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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태(2020-05-04 03:56:45, Hit : 527, Vote : 11
 주일설교 (2020/05/10): 여호와의 응답 (역대하 7) (열왕기하 19) (마가복음 7) (아가 2)

주일예배: 2020/05/10
설교주제:


[주간(週間)묵상 (이사야 55)]
===========================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월요일 묵상) (역대하 7)
=======================
11  솔로몬 왕이 이렇게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건축을 마치고
    자기의 심중에... 이루고자 했던 것들을 형통하게 이루니라
12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다시 나타나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기도를 듣고 이곳을 너희들의 제사를 받을 성전으로 삼았느니라
13  내가 만일 하늘 문을 닫아 비가 내리지 아니하거나 메뚜기 떼를 보내어
    온 땅을 황폐하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백성들 가운데 유행하게 할 때에
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백성인 너희가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며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너희의 죄를 사하고
    이 땅을 다시 고쳐주리라 (회복시켜 주리라) (15-18)
19  그러나 만일 너희가 내게 등을 돌리고 내가 너희에게 준 율례와 법도를
    버리고 떠나가서 다른 이방의 신들을 섬기고 경배하면
20  내가 너희에게 준 이 땅에서 너희를 뿌리째 뽑아내고 내 이름을 위하여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도 아낌없이 버릴 것이라 그리하여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너희가 한낱 속담거리와 비웃음(이야깃)거리가 되게 하리라
21  이 성전이 지금은 비록 높을지라도 그때에는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마다
    크게 놀라 이르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성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물을 것이라
22  그러면 사람들이 대답하기를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조상들을 애굽 땅
    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 하나님을 저버리고 다른 여러 이방 신들을
    따르고 섬김으로 여호와께서 이런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셨다" 하리라    


(화요일 묵상) (열왕기하19)
==========================
1   유다 왕 히스기야가 (앗수르 왕 산헤립의 신하) 랍사게의 말을 듣고...
    옷을 찢은 후에 굵은 베옷을 입고 기도하러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
2   궁중대신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대제사장들에게 베옷을 입히고
    그리고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사람들을 보내니라 (3-5)
6   이사야가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왕에게 이렇게 전하라
    너는 앗수르 왕의 신하가 [나를 조롱]하는 말로 인해 두려워 하지 말라
7   보라 내가 앗수르 왕에게 한 영을 불어넣으리니 그가 어떤 소문을 듣고서
    반드시 자기 나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 그리고 그는 (자기 나라) 땅에서
   (누군가의) 칼에 맞아 죽게 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8-13)

14  유다 왕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 산헤립이 (또 다른 신하들을 통해 보낸)
    편지를 받아 읽고 놀라서 (다시) 여호와의 전으로 올라가서 그 편지를
    여호와 하나님 앞에 다 펼쳐 놓으니라 그리고
15  히스기야가 여호와께 간절히 기도하여 이르기를 ...
16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열어 보시옵소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조롱하는 앗수르 왕의 소리를 들으시옵소서 (17-18)
19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온 천하 만국이 오직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


(수요일 묵상) (열왕기하19)
=========================
20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예언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이러하니라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간구하는 기도를 내가 들었노라" (21-24)
25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 산헤립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행한 모든 일들은 나 여호와가
     오래전에 정해 두었던 일들이고 나 여호와가 옛적부터 계획했던 일들이라..." (26-27)
28   너 산헤립이 교만하게 떠드는 소리가 나 여호와의 귀에 다 들렸도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네 코에 갈고리를 꿰고 네 입에 재갈을 물려 네가 왔던 그 길로 다시 돌아가게
     하리라 (29-31)

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그가 이 도성 예루살렘에
     결코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화살 하나도 쏘지 못하리라 또 이 예루살렘 성벽을
     향하여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방폐를 앞세우고 공격하지도 못하리라
33   그는 이 도성 예루살렘에 이르지도 못하고 그가 왔던 길로 다시 돌아 가리라
     [이것은 나 여호와가 선포하는 말이니라]
34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도성을 지키고 구원하리라 (하셨더라)
35   바로 그날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군대의 진영으로 들어가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이튿날) 아침에 일찍이 (앗수르 군사들이)
     일어나 보니 (앗수르 군인들이) 죽어서 사방에 온통 즐비하게 늘려 있더라
36   앗수르 왕 산헤립이 크게 놀라 허겁지겁 그곳을 떠나 자기 도성 니느웨로
     돌아가 그곳에 거주하였더라
37   어느 날 산헤립이 자기가 섬기는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그의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니라
     그의 (아들) 에살핫돈이 그를 대신하여 (그의 뒤를 이어) 앗수르의 왕이 되니라


(목요일 묵상) (마가복음 7)
=========================
1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중 몇 명이 예루살렘에서 내려와서 예수 주변에 모였다가
2   예수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3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깨끗이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4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몸을 깨끗이 씻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지키는 정결의식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5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씻지 않은)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6   예수께서 이르시되 선지자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   이와 같이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만을 지키는도다 (9-13)

14  예수께서 무리들을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15  무엇이든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16  다만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17-22)
23  이 모든 악한 것들이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하시니라)


(금요일 묵상) (아가 2)
=====================
8   들어 보러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을 넘고 언덕을 넘어 내게로 오는구나
9   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담장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다정하게 속삭이는구나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여 어서 일어나 함께 가자
11  이젠 추운 겨울도 지나고 내리던 비도 그쳤구나
12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구구구'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어가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내 뿜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여 어서 일어나 나와 함께 가자



이상태 (2020-05-04 04:52:00)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여호와께서 아시오니
내 영혼이 어둠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간절히 찾나이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 같이 내가 여호와의 말씀을 기다리나이다
윤사랑 (2020-05-04 10:48:21)  
週間묵상
하나님께서 부르심과 마귀의 부름이 있습니다.
많은자들은 마귀의 부름에 달려갑니다 왜냐하면 마귀의 부름이 설탕처럼 더욱더 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전에 다시한번 생각하며, 정말 이것이 하나님의 부름이 맞는지 생각하며, 맞는길로 하나님길로 돌아가겠습니다.

월요묵상.
죄가 있다면 빠른 시간안에 죄를 용서를 구하고 회개하는 자가 되도록 되겠습니다.
홍은기 (2020-05-04 12:31:29)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건축을 마치고 기쁨이 가득한 밤.....
솔로몬에게 하나님은 절절하고도 구체적인 약속과 경고와 당부를 하십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국가는 멸망을 당하였고,
솔로몬의 성전은 파괴되었으며, 온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오늘 읽은 이 본문의 말씀은 이미 이스라엘의 역사를 아는 저희들에게
역사적 실패와 쓰라린 패망의 사건을 되돌아보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근본 원인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주의 얼굴을 구하며 찾길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약속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새로운 기회를 허락해 주세요.
이선미 (2020-05-04 18:25:32)  
악한 길에서 떠나기 원합니다. 수시로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무엇을
두는 나를 돌아보기 원합니다. 아버지 앞에 나의 죄된 모습을 낱낱이
드러내 고침받게 하옵소서. '정죄'가 목적이 아니라 '회복'이 목적이신
아버지의 마음을 기억하며 살게 하옵소서.
임성희 (2020-05-04 20:38:49)  
높은 성전을 하나님을 위해 짓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라는 말씀 보다 쉽습니다.
나의 삶 속에서 하나님보다 우선이 있다면
그 또한 나의 다른 우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염병이 세상에 가득하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더욱 생각하게 합니다.
박지은 (2020-05-04 21:50:58)  
"솔로몬 왕이 이렇게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건축을 마치고
자기의 심중에... 이루고자 했던 것들을 형통하게 이루니라"

사람이 이 땅을 살아가면서
자기가 이루고 싶다고 생각한 것들을 모두 이룬다는것은 드문 것 같습니다.
모든것을 이루나, 이루지 못하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중심이 되어주시지 않으면
모든 일이 헛된것을 압니다.

정말로 나 자신이 서있다고 생각할때 더욱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스로를 낮추고 하나님께 엎드리는 진정한 기도와 예배를 드리기 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찾고 기다리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진문균 (2020-05-04 22:42:57)  
어려운 시기일 수록 주님을 찾고 동행하는 삶이 되길 원합니다.
이광태 (2020-05-04 23:01:11)  
주를 더욱 부르는 한 주 되기를 원합니다. 주께 기도하며 나아갈 때 은총 내려 주소서. 아멘.
백은지 (2020-05-05 00:23:02)  
주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흐려지게 하는 것 들로부터 나올 수 있기 원합니다. 나의 마음이 흐려져 주가 아닌 다른 것을 마음에 품을까 두렵습니다. 나를 건지시는 주님.. 오직 주님만을 바라 볼 수 있기 원합니다. 한 주간 함께하시는 성령님 의지합니다.
박지원 (2020-05-05 00:53:03)  
제 안에도 주님이 계시는 성전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성전은 세상의 여러 풍파를 겪으며 많이 허물어지고 낡아졌습니다.
지금은 그저 한때나마 지금보다 높고 견고했던 성전만을 기억하며,
언젠가 보수되어 다시 그때처럼 주님을 찾을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그때가 어릴 때 일수도, 환난에 처했을 때 일수도 있지만.
사실 언제든 일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주님께 조금 더 다가감으로 주님과 가까워 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만일까요..
주님 가까이서 그간 주님을 멀리해 죄송하다 회개하며
다시 회복될 수 있도록 내 마음의 성전을 고쳐주시기를 간구하고 싶습니다.
윤소영 (2020-05-05 01:38:23)  
하나님 아버지 도와주세요.
어리석은 내 생각들을 내려놓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회복의 영이 나를 치료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이인범 (2020-05-05 04:19:36)  
솔로몬 왕을 통해 짓게하신 성전조차도
이스라엘의 모습에 따라 버려질 수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우리 마음 속 성전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무너진 곳이 있지 않은지, 보수 되어지고 회복 되어질 수 있게
스스로를 낮출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해주세요.
이강은 (2020-05-05 05:14:09)  
성전을 건축하고 여호와의 사랑은 영원하다며 찬송하던 백성들에게
벌을 주고 재앙을 내리셔야 했을 때 주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축복을 내리셨고, 하나님의 법과 명령에 불순종하면
벌 하실 것이라 분명히 말씀하셨는데도 후에 이들이 순종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은 어떤 마음이셨을지 생각해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형통하게 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원하시지 않는대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이를 되돌아보며 저희로 하여금 하나님께 등을 돌리지 아니하게 하시고
악한 길을 떠나 주님께 죄사함을 구하는 자가 되게 도와주세요.
장은경 (2020-05-05 05:14:27)  
솔로몬왕이 이루고자 한 것들을 다 형통하게 이루었을 때..가장 강성해 지고 부유해 젔을때 그의 마음을 어떠했을까 ..하나님은 어떻게 보고 계셨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형통함이란 영원하지 않는것 같습니다. 만족함도 없습니다.이룬 것들을 잃을 것에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회복과 경고하심을 깊이 세기어.. 세상이 혼란스럽고 어둡고 깊은 고통속에 낙담될 때..내 안에 성전이신 주님..나의 마음과 생각을 올바르게 붙잡아 주시어 깨닫고 돌이키게 하소서.주님앞에 회개하여 변화되는 진정한 회복이 이루어 지게 하소서.
일이 형통하여 풍요로운 순간에 있을 때..내 안에 모든 것을 보시고 아시는 주님이 계심을.. 잊지않게 하시어 더욱더 주님을 경외하며 겸손히 영원의 것을 따르는 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윤사랑 (2020-05-05 10:51:33)  
사람들은 자기가 긴급할때만 하나님을 찾습니다.
자신이 급하지 않을때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 급하면 하나님을 찾고 부릅니다.
언제나, 급하거나 급하지 않거나때에도, 언제나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박준혁 (2020-05-05 11:07:52)  
(**) [우리가 지금 몸담고 살아 가고 있는 자연생태계를 어떻게 보존할까?
그리고 생태계에서 이미 파손/파괴된 부분들을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을까?
진지하게 서로 의견들을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While reading this question, I thought of the book “Silent Spring” by Rachel Carson.
I read this book a few years ago, and this book left a big impact on my view of this world.

Rachael Carson, a marine biologist, writes about the effects of the usage of the pesticide, DDT.
She discusses an imaginary town that suffers “plagues”
that destroyed the whole community and the nature sites that used to receive lots of attention.
Even though the city was imaginary, she states that “this actually happened somewhere,
and many real communities already suffered a substantial number of them.’’
The plague happened because of the usage of pesticide DDT,
and she talks about how DDT doesn’t just affect the nature,
but also damage humans immensely.
Throughout the end of the book, she explains some alternative ways to
get rid of pests without the usage of chemicals and what we can
do in order to change this world the right way round.
박지은 (2020-05-05 11:10:57)  
1. (**) “지구온난화를 막는 방법” 또는 “자연을 보존하는 방법”을 인터넷에 검색하면
“태양전지패널 설치하기” “LED 전구로 바꾸기”
또는 “친환경 차를 쓰기” 같은 일들에 동참하기를 추천합니다.

최근에 스타벅스라는 인기있는 커피 체인점에서는
거북이 같은 해양생물들이 빨대로 인해 더이상 목숨을 잃지 않도록
친환경 빨대쓰기 캠패인을 실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초점에서는 이러한 큰 변화가 필요한,
큰 영향을 줄것만 같은 친환경적인 조치들은
돈과 시간의 여유가 있어야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태양전지패널을 설치하는것도, 전구를 바꾸는것도,
차를 바꾸는것도, 심지어 빨대를 계속 쓰기 위해 빨대용 솔을 사는것도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쁘고 힘겨운 사람들에게는
사치로 느껴질 수도, 또는 버겁게 느껴질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큼직큼직한 변화들로만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는 관념에서 벗어나
나의 작은 일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는 큰 일처럼 느껴지지 않더라도
작은 일부터 실행하는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서, 각자의 생활속에서 재활용하기 힘든 플라스틱이나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장보기 전 리스트를 만들어서 후에 있을 많은 오염을 줄여나가는것도 아이디어일 수 있습니다.

인간이 욕망을 절제하지 못한 이유로 파생된
자연의 생태계의 리듬이 깨진 현상들을 그저 바라만보고 있는
방관자가 되지 않으려 각자의 생활속 끊임없는 고민과 작은 실천들이 필요해 보입니다.
박지은 (2020-05-05 11:12:08)  
2. (**) 저희 외할아버지 동생은 젖소 농장을 하십니다.
닭, 오리, 돼지, 소 등과 같은 가축들의 전염병이 돌때면
그 소들이 다 죽게될 때가 있었습니다.
어제 낳은 송아지도 어미소와 함께 묻혀야 하고
아직 어미소 뱃속에 있는 아기소는 세상을 보지 못한채 그냥 구덩이에 묻히게 됩니다.
살아있는 소들을 땅에 묻어야하는 고통을 지켜 본 가족들은
심리적인 고통과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가축들을 살처분하고 시설들을 폐쇄하는 것으로만으로
이런 일을 끝내는 것은 문제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지금과 같은 형태의 생태파괴적인 삶을 이어간다면
앞으로 또 다른 변종 바이러스가 끊임없이 출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인간의 건강이 동물뿐 아니라 생태계 전체의 건강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가축과 관련된 문제를 ‘죽이는 기준’의 완화로 해결하려 하기 보다
‘균’에 대한 재인식과 가축의 생명 자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을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미 하나님은 땅이 훼손되고 인간이 자연을 파괴할 것을 아시고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말씀하신걸까요?
생태계 파괴는 피조물인 우리 인간들이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지 돌아봅니다.
박지원 (2020-05-05 12:09:24)  
(**) [우리가 지금 몸담고 살아 가고 있는 자연생태계를 어떻게 보존할까?
그리고 생태계에서 이미 파손/파괴된 부분들을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을까?
진지하게 서로 의견들을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로 사회적 거리두기와 셧다운이 시행되면서
자연스레 사람들의 교류와 소비활동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로 인해, 오염되었던 자연이 회복되는 뜻밖의 결과가 (이로움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환경보호에 집중되고 있는 요즘입니다.

환경을 파괴하는 큰 요소 중 하나는 메탄가스의 분출입니다.
메탄가스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지 못하는 음식물 쓰레기에서도 분출됩니다.
미국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의 대부분은 매립지에 매립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매립된 음식물이 썩을 때 메탄가스를 분출하며 환경을 오염시킵니다.
외출을 삼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음식물 쓰레기를 최소화 함으로
환경보호를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것이 항상 쉽지만은 않습니다.
vegetable oil이 낭비되는 것을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vegetable oil 로 달리는 차가 한 예입니다.
잘 정제된 Vegetable oil을 연료로 사용하면
이산화탄소 배기량도 줄일 수 있어서 환경보호에 탁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매년 배출되는 biodiesel로 정제 가능한 vegetable oil은 1-3 billion gallon이고,
실제 미국에서 2015년 한해동안 사용된 기름은 약 140 billion gallon입니다.
실질적으로 gasoline을 vegetable oil로 완벽히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처럼 환경오염에 대한 대비책들이 완전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예는 플라스틱 사용입니다.
환경보호를 위해 여러 단체와 국민들이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로 일반적인 플라스틱 사용이 많이 줄어들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의료계에서는 더욱 많은 플라스틱이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의사의 장갑, 방호복, 시체를 담는 포대 등이 플라스틱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플라스틱 장비들은 사치품이 아닌 필수품이기에 사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플라스틱의 비용과 질을 대신하며 환경오염을 일으키지 않을 대체물질을 찾아낼 때까지,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큰 과제로 남을 것입니다.

환경보호는 각 가정에서도 실천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더욱 구체적이고 확실한 대비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또한, 환경보호는 많은 사람들의 extra care와 extra cost를 필요로 하기에
결코 쉽고 가벼운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장동은 (2020-05-05 12:11:17)  
돌이켜 회개하면 다시 기회를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자존심 때문에 죄인줄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으려 애쓰는 저를 발견합니다. 내 마음 상할까 염려하는 마음 내려놓고 다시 주님 얼굴을 찾을때 나의 상한 심령을 회복시켜 주시고 평안주시길 기도합니다.
박지은 (2020-05-05 12:47:40)  
“내가 만일 하늘 문을 닫아 비가 내리지 아니하거나 메뚜기 떼를 보내어
온 땅을 황폐하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백성들 가운데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백성인 너희가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며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너희의 죄를 사하고
이 땅을 다시 고쳐주리라” (역대하 7장 13-14절)

코로나19라는 전세계적인 전염병으로 인해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는 동시에
증오와 분노의 소식들이 자주 들리곤 합니다.
아시안에 대한 무지한 분노가
세계 곳곳에서의 인종차별과 증오범죄로
표출되는것을 뉴스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많은 교회들이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며
현재의 코로나19 사태의 원흉을 찾으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역대하 말씀속에 언급되는 메뚜기 떼와 전염병을
현 코로나19 사태와 연관지으며
“이 사태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 때문이다…” 하며
그들의 회개를 강조하는 위험천만한 설교들도 있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역대하 말씀을 보고
“그럼 이 재앙이, 다 너희 신 때문이야?” 하고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 현 코로나19 사태를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해야할까요?
황페한 땅, 메뚜기 떼, 그리고 코로나19까지 겪고있는 아프리카 땅은
악한 길로 행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요?

사람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생각을 멋대로 해석하는것 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생각됩니다.

이렇게 코로나19 사태를 오직 100% 영적으로 해석하는것은 무리이지 않을까 생각해보며
사람들의 반문에는 어떠한 말을 해줘야할지 고민이 됩니다.
이러한 질문들을 계속하면서 차근히 준비해야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박지은 (2020-05-05 12:58:44)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비웃음거리가 되는 이스라엘 백성…
속담거리가 되고 비웃음거리가 되는 상황을 떠올리다 보니
목사님께서 금요예배때 가르쳐 주신 시편 137편 말씀이 떠오릅니다.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바벨론 사람들이 유다 백성들을 먼 이국땅까지 끌고 와
노예로 삼음으로 그들의 삶은 짓밟혔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이 유다 백성들에게 요구한 것은 ‘기쁨’,
즉 자신들을 즐겁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상대를 비참함과 처절함의 극치로 몰아가며
구체적으로는 ‘시온의 노래 중에 하나를 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역대하 7장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뿌리째 뽑히고 속담거리와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박지원 (2020-05-05 13:17:00)  
오늘 본문의 첫절인 역대하 7장 11절에 나오는 단어 '형통'과
마지막 절인 22절에 나오는 '재앙'이라는 단어가 한 쌍을 이루어 눈에 들어옵니다.
이제 막 신전을 짓고 제사를 드린 솔로몬을 보며 성경은 그가 '형통'했다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그날 밤 찾아오신 여호와 하나님은 그런 솔로몬에게 여러 재앙을 말씀하십니다.
14절까지는 어떠한 재앙이 닥쳤을 때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며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너희의 죄를 사하고
이 땅을 다시 고쳐주리라 (회복시켜 주리라)"라고 하십니다.
재앙이 닥치기 전에 '회개하라'라고 하시는 다른 말씀들과 차이가 있어보입니다.
마치 '이럴 땐 이렇게 해라' 하는 instruction을 주시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19절부터는 instruction이라기보다는 경고를 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율례와 법도를 떠나 이방신을 섬기면
이 신전을 뽑아내고 너희를 웃음거리가 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우상숭배는
솔로몬의 대를 넘기지 못하고 행해지게 됩니다.
이 일을 미리 아시고 콕 집어서 예언하신 것처럼 느껴집니다.

미리 경고하신 내용을 그대로 행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보며
성경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나의 삶도 함께 돌아봅니다.
정은선 (2020-05-05 14:02:49)  
지금 이 시대에도 전염병, 여러 재난들을 볼 때에
우리의 죄와 연결시켜 생각하는 것이 옳은지 궁금합니다.

악의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며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시는 주님. 용서와 회복의 하나님으로 그 자리에 계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이유로든 잘못된 길로 나아가게 될 때 기도하며 돌아올 수 있는 자녀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홍은기 (2020-05-05 14:16:18)  
히스기야는 상황에 기반을 둔 앗수르 대사의 이야기보다,
진리에 기반을 둔 하나님의 이야기에 삶을 맡깁니다.
그는 그 상황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 펴 놓습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상황을 바꿀 수 없는 존재이며,
보이는 상황 이면에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깨닫고, 전적으로 의존하는 행동입니다.
19절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절절한 고백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하나님, 저 또한 제 상황을 하나님 앞에 펼치길 원합니다.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깁니다.
이과훈 (2020-05-05 15:07:32)  
솔로몬이 성전과 왕궁 건축을 마치고 하나님께 말씀을 받습니다. 그것은 “심중에 이루고자 했던 것을 형통하게 이룬” (11)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금언입니다. 먼저는 성전이 하나님과 통하는 곳임을 인정받습니다 (12). 그리고 하나님만 경배하고 그의 뜻을 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됩니다 (14,22). 하나님께서 정성과 노력을 통해 얻은 성취를 인정해 주신 뒤에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를 알려주십니다. 이를 통해 성전의 웅대함이나 솔로몬의 형통함이 아니라 그 모든 과정을 주관하시고 성전을 은혜의 통로로 써주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배하는 것이 본질임을 깨닫습니다.
형통한 자는 그가 이룬 업적이 아니라 그 업적 뒤에 계신 하나님을 알고 경배해야 합니다.하나님께서 개인의 능력이나 업적을 완전히 무시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12). 무엇을 이루었냐보다 하나님께 시선을 집중하고 마땅한 경배를 올려드렸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14).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형통하지 못한 사람은 먼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20).
요즘 형통함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능력이 부족함을 여실히 느끼고 있는데 오늘 본문을 보며 위로도 받고 정신도 차립니다. 지금 자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들에 압도당하지 않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께 시선을 두는 것임을 알려주시니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겠습니다. 저의 삶으로 하나님께서 받기에 마땅한 경배를 올려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길과 뜻을 구하고 따르겠습니다. 메뚜기나 전염병 때문에 황폐해 지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께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임을 배웠으니 (14)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하나님께 매달리겠습니다. 다른 것들에 한눈 팔지 않겠습니다. 제 마음을 지킬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도와주세요.
이선미 (2020-05-05 17:44:14)  
시련의 때에 하나님을 찾기 원합니다. 세상의 소리 뒤로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기 원합니다. 위기의 때에 하나님을
찾지 않은 교만을 죄로 물으실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신 여호와께 믿음으로 나아감이
겸손임을 깨달으며 하루하루 살게 하옵소서.
임성희 (2020-05-05 20:26:32)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감사합니다.
장동은 (2020-05-05 22:49:09)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조롱당하는 것에 대해 더욱 분노하기 원합니다. 그러나 분노의 마음을 사람에게 향하지 않고 하나님께 내려놓아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하옵소서.
박지은 (2020-05-05 23:19:42)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처럼 보이는
막막하고 두려운 상황속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주신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엎드림으로
하나님께 모든것을 맡길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의 기도와 간구에 귀를 기울여 주시어
우리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지혜롭게 판단할 수 있기 원합니다.
박지원 (2020-05-06 01:38:16)  
랍사게의 전언과 앗수르 왕의 편지는 히스기야에게 두려움과 절망을 안겨주었을 것입니다.
앗수르 왕의 편지 내용대로, 나름 자신들이 믿는 신이 있었을 주변국들도
이미 앗수르 왕의 무력 앞에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 편지의 내용은 너무나도 확실하고 논리의 오류가 없었을 것이고,
그것이 히스기야 왕의 마음을 물샐틈없이 불안으로 가득 차게 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떠한 행동을 취하는지가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 시련은 내 힘으로 극복할 수 없어... 하나님께서는 나한테 왜 이러시는 거야." 라며
실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도 많은 사람이 취하는 태도 중 하나일 것입니다.
하지만 히스기야 왕은 그 절망, 두려움, 불안을 모두 하나님 앞에 쏟아냅니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하며 하나님께 아뢰고 모두 맡깁니다.
주변국의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나가떨어지는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찾는..
세상 사람들의 입장에서, 어찌 보면 비상식적일 수 있는 반응을 보입니다.

저의 삶을 되돌아봅니다.
어떤 힘든 일들이 닥쳐올 때에, 저는 숨고 웅크리고 도망치기 바빴습니다.
그때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가 원망하며 하나님과도 멀어졌습니다.
불에 데인 아이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놀라고 무섭지만 아무에게도 보여주기 싫어 혼자 앓는 모습..
하지만 그 데인 자국을 하나님께 보이고 치료를 받아야 더욱 건강한 회복이 있음을 생각합니다.

이 뒤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히스기야에게 보내어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라고 전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듣고 계셨습니다. 나의 기도 또한 듣고 계심을 믿습니다.
언제든지 제가 하나님을 찾고 기도할 때에 경청해 주시니
저의 마음이 빈틈없이 기쁨과 감사함으로 가득 찹니다.
이 은혜 떠나지 않도록 저의 삶을 축복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장은경 (2020-05-06 04:33:24)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지하여 믿음으로 잘 섬겼던 히스기야왕 때에도 환난이 옵니다.잘 믿고 섬기면 형통하기만 할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상황으로는 힘으로도 이길 수 없고 상대는 계속해서 숨통을 조여옵니다.잠깐 넘어질수 있지만..정신 차리고 천지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히스기야왕을 보며..내가 바로 서있는 날이 과연 얼마나 될까..늘 점검하며 준비하며 깨어있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언제든 닥칠수 있는 여러 상황들 속에 나의 믿음까지 흔들리려 할때..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정신차려 올바로 분별하여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가는 저의 신앙여정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인범 (2020-05-06 05:21:51)  
앗수르를 통해 오는 어려움 속에서
히스기야는 다른 무엇을 하기 전 하나님께 바로 아룁니다.
또 하나님께서 참이심을 굳게 믿으며 기도드립니다
그 삶을 보며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강은 (2020-05-06 07:15:41)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자신의 신하를 통해 히스기야를 조롱하며
당장이라도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것처럼 위협했음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는 어떻게 여호와만 붙잡으며 그의 중심을 지킬 수 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도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며 기도했던 히스기야처럼
어떤 일이든 주님께 고백하며 기도할 수 있는 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를 다 들어주셨던 것과 같이 저희의 기도에도 응답하여 주세요.
박준혁 (2020-05-06 08:26:17)  
God, I raise up my problems and concerns up to Your powerful Name.
Many people are losing their jobs at the hospital that my dad works in because of the COVID-19 pandemic,
and they’re in sorrow and despair. I look up to You in these times of distress.
Please help us and all the people during this difficult time.
윤사랑 (2020-05-06 11:22:25)  
어제말씀과 연결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따르는 자가 되겠습니다
박지원 (2020-05-06 11:32:30)  
(**)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갖가지 (크고 작은) 약속들을 합니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 손가락을 걸고 (맹세)하는 약속으로부터...
국가 지도자들 간에 서명식을 가지고 맺는 조약에 이르기까지 많은 약속을 합니다.
그런데 개인들과 국가들이 맺은 약속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을까요?
인간 공동체의 생활에서 약속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招來)될까요?
(각자가) "나는 약속을 잘 지키는가? 나는 헛약속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닌가?" 등등
[곰곰히 생각하고 의견을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약속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하는 말을 믿어달라고 하기 위해 약속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 말인즉슨, 약속이 깨어졌을 때는 그 믿음도 함께 깨어진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개념을 정리한 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떠올려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들은 단 한번도 지켜지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한번이라도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이유를 그만큼 잃게 되지만,
하지만 하나님은 항상 약속을 지켜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고,
또 예수님의 재림을 믿을 수 있습니다.
항상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박지은 (2020-05-06 11:51:35)  
1. (**) 인간의 삶속에서 다양한 약속들을 볼 수 있습니다.
시간약속 같은 나름 즉각적으로 이룰 수 있는 약속들이 있는 반면에
그 약속이 이행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 약속도 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엄마가 추방당하셔서 미국 땅을 떠나시던 그날 밤
제게 해주셨던 약속이 기억납니다.
“지은아 엄마가 금방 돌아올게….”

하지만, 그 약속이 성취되기까지는 2년반이 걸렸습니다.
“금방”이라는 시간이 2년반보다 훨씬 짧기를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엄마가 돌아오실거라는 약속을 믿었기에
궁극적으로 엄마가 돌아오심으로
엄마의 약속은 제 기억속에 지켜진 약속으로 남아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도 즉각적으로 성취되는 약속보다는
믿음을 기반한 인내를 거쳐 이뤄지는 일들을 성경을 통해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기대하며 기다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믿음을 선물해주신 이유를 조금은 알것 같습니다.
박지은 (2020-05-06 11:53:33)  
2. (**) 최근에 그릇이 눈앞에서 깨지는 것을 보면서
약속이 깨진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약속이 깨지면 그릇이 파편이 되어 깨지듯이
사람이 다치는 매서운 후폭풍과
복잡한 어려움들을 마주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또한 신기한것은, 좋고 값이 비싼 그릇은 깨지더라도
파편이 날카롭지 않고
안 좋은 그릇은 깨어질때 각각의 파편들이
정말 뾰족하고 날카롭게 “와장창” 깨어집니다.

깨어졌을때도 그릇의 가치가 들어나는것을 보며
우리의 인간관계속에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자세가 특히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박지원 (2020-05-06 12:39:26)  
약속에 대해 생각해보다가 성경속에는 어떤 약속들이 있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약속을 먼저 찾아보았습니다.
사무엘상 18장 3절-4절 말씀을 보면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라고 나와있습니다.
요나단이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를 주었다는 것이
자신의 (왕자로서의) 지위를 이미 다윗에게 넘겼다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 후에 사무엘하 9장에는 므비보셋이 왕자 중의 하나처럼
다윗 왕의 상에서 먹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사무엘하 21장 7절에는 "그러나 다윗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 사이에
서로 여호와를 두고 맹세 한 것이 있으므로 왕이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아끼고"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 요나단이 자신의 지위를 내어줄 때에
요나단의 핏줄을 지켜주기로 약속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은 경우도 찾아보았습니다.
나실인은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나실인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며, 포도를 입에 대지 말아야합니다.
하지만 삼손은 나실인임에도 불구하고 사자의 시체를 만졌고
그 사자를 죽인 곳은 포도원이었습니다.
이렇듯 나실인으로서의 약속을 잘 지키지 못했던 삼손은
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홍은기 (2020-05-06 12:43:22)  
[화요일]열왕기하 19장 1-19절 성경공부 내용입니다.

1.히스기야의 베옷

히스기야는 랍사게의 조롱을 듣고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성전에 들어갑니다.
아이들이 질문했습니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유다의 왕인 히스기야는
왕의 옷, 지도자의 옷을 입고 있어야 하는건 아닌지 물었습니다.
사극을 보면 왕이 베옷을 입을 때에는 상대 국가에 무릎 꿇고 항복을 할 때입니다.
히스기야가 베옷을 입는 순간 국민은 불안해지는것이 아니었을까요?
성전에 들어가더라도 장군의 복장, 갑옷을 입고 아닐까요?
그런데 그는 굵은 베옷을 입습니다.앗수르 왕 산헤립의 편지를 받아들고 성전에 올라갑니다.
전쟁터에 서야하고 앗수르 장군 랍사게와 대면하여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 같은데
성전에 서고 하나님과 대면합니다.

2. 히스기야가 성전에 들어가는 뒷 모습을 바라보며...

분노와 두려움이 가득한 히스기야의 뒷모습을 상상해봅니다.
그는 분노와 두려움을 바르게 처리하고 있는 것일까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자기감정에 취해서 실언하거나 경솔히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도망치거나 숨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전에 들어갑니다.
분노와 두려움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오랜시간 나누어보았습니다.
제 자신도 돌아보며 제가 살아가면서 분노와 두려움이 몰려올 때
하나님 앞에 아이들 앞에 어떤 모습이었을까 돌아보았습니다.
히스기야의 이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분노와 두려움을 다스릴 지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홍은기 (2020-05-06 12:48:26)  
3. 한 영을 불어넣으리니

열왕기하19장 7절을 이해하는 데 의견이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 권력자인 앗수르 왕 그 마음속에 찾아가
일종의 두려운 마음을 직접 심어 주신 건가요…
하나님에 대한 소문을 듣게 하여 본국으로 회군하게 할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요…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던 사람이었지만
오히려 그 마음에 두려움과 공포심에 사로잡히는 앗수르 왕의 얼굴을 상상해보았습니다.
히스기야가 두려워하고 분노했던 모습과
앗수르 왕의 두려움과 공포심에 사로잡히 모습…두 왕의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4.하나님과 히스기야 그 가운데 이사야…

19장 2절부터 7절까지의 내용은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간 히스기야 왕이
이어서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 사람을 보내고 하나님 말씀을 듣는 장면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직접적인 교제는 나누지 못했는지,
직접적인 교제가 있었지만 왕들은 통상적으로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는지
여러가지 의견이 나왔습니다.
정은선 (2020-05-06 12:50:30)  
히스기야의 기도의 방향을 보게 됩니다. 그 끝은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모든 이들이 알게 될 것을 구합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게 되는 나의 마음과
그 중심에 있어 어리석은 부분이 있으면 깨닫게 하시고 온전히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기를 원합니다.
홍은기 (2020-05-06 12:51:50)  
5. 응답은 빨랐으나 상황은 더디다 그리고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다.

4번 질문과 연관하여
(히스기야가 직접적으로 하나님과 친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깊고도 따뜻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우리는 실제로 누리고 있는지 돌아보자고 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히스기야에게 주셨던 응답이
즉각적인 상황변화가 아니었음을 생각해봅니다.
하나님께서 즉각적인 응답을 주셨서도 상황은 늘 기다림이 있어야 하는지…
그 기다림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는 것은 ‘ 믿음 ’ 이라고 나눴습니다.
말씀을 믿음으로 반응할 것을 요청하시고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우리가 생각했던 타이밍에 생각한대로 일하실거라는 착각을 버리자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휘두르는 무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면, 우리의 시계가 아닌, 하나님의 시계에 삶을 맞춰야 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8절부터 13절은 다시 한 번 앗수르 왕의 편지를 받는 장면입니다.
악한 세력은 한 번이 아닌 반복해서 조롱합니다. 그 조롱은 듣기에 영향력이 있습니다.
홍은기 (2020-05-06 12:53:58)  
6.앗수르 왕 산헤렙의 편지는 팩트를 기반한 위협인가, 가짜 뉴스로 위협하는 것인가?

랍사게의 폭언 이후 새롭게 보내온 앗수르 왕 산헤립의 항복을 요구하는 위협편지는
가히 오금을 저리게 만듭니다.
“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지켜줄 것이라는 말에 속지마라.
앗수르군대에게 진멸당한 나라들에 대해 너도 들었지않느냐.
고산, 하란, 레셉, 에덴족속, 하맛왕, 아르밧왕, 스발와임 왕, 헤나와 아와의 왕이
모두 앗수르 왕에게 당했다. 어떤 나라의 신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그 나라를 구원하지 못했다.
여호와라는 너희의 신도 앗수르를 이기지 못한다. 그러니 너도 항복하라”

앗수르 왕의 편지는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의 주장대로 주변의 여러나라들이 멸망했습니다. 유다라고 더 나을 것은 없습니다.
위기는 닥쳤는데 방법은 없습니다.
랍사게가 하나님을 모욕하는 말을 하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
산헤립 왕이 보내온 하나님을 조롱하는 내용으로 가득찬 편지를 보며
분노가 끌어오르고 가슴이 찢어집니다.
팩트에 기반한 위협은 더욱 큰 공포를 불러올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나눴습니다. 수요일 말씀 나눔도 기대하며 ....
이과훈 (2020-05-06 13:50:31)  
바울은 믿음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였습니다 (히 11:1). 요한도 믿음 (말씀)이 멀리 떨어져 있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눈으로 자세히 보고 손으로 만질 듯 선명하고 구체적인 실제임을 알려줍니다 (요일 1:1) 또한 믿음은 다윗이 받은 것과 같은 확실한 은혜 (사 55:3)를 허락해 줍니다. 오늘 본문에서 히스기야는 믿음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맛 본 좋은 예시가 됩니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적이 자신을 조롱할 때 깊은 무력감과 모욕감을 느낀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감정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는 그저 깊은 절망감을 느끼는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고 급박한 상황을 한탄했을 뿐이었습니다 (3-5).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두려워하지 말라(6)”고 말해주시고 결국 말씀대로 위기를 해결해 주십니다. 비슷한 상황이 다시 생겼을 때 히스기야는 또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14-15). 근데 그의 기도가 다릅니다. 하나님께 구해달라고 부르짖습니다.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신 줄을 (자신이 알고 믿으니) 주의 능력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19).
절망 가운데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저의 연약한 믿음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철저하게 자신의 무력함과 연약함을 확인하는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를 전적으로 신뢰해야 함을 알려주시니 이를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능력을 이미 보이셨고, 지금도 보일 수 있으십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믿음의 증거를 허락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제 앞을 막고 있는 벽을 뛰어넘을 힘과 능력이 없을 때 그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겠습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제 운명을 맡기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인생에 결정권자 인도자 될 수 있도록 주도권을 내어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베풀만한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힘든 상황에 절망하지 않도록 저를 붙들어주세요. 이러한 상황이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맛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는 마음의 넉넉함과 믿음을 허락해주세요. 다시 믿음을 맛보아 아는 자로서의 삶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함께 해주세요. 도우실 성령님 기대합니다.
홍은기 (2020-05-06 15:35:18)  
하나님,
세상의 공격과 협박 앞에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의 방법으로 생존하기 위해 타협하지 않고
오직 우리의 생명과 영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겠습니다.
이선미 (2020-05-06 17:26:21)  
경건의 모습을 경건의 능력으로 착각하지 않기 원합니다.
믿음없이 하는 기도가 아버지께 상달되기를 기대하지 않기
원합니다. 믿음의 기도로...경건의 능력을 맛보게 하옵소서.
주 안에서 구하는 기도로...응답의 기쁨을 이미 누리게 하옵
소서. 병거를 의지하지 않고 말을 의지하지 않고...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게 하옵소서.
임성희 (2020-05-06 21:33:37)  
하나님의 계획 아래에 있는 두려움음 두려워 할 필요가 없음을 알겠습니다.
다만 믿음이 없어 그 계획안에 내가 있음을 늘 잊고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안에 내가 있음을 감사합니다.
장동은 (2020-05-06 22:33:48)  
내가 이뤄낸 일이라고 자부하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계획하심으로 나를 통해 이루신 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립니다.
백은지 (2020-05-06 23:26:11)  
오늘 하루 온전히 하나님만을 경배하는 삶을 살았는지 돌아봅니다. 나의 인생이 앗수르의 왕이 이방신을 향한 경배가 이어져 악을 낳음과 같은 결과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의 통치하심 안에 거하여 붙들린 인생 되기를 간구합니다.. 언제나 주 앞에 나아가 무릎꿇는 믿음의 자녀 될 수 있기를 주님 인도해주세요.
박지원 (2020-05-07 00:58:08)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봅니다.
큰 무리 없이 세상을 삼켜버릴 것 같았던 앗수르의 병거들도,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산헤립의 신 니스록도,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감히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세상의 어떤 큰 일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나의 지경으로 판단했을 때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일인것 같아
하나님께 기도드리지도 않았던 일들마저 하나님께 아뢰야한다는 것을..
하지만 나의 욕심과는 분별해야한다는 것 또한 생각합니다.
도저히 이뤄질 수 없는 일을 욕심내며, 내가 해야할 준비조차 하지 않으며
그저 '하나님은 전능하시니 이거 해주세요'라며 욕심을 포장하지 않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저도 앗수르의 병거들과 같음을 생각합니다.
제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봤자
하나님 앞에 선 순간 그것들은 의미를 잃고 맙니다.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어야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안에 거하며 언제든 사라질 것들에서 눈을 돌려
진정 의미 있는 것들을 바라보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찾기 원하오니 나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박지은 (2020-05-07 01:08:16)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일은 확실히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구원하시겠다고 하실때
히스기야와 백성들이 그리도 두려워했던 존재들이
맥없이 쓰러지고 줄행랑 치는것을 봅니다.

때에 따라 모든 기도와 간구의 응답이
우리가 기대하는 즉각적인 해결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 마음을 다해 기도드릴때
우리의 지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안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는 응답이 있을줄로 믿습니다!
장은경 (2020-05-07 02:17:51)  
"네가 행한 모든 일들은 나 여호와가 오래전에 정해 두었던 일들이고 나 여호와가 옛적부터 계획했던 일들이라..."
히스기야왕과 산해립의 대립적인 모습에서 천지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알고..경외함으로 진심의 고백의 기도가 그와 하나님의 관계의 확신과 믿음을 확인하는 중요한 과정임을 봅니다.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산해립의 교만함과 비방도 들으시는 하나님..
말씀데로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
닥친 상황과 이루어 지는 과정과 결과가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이루어 질지는 모르나..
뜻하신 데로 반드시 행하시며 성취하심을 믿습니다.
그러한 상황과 과정들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하나님을 바로알아..진실한 믿음으로 기도하며 주안에서 굳건히 이겨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진문균 (2020-05-07 02:41:45)  
매 순간 제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잊지 않고 붙들기를 원합니다.
이인범 (2020-05-07 05:22:14)  
산헤립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에게 어떻게 행하실 지 봅니다.
이스라엘을 침공해 점령할 수 있던 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이끄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성공이 누구에게서 오는지 알지 못하던 산헤립은
그를 높이신 하나님께서 다시 낮추셨습니다.
저는 성공을 논하기에는 너무 부족하고 멀리떨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저에게 주어진 것이 누구로부터 왔는지 생각하지 않으면 교만해집니다.
나에게 주어진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기 원합니다
윤사랑 (2020-05-07 06:47:05)  
항상 맘을 청결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박준혁 (2020-05-07 12:03:13)  
Hopeful Promises
My dad always told me, “You can buy anything you want... if you wait 3 years.”
He has been making this promise every year for the past 6 years
with the hope that our financial situation will get better in 3 years.

To me, “3 years” is a fifth of my life, but to my dad, it’s only 1/16 of his life.
3 years is a very large piece of my life, but a very small sliver of his life.
Having hope for the future is important,
but I think that we should be more cautious on how we make our promises!
정은선 (2020-05-07 12:18:02)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 나가시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는 믿음은 있지만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잘 기다릴 수 있나? 저에게 물어봅니다.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는 자 되기를 기도합니다.
박지원 (2020-05-07 12:50:58)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가 쓴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이란 희곡(戱曲)이 있습니다. 작품속에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高利貸金業者)
샤일록이 등장합니다. [나는 어릴때부터 지금까지도 수시로 이 희곡을 읽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샤일록이란 인물에게 감정이입(感情移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을
느꼈을까요? 이 작품을 읽어 본 사람들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무엇을 느꼈습니까?"

1. 워낙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베니스의 상인을 요약한 글을 읽어보고, 유투브도 찾아보았습니다.
흔히 샤일록이란 인물은 악독한 고리대금업자로 표현되며
이자를 받지 않고 돈을 빌려주는 안토니오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자로 벌어먹고 사는 샤일록에게는 생계를 위협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2. 베니스의 상인 영화를 유투브로 찾아보았을 때 새로 발견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 때 당시 유대인들은 'Geto'라는 지역에 살도록 강요받았고,
낮에 게이트가 열려 그 지역 밖으로 나올 때는,
빨간 모자를 써서 자신이 유대인임을 표시해야했고,
저녁에는 크리스챤들이 그 게이트를 지켰다고 합니다.
분명 그들은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또한, 안토니오와 베사니오가 샤일록에게 돈을 빌리러 왔을 때
샤일록은 안토니오가 전에 자신을 개라고 불렀었고,
자신의 옷에 침을 뱉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평소에 어떤 대접을 받는지 알려주는 대목인 것 같습니다.
또한 나중에 샤일록이 말하는 대사 중에
'그는 나의 불이익을 보며 웃었고, 이익을 보며 조롱했고, 나를 조롱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유대인이기 때문이었다!' (의역입니다.) 고 합니다.
또한 '유대인도 눈이 있고 손이 있으며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무기에 아파하며
같은 병에 걸리고 같은 방법으로 병이 낫는다.' (의역)고 말하며
유대인도 결국 당신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임을 호소합니다.
그러면서 '유대인이 크리스챤에게 잘못했을 때 크리스챤은 복수를 한다.
크리스챤에게 배운 방법으로 나도 복수를 하겠다' (의역)고 합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한 대사들 입니다.
나중에 재판에서도 사람들은 안토니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 샤일록을
악독히 여기며 안토니오만을 불쌍하게 여깁니다.
평소 샤일록이 어떤 대접을 받아왔는지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박지원 (2020-05-07 12:51:21)  
3. 제 관점으로 봤을 때는 참 특이하다고 생각되어지는 것이,
셰익스피어가 샤일록을 굳이 미화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인종차별의 피해자니까 조금 더 미화해서 그릴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샤일록의 딸 제시카가 집을 빠져나와 크리스챤으로 개종하는 부분에서
셰익스피어가 샤일록을 미화시키지 않았다는 것을 더욱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안토니오를 마냥 미화시키지도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샤일록보다 착한 사람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는 평소 유대인(샤일록)을 하대하며 샤일록이 복수의 칼을 갈게 할 정도로
유대인에게는 좋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4. 이렇게 양쪽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려냄으로 인해
셰익스피어는 그 모두를 비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유대인을 비난함으로 그들을 벼랑으로 내모는 크리스챤의 모습을
안토니오와 그 주변 사람들을 통해 비판하고,
그에 대해 앙심을 품고 더욱 악독해지는 유대인의 모습을
샤일록의 모습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홍은기 (2020-05-07 12:57:31)  
[수요일] 열왕기하 19장 20-37절 성경공부 내용입니다.

1. 하나님이 듣고 계신 것은…기도의 소리, 교만의 소리
.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에게 아주 시원스런 한 마디로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네가 내게 기도하는 것 내가 듣고 있었다.”
21절부터 하나님은 앗수르 왕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말씀을 번갈아가며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앗수르 왕에 대해 시종일관 음성이 고조된 채로 분노를 발하셨습니다.
27절과 28절은 “네 거처와 네 출입과 네가 내게 향한 분노를 내가 다 아노니
네가 내게 향한 분노와 네 교만한 말이 내 귀에 들렸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간구를 들으실 뿐 아니라 앗수르 왕 같은 교만한 자의 소리도 듣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백성에게는 하나님이 구원과 위로의 근원이 되시지만,
악인에게는 심판의 근원이 되신다는 것을 생각해보았습니다.

2. 여호와의 사자

오늘 말씀 20절에서 “네가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듣고 있었다”라는 말씀으로 시작하여
34절 “내가... 이 도성을 지키고 구원하리라”는 말씀으로 마치고 그리고 그 말씀이 끝나는 그 날 밤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어마어마한 앗수르 대군을 동시에 모두 죽여버렸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셨던 성경 속 이야기들을 나눠보았습니다.
모두가 잠이 든 깊은 밤에 하나님의 사자가 움직였습니다.
출애굽 전 여호와의 밤에 처음 난 것은 다 죽임을 당한 것과 같이 밤 중에 일어났습니다.
또한 소돔과 고모라에 나타난 하나님의 심판을 한 천사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셀 수 없는 대군을 거느리고 온 앗수르 군대는 오늘 본문에서 거짓말처럼 다 전멸되었습니다.
홍은기 (2020-05-07 13:00:15)  
3. 성을 함락시키는 3단계 공격

32-33절을 자세히 읽고 나눴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화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성을 함락시키는 모습들을 영화나 소설속에서 보았던 장면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성을 포위한 후 먼저 화살로 성을 공격합니다.
이것은 방패를 든 병사들이 사다리를 타고 성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엄호 및 공격하는 것입니다.
방패를 든 군사들이 올라가기 시작하면 성벽 위와 아래를 무너뜨리기 위해 토성과 공성추를 동원하여 공격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공격 자체를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한 날 밤에 앗수르 18만 5천 명이 모두 시체가 되었습니다.

4.내가 이 도성을 지키고 구원하리라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지키고 구원한다고 말씀하실 때 이 말씀을 듣는 자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울타리를 둘러치는 것으로 이해했을까? 라고 질문했습니다.
지은이는 엘리사 때에 이와 비슷한 상황이 떠오른다고 해서 열왕기하 6장 17절을 찾아보았습니다.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아람 대군이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여 공격하려 할 때, 영안으로 바라보니
천사들이 이끄는 불말과 불병거 부대가 산에 가득하였고 엘리사를 둘렀습니다. 즉 울타리를 쳐서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성을 지키신다고 했을때 이 장면이 겹쳐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보호하고 계시는 것을 믿음을 통해 바라볼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우리 곁에 우리를 견고한 성처럼 보호하셔서
어떠한 화살과 사다리 부대의 육박전과 성벽을 무너뜨리는 최신무기조차 성 가까이 이르지도 못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홍은기 (2020-05-07 13:05:42)  
5.이사야 속 히스기야 이야기

이번주 이사야를 읽다가 36장부터 히스기야 이야기를 발견했습니다.
이사야 36-39장은 히스기야왕 때에 있었던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이번주 묵상중인 이야기를 이사야가 다시 이야기 해주니 신비롭고 흥미롭다고 준혁이가 이야기했습니다

6. 이사야 37:7 "보라"

목사님의 [여호와의 외침] 설교에서 “오호라”를 설명해 주신 부분이 떠올랐다고 했습니다.
이사야가 “보라” 라고 외쳤을때 “오호라”와 같이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더욱 기울였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히스기야왕이 보낸 사람들에게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 37:7 보라 내가 영을 그의 속에 두리니 그가 소문을 듣고 그의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며
또 내가 그를 그의 고국에서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히스기야왕이 보낸 사람들에게만 들려진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알게 외쳐지는 것 같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들려진 하나님의 말씀은 앗수르왕 산헤립은 소문을 듣고 자기 나라로 돌아갈 것이며,
거기서 칼에 맞아 죽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이스라엘의 역사속에서 하나님의 “보라”는 수없이 펼쳐졌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하였을 때 홍해가 갈라질 것이라고 꿈에서라도 생각했을까요?
또 철옹성과 같이 보였던 여리고성이 함성에 무너질 것이라고 예상이라도 했을까요?
뿐만 아니라 기드온이 단 300명의 병사로, 게다가 무기도 없이 나팔과 횃불, 항아리만으로
미디안의 연합군대 12만 명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인들 했을까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보라’의 역사였습니다.
'보라" 라는 단어 앞에서 아이들과 한참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실 저희 가정이 이렇게 살아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된 것도
‘하나님의 보라’의 결과라고 고백되어집니다.
박지은 (2020-05-07 13:15:15)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전의) "바벨론 유수(Babylonian Captivity-Exile)"와 (과거 이천
여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특히) 중세 유럽 전역에서 팽배(澎湃)했던 "반유대주의 운동"
(Anti-Judaism & Anti-Semitism) 그리고 (현대사에서 가장 참혹한 사건으로 불리는)
히틀러 통치하의 나치 독일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Holocaust)(Final Solution)" 등등을
거치면서도 유대인들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굳은 신앙(信仰)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세계종교역사에 있어서 불가사의(不可思議)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그러한
저력(底力)이 도대체 (어디서/어떻게) 나오는 것일까?]

유대인들이 Holocaust와 같은 참혹하고도 끔찍한 풍파들을 겪어내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굳은 신앙이 유지된다는 사실은
참 놀라운 일이라 생각됩니다.

목사님께서 올려주신 질문을 읽고 나서 생각난 책은 Elie Wiesel의 Night입니다.
이 책은 Elie Wiesel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그가 수용소에 끌려가서 목격했던 참혹한 나치 독일의 수용소에서의 경험들이 담긴 책입니다.

저자는 수용소의 처참한 광경을 보고 성경에 빗대어서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쏟아 붓기도 합니다.
제가 기억나는 예는, 시편 150편을 빗대어 본인의 신앙에 대한 비참함이 담은 부분입니다.
시편 150편은 “Praise…”를 반복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인 반면
Elie Wiesel은 의도적으로 “Never shall I…”의 문장의 구조를 반복하며
하나님에 대한 깊은 원망을 표현한 듯 합니다.

“Never shall I forget that night, the first night in camp,
which has turned my life into one long night, seven times cursed and seven times sealed.
Never shall I forget that smoke. Never shall I forget the little faces of the children,
whose bodies I saw turned into wreaths of smoke beneath a silent blue sky.
Never shall I forget those flames which consumed my faith forever.
Never shall I forget that nocturnal silence which deprived me, for all eternity, of the desire to live.
Never shall I forget those moments which murdered my God and my soul and turned my dreams to dust.
Never shall I forget these things, even if I am condemned to live as long as God Himself. Never.”

또한, 책중에 한 아이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것을 보며 저자가 묻습니다.
“하나님이 도대체 어디에 계시는가…”
사람들 또한 수군댑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것인가…”
그때에 음성이 들립니다.
“Here He is—He is hanging here on this gallow…”

그 아이와 함께 아파하고 계신 하나님…
고통중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감히 말이나 글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신비한 경험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킬 수 있지 않았겠나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그 경험들과 놀라운 체험들이 그 다음 세대에게도 전해져 내려오면서
유대인들이 신앙을 지켜나갈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인간이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옳은 질문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한
수많은 유대인들의 믿음을 기반한 신앙이 존경스럽습니다.
박지원 (2020-05-07 13:30:05)  
1.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아말렉과 전투를 할 때
여호수아는 나가서 싸우고 모세는 산 위에서 손을 들고
아론과 훌은 모세를 도와 그 팔을 받쳐들어주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오늘 본문에서는 아무도 싸우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손수 18만 5천명을 치셨다고 합니다.
두 전투 모두 하나님께서 도와주셨지만, 그 방법이 달랐습니다.
왜 출애굽기에서는 사람들을 싸우게 하셨고,
열왕기하에서는 하나님께서 손수 해주신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의 개인적은 추측으로는, 출애굽기에서의 아말렉과의 전투는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후 겪는 첫 전투였기 때문에,
전투에 대해 배웠어야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전투를 잘 해서 이겼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자만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전투를 이끄신다는 것을 모세를 통해 보여주신 것 같습니다.
열왕기하의 전투에서는 워낙 병력의 차이가 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을 치신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출애굽 때 하나님께서 내리셨던 재앙들처럼
이스라엘 역사에 있던 규모가 큰 사건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박지원 (2020-05-07 13:30:43)  
2. 히스기야가 취했던 행동과 산헤립이 취했던 행동을 비교해보았습니다.
둘 모두 다른 대안이 없다 싶을 때 자신의 신에게 갔습니다.
히스기야는 여호와 하나님께 산헤립의 편지를 아뢰었고,
산헤립도 리스록의 신전에 가서 경배했다고 합니다.
둘이 취한 행동은 비슷했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가를 질문해보고 생각해보았습니다.
꽤나 당연한 결과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 그 차이였습니다.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이 참 감사했습니다.
또한, 예배가 하나님께 드려지지 않는다면, 그 예배는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신에게 드리는 예배는 아니지만,
내가 정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박준혁 (2020-05-07 13:33:05)  
I remembered reading “The Merchant of Venice”
last summer after reading Pastor Lee’s question.
When I searched the name “Shylock”,
it strongly emphasized that he was the principal antagonist,
and at first, I had always learned that he was a selfish,
vicious character that only thought of his money,
completely disregarding the pain or suffering of others.

However, after thinking about what Shylock
has gone through and what the Christians
in the story have done to him,
I felt guilty that I had never thought of Shylock
as the victim of the story, instead of the antagonist.
He didn’t become vicious and selfish because he wanted to,
but rather became a person who practiced usury
because the Christians didn’t let Jews have property
or allow to work for the government.
He became vicious because of the Christians who always looked down
on him and the Jews, and they never showed any remorse for what they did.
He even loses his daughter to Christians
which leads her to go behind her father’s back and
convert to Christianity and steal from her own father.

Even though Shylock has made others suffer,
he was mostly the one with the most burden and pain inside him.
No one thought of him, and no one liked him because of his Jewish heritage.
홍은기 (2020-05-07 15:30:56)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겉사람뿐만 아니라
더욱더 속사람이 정결해야 함을 되새기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날마다 정결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게 하여 주세요.
이선미 (2020-05-07 17:36:03)  
내용이 없는 형식을 주의하기 원합니다. 변화가 배제된 열심을
경계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입술로만 공경하지 않게
하옵소서. 삶의 모습으로 아버지를 섬기며 매일 새롭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임성희 (2020-05-07 20:21:48)  
나보다 나를 더 아시는 분.
그 주님 앞에서 조금이라도 부끄럽지 않게
조금씩 조금씩 변하여지기를 기도합니다.
이광태 (2020-05-07 21:22:48)  
입술로만 주님을 공경하고 사람의 전통으로 헛되이 주를 섬기지 않기를 원합니다. 내 마음으로 하나님의 계명으로 섬기게 하소서. 아멘.
박지은 (2020-05-07 22:27:08)  
입으로는 나의 삶을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습이라 말하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다는
나의 만족을 위한 삶을 택한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어리석고 헛된 생각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자녀 되어
하나님의 향기를 풍길 수 있기 원합니다.
장동은 (2020-05-07 22:49:31)  
하나님의 시선과 마음이 아닌 나의 잣대로 다른 사람을 정죄했던 나의 잘못을 회개합니다. 내 속 마음을 정결케 하옵소서.
윤소영 (2020-05-08 00:31:58)  
나의 내면을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
나의 안에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기쁜 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성령의 불로 매일 나의 더러운 것들을 태워 주옵소서. 아멘
권모세 (2020-05-08 01:45:39)  
하나님 아버지,
제가 주를 경외할때 그것이 겉으로만이 아닌, 형식뿐만이 아닌,
제 마음속으로 부터 나온 것이길 소망합니다.
제 악한 본성은 남들의 눈을 신경쓰고 제가 어떻게 보여지는지를
신경쓰기 바쁩니다. 화려하지 않고 멋진 모습이 아니더라도
주님과 진실된 관계를 맺는 사람이 되길 기도합니다.
박지원 (2020-05-08 02:18:26)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여기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게
왜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냐며 사람의 잣대를 들이밉니다.
이 사건을 보며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의 그 어떠한 무엇도
얼마나 작고 초라해지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법칙도, 세계를 삼킬듯한 군사력과 무기도,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힘도, 누구도 부럽지 않을 부와 권력도,
어디에서나 존경받을 지식과 겸손도 모두 하나님 앞에서는 먼지와 같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것들에 정신이 팔려 하나님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찾기 전에 세상의 것들을 찾으며 거기에서 안도감을 얻으려 했습니다.

이제 변해가기 원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주님께서 보기 좋은 것은 어떤 것일까를 가장 중요시하고
그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함으로 나의 하루하루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피어나는 삶이 되기 원합니다.
미약한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손을 간구합니다.
이과훈 (2020-05-08 02:44:2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7)”
우리의 중심은 하나님께 향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떡을 먹을 때 손을 씻는 것 (사람의 전통)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계명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8). (본문에는 하나님의 계명이 무엇인지는 잘 나타나 있지 않지만 율법이나 형식보다 중요한 실제적인 것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 며칠 중요하지 않은 일들에 마음이 빼앗기고 감정의 기복을 경험하다 오늘 말씀을 보니 반성이 많이 됩니다. 저의 할 일을 잘해내고 정석대로 진행해 나가면 되는 것인데 다른 사람들이 정석대로 하지 않으면서도 별 탈이 없는 것에 대해 신경쓰면서 쓸데없이 고민하고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나도 저렇게 해야 하나, 아니면 정도를 벗어난 행태를 보고해야 하나 등등 고민들이 저의 일들을 진행하는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데 그것 때문에 기력을 많이 낭비했습니다. 제 안에 악한 생각들이 나와서 제 자신을 더럽힌 (16,23)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지켜주시기를 구합니다. 필요한 것에 집중하게 도와주시고, 제 일들을 잘 진행해 나갈 수 있도록 지혜를 허락해주세요. 제가 스스로를 옭아매지 않기를 원합니다. 중심에 하나님을 품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겠습니다. 함께 해주시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허락해주세요.
장은경 (2020-05-08 04:16:09)  
순간 순간 내 행위와 내가 만든 규칙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덧대어 나를 판단하고 안위하려 한 저의 어리석고 교만함을 고백합니다.
나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저의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하시는 그 말씀을
진정으로 따르기를 원합니다. 이런 저의 마음을 들으시고 새로운 마음으로 변화되어 실천하는 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인범 (2020-05-08 04:24:23)  
사람이 세운 기준으로 누군가의 삶을 좋고 나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지를 생각하기 원합니다.
기존의 가치관을 무조건 적용하는 것이 아닌
무엇이 선한지 무엇이 아름다운지 생각하고 볼 수 있게 하시고
그것을 향한 마음을 키울 수 있게 도와주세요
이강은 (2020-05-08 06:16:20)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술로만 하나님을 고백하는 위선자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사람이 만든 법을 마치 하나님이 만드신 법인듯 삼고 그것만 내세우며
헛되이 예배드리지 않게 하시고
우리를 더럽히는 마음 속의 악한 생각들을 정결케 하시옵소서
윤사랑 (2020-05-08 06:38:34)  
어린 아기가 이쁘고 귀여운것처럼 오늘 말씀이 참 이쁘고 (아가) 입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지은 (2020-05-08 11:12:51)  
(**) "하나 둘 셋 ... 열 ... 스물 ... 서른 ..." 끈기있게 헤아려보니 ... ("알다/알지 못하다")
동사형이 ()()번 정도 나옵니다. 성도님들께서도 하루 날을 잡아서 각자의 인내력과 집중
력을 시험해 보며 이사야서를 일장일절부터 찬찬히 읽으며 "알다/알지 못하다" 동사형의
수를 세어 보면 어떨까요? "가시한테 찔려야 밤 맛을 안다"는 속담처럼 코로나19로 인해
이사야서를 한번 통독하는 보람을 맛보면 어떨까요...]

이번주 이사야를 읽으면서 한글 성경으로
“알다/알지 못하다”가 몇번 나오는지 세보는것을 시도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카운트 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무지함으로” “알기 전에” “깨닫고” 같은 애매한 워딩들을
처음에 카운트 하다보니 후에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어려웠습니다.

특히 “알아듣다” 같은 워딩은 제게 많은 혼란을 주었는데요
중간중간 이러한 것들을 포함한 부분들이 있는것을 감안해
총 71번을 카운트 했습니다.
박지원 (2020-05-08 11:44:07)  
(**) "하나 둘 셋 ... 열 ... 스물 ... 서른 ..." 끈기있게 헤아려보니 ...
("알다/알지 못하다") 동사형이 ()()번 정도 나옵니다.
성도님들께서도 하루 날을 잡아서 각자의 인내력과 집중 력을 시험해 보며
이사야서를 일장일절부터 찬찬히 읽으며 "알다/알지 못하다"
동사형의 수를 세어 보면 어떨까요?
"가시한테 찔려야 밤 맛을 안다"는 속담처럼 코로나19로 인해
이사야서를 한번 통독하는 보람을 맛보면 어떨까요...]

이사야서에 나오는 알다, 알지 못하다를 한영으로 찾아보았는데,
'알다'가 때로는 NIV에서 [make known, be known, acknowledge, perceive, understand(ing)]
등의 단어들로 다양하게 해석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make know, be known, acknowledge, perceive, understand(ing) 등의 단어들이
항상 '알다'로 해석되어지 않고, 때때로 [깨닫다, 지식, 총명, 무지함, 모르고]
등이 단어들로 해석되어진 것 또한 발견했습니다.
굉장한 혼란스러움 속에서 꿋꿋하게 '알다'(동사형에 국한하지 않음)를 세어본 결과,
총 56번의 '알다'를 세었고, 또 다른 여러 가지 단어들이 해석에 따라
(저의 개인적인 주관으로) '알다'로 해석 되었을 수도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단어(깨닫다, 무지함 등)들이 이사야서에 12번 더 등장했습니다,
총 56 + (12) 번의 '알다'를 세어보았습니다.
박준혁 (2020-05-08 13:10:52)  
Even though the number might not be accurate,
I tried my best to do what Pastor Lee asked us to do.
I counted approximately 60 times of the words
to know/to not know” being
used in the whole book of Isaiah (English bible).
I wish the best of luck to the others
who are still persevering throughout this challenge!
박지원 (2020-05-08 13:19:38)  
(**)성경학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추상적인) 표현들을 사용합니다.
"The LORD is omniscient, omnipotent, and omnipresent.
The LORD is immanent and transcendent."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라는
이사야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말씀과 관련하여 (때로는 매우 추상적인)
하나님의 속성(屬性)에 대해 (구체적이고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난 체험들이 있으면 함께 나누어 보세요.]


아직 지금보다도 믿음이 훨씬 모자라던 시절에 호세아서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 저의 신앙은 그저 어렴풋이 사람들의 죄를 없애주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죽었다가 살아났다라는 지식뿐이었습니다.
여기저기 말이 안 되는 부분들이 있어보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잘 믿는다고만 하면 언젠가 보상으로
복(성공)을 보상으로 받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상식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연예인들처럼...

성경에 대한 배경지식 또한 전무하던 터라 혼자 호세아서를 읽을 때는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왜 애들 이름을 이렇게 짓는거지???"
라며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읽어내려갔었습니다.
하지만 성경공부를 하며 그 내용들이 하나하나 풀어져가면서
"아... 내가 고멜이구나...! 주님께서 이렇게 찢어지는 마음으로
내밖에 모르는 못난 나를 기다리고 계셨구나...!"
라는 깨달음이 오며 죄송함과 기쁨과 감사가 뒤범벅 되어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의 소용돌이가 나를 덥쳤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영이 기뻐한다는 것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태껏 내가 나의 주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하지만 이제는 주님께서 나의 주인이셔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받을 복이 여전히 기대가 되기는 하지만서도
이미 받은 복이 너무 벅차 내가 무언가 해드릴 순 없는가 고민하게 됐었습니다.
아직도 이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호세아는 몇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교회를 가끔씩 다니기는 했지만
주님과 크게 상관 없는 삶을 살던 나에게 구원이 임하게 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은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어 내 삶에 임재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찾아야한다는 것도, 어떻게 찾아야하는지도 몰랐던 나에게
먼저 찾아와주신 주님을 기억합니다.
이제 나도 주님께 한걸음 한걸음 걸음마를 떼고 싶습니다.
주님을 더 많이 알고 더 가까워지고 싶습니다.
저의 기도를 들으시어 저를 주님에게로 더더욱 가까이 견인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박지은 (2020-05-08 13:26:13)  
(**)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는 말씀을 가슴에
고이 품고... 아름다운 자연의 세계로 회복되는 생태계를 찾아 밖으로 나가 보면 어떨까요?”

오늘은 MCCSC 학교들의 e-learning을 공식적으로 마치는 날입니다.
그리고 저는 드디어 고등학교 생활의 마지막 숙제를 하러 문밖으로 나갔습니다.

제가 2019년 8월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관찰한 나무가 있는데
계속해서 모아왔던 자료들과 사진들을 총종합해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야했습니다.
오늘은 5월의 관찰을 마무리 하러 밖으로 나갔습니다.

핸드폰에 담겨있는 사진들을 통해
4계절동안 그 나무와 그 주변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았습니다.
사진첩을 보니 8월에는 파릇함의 절정이
10월에는 붉은 갈색으로 변한 낙엽들이
1월에는 발가벗겨진 나무의 가지들이
그리고 3월에는 하얀색 꽃들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어떻게 한 나무가 이렇게 다른 모습들을 갖출 수 있을까 …
변하는 환경을 따라
늘 준비하는 성실한 나무의 아름다움을 통해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뜨거운 여름일때나, 선선한 가을일때나, 추운 겨울일때나, 화사한 봄일때나
언제나 하나님을 일하고 계셨고
창조주의 리듬에 맞춰 나무는 응답하며 변화에 준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름다운 자연의 리듬을 유심히 보게 하시고
그 속에서 신실하신 하나님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늘 가까이 계신 하나님인데
제가 늘 지나치는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멈춰서서 그 나무를 오랫동안 보며 생각할때에
그 나무의 변화들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것처럼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기다립니다.
나의 마음과 모든 생각과 나의 삶을 지켜보시고 보살피시는 창조주 하나님,
나의 눈을 열어주시어 앞으로의 인생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더욱 알게 도와주세요!
홍은기 (2020-05-08 13:32:35)  
[목요일] 마가복음 7장 1-23절 성경 공부 내용입니다.

1. 이들은 어디에서 왔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시비 거는 것은 거의 습관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왔다고 합니다.
앞에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새벽, 해 뜨기 전에 갈릴리 호수 위를 걸으셔서,
제자들이 힘겹게 노를 젓는 배에 타시고는 게네사렛까지 가셨습니다.
게네사렛은 갈릴리 호수 북서쪽에 위치한 마을입니다.
예루살렘에서 게네사렛까지는 찾아보니 150km나 됩니다.
그 거리를 걸어서 가려면, 최소한 4-5일 걸립니다.
바리새인들과 몇몇 서기관들은 그 먼 거리를 걸어서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이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북쪽 갈릴리에서 사역하고 계셨을지라도,
그 소문이 이스라엘 남쪽에 위치한 유대 지방은 물론 수도 예루살렘에까지 퍼졌다는 것입니다.

2. 그 먼 거리를 와서…. 시빗거리를 찾다

예루살렘에서 파견된 사람들은 예수님의 일행을 면밀하게 관찰한 후에,
시빗거리를 찾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몇몇이 부정한 손, 씻지 않은 손으로 빵을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에 대해 시비를 거는데, 씻지 않은 손으로 빵을 집어 먹는 것은
‘비위생적이다’가 아니라,
‘비전통적이다’ 또는 ‘비신앙적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홍은기 (2020-05-08 13:38:54)  
3. 왜 3-4절은 ‘괄호’로 묶여 있나요?

마가복음을 읽는 대상이 누구인지 생각해보자고 했습니다.
마가복음이 기록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로마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또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알리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약의 언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히브리어나 아람어는 다시 번역하며,
익숙하지 않은 유대의 풍속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손을 씻는 전통’을 로마 사람들 또는 이방인들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3-4절에 따로 설명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나눴습니다.
그래서 괄호를 빼고 읽어도 2절은 5절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4. 손씻기가 언제부터 전통이 되었나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그들의 스승이신 예수님에 대한 비난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율법 지킴이들’이었을 것입니다.

본래 ‘손을 씻는 규례’는 제사장들이 제사를 집례할 때에 적용되었습니다.
출애굽기 30장을 찾아보았습니다. 제사장들이 손씻기를 하는 것을 보고 후대에서
“우리가 제사장은 아니지만 그들이 손씻음으로 정결해지듯
우리도 늘 일상에서 정결하자”라는 명목으로 세워진 전통이 아닌지... 그러나
그것이 일상에서 율법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 아닌지... 나눠보았습니다.
(이건 구약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지 않은 저희들의 상상입니다.)
홍은기 (2020-05-08 13:45:43)  
5. 복면가왕

한국에 인기 프로그램 중에 복면(가면)을 쓰고 나와서 노래를 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 노래가 끝나면 그 가면 쓴 사람이 누구인지 맞추는 노래입니다.
신기하게 그 가면은 노래하는 사람이 누구인지전혀 알아차릴 수 없게만들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도 없습니다.
가면을 쓴 사람들은 “여전사 캣츠걸, 양철 로봇, 강남제비, 집시여인” 등등의 모습과 이름으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합니다.

"외식하는 자" 에 대한 예수님의 경고를 듣는 순간
저도 기독교인이라는 가면을 쓰고 삶의 노래를 하는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저도 제 가면을 벗어버릴 수 있을지…아이들이랑 나누면서 느낀 것은
나이가 먹을 수록 이 가면의 무게가 더 무거운데 이 무거운 가면을 벗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주장에 어이가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29:13의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6. 이사야 29장

유다백성이 경건의 모양을 갖추는 일에만 관심을 둘 뿐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난 29장입니다.
가슴이 뜨끔 하는 말씀입니다. 꼭 제 속마음을 들킨 것 같습니다.
13절 후반부에 있는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는
말씀의 의미를 나눠보았습니다.
‘그들이 나를 경외한다는 말은, 다만 사람에게서 배우고 들은 관습대로 나를 두려워 할 뿐이다 “
생각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공식적으로 버린 적은 전 역사에 한 번도 없습니다.
그들은 포로로 잡혀갔을 때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제사를 드렸고, 절기를 지켰습니다.
그러나 제사를 드림이 자신의 마음과 삶을 드림의 자리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제사드림 자체가 목적이 되어 있었고,
하나님만을 섬김이 아니라 다른 우상을 섬김과 함께 이루어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이중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외식하는 자여” 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면을 쓴 제 모습처럼... 외식하는 저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정은선 (2020-05-08 13:50:12)  
중심을 보시는 주님, 다른 어떤 것 보다
하나님을 중심에 모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른 시선을 신경쓰느라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않기를 원합니다.
선한 것이 하나 없는 마음 가운데 찾아와 주시고
주님의 사랑을 알게 하시고 전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홍은기 (2020-05-08 13:55:51)  
7. 부패한 마음과 상한 마음은 어떻게 다른가요?
찬양 중에 또는 기도 중에 "하나님 앞에 상한 마음으로 나아갑니다 "는 표현을 쓰는데
부패한 마음과는 다른 것인가요?
준혁이에게 상한 마음과 부패한 마음에 대한 이해가 어려웠나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말한,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 17:9)”라는
말씀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정결하게 해야 할 것은 손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막 7:18-1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음식이 사람을 정결하지 못하게, 즉 부정하게 할 수 없는 것은,
사람이 음식을 먹었을 때 그것이 마음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위)로 가서 다시 배설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선언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이 나옵니다. 그것에 마침표를 찍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사도 베드로가 고넬료 집을 방문했을 때,
사도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음식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자유할 수 있었습니다.


8. 너희는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구나…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8절)
주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그토록 중시하던 ‘장로들의 전통’을
‘사람의 계명’으로 나아가 ‘사람의 전통’으로 바꾸어 표현하셨습니다.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붙들고 있는 실체를 정확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중요하게 붙들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람’의 말과 전통이었습니다.
누구보다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며 열심히 준행해온 그들이었지만,
그 굳어진 마음으로 인해 그들은 제자들뿐만 아니라
온 유대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깨닫지 못하는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참된 정결의 의미를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멈추어 서서 제 가면을 벗기위해 몸부림쳐 봅니다.
하나님 아버지
나의 중심은 진심으로 주님께 가까이 있습니까?
아니면 “이 외식하는 자여" 라는 주님의 탄식 가운데 있습니까?
나는 참으로 주님의 장막에서의 한 날을 사모합니까?
아니면 악인의 궁궐에서의 천 날을 바랍니까?
내가 따르는 것은 사람의 계명이요 교훈입니까?
참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입니까?

심히 부패한 저희 마음의 가면을 벗습니다.
오늘도 저희 가정 가운데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상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하나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멸시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홍은기 (2020-05-08 14:02:39)  
**이사야서 전체에서 "알다 /알지 못하다"라는 동사형(動詞)이 몇 번 나올까?
[세어 볼려면 무슨 특별한 동기부여(動機附與)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연히 "노느니 장독 깬다" (또는) "노느니 염불한다"는 우리말 속담들이 생각납니다.
그냥 우두커니 드러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심지어 말썽을 피우더라도)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입니다.

아주 오랜만에 독일어 성경을 꺼내들었습니다.
가끔 한 구절씩 찾아만 보았었지 이렇게 이사야 전체를 읽어 본 것은 처음입니다.
제가 독일어로 찾아 보았을때
한글이나 영어보다 알다/알지 못하다 단어의 숫자보다 현격히 적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이사야 1장 3절에
황소도 자기 주인을 [알고] 나귀도 자기 주인의 구유를 [아는데]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한글 성경은 3번이나 카운트가 되지만
독일어 성경은 "이스라엘은 알지 못한다 "는 "이해하지 못한다" 라는 단어로 썼습니다.
그래서 독일어 성경은 2번입니다.

전체적으로
제가 독일어 성경으로 카운트 해 본 것은 39개 였습니다.
오랜만에 노느니 장독을 깨보았습니다.
이선미 (2020-05-08 19:15:33)  
사랑하는 여인을 향한 솔로몬의 고백을 우리를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
으로 듣습니다.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라 하시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원합니다. 육신과 더불어 움추려 있던 영혼의 겨울을 떨쳐
버리고 생명이 약동하는 봄으로 옮겨서기 원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인해
마음 속에 변화를 느끼게 하옵소서.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는 봄이
마음 한 가운데 오게 하옵소서.
홍은기 (2020-05-08 20:14:56)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과 연합된 사람들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사랑이신 하나님을 계속 알아가려 노력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땅에서의 우리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 없는 때가 곧 옵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오늘 더 내 가족을, 이웃을,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안에서 진정한 연합을 경험하길 소망합니다.
백은지 (2020-05-08 23:24:06)  
푸른 열매의 싱그러움이, 포도나무의 꽃 향기가, ‘구구구’ 비둘기의 지저귀는 소리가나는 동산에 주와 함께 걷는 모습을 마음 속 그려 봅니다. 삶의 어떠한 상황이라도 함께 걷자 하시는 주님 손 잡고 일어나 내 영혼이 주께서 주신 은혜의 선물을 기뻐 바라보며 살아 갈 수 있기를 소망 합니다.
윤소영 (2020-05-09 00:18:04)  
하나님이 부으시는 따사로운 희망 가득한 소리가 나의 마음에 울려 퍼지기를 기도합니다.
영의 눈이 열려 따사로운 빛과 꽃의 향기를 맡는 자 되기를 원합니다.
성령님 인도해 주세요. 아멘
박지은 (2020-05-09 00:53:07)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걸어가는 삶이
이땅에서의 기준의 "꽃길"은 아닐 수 있겠지만
영적으로 풍요로운 "꽃길"임을 기억하며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들과 함께 걸어갈 수 있기 소망합니다.
박지원 (2020-05-09 01:36:16)  
화자에게로 다가오는 누군가를 보는 화자의 시선을 함께 느껴봅니다.
참으로 사랑 충만한 감정으로, 꿀이 떨어지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음이 느껴집니다.
화자는 솔로몬이지만 왠지 하나님의 마음같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찾아 동산을 뛰어 다가오는 하나님의 자식들을 바라보며
그 모습을 흡족히 여겨 사슴에 비유하는 듯이 느껴집니다.

언제는 내가 하는 말을 지키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이다 말씀하시는 모습이
무섭고 두려운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오늘은 하나님을 찾는 이를 한없이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시는 모습이
참으로 다정다감하고 자애로운 모습으로 느껴집니다.

비록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 받은만큼 드릴 수 있는 것이 없지만
나의 하루하루의 삶이 아버지께 기쁨을 드리는 삶이기 원합니다.
매일 넘어지지만 매일 일어나며 계속해서 하나님께 뛰어가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장은경 (2020-05-09 05:22:51)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다정하게 속삭이는구나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여 어서 일어나 함께 가자

얼마전 '미스터선샤인'이라는 드라마를 봤습니다. 한 여인을 두고 세 남자가 사랑을 하는데 방법도다르고, 목적도 달랐던 그들이 그 사랑과 과정들을 통해 변화되고 각자의 선택에 두려움 없이 나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지만..그것을 보며 하나님의 사랑은 늘 외사랑이셨겠다..부르면 대답하고, 서로가 교제하며 기쁨도,슬픔도, 아픔도 나누며 온전히 하나됨이 있어야 그 뜻을 이해하며 순종하며 선택하여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생각해 보았습니다.
저의 마음의 기도가 주님께 전해지고, 주님의 말씀이 나의 마음에 전해지며 조금씩 주님을 더 알고 내 마음이 변화되며 보여주시는 귀한 것을 보며 뜻하신 길을 선택하며 봄,여름, 가을,겨울..또 봄..이렇게 주시는 기쁨안에 충실히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이인범 (2020-05-09 05:27:35)  
사랑의 눈길과 목소리로 부르고 계신 하나님을 떠올립니다.
그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가집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지를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
이강은 (2020-05-09 06:08:21)  
사랑으로 가득한 아가서의 노랫말을 통해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느껴봅니다.

사랑하는 존재가 '함께 가자' 하고 말할 때에
우리가 기쁜 마음으로 따르는 것과 같이
한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과도 영원히 동행하길 원합니다.
주님과 교통하며 그 온전한 사랑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세요.
박지원 (2020-05-09 12:04:07)  
(**) [오래전에 (BC 722) 이미 멸망하여 뿔뿔히 흩어지고 역사에서는
"사라진 열개 지파 (The “Ten Lost Tribes)" 라고 불리우는
(북)이스라엘 왕국의 백성이 유다 (왕국의) 백성과 함께 본토로 돌아온다는
이 예언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예레미야 50)
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오며
유다 자손도 함께 돌아오되 그들이 울면서 그 길을 가며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할 것이며
5 그들이 그 얼굴을 시온으로 향하여 그 길을 물으며 말하기를
너희는 오라 잊을 수 없는 영원한 언약으로 연합하라 하리라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에 앗수르에게 멸망했고,
남유다는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에게 멸망했습니다.
이렇듯 다른 날에 다른 나라에 의해 멸망당한 두 나라가
"그 날 그 때에", 한 때에 회복된다는 것이 의아합니다.
"그 날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오며 유다 자손도 함께 돌아오되"
라는 부분을 골똘히 생각해본 결과 두가지 다른 해석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첫번째 해석은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을 문자 그대로
각 나라의 자손들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다고 가정을 한다면
그들도 언젠가 이스라엘로 돌아온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해석에 대해 확신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그 날 그 때에" 유다 자손들이 유다로 돌아갈 때에
그들과 같은 시점에 북이스라엘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또, 한편으로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그 날 그 때에"에 대한 해석입니다.
이 표현이 얼핏 보기에 어느 날의 정확한 어느 시점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 바벨론에서 돌아온 남유다 백성들은 몇십년에 걸쳐 돌아왔기 때문에
이 때는 어느 한 시점이 아니라 꽤 긴 기간이었습니다.

두번째 해석은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조금 더 광범위한
하나님의 백성을 뜻한다는 해석입니다.
아직 신약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이때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만이 하나님의 백성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바벨론과, 이스라엘과 유대의 자손을 두고 말씀하시며
그 속에는 더 큰 범위로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세력에 대한 심판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회복을 내포하신 것은 아닌지...
하지만 이 해석은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근거가 없기에...
그저 두루뭉실한 해석이라.. 마찬가지로 석연치 않은 해석이 됩니다.

참으로 어려운 질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봐도 저렇게 생각해봐도 어딘가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알아가는 것에 의의를 두며 머리를 싸매어보았습니다.
박지은 (2020-05-09 12:06:27)  
목사님께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올려주셨던 말씀들을 다시 읽어보며
하나님께서 저에게 어떠한 말씀을 하시고 싶어하시는지 돌아보았습니다.

역대하 7장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구체적인 경고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내게 등을 돌리고 내가 너희에게 준 율례와 법도를
버리고 떠나가서 다른 이방의 신들을 섬기고 경배하면
내가 너희에게 준 이 땅에서 너희를 뿌리째 뽑아내고
내 이름을 위하여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도 아낌없이 버릴 것이라” (역대하 7장 19-20절)

열왕기하 19장 말씀에서는 환란의 긴박한 와중에
하나님의 응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이러하니라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간구하는 기도를 내가 들었노라” (열왕기하 19장 20절)

백성들이 해를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미리 경고하시고, 또 환란 가운데에서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이니 더욱 감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기에
우리의 위선적인 경배와 예배를 받아주실 수가 없음을 깨닫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선지자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을 내게서 멀도다”
(마가복음 7장 6절)

아가의 말씀을 보며 하나님께서 우리와 맺고 싶으신 진정한 관계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우리와 발 맞추어 걷고 싶으신 하나님의 자비로운 사랑에 대해 묵상하며
우리도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과 멀어지지 않기위해 경고도 하시고,
환란가운데 함께해주시고, 또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을때
훈계해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하며
잘못된 마음과 생각들을 돌이키고
주님을 마음으로 사랑하고 섬겨
하나님과 아름다운 관계를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정은선 (2020-05-09 12:32:23)  
먼저 함께 가자고 손 내밀어 주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합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
또 함께 가기 위해 손만 내밀면 된다는 것이 참 큰 위안이 됩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주님과 동행하는 것 만큼 큰 복이 있을까 싶습니다.
주님이 허락하신 평안을 누리며 함께 걸어가길 소망합니다.
이선미 (2020-05-09 19:08:27)  
습관의 쳇바퀴가 멈춰진 이 때...생각하는 시간 갖기 원합니다.
전 속력의 경주가 중단된 지금...사방을 둘러보기 원합니다.
가만히 있어...우리를 애타게 찾으시는 아버지의 시선을
느끼게 하옵소서. 귀를 열어...목 놓아 부르시는 아버지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박지원 (2020-05-10 01:00:41)  
이번주 말씀을 통해 솔로몬에게 엄중히 경고하시는 하나님을 보았고,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어 남유다를 괴롭히던 산헤립을 치시는 하나님을 보았고,
외식하는 자들아 라며 꾸짖으시는 예수님의 모습도 보았으며,
사랑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시선도 생각해보았습니다.

마치 자식을 양육하시는 듯한 하나님의 모습처럼 느껴졌습니다.
한낱 먼지에 불과한 나를... 가장 소중한 자식처럼 불러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그 귀하고 소중한 은혜를 떠올리며 어떻게 하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 뜻에 더 가까이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며
목사님을 통해 전하실 말씀을 기대합니다.

주일설교 (2020/05/17): 여호와의 오늘 (신명기 30) (여호수아 24) (누가복음 19) (히브리서 3) (시편 95) [115]
주일설교 (2020/05/03): 여호와의 언약 (이사야 55) (예레미야 32) (에스겔 37) (마태복음 11) (잠언 22)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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