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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태(2020-05-11 05:12:44, Hit : 484, Vote : 3
 주일설교 (2020/05/17): 여호와의 오늘 (신명기 30) (여호수아 24) (누가복음 19) (히브리서 3) (시편 95)

주일예배: 2020/05/17
설교주제: 여호와의 오늘


(월요일 묵상) (신명기 30)
========================
11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이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12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13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 속에 있으며 네 마음 속에 있은즉
    네가 그 말씀을 언제든지 행할 수 있느니라

15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 그리고 사망과 재앙을 네 앞에 선택하게 두었나니
16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계명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라
17  그러나 네가 만일 여호와의 말씀에서 마음이 떠나서 다른 신들을 섬기면
18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하고 말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하리라
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 그리고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부디 생명(과 복)을 택하라
20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며 온전히 그를 의지하라
    그리하면 주께서 네 조상들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서 네가 오래 살리라


(화요일 묵상) (여호수아 24)
==========================
1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으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부르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선지라
2   이에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말하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 (3-13)
14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라

16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오리이다 (17-23)
24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의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 (잘 듣고 순종) 하리이다 하는지라
25  그 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였더라
26  여호수아가 이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가 거기 여호와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세우고
27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음이니라 그런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이 돌이 증거가 되리라 하니라
28  여호수아가 백성을 돌려보내니 그들이 각기 기업으로 받은 땅으로 돌아갔더라


(수요일 묵상) (누가복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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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께서 여리고 성읍으로 들어가 길을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어 예수를 볼 수가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길가에 있는 뽕나무 위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삭개오가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를 집으로 영접하니라
7   사람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일어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도다
    이제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하시고)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하시니라)


(목요일 묵상) (히브리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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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으진) 모든 집마다 그 집을 지은 사람이 있듯이
    온 세상 만물을 지으신 이가 계시니 이는 하나님이시라 (5-6)
7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시는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든
8   광야에서 (너희 조상들이 하나님을)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라 (9-11)

12  형제(자매)들아 너희들 중에 혹 (믿지 아니하는) 완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멀리 떠나가는 일이 없도록 항상 조심하라
13  성경에서 [오늘] 이라고 한 말은 (지금)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니라
    그러니 너희는 날마다 서로 권면하여 너희들 중에 어느 누구도
    죄의 유혹에 빠져 마음이 완악하게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14  우리가 처음 (하나님을 믿고) 믿음 생활을 시작했을 때에 가졌던
    믿음의 확신을 끝까지 지키면 우리는 (그리스도가 이루시는)
    구원에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하는 자가 되리라
15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든 (예전에 광야에서
    반역하던 자들처럼 그렇게)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금요일 묵상) (시편 95)(마태복음 11)
===================================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2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3-5)
6   오라 우리가 모두 엎드려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7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들이라 너희가 [오늘] 여호와의 음성을 들을지어다 (8-11)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참된 안식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이상태 (2020-05-11 05:15:28)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복 있는 사람의 삶은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 같이
때를 따라 귀한 열매를 맺으리로다
윤사랑 (2020-05-11 08:42:11)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복을 받고 오래살수있는 복을 주세요
홍은기 (2020-05-11 11:35:12)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했던 이 말씀들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있는 오늘 저에게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그 말씀은 추상적이고 실체 없는 것이 아니고,
지킬 수 없는 우리의 능력을 완전히 초월한 것도 아님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14절 말씀처럼 이미 우리 가까이에 있어 우리가 능히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
이 말씀이 우리를 강력하게 붙들고 가시는 것을 경험하며 살가가길 소망합니다.
이선미 (2020-05-11 18:20:01)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우리 앞에 두신 하나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십자가를
마음에 새겨 생명을 택하는 자 되기 원합니다. 말씀을 청종해 복에
이르기 원합니다. 사망과 저주가 아닌 '생명'과 '복'을 택하며 '깨어있는
영혼'으로 하루 하루를 살게 하옵소서.
임성희 (2020-05-11 20:39:15)  
내게 복을 주시고 지켜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멀리 계시지 않고 늘 곁에 계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의 생각이 주를 향하고 나의 행동이 주께서 인도하시는 길만 따라가기를 기도합니다.
박지원 (2020-05-11 21:23:43)  
많은 생각이 드는 본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명령은 항상 어렵다고 생각해왔었습니다.
저의 본성을 거슬러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이것이 어렵지 않고 멀지 않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또한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 속에 있으며
네 마음 속에 있은즉 네가 그 말씀을 언제든지 행할 수 있느니라" 라고 말합니다.
아마 구약에서는 이것이 양심, 혹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신약 이후의 시대를 생각해봅니다.
인디안들은 양심이 삼각형이어서, 양심에 찔리는 잃을 할 때마다
그 모서리가 닳는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종국에는 양심이 찔리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양심삼각형론'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할 때
좋지 않은 일을 해도 양심의 거리낌이 적어지지 않나...

이렇게 가정을 하면, 주님과 가까이 있을수록 하나님의 명령은 지키기 쉬워집니다.
주님과 멀리 있을수록 그 명령도 멀어져서 들을 수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점점 불가능해집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구약시대보다 더 '그 말씀이 우리에게 매우 가까워서 우리 입 속에 있으며
우리 마음 속에 있은즉 우리가 그 말씀을 언제든지 행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주님, 항상 주님과 가까이 있음으로 주님 말씀대로 행하기 원합니다.
맘 내키는 어느 날은 확 가까워졌다가 내키지 않는 날은 확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꾸준히 더욱 가까워지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 원합니다.
저의 힘으로는 어렵지만, 임마누엘의 주님과 함께 하여
늘 말씀대로 사는 삶, 그 복을 택하는 삶을 살 수 있기 원합니다.
장동은 (2020-05-11 22:07:00)  
생명과 복을 누리며 살지, 사망과 저주의 삶을 살지는 나의 선택에 달려있음을 깨닫습니다. .나와 내 가족이 주님의 법도를 따라 말씀대로 살기 원하오니 삶의 순간순간마다 주님의 길을 선택하며 나아가도록 영적 분별력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진문균 (2020-05-11 23:34:08)  
온 맘 다해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백은지 (2020-05-11 23:51:06)  
주님 향한 첫 사랑이 마음 속 회복 될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주께서 오르셨던 그 길을 기억하며..나 또한 생명의 길을 택하는 주님의 복된자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날마다 주께서 주신 말씀에 귀 기울이며 주시는 말씀에 순종 할 수 있도록 주님 인도해주세요.
이광태 (2020-05-12 00:06:30)  
평생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말씀에 더욱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더욱 주님을 인정하고 의지합니다. 아멘.
최정진 (2020-05-12 00:12:25)  
내적인 충만함, 영적인 충만함으로 준비되게 하시고, 먼 곳에 있지 않음을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아멘
윤소영 (2020-05-12 00:27:16)  
나의 의지를 내려놓고 나의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며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습니다.
성령님 사랑 없는 나의 마음에 성령님 도와주셔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셔 보내주신
예수님 꼭 붙자고 오늘 하루도 살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이과훈 (2020-05-12 01:28:51)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 속에 있으며, 네 마음 속에 있은즉”(14)
하나님의 말씀은 추상적이지도 않고 멀리 있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가까운 말씀이 “생명과 복, 그리고 사망과 재앙 (15)”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면 우리가 복을 받고 번성하지만 (16), 그러지 않은 경우 반드시 멸망합니다 (18).

말씀은 아주 가까워서 항상 입으로 되뇌고 마음에 새길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의 길흉화복을 결정할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따라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생명과 복을 택하기를 원합니다 (19). 이것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과 은혜를 받는 통로 (20) 임을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제 삶의 우선순위가 바로 세워져서 말씀의 맛 누리고 사는 제가 될 수 있게 도와주세요. 함께 하며 저를 붙들어 주실 성령님 기대합니다.
박지은 (2020-05-12 01:34:25)  
참 신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과
인간들이 만들어낸 다른 "신"들의 차이점이 오늘 말씀을 통해 명확히 들어나는 듯 합니다.

물론 "진짜"와 "가짜"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겠습니다만,
역사속 인간들이 다른 신들을 경배하는 큰 동력은
삶의 여러 방면의 것들이 잘되기 위함이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농사, 자식, 또는 번영을 관장한다고 믿는 그 "신"들을 노하지 않게 말입니다.
이 신은 이것을 관장하고 있으니 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저 신은 저것을 관장하고 있으니 저것을 위해 기도하고...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그 가짜 신들은 인간에게 요구하는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참 신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계명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고 명하십니다.
생명과 사망, 모든것이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
우리 앞에 벌과 멸망을 보여주시지만
결국에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것을 선택하고
오직 그분만을 기뻐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심이 심히 놀랍습니다.
로봇처럼 우리를 만들지 아니하시고,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복종을 요구하시지 않으시며
우리가 찾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제대로 알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신명기 말씀을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제 삶속에서도 "이것을 주세요, 저것을 주세요" 하며
자판기앞에 있듯이 내가 원하는것을 요구하는 마음만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버지의 말씀을 순종하고,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 수 있기 원합니다!
장은경 (2020-05-12 04:21:58)  
매일 말씀을 듣고도 뒤돌아 서면 잊어버리고 파도의 거품같이 사라져 버리는 것만 같아 속상할때가 많았습니다.오늘 말씀을 보며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신 '말씀'이 매일 나의 시간속에 있어 듣고 묵상하며 되새기고 또 되새기며 돌이킴이..매일 같지만 늘 새로운 말씀안에 주님을 만남이 그래서 감사하고 귀한 시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매일 내 앞에 놓여진 생명과 복,사망과 화를 생각하며 내 머리가 아닌 마음에 부어주신 은혜와 사랑으로 행하며 올바른 길로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이강은 (2020-05-12 04:24:45)  
하나님께서는 순종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고 망할 것이라 말씀하시면서도
그와 동시에 우리가 생명을 택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강력히 원하십니다.

주님의 명령에 실천하는 길은 어려운 것도 아니고
우리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고 하시지만
실제 제 삶속에서는 그 명령을 나에게로부터 멀리 두고,
실천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입과 마음에 두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이인범 (2020-05-12 08:27:02)  
신명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저에게 주어졌고 제 마음과 입속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을 읽으며 한가지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앞뒤 문맥을 살펴보니 계명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여러 영어버전에는 "not too difficult for you or beyond your reach"라고 되어있어
계명을 지키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 같지만
KJV나 NKJV에는 "not too mysterious for you, nor is it far off"라고 되어있습니다.

어떤 해석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님의 계명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알려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에도 성경을 통해, 또한 양심을 통해 항상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계명에 귀를 좀 더 열어 듣고
언제든 행하기를 소망합니다.
윤사랑 (2020-05-12 09:07:45)  
무슨일이 있어도 그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자가 되지 않겠습니다.
박지원 (2020-05-12 11:21:47)  
[역대하의 기록을 열왕기상에 실려있는 솔로몬 왕에 관한 기록과 서로 비교해 보세요.]

[역대하 7장]
13]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열왕기 9:2-9 의 내용과과 역대하 7:12-22 의 내용이 거의 일치하지만,
역대하 7:13-14 의 내용은 열왕기에는 나와있지 않습니다.

열왕기는 역대기에 비해 내용이 조금 더 객관적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시점에 쓰여졌기에, 이스라엘의 왕들이 지은 죄들이
역대기보다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반면에 역대기의 내용은 남유다에 더욱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또한, 역대기가 적힌 시기는 열왕기보다 더 이후로 추정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의 성경의 주석에는 에스라가 역대상을 서술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에스라는 포로 귀환 이후 이스라엘 재건에 힘쓴 사람입니다.

위의 배경지식을 가지고 별(*)표 안의 내용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이 내용은 재앙이 닥쳤을 때 돌이켜서 회복하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재건 때, 백성들에게 돌이킬 힘을, 재건할 힘을 줄 수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고침 받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 내용이 들어가 있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을 뛰어넘어, 저에게도 많은 위안이 되는 내용입니다.
이 세상에 속해 살아가다 주님과 멀어질 때가 많습니다.
결국 이리 넘어지고 저리 다치며 상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을 때,
'언제든 포기하지 말고 돌이켜 나에게 와서 고침을 받아라'
라고 말씀 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매번 염치없이 찾아오는 나를 내치지 않으시는 주님을 생각하며
항상 주님 가까이 거하기 원합니다.
박지원 (2020-05-12 12:24:35)  
신명기 30장 11절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이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Now what I am commanding you today is not too difficult for you or beyond your reach."

신명기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명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르침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하나님의 명령을 듣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때론 우리의 본성을 거슬러야하고, 때론 편한 길을 돌아가야하기 때문입니다.
"왜 신명기에서는 이 일을 어렵지 않다고 표현하고 있는가?"를 질문해보았습니다.

문득 마태복음 11장 30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For my yoke is easy and my burden is light."

멍에...
멍에는 혼자 지는 것이 아니라 두 소가 함께 짊어지도록 만들어져있습니다.
멍에를 쓰지 않으셔도 되는 주님께서 스스로 낮아지시며 우리와 함께 멍에를 지어주십니다.
아... 이제 '나의 멍에는 쉽고 가볍다'는 것이 납득이 됩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나의 멍에를 지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게 되었고 저 '멀리 있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구약시대인 신명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을 이끌어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의 멍에를 지어주심으로 우리는 더더욱 가까워졌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묵상하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이강은 (2020-05-12 12:27:06)  
주일말씀 중 목사님께서 “복”과 “저주”에 관하여 말씀하신 부분을 살펴보면서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다윗과 언약을 맺었을 때와는 다르게
솔로몬에게는 조건 아래 말씀 하신 이유가 무엇일 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1. 아브라함과 다윗이라는 두 인물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새로운 민족이나 나라를 세우시는 데 쓰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직접 ‘너를 통해 민족을 세우시겠다’며 약속을 해주십니다.
이 말씀은 이전의 어떤 행동에 대해서 조건을 내세워 말씀하실 것이 없는 ‘첫 말씀’ 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향한 언약은 무조건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다윗에게 나타나셨을 때 역시, 너를 왕으로 세우고 이스라엘을 영원토록 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
특히 다윗에게는 미래에 다가올 메시아의 통치에 대한 말씀을 하셨고,
이는 무조건적으로 이뤄져야만 하는 약속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주신 언약에는 다른 조건이 붙기 어려웠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달리,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사기 시대를 거치면서 이방신을 섬기는 등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백성들의 그런 행동을 보시고도 하나님이 그들에게 무조건적인 복을 약속하시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다윗에게 주신 언약과 솔로몬에게 주신 언약이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강은 (2020-05-12 12:28:12)  
2. 우리의 행동에 따라 “복”도 받을 수 있고 “저주”를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을 보며,
몇 년전에 크게 흥행했던 <신과 함께>라는 한국 영화 한 편이 떠올랐습니다.

영화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여러 단계의 지옥을 돌며, 그 사람의 이생에서의 행동을 근거로 재판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만약 유죄 판결을 받으면 그 죄목과 관련한 벌을 받게 됩니다.
반면 선행을 많이 해온 사람은 모든 단계의 지옥 재판을 다 통과하고 다시 환생하게 되는데,
영화의 세계관 속에서의 “환생”은 마치 우리가 보는 말씀에서의 “복”과 같은
가장 고귀하고 행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말하는 ‘악한 일을 하면 벌을 받고 선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라는 메세지는
마치 수천 년 전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주셨던 말씀을 많이 닮아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진리는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남아있지만,
현재 세상에서는 이 말씀을 우리의 입맛에 맞게 ‘착하게 살자’ 정도로
각색하여 적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히 도덕적인 삶을 좇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하나님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홍은기 (2020-05-12 12:42:39)  
[월요일 ] 신명기 30장 11-20절 성경공부 내용입니다.

1.출애굽부터 여기까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하신지
출애굽 하는 과정부터 광야의 길을 걷는 내내 하나님은 잘 보여주셨습니다.
때론 기적적인 방법들을 통해 또 때론 직접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사랑과 보호하심을 새겨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시내 산으로 인도하여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기 원하고,
또 그런 관계 속에 살아가는 그들은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야 하는지도
정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눈만 뜨면 볼 수 있는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통한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 속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은 일시적인 광야의 불편함을 불평으로 일삼았습니다.
그리고 불편할 때마다 그들의 목적지인 가나안을 믿음과 소망으로 상기시켜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억압에 놓여 있던 옛 삶, 애굽에서의 삶을 회상하며 돌아가겠다고 습관처럼 말하곤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을 때론 강한 매로 훈련시키시며,
가나안을 목전에 둔 모압평지까지 이르게 하셨습니다.
이 곳에서 모세는 지난 광야에서의 삶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고 보호해 오셨는지
다시 한번 백성들에게 상기시키고,
그래서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마땅한 삶인지를 다시 각인할 수 있도록
설교로 교훈을 하는데 오늘 이 본문은 그 설교의 마지막 부분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2.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주신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킬 수 있는 능력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 아니고,
그 백성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실생활과 동떨어진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실체 없는 그런 것도 아니고,
특별한 능력과 노력으로만 얻어지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그런 것도 아니라고
모세는 설명합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아이들과 함께 성경을 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매우 가깝게 느껴지고 입에 말씀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말씀을 이행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많다고 했습니다.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도록 내가 도우리라 붙들리라 " 라는 말씀이면 좋았을텐데
이를 행해야 하는 것에 우리의 "의지"가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나눴습니다.
홍은기 (2020-05-12 12:59:49)  
3."흥해라 "

제가 어린 시절에 할머니께서 코를 닦아주시면 “흥 해라” “ 흥 해라” 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왜 “흥”이라고 해야하는지 여쭤본 적이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살던 시절에 너무 가난하고 힘들었기에 "흥 하라"는 말을 많이 하면
인생이 복받고 흥하게 되길 바라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재치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처럼 모든 일에 복 받기 원하는 심리가 묻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할머니께서도 권사님이셨고 복을 비는 기복 신앙에 머물러 계신 분은 아니셨지만
곤하고 힘든 삶 속에서 누구에게나 복받길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손녀가 코풀때도 흥함을 부르는 모습시던 모습이 오늘 본문을 보면서 떠올랐습니다.

3. 말씀은 먼 곳에?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은 어려운 것도, 멀리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너무 멀리있어 보이기도 하고 어렵기도 합니다.
아이들과 성경공부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저희가 참 말씀을 모르고 어려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소망을 가진다면....
많이 배우지 않으셨지만 말씀을 늘 가슴에 두고 살아가신 할머니가 떠오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가난한 심령을 소유한 사람은 하늘의 비밀을 누리며 살아가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귀 기울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으로 응답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연스러움입니다.
저희도 순종이 자연스러운 그 경지에 다다르길 소망합니다.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 말씀을 가슴에 두고 살아가겠습니다.
홍은기 (2020-05-12 13:56:09)  
남은 생을 사는 동안 하나님의 큰 은혜의 구원을 때마다 회고하며
한 순간도 스스로 자신을 미화시키거나 높이는 자 되지 않겠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주의 말씀을 듣고 믿고 따르는 자 되길 원합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이 말씀의 무게를 깊이 느끼며
저 또한 용기내어 선포합니다. "저와 저희 가정은 여호와를 섬기겠습니다."
이선미 (2020-05-12 18:32:26)  
눈 앞의 이득을 따라 이쪽 저쪽을 옮겨 다니지 않고 오직 여호와 편에
서기 원합니다. 마지못해서 등 떠밀려서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
자발적으로 여호와를 섬기기 원합니다. 지금까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되짚어보며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택하게 하옵소서.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게 하옵소서.
임성희 (2020-05-12 19:32:00)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라"
내 마음에 다른 어떤 것도 우선이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김나영 (2020-05-12 21:51:04)  
어느 순간에서도 하나님을 택하는 자녀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흔들리고 두려운 마음가운데 주님의 말씀을 찾고 다시 새기는 자녀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박지원 (2020-05-12 23:38:32)  
여호수아 23장에는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었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그리고 온 이스라엘의 장로, 수령, 재판장과 관리들을 불러다가 당부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어지는 24장에서도 여호수아는 세겜에서 모든 지파를 모으고
23장에서와 같이 장로, 수령, 재판장과 관리들을 부르고 당부합니다.
마치 유언을 남기듯, 이 땅에서의 마지막을 준비하며..
남아있을 사람들에게 꼭 해야할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이야기들을 하는 듯 합니다.
내가 남길 마지막 말이라면 정말 신중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결정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남긴 가장 마지막 말은 아니었지만) 이때 여호수아는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라고 말합니다.

여호수아가 평생 가장 소중하고 중요하게 여겼던것,
이스라엘에 남기고 싶었던 것, 후대에 전하고 싶었던 것은
다른 신들은 치워버리고 여호와만을 섬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주님을 따르기로 택합니다.
분명 또 하나님보다 이 세상의 것들을 가까이 하며 여러 죄를 지으며 넘어지겠지만
그때마다 다시 한번 우리 주 하나님을 따르기를 택하기 원합니다.
매번 넘어질 때마다 주님 손을 꼭 붙잡고 일어나기 원합니다.
전에 넘어졌을 때보다 더욱 힘차게 일어날 수 있기 원합니다.
저의 삶에 주님의 은혜를 간구합니다.
박지은 (2020-05-12 23:47:34)  
오늘 여호수아 24장 말씀을 읽으면서 눈에 들어온 문장이 있습니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이 부분이 왜 눈에 들어왔을까 생각해보니
월요일 말씀 (신명기 30장) 속에서도 선택에 관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 그리고 사망과 재앙을 네 앞에 선택하게 두었나니..."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택을 얼마나 중요히 여기시는지 말씀을 통해 계속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하나님과 다른 우상을 둘다 붙잡으려고
시간끄는 어리석은 양다리가 되지 않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우리의 선택권을 가지고
바로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택할 수 있기 원합니다.
이과훈 (2020-05-13 00:55:47)  
다른 것들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겠습니다. 이 결심을 마음에 새기고 잘 실천해나가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문제 많고 부족한 저의 인생을 이끌어가 주세요.
윤소영 (2020-05-13 01:14:09)  
나의 몸과 마음이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의지함을 고백함으로
진실하게 살기 위해 하루하루 노력하길 원합니다.
성령님 도와주세요. 아멘.
진문균 (2020-05-13 02:54:20)  
주님의 주되심을 입술로 고백하지만 어느 새 주님의 자리를 다른 것들이 차지하고 있지 않도록 항상 깨어있기를 원합니다.
장동은 (2020-05-13 03:22:15)  
나와 내 가정이 오직 여호와만을 택하였으니 주님만 섬기기로 결단합니다.
박지은 (2020-05-13 04:11:21)  
특히) [신명기 28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받을 복"과 "불순종함으로 받을 저주"가 매우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명기 28:1-20, 21-68 참조). [This is the larger context]
(**) 그런데 조목조목 내용을 훑어보면 "복"에 대한 내용보다 "저주"에 대한 내용이
두 배 이상 많습니다. 무엇을 의미할까요? [의견들을 나누면 좋겠습니다.]

1. 복에 대한 내용보다 저주에 대한 내용이 정말 두 배 이상 많은지 궁금했습니다.
신명기 28장을 꼼꼼하게 읽어보며 카운트를 해보았습니다.
신명기 28장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언약적 순종의 관계를 다시 한번 강조하며
이 정신과 가치를 지켜갈 때 누리는 복과(1-14절), 어길 때 받게될 저주(15-68절)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구성을 보면 복은 열 네 절에 걸쳐 기록된 반면,
청종하지 않을 때 받을 저주는 쉰 네 절에 걸쳐 기록되어 있습니다.
복보다 저주가 약 네 배 정도 많은 분량입니다.

모세는 광야생활 40년을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며 하나님의 복과 저주를 경험해왔습니다.
지난 삶과 역사를 통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도 있었지만
하나님을 등지고 순종하지 않았던 때가 (네 배 정도) 많았을까요?
어쩌면 네 배 이상으로도 많았기 때문에
모세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저주를 더 상세하게 기록했던것이 아닐까요?

2. “여호와께서 네 적군 앞에서 너를 패하게 하시리니 네가 그들을 치러 한 길로 나가서
그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할 것이며 네가 또 땅의 모든 나라 중에 흩어지고” (신명기 28장 25절)

이 말씀을 읽으면서 최근에 읽고 묵상한 선지자들의 예언들과 이스라엘의 멸망이 떠올랐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은 실제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다
앗수르에 의해 북 이스라엘 왕국은 망하게 되어 흩어지게 되고
남 유다 왕국은 바벨론에 의해 각각 멸망당해 세계 각지에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에 의하여 또 다시 멸망당해 흩어졌습니다.
아직도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은 그 수를 헤아리지 못할 만큼 무수히 많습니다.
신명기에 기록된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니 정말 신기했습니다.
말씀을 공부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말씀의 사실성이 더욱 놀랍습니다.
박지은 (2020-05-13 04:18:24)  
4. 신명기 28장에서 복과 저주가 함께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 생각에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더욱 더 잘 지키도록
끊임없이 격려하는데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연약함을 잘 아시기 때문에,
율법에 순종하면 복을 주시겠다고 격려하신것이 아닐까요?
동시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함을 잘 아시기 때문에,
율법에 순종하지 않으면 저주를 하시겠다고 경고를 주신 것이지 않나 생각됩니다.

부모님이 제가 어떤 생각인지 잘 아시고, 또 제가 어떤 일을 할지 아시기 때문에
이런 저런 경고를 주시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복과 저주를 함께 말씀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과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게 하기 위함으로 느껴집니다.

단순히 복과 저주 자체에 초점이 두신다기보다
복과 저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언약 백성이 되는 것을
하나님께서 더 중요히 여기시는것 같습니다.

6. 성경이 말하는 신명기의 복과 저주를 읽다가 욥기가 떠올랐습니다.
욥기로 넘어가보면, 욥이 당하는 고난은 신명기와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우선 성경은 욥이 얼마나 의인이었는지 처음부터 밝히고 있고,
심지어 하나님께서도 욥을 엄청 칭찬하십니다.
그정도로 욥은 하나님 앞에 그리고 세상 앞에 부끄러울 것 없는 순전한 의인이었습니다.
그랬던 욥이 오늘 신명기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께 불순종할 경우에 받는 저주를 거의 다 겪은 듯 싶습니다.
심지어 그의 아내조차도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며 그의 인생을 저주했습니다.
그의 고통은 하나님으로부터 불준종함으로 받는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이유 자체가 달랐습니다.
이 부분은 이번 한주간 더욱 깊이 생각해보아야겠습니다.
이인범 (2020-05-13 04:23:40)  
이스라엘 민족은 대를 거쳐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선택을 해옵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는 아브라함부터 애굽을 떠나 광야로 나오고
가나안땅에 들어가고 정복전쟁을 하며 다른 신이 아닌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계속해서 선택합니다.

내가 과거에 했던 선택들과 앞으로 미래에 해야할 선택들을
생각합니다. 앞으로 선택해야할 때에 하나님을 따르기로
고백하는 제가 되길 기도합니다
장은경 (2020-05-13 04:37:34)  
모세와 여호수아도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을 향한 마음에 신실하기를 당부하고 당부하였는데
모든걸 아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은 얼마나 인내하시고 기다시는 걸까..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오리이다 '
스스로 결심하고 맹새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또 변하고 잊어버리고 잘못된 길을 선택하기를 반복하는 것을 봅니다.
저 또한 저를 믿을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매일 주시는 말씀을 마음을 다하여 듣고..순종하여 따르기 기도하며 사는 것입니다. 현실을 살아갈때 그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결코 그 결단과 생각이 지켜지지 못함을 잘 아시오니..늘 제 마음을 지켜주시고 붙잡아 주소서.
이강은 (2020-05-13 05:12:51)  
여호수아는 세겜에 백성들을 모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 말씀을 통해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서부터 그 당시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끊임없이 하나님이 인도하셨던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이집트로부터 끌어내시고 여러 싸움에서 승리를 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직접 일구지 않은 땅과 세우지 않은 성읍을 주셔 살게 하시고.
심지도 않은 포도밭과 올리브 밭에서 열매를 따먹게 해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한량없는 축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 축복을 내려주신 하나님이 그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오직 한가지,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고 여호와만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한량없이 축복을 내려주시는 하나님을 저버리지 않고
여호와만을 나의 주님으로 섬기는 삶을 살길 소원합니다.
이강은 (2020-05-13 07:49:35)  
(**) <열왕기>기자는 왜 앗수르 군대 파멸의 원인 즉 군인들의 사망의 원인을 "들쥐"
또는 "역병"으로 인한 것으로 기록하지 않고, 왜 "하나님의 사자(使者)/천사(天使)"의
손에 의해 앗수르 군인들이 죽은 것으로 기록을 했을까요?
---------------------------------------------------------------------
헤로도투스와 베로수스가 앗수르 군대의 파멸에 대해 기록한 것과는 다르게
<열왕기하>에는 '쥐로 인한 전염병'과 관련된 내용이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역사가들의 기록과 성경이 같은 사건을 다르게 그려낸 것을 보며
처음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에는 기적적인 사건에 대한 자세한 설명보다도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는 내용을 담아야하기 때문에
"들쥐"나 "역병"에 관한 내용이 생략된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렇다고 하기엔 이를 반박할만한 성경 속의 여러 사건들이 잇따라 생각납니다.

하나님이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던 사건을 살펴보면
개구리가 땅을 덮고, 무수한 파리 떼가 나타나고, 가축들이 심한 돌림병으로 죽는 등
열 가지의 모든 재앙이 각기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출애굽 당시 하나님을 원망하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불뱀을 보내시고
백성들이 이 불뱀에 물려 죽었던 사건을 통해서도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원인으로 죽어갔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과학적, 의학적 지식이 고대 이집트나 바벨로니아에 비해 부족해서
앗수르 군사들이 대규모로 사망한 원인을 기록하지 못한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열왕기>에서는 이 사건의 표면적인 원인을 그대로 기록하지 않았을까요?

이는 아마 하나님에 대한 그 당시 백성들의 태도 혹은 믿음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선 설교말씀 내용에서도 알 수 있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사기 시대를 보내며 계속해서 믿음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 백성들은 만약 앗수르 군대 파멸 사건에 대해 하나님이 하신일이라는 것을
강조하여 말하지 않으면 그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할 정도의 믿음을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열왕기>기자는 꼭 "하나님의 사자"라고 언급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반대로 위에 제가 언급했던 사건들이 일어났을 당시에는 모세가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이를 생생하게 백성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기록하지 않아도
백성들은 모든 기적이 하나님을 통해 발생했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열왕기>에 사건에 대한 기술이 다른 역사적 기록과 차이를 보이게 된 것은
백성들의 '믿음의 부족'에 기인한 것이라고 정리해보게 되었습니다.
정은선 (2020-05-13 09:36:15)  
하나님께서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배푸신 은혜와 기적은
그들에게 다른 어려움이 찾아오더라도 이길 수 있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일까요. 저 또한 하나님이 하셨다 라고 고백
할 수 있는 여러 일들과 삶을 통한 경험들이 있는데도 잊게 되고
두려움에 다른 곳에 눈을 돌리게 될 때가 있습니다.
상수리나무 아래 새운 돌 처럼 저의 마음 속에도 그 증거를
기억할 수 있는 말씀을 새기고 그 안에 묶여 있기를 기도합니다.
윤사랑 (2020-05-13 10:17:52)  
만일 빼앗는 것이 있거나 또는 욕심을부려 더 가져온 것이 있다면,
그런 맘을 고쳐지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박준혁 (2020-05-13 10:53:34)  
Everyone has memories of certain places. I believe that it’s very
crucial for people to have places with important memories.
In the scripture for today, I believe that Shechem is that special place for the Israelites.
After thinking about the Israelites, I thought about myself.
Where would be a place that I would never forget no matter where I go?

I instantly thought Bloomington, Indiana. Bloomington is a special place for my family.
He changed my father into a servant of His own,
He protected my mother through all the conflicts that happened in our lives,
and most importantly, He kept us steady and together by giving us
the strength and freedom to love one another under God’s reign.

Even when I grow up move away from this familiar place
that I have called home since I was a toddler,
I will never forget the grace and mercy God has shown my parents, my sister, and me.
홍은기 (2020-05-13 12:41:31)  
[화요일] 성경공부 여호수아 24장

1.여호수아는 왜 세겜에 불러 모았을까요?
세겜은 성경 속에서 어떤 장소였을까요?

인생을 마감할 때가 되었음을 잘 알았던 여호수아는 세겜으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불러 모았습니다. 세겜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이주한 이후에
처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약속을 받은 곳입니다. 세겜은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이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땅에 대한 약속을 주신 곳으로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지도자들을 불러 유언과 같은 말을 했다는 것은
이미 장소를 통해 신앙적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겜은 하란에서 돌아온 야곱이 ‘디나 사건’ 이후에 크게 각성하고
이방의 우상들을 묻어버린 개혁의 장소였습니다(창34장).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대로 계약을 새롭게 한 맹세의 장소였습니다
(수8:30-35절).
하나님과 조상들의 숨결이 생생한 세겜 땅에서
여호수아는 지난 날 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인도해 오셨는지를 되돌아보았습니다.

2. 마지막 유언

임종의 장면을 본 기억을 잠시 나눴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아직 임종을 본 경험이 없지만
저에게는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가 아주 분명히 기억이 납니다.
숨을 거두실 때 저에게 “ 은기야.교회 반주가가 되거라” 그 말의 깊은 뜻을 요즘 더 많이 생각해봅니다.
단순히 피아노를 전공하라는 뜻이 아니셨던 것입니다.
예배를 지각할 수 없는, 모든 예배를 참석해야하는. 예배와 밀착된 삶을 살라고 하신 것 같습니다.
이 땅을 떠날 때 과연 우린 어떤 마지막 말을 말할까 … 잠시 나눴습니다.
홍은기 (2020-05-13 12:44:44)  
3. 여호수아, 스데반, 바울 그들이 당부한 것은…..

여호수아의 마지막 말들을 살펴보다가
스데반 집사께서 순교를 당하시던 그 날 했던 설교를 잠시 살펴보았습니다.
사도행전 7장은 스데반 집사의 마지막 내용을 보면 절절하게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부터 솔로몬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그들을 주관하신 하나님을 낱낱이 증거 합니다.
그리고 스데반은 그를 정죄하려 모인 공회 앞에 그 하나님을 믿으라고 선포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도행전 27장을 보면, 바울 사도의 설교에서도 이와 비슷합니다.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힌 바울이 마지막 변론의 기회를 얻어
아그립바 왕 앞에 서서 한 일은 자신을 변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인생가운데 찾아오셔서 그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켰던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그랬고, 스데반 집사께서 그랬던 것처럼,
그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간절히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간절한 목소리.. 이들의 간절한 마음… 이들을 애타게 하는 대상인 이스라엘,,
여호수아의 호소, 스데반의 호소, 바울의 호소... 나눠보았습니다.

4. 왜 돌을 왜 세웠을까요?

여호수아는 백성과의 언약의 증거로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 책에 기록하고
세겜 땅에 돌을 세웠습니다. 여호수아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딱히 없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들이 불변하는 증거의 돌을 볼 때마다 그래도 하나님께 드린 언약을 기억하겠지...라는
여호수아의 걱정 섞인 소망인 것 같습니다.
그 언약대로 살게 하기 위해 세운 것 같다고 나눴습니다.
홍은기 (2020-05-13 12:50:05)  
5. 여호수아의 마지막 고별설교가 멋지다? 아니다?

여호수아의 마지막 당부가 비장해 보이고 멋져 보이기도 하지만
저희가 오늘 나누면서 느끼는 것은 그리 그렇게 멋진 마지막 설교는 아니라는 의견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어떤 가정에 방문하면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벽에 걸려 있는 것을 종종 보았습니다.
이 여호수아의 말은 한편으로는 이제 다가올 이스라엘의 슬픈 역사를
예언하는 한 문장인 것 같다고 했습니다.

마치 제가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지은이와 준혁이에게
“ 엄마는 여호와만 섬길거야. 너희도 예수님만 선택해라”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얼마나 예수를 제대로 안 믿었으면 마지막 순간에 그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이스라엘에게 여호와를 섬기라는 당부는
너무 어처구니 없어보입니다.
학생에게 학교를 다녀달라고 부탁하는 것 같습니다.
공부하고 미래를 꿈꿔야 할 학생이 워낙 딴짓을 하니
제발 학교만 다녀달라고 부탁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6. 여호수아 23장 24장
여호수아는 한 말 또하고 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두 장에 기록된 여호수아의 두 번의 설교는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여호수아의 이 두 번의 설교가 비슷한 패턴을 가지고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설교 모두 서두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나열합니다.
하나님이 그의 언약백성인 이스라엘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인도하셨는지를 상기 시켜줍니다.
그리고 난 다음 원인과 결과를 연결해주는 “그러므로”라는 접속부사를 사용해서
앞으로는 그들을 인도해주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길 것을 강하게 요청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율법과 계명을 지켜서 행할 것을 명령합니다.

여호수아 23장6절
“그러므로 너희는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여호수아 24장14절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이 두 말씀을 다시 읽고 나눔을 마쳤습니다.
박지원 (2020-05-13 13:11:14)  
(성경본문에서 문제로 제기된) "정결의식"에 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실(事實)과 진실(眞實)은 과연 무엇입니까? [진지하게 의견들을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1. 출애굽기나 레위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밥 먹기 전에 손을 씻으라' 라고 명령을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출애굽기 30장 21절에서 "이와 같이 그들이 그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할지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이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라고 명시합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 서술하신대로 이 제사장들의 규례를 모든 백성이 확대적용 함으로써
그들이 모든 일상을 거룩하게 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2. 잠시 사실과 진실의 차이에 대한 견해를 나누어보겠습니다.
저의 주관적인 '사실'의 정의는 어떠한 현상에 대한 '관측 결과의 정확성'입니다.
또한 사실(fact)은 근거가 있어야합니다.
관측 결과의 정확성은 근거들을 바탕으로 판단할 수 있으며,
우리가 흔히 하는 '팩트 체크'를 통해 사실 여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제가 정의하는 '진실'은 조금 다른 성격을 가집니다.
진실이란 쉽게 관측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닙니다.
제가 정의하는 진실은 겉으로 보이는 현상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그것이 내포하는 모든 것, 본질에 대한 고찰입니다.
때문에, '정확한 사실' 이라는 말은 하지만, '정확한 진실'이라는 말은 잘 쓰지 않습니다.
팩트 체크, 진실 규명이라는 말만 보아도 그 차이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습니다.
박지원 (2020-05-13 13:11:40)  
3. 위의 정의에 의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식사 전에 손을 씻는 것을
'정결의식'으로 여겼다는 것은 사실이자 팩트입니다.
목사님께서 언급하신 로마 감옥에 갇혔던 랍비가 마실 물로 손을 씻어
죽을 고비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손씻기를
위생수칙보다는 정결의식으로 인식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랍비가 그저 물을 마시는 것보다 '청결'을 중요시 했을 수도 있지만,
매슬로의 욕구단계설에 의하면 생리적 욕구(물 마시기)가
안전의 욕구(손 씻기)보다 더 먼저이기 때문에 이 가설은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이러한 근거들이 손씻기가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위생수칙의 의미보다는 정결의식에 가깝다는 것을 뒷받침해줍니다.

4. 그렇다면 손씻기가 정결의식이라는 것은 진실(truth)일까요?
레위기의 제사장들은 정결의식을 행하여 제사장들에게 적용되는 규례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신약 시대에서는 거룩한 율법을 지킴으로 인해
정결해져서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정결의식의 목적은 하나님의 구원이었으며, 그것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목적이 구원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빼놓고는 정결을 논할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께 '왜 당신의 제자들이 손을 씻는 정결의식을 행하지 않느냐' 라고 묻는 것은
손씻기만을 정결의식으로 여기면서, 정결의식과 예수님은 분리 하는 행동입니다.
그렇다면 손씻기는 더이상 정결의식으로 여겨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정결할 수 없지만, 손씻기는 예수님과 분리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손씻기가 정결의식이라는 것은 진실일 수 없습니다.
박지원 (2020-05-13 13:11:54)  
5. 코로나 사태로 인해 사회가 혼란한 가운데 오늘 본문을 자칫 잘못 읽으면
예수님께서 사회적 혼란을 더욱 악화시키시고,
게다가 적반하장으로 잘못을 지적한 사람들에게 화를 낸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에 사람들이 지적했던 것은 청결이 아니라 정결의식이었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부분도 정결함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너희는 내 말을 잘 듣고 깨달으라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니라
다만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저의 상상에 불과하지만, 이 시대에도 이렇게 전염병이 돌았다면
예수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손을 씻으라고 하셨을 것 같습니다.
구원과는 관계가 없지만, 청결함도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도 저번주에 이 본문을 읽으면서 조금 의아했었는데
목사님께서 잘 풀어주셔서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지은 (2020-05-13 13:13:43)  
목사님께서 지난 주일 설교때 언급하신 사사기 2장을 보았습니다.
지난주 그리고 이번주 말씀들을 묵상하면서
도대체 왜, 왜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은 반복적으로 죄를 지을까 의문이었습니다.
진지하게 그 마음을 알고 싶은 마음에 사사기 2장을 읽었지만
이스라엘의 악한 행실을 보며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향한 비판의 손가락질을 잠시 멈추고
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1. 우선 사사기 2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해주신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된 이후,
그들을 인도하던 영적 지도자 여호수아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새로운 역사의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죽음은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고, 그들에게 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 입성을 앞두고 만났던 모세의 죽음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여호수아 시대의 서막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의 죽음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호수아의 죽음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버리고
당시 가나안의 신들인 바알, 아스다롯과 사랑에 빠진 모습입니다.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릴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래할 수 있었을까요?

여호수아와 동시대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를 경험하였습니다.
비록 출애굽 1세대(출애굽 당시 20세 이상의 성인들)는 광야에서 다 죽었지만,
출애굽 1세대의 여호수아와 갈렙을 빼고는 모두 출애굽 1.5세대, 또는 광야세대였습니다.
그들은 어릴 때 부모를 따라서 광야로 나왔거나 광야생활중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경이로운 출애굽의 기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로 매일마다 먹이시고 입히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자신들보다 더 강한 가나안 원주민과 전투를 벌이면서도 놀라운 승리를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경험하고 체험한 출애굽1.5세대와 광야세대의 사람들이 다 죽고나자,
다음 세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부모님 세대의 하나님, 할아버지 세대의 하나님으로 이해했지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박지은 (2020-05-13 13:13:50)  
2. 사사기의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다가 문득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출애굽을 경험한 할아버지 세대, 만나와 메추라기를 경험한 광야의 아버지 세대가 신앙이 좋다고
자식 세대도 저절로 신앙이 좋은 것이 아닌것 같습니다.
오히려, 모든 세대는 각자의 세대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해야 하는것 같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 하나님에 대한 앎, 하나님에 대한 경험은 각 세대마다 새로워져야 하는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만났던 그 하나님을
이삭이 자신의 하나님으로 경험하고 만났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 된 것이지,
아브라함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저절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이삭의 하나님이 되는 것은 아니었을 것 입니다.
야곱 또한 자신의 삶속에서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만나고 경험했기에
하나님은 “야곱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오늘 제 인생속에서 현재형으로 일하고 계시는 주님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죄악이 반복되는 쳇바퀴에서 해방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할 수 있도록
제가 이 세대속에서 감당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지도 고민해보기를 원합니다.
최평화 (2020-05-13 16:13:18)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기를 원합니다.
홍은기 (2020-05-13 18:44:37)  
“속히 나에게 내려오라! 너의 집에 내가 머물겠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일방적인 선택 앞에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삭개오를 일방적으로 주님은 선택하셨습니다.
그때 삭개오는 ‘불의한’ 삭개오에서 ‘순결한’ 삭개오로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 그 어느것도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 마음속에 거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선미 (2020-05-13 18:46:37)  
가까이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나무에 오른 삭개오. 체면 차리지
않고 머뭇거리지 않고 더 중요한 것을 위해 덜 중요한 것을 뒤로 한
삭개오. 삭개오처럼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만나는 것을 최우선 삼기
원합니다. 체면차리느라...머뭇거리느라...예수님 만날 기회를 놓치지
않기 원합니다. 예수님 만나기를 사모하여 가까이 오시는 주님을
기쁨으로 영접하는 오늘 되게 하옵소서.
임성희 (2020-05-13 20:30:52)  
세상의 멸시와 천대를 재물로 채우던 사람이
주님을 만나고 자신을 채우는 방법이 바뀌었습니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갈급함과 근심 걱정들이
주님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기도합니다.
박지원 (2020-05-13 23:11:41)  
오늘 본문은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내용입니다.
"삭개오가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를 집으로 영접하니라
사람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삭개오가 일어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이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들어옵니다.
삭개오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집으로 영접하였고,
그 뒤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전하신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삭개오가 자신의 재산의 반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또 그 남은 절반을 이용해
자신이 누구의 것을 속여서 뺏었다면 네 갑절로 갑겠다고 합니다.

저의 생각에 삭개오 스스로가 여태 벌어온 돈에 대해 떳떳했다면
네 갑절로 갚겠다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재산의 남은 절반은 네 갑절의 빚을 갚는데에 모두 써야할 것입니다.
아마도 사실상 자기 재산을 포기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만난 것 만으로 이런 변화가 올 수 있었을까..
삭개오가 하늘의 것의 가치를 알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자신이 여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그렇기에 양심을 어겨가며까지 모았던
이 세상에서의 부귀가, 예수님을 알고 나니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진 것 같습니다.

한쪽에서는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고 하늘의 것의 가치를 알아갈 때,
다른 한쪽에서는 '예수가 죄인 집에 유하러 갔다'며 수근거립니다.
너무도 극명한 차이입니다.
과연 그들은 삭개오만큼 하늘의 가치를 알면서, 예수님을 알면서 수근거리는 걸까..

저는 여태 인생의 대부분을 수근거리는 사람처럼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불러주셨기에 이제는 박개오로 살아가기 원합니다.
저의 재산을 포기하고 나눠줄 정도로 살아내지는 못하지만
하늘의 것의 가치와 이 땅의 것의 가치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삶,
그리고 예수님 영접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삭개오에게 허락하신 주님의 은혜가 매일매일 저의 삶에도 충만하기 원합니다.
이인범 (2020-05-13 23:17:45)  
이번주 본문들에 '오늘'이 강조된 것을 보며
누가복음의 어리석은 부자 얘기가 떠오릅니다.
오늘 밤 하나님께서 목숨을 거두실 줄 모르고 창고를 채워가는 부자..
제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시는 오늘이 되길 원합니다
백은지 (2020-05-13 23:23:29)  
부르시고 구원하시는 주님만이 왕 되어 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나를 변화시켜 주세요.
박지은 (2020-05-14 00:05:39)  
잃어버린 자들이 돌아오도록 이 땅에 오신 주님,
"한번 죄인이면 영원히 죄인"이 아니라
그 죄인에게도 기회를 주시고 변화를 일으키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내가 그리도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내 손에 꽉 움켜쥐고 있었던것들을 내려놓게 되는 일을
주님과의 깊은 만남의 과정을 통해 경험하는 기쁨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이광태 (2020-05-14 00:31:45)  
주를 사모하는 열정과 주의 임재의 은혜를 얻게 하소서. 아멘.
윤소영 (2020-05-14 00:50:32)  
하나님 아버지 나의 연약한 부분들이 성령님이 주시는 지혜로
오늘 만나야 하는 예수님을 놓치지 않게 도와주세요. 아멘.
이과훈 (2020-05-14 03:11:44)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삭개오와 같은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세리장이고 부자였지만 (2) 예수님을 보기 위해 뽕나무 위로 올라갔고, (4) 예수님께서 자신을 불렀을 때 즉각 반응했습니다 (5-6). 그리고 정해진 것보다 더 대가를 지불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8). 이에 반응하여 예수님께서는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도다 이제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9)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당시 세리장의 사회적 지위를 보았을 때 이는 굉장히 놀라운 선언이며 아직 삭개오가 자신의 결심을 실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선포하신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낌없이 넉넉하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 우리가 받은 은혜를 넉넉한 마음으로 아낌없이 흘려보낼 때 하나님께서 많이 기뻐하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삭개오는 체면을 차리지 않고 예수님을 찾았고, 그를 만나 삶이 변화됐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나눕니다. 이것이 삭개오가 받은 구원의 필요조건은 아니지만 삭개오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을 흐뭇하게 만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삭개오는 기회가 왔을 때 체면을 차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났을 때 자신이 가장 신뢰했던 대상인 돈을 아낌없이 내려놓음으로써 구원을 약속받았습니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이를 위해 덜 중요한 것을 포기할 줄 알았던 그를 보며 반성이 많이 됩니다. 지금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봅니다. 하나님께 집중하고 그 뜻을 알고, 인도하심을 잘 따라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해결해야 할 여러 문제들이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처리해 나가면 되는 일입니다. 저의 자존심이나 체면은 작은 부분일 뿐입니다. 쓸데없는 것들에 요동하지 말고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길을 따라가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제 마음을 지켜주시기를 구합니다.
장은경 (2020-05-14 04:12:06)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서 유하여야 하겠다'
이 말씀속에 예수님의 적극적이고 기쁜 마음이 전해집니다. 예수님도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해 찾으시고 갈급하심과 나무 위에까지 올라가 예수님을 보고싶어 했던 삭개오의 갈급함이 그 곳에서..오늘..만남이 이루어 짐을 봅니다.
구원의 은혜로 주님 앞에 진실된 회개와 결단과 실천이 이루어 질 때 진정한 구원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이 삭개오를 바라보실 때 그 분을 느끼며 바라본 그의 마음이 위로받고, 자신의 죄를 바로보며 담대히 맞서 생명의 길로 갈 수 있음과 같이..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시선을 느끼며 주시는 마음의 변화로 나를 바로 보며..결단하고 실천하며 담대히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나로 인하여 우리가 함께 구원의 기쁨 누리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강은 (2020-05-14 04:20:08)  
예수님이 뽕나무 위의 삭개오를 부르셨을 때 그가 주저없이 주님을 섬겼을 뿐만 아니라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빼앗았던 것들은 네 배로 갚겠다고 선언하는 모습을 보며
그의 구원에는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가 함께하셨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님이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해주실 때에
우리도 삭개오와 같이 세상의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온전히 주님만을 섬기는 자들이 되길 원합니다.
박준혁 (2020-05-14 10:07:54)  
I remembered an interesting part from Pastor Lee’s sermon.
It was about how the Pharisees washed their hands.
I tried washing my hands like the Pharisees once did.
I first took a big cup of water and slowly dribbled
the water down my hand from my fingertips to my wrist.
Then I took my other hand, made it into a fist,
and started rubbing the water into my palms.
I repeated this step, but with my other hand.
Then I said the prayer,
“Blessed by Thou, O LORD, King of the Universe,
who sanctified us by the Laws and commanded us to wash the hands!”

Washing my hands this way took about 32 seconds in total,
and it felt different since I am used to washing my hands
with running faucet water.
In a way, it didn’t really feel like my hands were completely washed.
정은선 (2020-05-14 10:15:43)  
키가 작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음은 삭개오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환경과 조건을 넘어 예수님에
대한 열정은 구원을 허락하십니다. 환경과 조건을 뛰어
넘을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열정을 다시 찾기를 기도합니다.
박지원 (2020-05-14 12:06:46)  
1. 삭개오는 어떤 마음으로 예수님을 보고자 했는지 궁금합니다.
성경에는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이 어떤 사람이길 바랐던 걸까...

세리장이며 부자였던 삭개오는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리장이기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 받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삭개오였다면.. 어차피 인정을 받을 수 없을 바에야
'사람들에게 받는 인정의 가치'를 깎아내렸을 것 같습니다.
포도밭의 여우가 자기가 먹을 수 없는 포도를 보고 신포도라고 했던것처럼..
하지만 인정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의 평판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 척 하지만서도
사실은 아킬레스건처럼 그 부분이 제일 아팠을 것입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에 대해, 그리고 예수님께서 행한 기적들에 대해 듣고
"혹시...? 나도...? 이런 나라도...? 세상 모두가 증오하고 멸시하는 나인데...
이런 나라도 고쳐주실 수 있는 분일까..? 어떤 사람인지 보고싶다."
하는 마음으로 뽕나무 위에 올라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박지원 (2020-05-14 12:06:55)  
2. 6절과 8절 사이에 어떤 과정이 있었을 지 궁금합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기록이 6절에 있고,
7절은사람들의 수근거림에 대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8절에는 갑자기 삭개오가 재산의 반을 나누고, 빛을 네배로 갚겠다고 합니다.
세리장이었던... 악독하게 아득바득 돈을 끌어모으던 삭개오가
이렇게 변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겪었을지 궁금합니다.
짧은 시간이었을까 긴 시간이었을까,
예수님의 말씀에 감명받은 것일까 아니면 그 존재를 본것만으로 충분했던 것일까.
예수님께서 그 집에서 어떤 말씀을 하셨던 것일까...
삭개오에게 일어난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기를...
윤사랑 (2020-05-14 12:29:13)  
옛날에 말씀하셨을때 (지금) 이 (현재) 까지입니다.
계속 해서 하나님 말씀을 잘 순종하는 자가 되도록 노력해서 하니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작년에 KPC 에서 준 영어 성경 큐티가 있는데, 어제 읽은것이
"He deos not speak with a voice like thunder- His voice is so gentle that it is easy for us to ignore."
하나님말씀을 잘 순종하면, 아무리 작은 소리도 놓히지 않을것으로 생각되어 여제 큐티도 나눠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놓히지 않도록 잘 순종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박지은 (2020-05-14 12:45:59)  
삭개오라는 인물은 제게 친숙한 인물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난 장면이 극적이어서 그런것인지
성경만화나 영상, 그리고 주일학교 공과공부 시간을 통해 삭개오를 자주 만났습니다.
이렇게 자주 만났던 인물인 만큼, 그때 보았던 만화적인 삭개오의 느낌이
18살이 된 지금도 제 머릿속에 아직 진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라는 사람을 제 틀안에 너무 가둬둔 것은 아닌지 돌아보며
진짜 인간 삭개오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삭개오는 “키가 작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키가 작다는 것은 과연 어떠한 기준에 의해 작은 것일까요?
그 당시 이스라엘 남자들의 평균 키보다 작은 것이 “작은” 키일까요?
삭개오가 작았으면 얼마나 작았는지 궁금합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떠오른 질문은 “삭개오는 몇살이었을까?”입니다.
성경은 삭개오가 “세리장”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그룹의 “장”이 되려면 그래도 경험이 쌓인 나이가 되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어린 나이에 성공했을 수 있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젊은 나이보다는 조금 더 나이가 있는 중년이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박지은 (2020-05-14 12:46:19)  
“앞으로 달려가서 길가에 있는 뽕나무 위에 올라가니”

누가복음 19장 4절 말씀입니다.
이 시대의 남성들의 옷차림을 생각해보면
나무를 쉽게 오를 수 있는 트레이닝복이 아니었을거라 생각됩니다.
오히려 나무를 오를때 거추장스러울 수 있는 옷차림이 아니었을까요?
활동적인 운동을 위해 만들어진 옷도 아니었을것이고,
그래서 올라갈때 다리가 훤히 보일 수도 있었을텐데
삭개오가 본인의 체면을 의식했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 바로 나무 오르기 아닌가 싶습니다.

하늘의 기쁨을 맛본 사람들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멋있어 보이지 않을 수 도 있습니다.
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시 돌아올때에 다윗 왕이 춤을 춘것이나
삭개오가 나무를 올라 예수님을 보려고 했던것이
이 땅의 기준으로 그닥 세련되어 보이진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을 아는 사람들에게 체면이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안중에도 없어 보입니다.
무엇을 신경쓰고 있는지, 무엇을 마음에 두고 있는지 돌아보며
적극적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오늘부터 살아내기 원합니다.
박지은 (2020-05-14 13:31:54)  
성경을 읽다보면 자주 등장하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날에 이르러…” 또는 “그때가 되면…” 같은 표현들입니다.
지금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때가 되면 이루어질 일들에 대해 성경은 이야기 할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번주 묵상 말씀은 “오늘”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오늘”이라는 단어…
“오늘”은 성경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것일까요?

우선, “오늘”이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감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엄마가 아들에게 어떠한 이야기를 하거나 부탁하더라도
“이것을 하렴” 과 “오늘 이것을 하렴”은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이라는 단어 속에 담겨있는 긴박함이 주는 무게감이 있는것 같습니다.

또한, “오늘”이라는 단어 속에 과거에 대한 청산의 의미도 들어가있는것 같습니다.
“오늘부터 이것을 하자!” 같은 다짐이나
“오늘부터 이것을 해라!” 라는 명령속에는
어제와는 다른 변화된 삶을 요구하고 있는듯 합니다.
죄의 사슬에 묶여있던 지난 날들의 청산,
그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첫걸음이
“오늘”이란 단어 속에 내포되어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오늘이 지나면 또 다른 오늘이 있듯이
인간의 삶이란 “오늘”의 단위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영원속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오늘”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단어를 쓰실때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거라고 생각됩니다.

하루하루 살아갈 수 밖에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영원함 속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오늘 속에 함께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가야할지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명령하신 말씀들에 귀를 기울이기 원합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계명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신명기 30장 16절)
홍은기 (2020-05-14 14:05:37)  
1.재미있는 기억 속 “삭개오 뽕잎환”

예전에 방송국에 다닐 때 명절때가 되면
전국 각지에서 광고를 부탁하는 물건들이 많이 왔었습니다.
시골의 어떤 목사님이 “삭개오 뽕잎환” 이라는 제품을 만들어서 들고 오셨습니다.
그 제품 소개에 성장호르몬과 키크는 약라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목사님께 웃으면서 삭개오가 키가 작은데 성장약 이름을 삭개오라고
왜 붙이셨냐고 했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목사님이 “그러면 골리앗 뽕잎환이라고 지을까?” 라며 화를 내시고
가신 기억이 있습니다.
삭개오에 대한 이미지는 제 머릿속에 잔상이 많습니다.

2.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왜?

19장 시작하기 전에 18장 마지막을 보았습니다.
앞서 누가복음18장 35절부터 한 맹인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적극적으로 주님을 소리 내어 부릅니다.
주위의 사람들은 그의 행동을 꾸짖으며 조용히 하라고 말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 큰소리로 주님을 부릅니다.
신기하게 이러한 모습을 보고 19장을 이어 읽으니 삭개오과 맹인의 모습이 겹쳐 보입니다.

맹인처럼 소리를 내진 않았지만 나무에 오르는 삭개오의 모습은
마치 주님을 부르는 모습으로 느껴집니다.
주변에서 뭐라고 해도 지금 이 순간 삭개오에게는 (목마름이든 호기심이든)
본인도 어떤 감정인지 규정할 수 없는 그 감정을 갖고 나무에 올랐습니다.

18장에 등장하는 여리고 근처에서 구걸하던 맹인이
주님을 그토록 간절히 부리며 갈급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삭개오의 경우에는 표면상으로 볼 때 부자였고 자신의 직업에서 인정받던 자였습니다.
그는 키가 작은 것을 빼면 신체적으로 그리 불편하지 않았고
자신의 화려한 집에서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리고 성읍 근처에서 구걸하며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살던 맹인이나
화려하고 큰 집에서 부자로 살던 삭개오나 주님이 보시기엔
그저 사회에서 소외되고 경멸의 대상으로 전락한 그 둘의 모습은 똑같아 보였습니다.
홍은기 (2020-05-14 14:07:20)  
3. 주변 사람들의 눈빛

삭개오의 영접은 단순히 자신의 집을 빌려드리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 앞에 그는 온 마음으로 주님을 영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 앞에 삭개오는 구원받은 자의 기쁨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제 문제는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각은 하나님의 계획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여전히 소외시키며 경멸하여야 하는 삭개오입니다.
삭개오는 그들 눈에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여야만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과연 삭개오와 예수님의 이 대화를 들은 주변 사람들은 마음이 어떠했을지..
삭개오를 부르신 예수님의 사역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것 같습니다.
바로 삭개오와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살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평소 삭개오와 친분을 쌓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삭개오와 가깝게 지내지 못한 이유가 삭개오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동족의 고혈을 짜내며 자신들과는 다른 삶을 사는 삭개오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소외시킨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셨습니다.
여리고로 들어오시기 전에 주님께서 만났던 사람도 사람들이 멀리했던 맹인이었습니다.
삭개오가 순조롭게 예수님을 영접하고 급변하는 모습을 통해
사람들은 어떤 생각들을 하고 어떤 소문이 냈을지…
홍은기 (2020-05-14 14:14:23)  
4.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으시는 …

하나님은 셈하시는 분이시고,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을 때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예수님께서 오늘 삭개오를 찾아가신 것입니다.
죄인들이라 불린 대표적인 직업 중에 하나가 세리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삭개오를 찾아가셔서 정죄하시거나, 회개하라고 호통을 치지 않으시고,
그의 집에 들어가겠다고 하셨습니다.
또 주님께서 사람들 앞에서 삭개오에게
“삭개오야,비록 네가 갖지 말아야 할 직업을 가졌지만,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서 교훈을 주실 것이야” 라고 말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저 그의 집을 방문하기만 하셨습니다. 그 방문이 삭개오의 인생을 새롭게 했습니다.

삭개오 본문을 보면서 동시에 또 떠오른 청년이 있습니다.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청년을 사랑하사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부자인고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갔습니다.
나무에서 내려오는 삭개오의 얼굴과
근심의 낯빛으로 돌아가는 그 청년의 뒷모습을 겹쳐서 바라봅니다.

아이들과 말씀 속에서
우리의 오늘을 비추어보았습니다.
힘든 현실 속에서 단지 피난처가 되는 말씀여행이 아니라
이 오늘의 현실이 영원에 잇댄 시간들로 연결되리라 믿습니다.
이선미 (2020-05-14 18:56:44)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기
원합니다. 말씀에 이끌림 받으며 순종의 자녀로 살아...'창조의 질서'
안에 온전히 거하게 하옵소서. '순종하는 자'를 위해 예비하신 '안식'에
들어가게 하옵소서.
임성희 (2020-05-14 20:37:41)  
내 마음에 거리낌이 있는 교훈과 훈계를
내 속 깊이 뿌리 박힌 고집으로 인해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완고해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이광태 (2020-05-14 23:04:07)  
주의 말씀을 사모합니다. 완악해지지 않도록 이끄소서. 주의 말씀을 이루는 삶 되게 하소서. 아멘.
박지원 (2020-05-14 23:39:21)  
오늘의 본문은 정말 신기하게도 몇천년 전에 쓰인 글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에게 이야기하기 위해 갓 쓰인 따뜻한 글 같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멀리 떠나가는 일이 없도록 하라,
성경에서 오늘이라고 한 것은 지금 우리에게도 해당한다...'
본문을 보는 내 마음을 다시 한번 가다듬게 되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 본문을 보며 오늘 하루를 보내는 마음가짐도 정돈시키게 됩니다.

주님 안에 속한 하루...
주님의 길을 떠나지 않은 하루...
주님께서 보시고 기뻐하실 하루...
그런 오늘을 보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윤소영 (2020-05-14 23:44:23)  
하나님 아버지와 처음 믿음 생활을 시작했던 그 믿음을 오늘도 기억하며
나의 마음에 손을 얻습니다. 성령님 끝까지 지켜 주세요. 아멘.
백은지 (2020-05-15 00:15:20)  
나의 죄된 모습 모두 내어 버릴 수 있기 원합니다. 주님앞에 그리고 인도하시는 오늘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살아계시는 성령님 인도해주세요
최정진 (2020-05-15 00:16:46)  
거룩한 복음으로 맥박이 뛰게 해주시옵소서,
모든 만물이 주 경배합니다. 아름답고 놀라우신, 모든 이름 보다 높은 이름이신 주님입니다.
이과훈 (2020-05-15 02:07:16)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 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 곁에 머물러야 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권면에 덧붙여 여러 차례 반복해서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라고 (8, 12, 13, 15) 당부합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완악하다”는 “성질이 억세게 고집스럽고 사납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완악한 마음을 버리라고 말한 것은 단순히 한 순간에 마음이 흔들려 실수를 하는 것을 주의하라는 것이 아니라 억세고 고집스럽게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거스르는 행동을 지양하라는 것입니다. 언뜻 생각해보면 당연한 말인데 실천하기에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조언이 우리와 동떨어져있지 않고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라고 알려주며 (13), 날마다 서로 권면하여 주의하라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까지 (13) 주었습니다.
나의 고집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주인 되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현재에는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고 (13) 미래에는 그리스도가 이루시는 구원에 참여하는 기회를 주는 것을(14) 알려주셨으니 그대로 실천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마음의 유연함을 허락해 주시고 처음 마음을 끝까지 지킬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날마다 저를 깨워주세요. 오늘도 주인 되신 하나님을 따라가며 내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제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성령님 도와주세요.
홍은기 (2020-05-15 02:10:14)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내 마음이 완악해지지 않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박지은 (2020-05-15 02:29:45)  
"우리가 처음 (하나님을 믿고) 믿음 생활을 시작했을 때에 가졌던
믿음의 확신을 끝까지 지키면 우리는 (그리스도가 이루시는)
구원에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하는 자가 되리라"

이 땅에서의 삶은 믿음의 확신을 지키는 싸움임을 기억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꼭 붙어있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이인범 (2020-05-15 02:54:01)  
최근 코로나 사태로 인해 변하는 사회를 예측하고 분석하는 내용을 많이 접합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사람의 행복의 척도나 경제 활동의 모습 등 많은 것들이 변한다고 합니다.
변해가는 사회에 맞춰 변해야하면서도 지켜야할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봅니다.
오늘 본문은 처음 믿음 생활을 시작했을 때의 확신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믿음이 처음 생겼을 때와 비교했을 때 제 신앙생활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고
여러 가치관도 변했지만 여전히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확신이 있습니다.
혹시 그동안 잃은 것은 없는지, 앞으로 지켜가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해봅니다.
이강은 (2020-05-15 05:06:19)  
우리가 처음 하나님을 만났을 때에 가졌던 그 확신을
끝까지 가지고서 주님의 구원을 누릴 수 있길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은 너무나 쉽게 죄의 유혹에 넘어가곤 하지만
날마다 서로 권면하며 마음이 완악해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장은경 (2020-05-15 05:30:46)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과 함께 내 마음안에 진실한 믿음의 확신을 끝까지 지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윤사랑 (2020-05-15 08:53:24)  
매일매일 하나님을 찬양하고 음성을 들을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은선 (2020-05-15 09:03:25)  
마음이 완악하여 지는 것,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는 것을 피하라고
반복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읽으며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연약하고 넘어지기 쉬운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믿음의 확신, 구원의 확신을 끝까지 가지고 갈 수 있는 그 경주에 있기를...
그리고 넘어질 때 마다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묵상하며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박지은 (2020-05-15 11:09:17)  
(**) [예전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행하던 "정결의식"과
오늘날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이런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난훈련"의 배경을 비교해 보고 ... 의견들을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최근에 엽기적이고도 가혹한 훈련을 교인들에게 시킨 이유로
이슈가 되고 있는 어느 한 교회의 담임목사인 김모 목사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여러 뉴스업체들이 입수한 자료와 그 교회 탈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 교회 안에서 김모 목사의 위상은 대단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그는 일명 “톱리더”라 불리며, 교회 안에 피라미드 형 “리더체계’”의 정점에 서있다고 합니다.

그 교회 안에서 “리더”라는 타이틀이 주는 권력과 명예가 엄청난 듯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리더들의 리더인 김모 목사는
그야말로 교인들의 위대한 영적인 아버지인 셈입니다.

이 교회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됐을까요?
김모 목사에 대해 더 알아보던 와중에,
김모 목사가 2017년 총신대 신대원 개강예배때 전했던 설교를 들어보았습니다.

설교속에 그는 그가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본인은 “무익한 종” 훈련을 평생을 했는데
자기가 종이라고 생각을 하며 살다보니 목회를 하며 힘든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설교에서 “훈련”이라는 단어가 많이 강조되는것을 보며
그의 사고가 훈련에 꽉 잡혀있는듯 했습니다.

김모 목사가 만들어간 교회정신은
리더훈련을 통해 증명되는 거룩을 향한 삶입니다.
그렇다면 결국은 이 교회의 동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 아닌
“얼마나 많은것들을 참고 견디어서 리더의 자리에 갈 수 있는가” 입니다.
우선적으로 고난훈련 = 거룩함, 또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 이라는
나름의 공식을 세워두고 교인들을 경쟁하게 하며
그들이 훈련에 동참하도록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혹, 바리새인들도 정결한 의식을 철저히 지키며
많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본인들의 철저한 삶을 통해
거룩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면서 남들과 구별되어 보이는 본인들의 삶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며 살며 이웃들을 정죄한것은 아닐까요?

이 사건에 대해 알아보며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산다고 하는 일들 가운데
내 마음이 진정으로 어디에 향하고 있었는지,
진정으로 무엇을 경배하고 있었는지 돌아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서 보여주신 것은 우월감도 정죄함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희생이었고, 겸손이었고, 사랑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이미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가 숨길 수 있는것이 하나도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속에 지혜롭게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강은 (2020-05-15 11:17:55)  
최근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교회와 관련한 뉴스를 찾아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비상식적인 행동들이 “훈련”이라는 명분 아래 이루어지고 있는데
성도들은 왜 오랜시간동안 그 집단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까요?

이들이 훈련 과정을 거치는 데 근거를 두고 있던 말씀은 고린도후서 6장이며,
이 말씀에는 실제로 “환난, 궁핍, 고난, 매맞음, 갇힘, 난동, 수고로움, 자지 못함, 먹기 못함.”등의 단어가 등장합니다.
물론 우리가 성경의 말씀을 따르고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이 교회의 사람들은 잘못된 방식으로 말씀을 따랐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말씀이 쓰이던 당시의 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성경 말씀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율법과 훈련을 중요시했던 바리새인, 서기관들과 이 교회 사람들 사이에서 공통되는 부분이 보입니다.
이 문제의 교회 출신의 한 성도가 인터뷰에서 말한 바에 의하면, 교회 내부에서 훈련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장려하며
그 훈련을 다 이겨내 리더가 되는 것을 선망의 대상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조장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공동체에서도 그들의 의식과 조례를 잘 달성해내는 사람들은 그 집단 사이에서 칭송을 받고,
그 반대로 조례를 잘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비난을 받는 분위기가 있지 않았을까요?
현재 문제가 된 교회만큼 비상식적인 행동을 통해 율법을 지켰을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그 법을 지키는 것 자체에만 몰두하고, 그것을 통해 집단 사이에서 잘못된 성취감과 우월감을 얻었을 것 같습니다.

이 문제를 정리해보며 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첫째로, 나도 이들처럼 맹목적으로 나만의 “훈련”을 통해 스스로 위안삼고 있지는 않은가.
둘째로, 내가 집착하고 있는 잘못된 “훈련”이 있지 않은가.
이번 사태를 통해서 우리가 성경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그리고 이렇게 무지해지는 것이 우리 삶에서 아주 멀리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항상 경계해야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박지원 (2020-05-15 11:20:02)  
(**) [예전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행하던 "정결의식"과
오늘날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이런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난훈련"의 배경을 비교해 보고 ... 의견들을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1.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그 교회를 'A 교회'라 칭하겠습니다.
A 교회의 훈련 내용을 보니 군대 훈련을 방불케 하는 훈련들이었습니다.
수색대에서 복무하며 겪었던 강도 높은 훈련들을 떠올리며
잠시 두 훈련들을 비교해보았습니다.
-군대에서의 훈련은 뚜렷한 목적이 있습니다.
전시에 사용될 전술에 대한 숙련도 증진, 체력강화 등..
대개 훈련의 내용과 그 훈련의 목적의 상관관계가 확실합니다.
-반면에, A 교회의 훈련 내용을 일부 본 저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그 훈련 행위에 확실한 목적이 없었습니다.
여러가지 각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었을 뿐입니다.
리더가 되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신앙을 증명하기 위해 등등..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해보았을 때, 이들이 행한 훈련 행위는
그 목적은 크게 상관이 없는 행위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곰팡이 난 음식을 먹음으로써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거나 리더가 되거나 신앙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차라리 군대에서 했던 훈련들이 더 낫다 싶을 정도입니다.
박지원 (2020-05-15 11:20:21)  
2. 이번에는 목사님께서 질문에 명시하신대로
A 교회의 훈련과 바리새인들의 정결의식을 비교해보았습니다.
-위에 언급한대로 A 교회의 훈련 행위와 그 행위의 목적은,
저의 생각에는 건강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바리새인의 정결의식도 어제 '사실과 진실'에 관련한
목사님의 질문에 답한대로, 바리새인이 정결의식으로 행했던
'손씻기'는 참된 의미의 정결의식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습니다.
손씻기의 목적이었던 정결은 하나님의 구원, 즉 예수님과 관계되어야 하지만
이스라엘인이 규정해버린 '손씻기' 행위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바리새인의 정결의식이었던 '손씻기'도, A 교회의 훈련도
모두 마찬가지로 그 목적과 행위가 좋은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박지원 (2020-05-15 11:20:45)  
3. A교회에 관한 인터뷰를 보던 중, 인터뷰에 응하던 사람이 말한
'그루밍'이라는 단어가 저의 주의를 끌었습니다.
이 맥락에서의 그루밍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정신적으로 압박해서,
피해자가 가해자를 거절하기 어렵도록 몰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인터뷰에 응했던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교회에서 이러한 훈련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도록
리더들이 분위기를 조성하며 그루밍을 했다는 것입니다.
힘든 '훈련'을 해낸 사람을 인정하고 칭찬하며
모두가 그렇게 해야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거나,
그런 사람들을 띄워주고 리더에 임명하면서
모두가 그렇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도록 열망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그루밍의 맥락에서 바리새인과 그들의 정결의식을 생각해봅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키는 자신들의 의를 높이며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들을 깔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때당시에는 그루밍이라는 단어가 있지는 않았지만
이것도 일종의 그루밍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루밍의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통제를 벗어나기 어려워합니다.
피해자의 세상에서는 가해자의 존재가 너무 커서
그들의 인정을 구하고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 논란의 피해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아서,
사람의 인정을 구하기보다 다시 한번 하나님의 인정을 구하는데
온 힘을 쏟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홍은기 (2020-05-15 11:22:46)  
[(**) [예전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행하던 "정결의식"과
오늘날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이런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난훈련"의 배경을 비교해 보고 ...
의견들을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목요일] 히브리서 3장 성경공부 내용입니다.
(목사님이 제기하신 질문과 히브리서를 함께 나눴습니다)

1. 오늘 히브리서 3장 말씀을 묵상하면서 1절부터 쭉 보았습니다.
목사님이 선택하시지 않은 본문이지만 본문 2-3절 여러번 곱씹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모세는 집의 일부였지만, 예수님은 그 집을 지으신 분이셨습니다.
즉 모세가 하나님의 집 즉 하나님 백성의 일원이었지만, 그 백성을 지은 이는 예수님이십니다.
지음을 받은 이는 당연히 지은이에게 그 목적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를 알지 못했습니다.
즉 율법에서 궁극적으로 말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모세의 궁극적인 대상이 되신 예수님이 아닌,
모세라는 한 사람을 모든 대상의 우선으로 삼는 우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율법을 붙잡고 살아가며 예수를 미쳐 바라보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빛과 진리교회 문제도 히브리서 3장 말씀을 통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강력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 그 어떤 사람을, 그 어떤 사물을 부지중에 목적 삼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궁극적인 귀결점은 인간을 사랑하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임에도
때론 그 사람, 그 사물 그것 자체를 목적 삼는 우를 범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우상 삼기도 하고, 사물을 우상 삼기도 합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우선될 수 없고,
우선되어서도 안 됩니다. 문제가 되는 교회는 교회 리더의 자리를 우상화하고
목사님의 말씀이 곧 예수님의 음성으로 생각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우를 범하지 않고 예수님께 최고의 가치를 두는 삶을 살기 위해
다른 것을 목적 삼지 않기 위해 늘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홍은기 (2020-05-15 11:31:30)  
2. 오늘 [히브리서 3장 말씀]을 보고 내일 [금요일 말씀 시편 95편]
전체 본문을 미리 읽다보니 두 말씀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시편 95편 8절 하반절-11절을 히브리서 3장 말씀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두 말씀이 이렇게 연결되니 읽는 동안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시편 95편 10절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

출애굽 일 세대들은 사십 년 동안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보고 경험하면서도,
오히려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였고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로 이어졌습니다.

이 이야기를 히브리서 3장 15-19절까지 한 번 더 보면서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목도했으면서도,
불순종으로 하나님을 시험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를 당한 출애굽 일 세대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부여잡고 살아가겠습니다.
마음이 미혹되지 않도록 오직 아버지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온전히 따르겠습니다.
박지원 (2020-05-15 11:34:16)  
오늘 본문에 제 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완악' 혹은 개역개정에서는 '완고'입니다.
영어 성경을 찾아보니 이 부분이 'hardened' 라고 번역되어있습니다.
이 단어를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유심히 본 적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14장 8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The Lord hardened the heart of Pharaoh king of Egypt..."

이 부분을 찾아보며 조금은 (비약이 심할수도 있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완악한 자의 말로..
마음이 완악해진 바로는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 자손을 따라가지만
결국 홍해를 건너지 못하고 가라앉아버립니다.
성경에서 바다는 죄나 혼돈을 상징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바로는 결국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바로의 말로를 떠올리며 오늘 본문을 다시 보니
너희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않음으로써
이러한 말로를 피하라는 사랑의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우리가 심판을 받고 사망에 이르기보다는
처음 가졌던 믿음의 확신을 끝까지 지킴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구원에 참여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처럼 서로서로 완악하지 않도록 권면하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교회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장동은 (2020-05-15 11:41:20)  
구원의 확신이 주변 상황으로 인해 흔들리지 않고 견고히 서 있기를 원합니다. 내 가족과 이웃이 내게 권면하는 것에 대해 감사함으로 반응하겠습니다.
박준혁 (2020-05-15 12:56:12)  
Around 7 years ago, I remember experiencing a very peculiar situation.
One day, I was going to Sams with my dad to buy some groceries.
It suddenly became silent and all the sounds around me started to fade away.
Then, a very deep voice called out my name, “준혁아!”
Stunned and shocked, I asked my dad if he called out my name.
He said no and asked why. I told him that I had heard a deep voice from the sky.

Whenever I feel like God isn’t there,
I think about the time that God spoke to me as a child.
People might think I’m crazy and think
that I am making these things up to say I believe in God,
but I am very certain that during that time, during that small sliver of time,
God had called my name!
임성희 (2020-05-15 18:57:50)  
내려 놓으면 죽을 것만 같던 것들
내려 놓을 줄 몰랐습니다.
여전히 남아 있는 짐들을 내려놓고
즐거이 하나님만 찬양하며 기뻐하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이선미 (2020-05-15 19:31:13)  
곤궁한 가운데도 우리가 노래할 수 있음은 우리가 노래하는 이유가
구원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함은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 주시고
우리를 극진하게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쉬지 않고 찬양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순종으로 엎드려 마음의 무릎을 꿇는 오늘되게
하옵소서.
백은지 (2020-05-15 23:38:00)  
주님 찬양 할 수 있는 한 날을 오늘도 허락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한 분만을 기뻐 경배 드리며 찬양하는 순간들로 오늘을 채워 나갈 수 있기 원합니다. 참 기쁨 주시는 주님을 즐거이 외치며 따르는 믿음의 자녀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윤소영 (2020-05-15 23:56:53)  
여호와 앞에 오늘 하루도 나의 무거운 짐 내려놓고 무릎 꿇고 주의 음성 듣기를 원합니다.
성령님 나를 참된 평안으로 이끌어 주세요. 아멘.
이과훈 (2020-05-16 00:50:13)  
본문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의 태도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려줍니다. 하나님 앞에는 즐겁게 (1, 2), 감사함으로 (2), 무릎을 꿇고 (6)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참된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29). 우리의 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짐이 가벼워집니다.
하나님께 크고 작은 문제들을 맡깁니다. 그저 하나님께 나아가면서 즐겁고 감사함으로 마땅한 경배를 올려드리는데 집중하겠습니다. 하나님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허락해주시고 하나님의 오른손으로 저를 돌봐주세요. 오늘도 함께하실 성령님을 기대합니다.
박지은 (2020-05-16 02:15:22)  
나를 지으신 주님... 그리고 내 안에 계신 주님!
우리를 돌보시는 따뜻한 주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참된 안식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힘없고 연약한 우리가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습니까?
쉽게 염려하고, 쉽게 두려워하며 떨고,
쉽게 교만해지고, 쉽게 내 자신과 이웃을 속이며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계속 살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겸손하신 주님의 멍에를 메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다 보면
주님의 온유함과 겸손함, 주님의 진실하심과 성실함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나의 마음을 어지럽고 무겁게 하는 것들보다 더욱 크신 주님을 의지합니다.
진문균 (2020-05-16 03:14:19)  
주를 향한 찬양이 끊이지 않기를 원합니다.
박지원 (2020-05-16 03:46:19)  
저번주의 말씀들과 이번주의 말씀들을 함께 생각해보니
성경과 믿음은 참으로 역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번주의 말씀들 중에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으면
재앙이 닥칠것이라는 이야기가 왕왕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주 본문에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말씀들도 많았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쉬운 길로 가지 않고 어려운 길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길을 걷는 우리들은 넘어지고 또 넘어집니다.
성경을 보면, 그러다 그 길을 벗어나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신다고 쓰여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오늘 시편의 말씀처럼...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과연 그렇게 기쁜 일일 수가 있는 것인가...?

목요일 본문이었던 히브리서 3장과 출애굽 당시의 바로를 떠올립니다.
"성경에서 [오늘] 이라고 한 말은 (지금)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니라
그러니 너희는 날마다 서로 권면하여 너희들 중에 어느 누구도
죄의 유혹에 빠져 마음이 완악하게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마음이 완악해져 홍해에 빠져 죽음을 맞은 바로..
이러한 말로를 피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우리가 처음 (하나님을 믿고) 믿음 생활을 시작했을 때에 가졌던
믿음의 확신을 끝까지 지키면 우리는 (그리스도가 이루시는)
구원에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하는 자가 되리라"
사망이 아니라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참으로 복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멀고 험한 길일지 모르지만
이 길이 향하고 있는 곳이 사망이 아니라 구원이라는 것은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걸어가는 동안 주님께서 함께 해주십니다.
우리의 무거운 짐을 나누어주시고, 넘어졌을 때 손 내밀어주시고
길을 잃었을 때 붙잡아주십니다.
멀고 험한 길에 있지만 구원으로 향하는 길에
주님과 함께 가고 있다는 기쁜 소식..
성경과 복음... 그리고 신앙생활은 역설적인 것 같습니다.
이 길에는 억울함, 분노, 슬픔, 고통도 있지만,
주님과 함께하는 그 길의 끝에는
희망과, 생명과 구원이 있다는 것을 묵상했습니다.
이인범 (2020-05-16 04:05:22)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오늘 체험하기 원합니다.
그분의 울타리 안에서, 그분의 손길을 느끼고 음성을 들으며 살기 원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듣고 그 멍에를 쓰며 안식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이강은 (2020-05-16 04:06:28)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 위 뛰어나신 왕이시로다'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주님 앞에 감사함으로 나아가
그를 노래하고 겸손히 엎드려 경배하기 원합니다.
우리를 기르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내게로 와서 쉬어라' 라고 말씀해 주실 때,
그 음성에 귀 기울여 말씀에 따르게 하시고
마음의 참된 안식을 얻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장은경 (2020-05-16 04:21:44)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들이라 너희가 [오늘] 여호와의 음성을 들을지어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손이 나를 지으시고 돌보심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지만..내가 드리는 그 감사와 찬양을 받으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진실되게 보시고 기쁘게 받으셨을까..
아는것을 넘어 알게 하신 은혜에 감사하며 진정한 기쁨의 찬양이 온전히 내 안에서 나와 주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 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나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아시는 주님..멈추지 않고 생명의 말씀에 귀기울여 주님이 이루시는 구원에 함께 동참하여 끝까지 겸손히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정은선 (2020-05-16 10:19:08)  
감사함으로 앞으로 나아갈 때 참된 안식을 알게하실
하나님을 기대하고 찬양합니다. 온유와 겸손의 모습으로 오신
주님을 닮아가기를 기도합니다.
홍은기 (2020-05-16 10:28:03)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무릎을 꿇는 행위에 반드시 수반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듣는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듣는 들음이 아니라 마음 깊이 순복하여 듣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길 원합니다.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무릎을 꿇어 온전히 듣길 원합니다.
하나님은 선한 목자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르시는 양입니다.
목자의 음성을 잘 듣고 순종하며
푸른 초장 잔잔한 시냇가에서 배부름을 얻길 원합니다.
혹,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거닐때라도
앞이 안 보이고 캄캄할때 일수록 더욱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무릎 꿇고 주님의 음성에 집중하겠습니다.
이선미 (2020-05-17 23:33:27)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를 부르시는 주님께 나아갑니다.
주님 예비하신 안식을 사모하여 주님 계신 곳을 향해 걸음을 옮깁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신 약속 의지해 크고 작은 문제들을 모두
주님 앞에 내려놓게 하옵소서. 말씀에 순종하여...수고와 무거운 짐의
굴레를 벗어나게 하옵소서.
최명훈 (2020-05-18 01:17:04)  
완악 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사전적 의미로 완전히 악하다 라는 의미가 살인 범죄를 일으키는 악인을 일컫는것은 아닌듯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믿음을 거부 하는것이 완악하다라는 성경적 의미이네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혹여 소홀이 여기지는 않았는지 제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저의 믿음을 돌아보게 하시고, 순종하게 하시옵소서. 아멘

주일설교 (2020/05/24): 모세의 인구 조사 (민수기 1/26) (사무엘하 24) (출애굽기 30) (마태복음 17) [106]
주일설교 (2020/05/10): 여호와의 응답 (역대하 7) (열왕기하 19) (마가복음 7) (아가 2)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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