 발생할 것 같습니다.
사로 잡혔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바란 것은 신앙의 회복이 아니라
신분, 경제, 권력의 회복이 먼저였을 것 같습니다.
귀환하는 이들은 유다로 돌아가도 좋다는 조서가 내려졌을 때
벅찬 기쁨이 있는 동시에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첫째, 가족과 이별을 각오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온 가족이 유다로 돌아간 경우는 괜찮지만 그렇지 않거나 바벨론 원주민과 결혼을 한 사람이라면
특별한 결단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둘째, 물질적 희생이 따라야 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에 오랫동안 살면서 장만한 집과 토지와 사업에 대한 고정 자산을 포기해야 합니다.
셋째, 육신의 고생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유다까지는 먼 광야길입니다.
특별한 교통수단이 없었던 때이기 때문에 노약자나 물건을 휴대한 상태에서
그 먼길을 간다는 것은 부담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세운 질서에 따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귀환을 결정한 것입니다.
홍은기 (2020-05-01 12:14:04)  
**구약성경에 언급된
"희년"(Jubilee) (레위기 25 장) 등에 대한 더 깊은 관심과 연구가 필요해 보입니다.
[우리들도 함께 의견을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1.희년의 뜻이 무엇인지 아이들과 공부를 했습니다.
당연히 기쁠 희자를 쓸 줄 알았는데
한글 성경에 나오는 ‘희년(禧年)”은 "복"이라는 의미의 희(禧)와
해의 의미인 년(年)을 써서 복된 해라는 의미입니다. 희년에는 종에게 자유가 선포되고
가난과 여러가지 이유로 빼앗겼던 땅과 소유지가 회복되는 해이기 때문에 복된 해, 축제의 해입니다.
인간의 계산으로는 전혀 가능해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50년째 해를 희년, 복된 해, 해방과 자유의 해, 축제의 해로 선포하십니다.
홍은기 (2020-05-01 12:21:05)  
2. 희년을 지키려고 한다면 제기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 해에는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희년이 어떻게 가능한가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공급하심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광야로 나와 먹을 것이 전혀 없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를 행군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댈 곳은 오직 하나님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길로,
우리 머리에 이해되지 않는 명령을 내리신다고 해도
거기에는 이미 하나님의 정확한 공급하심과 예비하심이 계산되어 있습니다.
시간과 사람, 땅과 자연, 그 안에 깃들어 있는 모든 것의 소유권을 지니신 하나님께서
땅과 사람과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얽매이고 있던 모든 것에서 부터의 자유를 선포하십니다.
가난으로부터의 자유,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원래의 소유, 땅, 가옥이 회복되고,
하나님이 한 개인과 가정, 가문에게 부여하신 원래의 목적과 계획대로
질서가 회복되고 자유가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시고 예비하십니다.
안식년, 희년의 규례를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우리들에게 쉼을 주십니다.
자유를 주십니다. 참 해방을 주십니다. 모든 굴레와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를 선포하십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희년의 해가
지금 이 땅에 이뤄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마른 뼈들만 즐비한 암담한 이 땅에서 저희들이 벗어날 그 때를 기다립니다.
기도하며 기다립니다.
홍은기 (2020-05-01 12:27:53)  
3.지은 준혁이가 물었습니다. 예수님도 희년을 선포하셨나요?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가셔서 낭독하신 말씀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자라나신 고향 나사렛에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사
이사야 (사61:1이하)의 한 구절을 찾아서 읽으셨습니다
“주의 성령이....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4:18-21)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예비하심이 있으니 걱정 하지 마라
’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살아갈 걱정 때문에 짓눌리고,
억압과 굴레속에 살아가는 자들에게 선포하십니다. "내가 공급한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과 영원한 언약을 다 잃어버리고
죄의 노예로, 욕망의 노예로 돈의 노예로, 가난과 질병의 노예로,
권력과 명예의 노예로 신음하며 살아가는 저희들에게 예수님이 선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쉼을 얻으라, 자유를 얻으라….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이 이끄시는 쉼과 안식의 자리로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번 한주간 묵상하는 저희들의 처절한 심정들을 돌아보아 주시고 소망을 허락해주세요.
장동은 (2020-05-01 13:02:14)  
나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주님의 쉬운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저는 주님이 주시는 짐이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말씀을 배우면 배울수록 주님이 메라고 하시는 멍에가 무겁고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내가 믿는 주님이 내가 실수하고 넘어져도 바로 그자리에서 내치지않고 용서하고 기다려주시는 온유하신 분이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을 바로 알고 배워 참된 쉼을 얻기를 원합니다.
이강은 (2020-05-01 17:53:17)  
하나님은 모든 것을 제 때에 알맞게 일어나도록 만드셨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일들을 모두 다 깨닫지는 못합니다.

내가 원하는대로 하나님의 계획을 예상하고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때'가 오기까지 올바른 길을 배우고, 지혜있는 자의 말을 잘 들으며,
그 지혜의 말씀들을 마음에 간직하고, 나의 입술로 고백하게 하옵소서.

다 무너져가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영원의 언약을 선포하여 주시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때에 맞춰 다시 축복을 내려주셨던 것처럼,
암흑과도 같은 우리의 인생 속에서도 주님이 주시는 언약을 따라
주님의 때를 사모하며 기다릴 때에 우리에게 축복을 내려주시옵소서.
이선미 (2020-05-01 18:23:23)  
내가 예상하는 때를 하나님의 때로 오해하지 않기 원합니다. 내가
기대하는 방식을 하나님의 방식이라 고집하지 않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측량할 수 없게' 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잊지
않아...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하나님의 방식을 알아가며 영원을 사모
하는 마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홍은기 (2020-05-01 20:21:03)  
자녀들의 마음속에 말씀을 늘 가까이 하게 하고,
지혜의 말씀 듣는 것을 즐거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름답게 여기시는 믿음의 가정 모습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분의 말씀을 따르는 길을 가르치겠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를지라도
하나님의 때와 내 때가 다를지라도
우리 마음에 심어주신 영원한 언약을 붙잡겠습니다.
임성희 (2020-05-01 20:36:33)  
어린지식이 부모의 마음을 모르듯
나 또한 어리석고 미련하여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볼 수가 없습니다
징계도 회초리도 고난이라 생각지 말고
돌이킬 줄 아는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광태 (2020-05-01 23:37:40)  
하나님의 깊은 계획을 인정합니다. 주의 지혜를 사모합니다. 아멘.
백은지 (2020-05-01 23:47:25)  
측량 할 수 없는 주님의 일하심을 알아 어느 때에 거하든 기뻐함으로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믿음에 사람 될 수있기 원합니다. 주님 알기를 게으르지 않기에 ..주님 뜻하신 열매를 주님의 측량 할 수 없는 시간 속에 풍성히 거두어가 주님 안에 진정한 쉼을 누릴 수 있는 자녀 될 수 있도록..주님 인도해 주세요.
윤소영 (2020-05-02 00:11:38)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때를 따라 맡은 사명들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성령님 도와주세요. 아멘.
박지은 (2020-05-02 01:01:25)  
하나님 아버지,
때로는 깊은 인내와 자비로
때로는 징계의 회초리로
우리를 다듬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제 신앙의 여정가운데 주님과 함께 발맞춰 걸어가는것이
점점 어색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길 원합니다.
이과훈 (2020-05-02 01:23:59)  
모든 일에는 법도가 있다고 합니다. 때가 있고 방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올바른 길을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올바른 길을 알기 위한 가장 좋은 참고가 되는 것은 성경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하나님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시는지 다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사람이 측량할 수 없다고 솔로몬이 분명하게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3:11). 우리의 삶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갈 때가 많음을 생각해볼 때 이 말이 참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섭리를 믿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전도서에는 “모든일에 다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에 다 알맞은 때가 있다(1)”고 했습니다. 그러니 올바른 길을 선택하라고 합니다. (6) 성경이 (구체적인 행동지침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생의 방향이 어떠해야 함은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그 뜻과 섭리를 따라 우리의 인생을 빚어가고 계심을 신뢰해야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희망이 보이지 않을때라도 그 믿음을 놓지 않아야 합니다.
제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조금도 약해지지 않도록 성령님께서 제 마음을 지켜주세요. 한 치 앞도 알 수 없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과 하지 못하는 일을 구분하여, 제가 통제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충성되이 감당하겠습니다. 제 시선을 하나님께 집중할 때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세요. 오늘도 성령님께서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세요.
이인범 (2020-05-02 02:21:57)  
모든 일에 때가 있고 그 때를 따라 아름답게 지으셨다는 말씀을
믿기 원합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이 되고 아름다움을 가꾸어 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되게 해주세요
장은경 (2020-05-02 03:44:13)  
어린아이 같이 미련하고 변덕스러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어 예수님을 통하여 복음의 진리를
나타내신 하나님..감사합니다.
말씀으로 예수님을 통하여 보이신 마땅히 해야할 길을 가르쳐 주심을 충실히 배우며
잘못에 징계하심을 잘 깨닫고 돌이키며 한걸음 한걸음 주님의 동행하심을 경험하며
끝까지..주앞에 나아가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정은선 (2020-05-02 13:32:41)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혜자의 가르침을 따라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야하는지
무엇이 중요하고 어떤것에 집중해야하는지 더 깊이 알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장동은 (2020-05-02 18:58:01)  
세상의 모든 일들이 다 정한 때와 기한이 있다는 말씀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줍니다. 만물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만드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감히 사람이 측량할 수 없게 창조하셨으니 나의 할 일은 그저 겸손하게, 감사함으로 인내하며 순종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이선미 (2020-05-02 19:27:43)  
홀로 지고가던 무거운 짐을...예수님 앞에 내려놓기 원합니다.
짐대신 예수님의 멍에를 함께 메고 예수님과 동행하기 원합니다.
멍에를 메고 있으나...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주님과 하나됨의
은혜' 입게 하옵소서. 주의 인도를 기쁨으로 따를 때 느끼는 '참 평안'
누리게 하옵소서.

주일설교 (2020/05/10): 여호와의 응답 (역대하 7) (열왕기하 19) (마가복음 7) (아가 2) [107]
주일설교 (2020/04/26): 여호와의 외침 (이사야 55) (느헤미야 5) (누가복음 6) (요한복음 7)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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