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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태(2020-05-18 04:15:35, Hit : 489, Vote : 5
 주일설교 (2020/05/24): 모세의 인구 조사 (민수기 1/26) (사무엘하 24) (출애굽기 30) (마태복음 17)

주일예배: 2020/05/24
설교주제:


(월요일 묵상) (민수기 1)
=======================
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조사하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남자의 수를 계수할지니
3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각각 진영별로 그 수를 다 헤아리라 (4 – 44)

45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그 조상의 가문을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이스라엘 자손의 수를 다 세었으니
46  계수된 자의 총계는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었더라
47  그러나 레위 지파는 그 계수에 들지 아니하였으니
48  이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9  너는 레위 지파 사람들의 수는 이스라엘 자손 인구조사에 넣지 말라
50  그들에게는 법궤의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기구를 관리하게 하라 ... (51)
52  이스라엘 자손은 지파별로 각각 그 진영군대 깃발 아래 막사를 칠 것이나
53  레위인은 법궤 성막 사방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 하셨음이라
54  이스라엘 자손이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더라


(화요일 묵상) (민수기 26)
========================
1   전염병이 휩쓸고 지나간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의 아들인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의 수를 그들 조상의 가문을 따라 조사하되
    이십 세 이상으로 능히 전쟁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 하시니라
3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이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강가의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말씀을 전하여 알리니라 (4 - 50)
51  이스라엘 자손의 계수된 자가 육십만 천칠백삼십 명이었더라 (52-62)                  
5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53  인구조사에서 계수된 사람의 수에 따라 땅을 나눠 주어 기업을 삼게 하라  
54  수가 많은 지파에게는 땅을 많이 줄 것이요 적은 지파에게는 적게 줄 것이라
55  땅을 나눌 때는 오직 제비를 뽑아 나누고 지파의 이름을 따라 얻게 할지니라 (56-62)

63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이... [모압 평지]에서 계수한 사람들 중에는
64  모세와 제사장 아론이 [시내 광야]에서 행했던 (제1차) 인구조사에서
    계수되었던 사람들 중에서는 한 사람도 들어 있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65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반드시 광야에서 죽으리라 하셨음이라
    이러므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수요일 묵상) (사무엘하 24)
==========================
1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충동하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2   이에 왕이 총사령관 요압에게 이르되 너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로 다니며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인구를 조사하여 백성의 수를 내게 보고하라 하니라
3   요압이 왕께 아뢰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성의 수를 백 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살아생전에)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지만 왕이시여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려 하시나이까 하니라
4   그러나 다윗 왕이 요압과 군지휘관들에게 명령을 시행하도록 재촉하니
    요압과 지휘관들이 이스라엘의 인구를 조사하려고 왕 앞에서 물러나니라 (5-7)
8   그들의 무리가 국내를 두루 돌아 아홉 달 스무 날 만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9   요압이 백성의 수를 왕께 보고하니 곧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서 싸울 수 있는
    담대한 자가 팔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오십만 명이었더라

10  다윗이 인구 조사를 행한 후에 그의 마음에 자책하고 다윗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11  다음 날 아침 다윗이 일어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윗의 선견자인)
    선지자/예언자 [갓]에게 임하여 말씀하시기를
12  너는 가서 다윗에게 전하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너는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13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아뢰어 이르되
    왕의 땅에 칠 년 기근/흉년이 있을 것이니이까 혹은
    왕이 원수에게 쫓겨 석 달 동안 도망하실 것이니이까 혹은
    왕이 다스리는 온 땅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퍼질 것이니이까
    왕은 생각하여 보고 나를 보내신 이에게 무엇을 대답하게 하소서 하는지라
14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고통 중에 있도다 청하건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많으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15  이에 여호와께서 즉시 그날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전염병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들 중에서 죽은 자가 칠만 명이나 되니라 (16-25)

(*) 이 사건은 구약성경 [역대상 21장]에도 담겨 있지만 오늘 (수요일)
    묵상과 성경공부는 [사무엘하 24장]에 국한(局限)하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역대상 21장]에 기록된 내용은 다음주간에 묵상할 계획입니다.)


(목요일 묵상) (출애굽기 30)
==========================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2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조사할 때에
    조사 받은 각 사람은 자기의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그들을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질병이 없게 하려 함이라
13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의 세겔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14  계수 중에 드는 모든 자 곧 스무 살 이상 된 자가 여호와께 드리되
15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
16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속전을 취하여 회막 봉사에 쓰라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리라


(금요일 묵상) (마태복음 17)
==========================
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이상태 (2020-05-18 04:16:57)  
너희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의 [성민]이라 세상 만민 중에서 너희를 택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 너희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이 민족들이
우리들 보다 수가 많으니 우리가 어찌 그들을 이길 수 있으리요 하리라마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로와 온 애굽에 행하신 것을 잘 기억하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너희가 보았던 이적과
여호와 하나님의 강한 손과 펴신 팔을 기억하라 너희의 여호와께서 너희가 두려워
하는 모든 민족들에게 그와 같이 행하실 것이니라
윤사랑 (2020-05-18 06:39:31)  
오늘 내용을 읽다가 찬양 "두려워말라, 겁내지 마라" 라는 찬양이 납니다.
말씀대로, 또는 언제나 지켜주시는분 하나님께서 계시니 두려워할일이 없습니다.
홍은기 (2020-05-18 14:04:29)  
숫자와 힘과 세력에 눈멀지 않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거룩을 추구하는 신실한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이선미 (2020-05-18 19:04:54)  
택하신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훈련시키시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
으로 빚어가신 하나님이 또한 우리에게 '영적인 광야'를 허락하시어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하게 하심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광야를 살던 이스라엘 처럼...하나님의 말씀따라 영적인 광야를 살기
원합니다. "하라"하신 것을 하고 "하지 말라" 하신 것을 삼가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으로 '약속의 나라' 향해 나아가게 하옵소서.
임성희 (2020-05-18 19:13:1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계수하라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싸움이 가능한 자들 60만명, 그리 많아 보이진 않습니다.
모든 싸움에 하나님이 개입하실텐데 굳이 백성의 수를 헤아려 보라는 명령에 순종하고 무엇을 느꼈을까 생각도 듭니다.
나라면... 그냥 눈 앞에 닥친 현실과 그 수에 좌절감부터 들었을 것 같습니다.
때때로 찾아오는 깨어질 것 같지 않은 바위앞에 서지만
돌아보면 그 바위를 지나온 것 같습니다.
그 때마다 나를 옮겨 주신 하나님이 계심을 감사합니다.
최정진 (2020-05-19 00:07:0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태복음 7장 24절 말씀

하나님께서 지금도 함께하심을 알고 말씀으로 집을 짓겠습니다. 아멘
이광태 (2020-05-19 00:09:31)  
광야에서 수 많은 사람을 먹이시니 감사합니다. 그 중에서도 주의 말씀을 먹고 주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 되기를 원합니다. 아멘.
백은지 (2020-05-19 00:23:46)  
하나님 주신 말씀을 따라 행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박지은 (2020-05-19 00:27:45)  
현실을 직시하되 현실에 집어삼킴을 당하지 않고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이루신 일들을 기억할 수 있기 원합니다.
두려움의 동굴속에서 나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담대히 하고, 또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맡기는 지혜를 허락해주세요.
윤소영 (2020-05-19 00:29:46)  
하나님 아버지 나의 삶이 어디에 있던지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과 목적하신 그곳에
내가 서 있어 주의 말씀에 따르는 자 되길 기도합니다.
그 곳이 가장 안전하며 축복의 장소이며 옳은 삶임을 믿습니다. 아멘.
이과훈 (2020-05-19 02:35:45)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한 정복 전쟁을 하기 위해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헤아립니다 (3). 그런데 레위 지파의 남자들은 그 수에 포함시키지 않고 (49) 법궤의 성막과 그 안의 기구들을 관리하는데 전념하도록 합니다 (50). 레위 지파 남자들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성막을 책임지게 한 것은 영적 전쟁에 참여하는 우리에게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과 소통하기 위하여 자신의 자원을 따로 구별하여 드리는 것임을 가르쳐줍니다.

가나안의 강대한 적들을 상대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힘을 보태고 합심해서 싸움에 대비하는 것이 당연한 것 같은데, 이스라엘 자손을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의 명령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열 두 지파 중 레위 지파를 전쟁에 참여시키지 않고 성막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합니다. 당시 레위지파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과 소통하는데 작지 않은 자원을 구별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컸을 것입니다. 이는 전쟁은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삼상 17:47). 군사의 숫자, 완벽한 전략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그들을 연결하던 성막을 지키고 관리하는데 힘썼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에 순종해야 하는데 힘을 써야 합니다. COVID-19으로 인해 불확실해진 미래때문에 불안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허둥대지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준비하면서 하나님께 드릴 것은 구별하여 마땅한 경배를 올려드려야 합니다. 시간을 따로 떼어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나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 같지 않아 보여도, 모든 일의 결과가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잊지 말고 하나님께 꼭 붙어있어야 합니다. 본문 이후에 가나안 정복 전쟁의 양상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투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길흉화복을 주관하심을 믿고 하나님과 친밀하기 위해 마땅한 대가를 지불하는 제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를 위해 성령님께서 도와주시고 제 마음을 지켜주세요.
이강은 (2020-05-19 03:09:24)  
우리는 보잘것 없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주님께서 인도하시면 불가능한 것이 없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믿으며, 그 어떤 명령에도 순종할 수 있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
장은경 (2020-05-19 05:04:10)  
이스라엘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예비하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가나안땅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수 많은 전쟁과 연단과 훈련들이 있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해 지나온 시간들과 앞으로 때에 따라 주어질 시간들에 나의 육체와 영이 하나님 앞에 구별되어진 자녀로 따를 수 있도록 주시는 말씀에 순종하며 해야할 일들에 책임을 다하며 준비하는 제가 되게 하소서.
내 안의 성전이 세상적인 것들과 분명히 구별되어 지도록 늘 경계하며 거룩하게 지켜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일상에서의 삶 속에 주의 자녀로의 주신 책임을 다하며 상황에 휘둘리지 않게 하시며..강하고 담대히 그 뜻안에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이인범 (2020-05-19 05:05:44)  
레위인은 성막을 책임지고 다른 지파의 사람들은 전쟁을 준비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게 하시고
그 방향이 항상 하나님을 향해있께 해주세요.
윤사랑 (2020-05-19 07:14:08)  
하나님말씀을 따르는건 언제나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한시라도 말씀을 놓하지 않습니다
박지원 (2020-05-19 07:34:56)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계수 했을 때, 그 수는 60만이 넘었습니다.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힘든 광야생황을 하고 있지만
그 민족의 수는 (아직까지) 줄지 않고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돌보아주셨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60만이라는 숫자는 하나님께서 돌보고 계시던 성인남자들의 수입니다.
여자와 아이들을 더하면 적어도 200만명은 되지 않을까..
저도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그 사람들 안에 들어있기 원합니다.
(어느 이단의 주장과 혼동하시는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주야로 하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되새기며
언젠가 오실 주님의 날을 기다리기 원합니다.
박준혁 (2020-05-19 09:31:06)  
God orders the Israelites to count the number of people who are male and healthy to fight.
While I was reading this part of the scripture, I was reminded of something.
Recently, our family got a mail from the Census 2020 research.
The census research is conducted every 10 years to see how the
federal budget should be divided for the people living in the United States
as well as to calculate the immigrant population proportion.
With this in mind, why did God ask Moses to do a census research?
God even knows the number of hair on our bodies.
Shouldn’t he already know the number of healthy men among the Israelite population?

While thinking about this question, I took a hike around my neighborhood.
I remembered that in Genesis, God brought down 70 people of Jacob’s family into Egypt,
but after leaving Egypt and two years later,
they had 603,550 men and most likely even more women and children.
I believe that God was showing His people His covenant with
Abraham that he has fulfilled. God wanted to show that He kept His promise,
and He wanted His people to keep their promises with Him also.
박지원 (2020-05-19 11:09:50)  
"모압 언약 (Moab Covenant)"의 내용을 처음부터 찬찬히 읽는 중에
나의 눈길을 끌었던 단어는 "오늘" (today/this day) 입니다.
"모압 (평지) 언약"에 관한 기록은 이와 같이 시작됩니다:
[호렙]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세우신 언약 외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여 [모압] 땅에서 그들과 세우신 언약의 말씀은 이러하니라 (29:1).
"내가 이 언약과 맹세를 너희에게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우리와 함께 여기 서 있는 자와
[오늘] 우리와 함께 여기 서 있지 아니한 자들 에게까지이니라" (29:14-15).
[신명기에서 강조하는 "오늘"의 의미는 무엇일까?]


1 "내가 이 언약과 맹세를 너희에게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우리와 함께 여기 서 있는 자와
오늘 우리와 함께 여기 서 있지 아니한 자들에게까지이니라"

2 이 날 주어진 모압 언약의 내용을 간략하게 언급하겠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해주신 일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시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했던 언약대로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 언약은 오늘 함께 서있는 자와
서있지 아니한 자들에게까지 미친다고 하신 뒤,
다른 신을 섬기고 하나님을 떠났을 때를 경고하십니다.

3 [오늘]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 하기에 앞서
먼저 '함께 여기 서있지 아니한 자들'이 누구인지 들여다봅니다.
저의 성경 주석에 의하면 이 사람들은
이때 당시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미래에 태어날 이스라엘 백성들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조금 더 크게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앞으로 있을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일컫는 것입니다.
박지원 (2020-05-19 11:10:25)  
4 여기서 이야기하는 [오늘]은 여러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그중 첫째는 바로 그 날, 모압 언약이 이루어진 날입니다.
문자 그대로 바로 그 날 서있던 사람과
앞으로 태어날 이스라엘 사람에 대한 언약입니다.

5 두번째 의미는 이 글을 접하는 모든 사람의 [오늘]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의 내용을 보면
우리는 그 분의 백성이 되고, 그 분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영원한 약속이기 때문에
어느 시간에 보아도 같은 약속이 담겨있습니다.
지금 여기에 서있는 사람, 서있지 않은 사람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그 분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주신다는 언약..

6 두번째 의미로 보면 이 언약은 매일 새로워집니다.
이 영원한 약속은 언제라도 너무 늦지 않습니다.
언제든 이 말씀을 보고 묵상하는 [오늘]우리에게 약속해주십니다.
나는 하나님께 속하고 그 분은 나의 하나님이 되어주십니다.
이 영원한 약속을 묵상하며 하루를 마무리 합니다.
박지은 (2020-05-19 11:11:17)  
(**) [왜 신명기를 기록한 기자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지칭할 때 "단수 대명사를
사용한 것으로 기록을 했을까요? 성경학자들의 논점들 중 하나입니다.]

신명기 30장에서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 연설의 대상은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신명기 기자는 그들을 지칭할때 단수 대명사 (second person singular “You”)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명기 기자는 왜 “너희가”가 아닌 “네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칭했을까요?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유명한 연설들 중에
(신명기 30장에 나오는 것과 같이)
단수 대명사를 사용한 연설들이 꽤 있습니다.
그렇다면, 단수 대명사를 사용할때에는 분명 저자의 의도가 깊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제가 연설을 듣는 백성의 한 사람이라고 가정을 해본다면,
“너희가”라는 말보다 “네가”라는 말이 훨씬 강하게 마음에 꽂힐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너희들”은 개인보다 단체를 가리키고 있는 것 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너희들”을 사용했다면, 그 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의 단체로 여기는 것이기 때문에
말씀을 흘려듣는 백성들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박지은 (2020-05-19 11:11:34)  
비슷한 맥락으로, 심폐소생술 (CPR)을 시행할때에
환자의 의식여부를 체크한 이후에 가장 먼저 해야할것은
바로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911을 부르도록 하는것 입니다.
특히, CPR 교육시간에서는 한사람을 콕 찝어 직접적으로 말하라고 교육을 시킵니다: “You, call the 911!”
이러한 응급상황에서도 강조되는것은 “You”입니다.
사람 심리상 “다른 사람이 하겠지…”하며 미루려는 생각이 들지도 못하게
가장 직접적인 메세지를 던지는 셈입니다.

신명기 30장은 이스라엘 백성의 “선택”에 대한 강조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다른 사람이 듣겠지…”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하나님께서 개개인의 마음속에 선포하시듯이
깊이 말씀을 새기라는 뜻으로, 신명기 기자는 단수 대명사를 쓰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택으로 인해 바뀔 그들의 미래를 강조하고 있는
놀랍고 방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께서는 백성 개개인의 마음판에 깊이 새기길 원하시지 않으셨을까 생각해봅니다.
정은선 (2020-05-19 11:22:49)  
이스라엘 자손이 그대로 행하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알고 깨닫고 행하는 것에 있어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행함까지 가는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의 그 다음 계획이 무엇인지
묻기 전에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 듣기 원합니다.
이강은 (2020-05-19 12:03:42)  
<자리이타(自利利他)>

주일 설교말씀 중 목사님이 언급하신 ‘자리이타(自利利他)’라는 한자성어의 의미가
현재 우리의 삶에서는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이 말을 삶에 어떻게 적용해보면 좋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코로나 발생 이후로 사람들과의 교류 없이 지낸지 어연 두 달이 다 되어갑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고 있고, 타인과의 만남이 거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점점 개인적인 생활이 늘어나는 상황 가운데 ‘자리이타’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이론적으로는 ‘남에게 배려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에 충분히 동의하지만,
사실 남의 어려움을 직접 보지 않거나 느끼지 않는 상황에서 이를 실행에 옮기기는 어렵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의 삶의 모습이 더욱 개인적으로 변하고 있고, 이에 따라 남의 삶을 돌아보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상황 속에서도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여러 단체 혹은 개인이 기부를 하며 남을 돕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한 최근의 한 뉴스가 떠오릅니다.

지난 11일부터 한국에서 재난 지원금이 국민에게 지급되기 시작했는데,
온라인 신청 과정 중에 있던 ‘실수로’ 기부하게 되는 프로세스로 인해 기부금 취소 신청이 쇄도하였다고 합니다.
재난 지원금 기부에 대한 또 다른 흥미로운 기사도 있습니다.
대기업 일부 계열사가 임원을 상대로 재난지원금 기부를 독려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각 기업 임원들이 기부를 두고 눈치 작전을 시작했다는 기사였습니다.
기사에 실린 한 임원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코로나19로 연봉 일부를 반납하는 동의서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인했는데,
재난지원금도 그래야 하는지 고민이 크다”며 “회사가 언제 기부 독려에 나설지 몰라 신청도 미뤘다”고 합니다.

나라에서 지급한 재난 지원금을 ‘실수로’ 기부했다가 취소 신청을 하지 못해서 의도치 않게 기부하게 된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회사 윗사람의 눈치를 보고 기부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보며 저는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행동을 ‘자리이타’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이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돈을 남을 위해 기부했고,
분명히 그 덕에 어려운 상황에 처한 누군가는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개인주의가 팽배해져 가는 세상 속 ‘나만 잘 살면 돼’ 식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행동과 비교하자면 훨씬 이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리이타’의 뜻을 다시 한번 새겨봅니다.

‘타인을 이롭게 하면서 자신도 이롭게 한다’

이들의 행동이 타인을 이롭게 함은 분명하지만, 과연 그 자신들도 이 일을 통해 이로움을 얻었을까요?
기사의 인터뷰를 통해 느낄 수 있었듯이 이들의 선행이 본인에게는 이로움이 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우리의 진실된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지 못한 선행은 반쪽짜리 ‘자리이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타의에 의한 선행도 분명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들의 기부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세계가 혼란 속에 빠져있는 이 시기 가운데에서 자기 자신을 위한 생각만큼이나
남을 위한 생각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 속의 모든 존재들과 더불어 살아간다면,
완전한 ‘자리이타’를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저 또한 나의 것만을 채우기 위해 욕심내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홍은기 (2020-05-19 12:41:43)  
[월요일] 민수기 1장 성경공부 내용입니다.

1.인구증가의 발자취를 따라서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몇 명이 내려갔는지 찾아보았습니다.
출애굽기 1장 5절 말씀을 보면, 칠십 명이 내려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백삼십 년이 지나서 출애굽을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구는 사백삼십 년의 세월이 흐르자, 어른 장정만 육십만 명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출애굽기 12장 3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일은 매우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1장 8절에서 10절 말씀을 보면,
애굽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급격한 인구 증가를 목격하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애굽 왕은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보다 더 많고 더 강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애굽 왕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구 증가는 두려움 그 자체였습니다.
홍은기 (2020-05-19 12:46:29)  
2. 그렇다면 이 갑작스러운 이스라엘 민족의 인구증가는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까요?

인구 증가의 발자취를 따라가다보니
출애굽기를 기록한 모세는 이 이스라엘의 인구증가를 묘사할 때
창세기 1장에 나왔던 하나님의 축복 문구를 그대로 인용하여 사용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출1:7)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창1:28)

창세기의 말씀과 출애굽기 말씀을 보면서 아이들이 신기해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인구 증가가 하나님의 창조 축복이 성취된 결과 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신 지 보여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특별히 오늘 준혁이가 이 부분에 대해 자신이 큐티한 내용을 나눠주었습니다.
홍은기 (2020-05-19 12:50:33)  
3. 왜 인구조사를 했을까요?

민수기 1장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인구조사를 하라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구 조사를 시킨 이유를 찾아보았습니다.
민수기 1장 3절 말씀을 보면, 앞으로 다가올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을 계수하는데
인구조사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는 하나님의 군대로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민수기 1장 20절에서 43절까지 보면,
각 지파별로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성인 남자가 몇 명인지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전체성인 남자의 수가 육십만 삼천오백오십명이라고
민수기 1장 46절 말씀에서 그 숫자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민수기 1장이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전쟁의 승패는 전쟁에 참여하는 사람의 숫자에 달려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때는 전쟁에 사용하는 무기가 변변치 않았기 때문에, 사람의 숫자가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민수기 1장 마지막 부분에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치러야 할 전쟁이
단지 사람의 숫자에 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4. 누가 누구를 보호하는 것인가?

전쟁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은 바로 레위지파 사람들입니다.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치러야 할 가나안 정복 전쟁의 결정적인 승패는,
열두 지파의 육십만 대군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쟁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레위지파 사람들에게
앞으로 치러야 할 전쟁의 승패가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하게 되는 독특한 전쟁입니다.

레위지파 사람들이 어떤 일을 감당하기 때문에, 전쟁에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인지 준혁이가 질문을 했습니다

민수기 1장 47절에서 54절까지 보면, 레위지파는 첫 번째로 성막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막이 이동할 때와 성막을 다시 세우게 될 때, 레위 지파만이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레위 지파는 항상 성막 사방에 진을 치게 되어 있었습니다.
성막 바로 바깥에 레위 지파가 진을 치고,
그리고 레위 지파 바깥에 이스라엘 열 두 지파가 진을 치게 되어 있었습니다.
얼핏 보면, 열두 지파가 레위지파와 성막을 보호하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레위 지파가 열두 지파를 보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홍은기 (2020-05-19 12:54:47)  
5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게

목사님께서 본문에서 빼셨지만 51절부터 끝부분을 유심히 살펴 보았습니다.
레위 지파 사람들은 외인이 성막에 가까이 오면 가까이 온 그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왜 이렇게 하는 것일까? 왜 성막에 가까이 온 외인을 죽여야 하나? 이 질문을 나눠보았습니다.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 사방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
53절 말씀을 보면, 레위지파의 아주 중요한 책임은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레위지파 사람들이 성막을 거룩하게 보존하면,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치르게 될 전쟁에서 승리는 언제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으로서 앞으로의 모든 전쟁을 직접 지휘하시고 전쟁을 주도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에서 의지해야 하는 것은, 무기도 아니고, 사람의 숫자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만 순종하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 온전히 아버지만 바라봅니다.
이번 한주간도 펼쳐 보여주실 말씀 속에서 힘을 얻길 원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에게 지혜를 허락해주세요.
이선미 (2020-05-19 18:40:36)  
광야 40년의 고생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이 아님을 기억
하기 원합니다. 계수에 포함됨이 가나안 입성을 보장하지 않음을
잊지 않기 원합니다. 광야의 연단 중에 말씀 안에 깨어있게 하옵소서.
'믿음의 순종'으로 '청함을 받은 자'에서 '택함을 입은 자' 되는 은혜
입게 하옵소서.
이광태 (2020-05-19 23:36:11)  
주의 소명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주의 소명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주소서. 아멘.
박지은 (2020-05-19 23:44:09)  
시내 광야에서 행했던 1차 인구조사에서 계수되었던 단 한 사람도
모압평지의 인구조사 계수에 들어있지 않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칼같이 이루어진것을 보니
놀랍기도 하고 조금은 두렵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억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노하시기를 더디하시는 분이시지,
절대로 노하시지 않는 분은 아닙니다.
이번 한주간 더욱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관계속
인구조사의 의미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윤소영 (2020-05-19 23:55:35)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의 아버지 되심을 온전하게 전심으로
삶 속에서 믿고 살아가길 원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같이 믿음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성령님 믿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게 도와주세요. 아멘.
박지원 (2020-05-20 00:36:50)  
두번째 계수 때에는 첫번째 계수했을 때 포함되었던 사람들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한 사람도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그 숫자도 처음 계수했을 때와 거의 비슷하지만 조금 줄었습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 모습입니다.
세상의 눈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원합니다.
이강은 (2020-05-20 03:21:19)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약 광야생활 중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했다면
첫 번째 인구조사때 계수되었던 사람들이 두 번째 인구조사에도
남아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없이 자비를 베푸시지만,
동시에 우리가 두려워 해야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주님을 경외하여 주님 말씀에 언제나 순종하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이과훈 (2020-05-20 03:23:56)  
광야에서 두 번째 인구조사가 행해졌습니다. 불평과 불신으로 얼룩졌던 1세대는 모두 죽고 (64), 가나안 땅을 밟고 차지할 2세대들 중 전쟁에 나갈 만한 자들의 수를 헤아립니다 (2). 나중에 그들이 차지하게 될 땅을 공정하게 나누기 위함입니다 (54-55). 광야 1세대들은 그들이 불평한대로 되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에게 압도되어 하나님을 믿지 못했고,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것들에 대해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결국 40년간 광야에서 떠돌다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제가 광야1세대처럼 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팍팍한 마음에 믿음이 없는 표현을 한 것들이 마음에 걸립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이 없음을 탓하시면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시면 어떡하나 싶습니다. 지금이라도 마음과 입술을 다잡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바라보며 그 땅을 허락하실 하나님께 감사하며 믿음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아직 손에 잡히는 것은 것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임을 신뢰하며 이미 얻은 것처럼 나아가겠습니다. 광야 2세대가 그렇게 했고, 그 기업을 실제로 얻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능력을 맛보았으니 저의 인생에도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일하실 것을 기대합니다. 제가 약하고 적이 강력해 보여도 하나님의 능력을 입으면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세요. 함께하실 성령님 기대합니다.
이강은 (2020-05-20 04:55:08)  
(**) [우리들 중에는 신앙생활을 통해 우리가 얻는 눈에 보이는 이득(利得)
보다도 손해가 더 많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없었나요? 교회에 헌금(獻金)도 내야하고
시간과 노력 봉사도 해야하고... 하고 싶은 일도 절제를 해야하고... 신앙생활이 괜히
부담(負擔)스럽기만 하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는 없는지요?]

주일 설교 말씀 중 목사님이 올려주신 이 질문을 보고, 저의 한국에서의 교회 생활을 떠올려보게 됩니다.

매주 주일, 저의 아침은 어린이 예배를 준비하기 위한 교사기도회로 시작됩니다.
어린이 예배 반주와 아이들과의 공과 공부가 끝나고 나면 바로 오전 예배 성가대 연습에 참석합니다.
그 후 11시 예배 반주를 마친 뒤 점심 식사 후 바로 청년부 모임이 이어지며, 저는 간식준비를 하고 회계장부 정리를 맡습니다.
청년부 모임이 끝나면 바로 이어지는 오후예배 반주를 하고,
오후 예배 후 다시 한번 그 다음 주 예배를 위한 성가대 연습 반주까지 하고 나면 저의 주일은 마무리가 됩니다.

주일에 교회를 다녀오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굉장히 지쳐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당시에는 어쩌면 위의 질문과 같이 제가 이 일들을 통해 얻게되는 이득보다도
손해가 더 많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일 마다 교회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고, 에너지를 쏟는 저를 보며
주변의 친구들은 '그 시간에 공부를 하거나, 차라리 쉬는게 낫지 않냐'며 의아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인생을 다시 돌아보면 그 시간들이 결코 저에게 손해가 아니었음을 알게됩니다.
나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하나님께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절대 이를 헛되게 여기지 아니하시고
저의 삶을 더욱 귀한 것들로 채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하시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교회의 여러 지체들을 통하여
그러한 섬김의 길을 배우게 하시고, 그 삶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제 삶의 모습을 보며 '지금 나는 과연 주님을 섬기는 길을 잘 살아가고 있는가?'
하고 생각해보니, 부끄러운 마음만 가득 들게 됩니다.
코로나로 인해 주일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된 이후로 저에 대해 새로 깨닫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그동안 저의 신앙생활은 외부적인 틀이나 자리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일마다 예배를 집에서 혼자 드려야 하고, 교회에서 어떠한 일도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다시 한 번 내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고 여호와를 섬겨야겠다는 마음을 다져봅니다.
한주간 나의 마음과 시간을 다해 주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할 때에 주님께서 함께해주시길 바랍니다.
장은경 (2020-05-20 05:23:26)  
시내광야과 모암평지에서의 인구 조사를 보며 1세대의 하나님의 평가가 성적표 같이 후손들에게 발표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광야 2세대가 그 일들을 겪고 들으며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두려움과 자비하심의 감사함을 함께 배우며 약속의 땅으로의 시작을 위해 다시 믿음로 무장하여 준비했음을 생각합니다.
나의 삶이 하나님의 책안에 어떻게 적히게 될까..생각해 봅니다.
갈렙과 여호수와 같이 확고한 믿음으로 세상의 편견과 판단들과 싸워 내 안에 주님이 이끄심을 따라 시작의 설레임과 두려움을 늘 가지고 겸손히 끝까지 말씀에 순종하여..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인범 (2020-05-20 05:31:04)  
또 한 번의 인구조사를 통해 전쟁을 준비하는 이스라엘 민족..
이번 인구조사에는 땅을 사람수에 맞게 나누기 위함도 있습니다.
각 사람의 필요에 맞게 채우시는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인구조사 없이도 각 지파의 사람수를 아시고 필요에 맞게
땅을 나누어주셨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인구조사는
이스라엘 민족이 납득하게 만드시기 위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코로나 기간동안 재정현황을 돌아보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어렵고 부족한 상황에서도 견디게 하시고 결국 모자라지 않게
공급하고 계시는 손길을 봅니다. 돌아보고 체크해야 알 수 있었습니다.
그 행하시는 일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장동은 (2020-05-20 10:03:4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백성들을 떠올리며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하나님 주신 명령에 순종하고 말씀따라 정결하고 거룩하게 살 때에 주님의 은총으로 축복을 누릴수 있음을 기억하겠습니다. 광야에서 고생만 겪고 결국 약속의 땅을 받지도 못하는 안타까운 삶이 되지 않도록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정은선 (2020-05-20 12:36:15)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영적인 눈으로 상황들을 바라보고
온전히 신뢰함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기도합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도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
그 은혜를 누렸음을 기억합니다. 믿음의 경주에 있어
완주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를 구합니다.
박준혁 (2020-05-20 13:12:36)  
I have lots of free time nowadays because of the COVID-19 pandemic.
I decided to compare the first census of each tribe from yesterday’s
scripture and the second census of each tribe from today’s scripture.

Tribe: Census 1 Census 2 Difference
Reuben 46,500 43,730 -2,770
Simeon 59,300 22,200 -37,100*
Gad 45,650 40,500 - 5,150
Judah 74,600 76,500 +1,900**
Issachar 54,400 64,300 +9,900
Zebulun 57,400 60,500 +3,100
Manasseh 32,200 52,700 +20,500***
Ephraim 40,500 32,500 -8,000
Benjamin 35,400 45,600 +10,200
Dan 62,700 64,400 +1,700
Asher 41,500 53,400 +11,900
Naphtali 53,400 45,400 - 8,000
Levi 22,000 23,000 +1,000

While calculating these numbers I thought,
“Why is there such a significant difference between each tribe population?”
The tribe of Judah always had the highest population in both censuses**,
the tribe of Simeon lost almost two-thirds of their whole tribe*,
but the tribe of Manasseh almost grew two-thirds of the first count***.

I will remember these changes and continue to think
about why God allowed these dramatic changes to happen.
박지은 (2020-05-20 13:44:29)  
(**) [우리들 중에는 신앙생활을 통해 우리가 얻는 눈에 보이는 이득(利得)
보다도 손해가 더 많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없었나요? 교회에 헌금(獻金)도 내야하고
시간과 노력 봉사도 해야하고... 하고 싶은 일도 절제를 해야하고... 신앙생활이 괜히
부담(負擔)스럽기만 하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는 없는지요?]

한국에서 보냈던 제 어린시절의 기억들을 돌아보면
교회는 가장 큰 부분을 차지 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저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따라
모든 새벽예배, 수요예배, 금요예배, 주일예배를 참석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대화속의 하나님,
권사님 장로님들의 새벽 기도 소리,
주일학교에서 배우는 성경의 이야기들로
제 어린 시절의 하루하루는 채워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 선택보다는 환경으로 인해 신앙생활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미국으로 삶의 무대를 옮겨 와서 블루밍턴 한인 장로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중학교 때 경험한 깊은 어려움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동력은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고등학생이 되고,
나만의 안정적인 루틴을 찾게 되면서
성장한 몸과 함께 자라난 나의 자아는
“신앙생활”과 “어떤 다른 무엇”을 저울질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말에 예배를 드리고 또 예배를 준비하며 보내는 시간을 줄여볼까 고민해 볼 때가 있었습니다.
이 시간 눈 앞에 있는 공부를 하는게 더 유익하지 않을까? 하면서요…
주변 친구들이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것을 보면서 더 그렇게 생각했던것 같기도 합니다.
특히,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
예배가 망설여질때도 있었습니다.
박지은 (2020-05-20 13:45:06)  
또 신기하게 이중적인 제 모습을 발견 할 때도 있었습니다.
가고싶던 대학의 교수님과 인터뷰가 잡혔는데 주일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인터뷰 시간을 조정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아마 누가 보면 예수님에 미쳐 있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게 말이죠.

두 모습 다 저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워낙 어릴때부터 습관처럼 되어져 버린 신앙생활이란 일종의 제도안에
스스로를 가둬두고 있는건 아닌지 철저히 돌아볼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제가 이 땅에 태어난것은 제 선택이 아니었지만
이후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나갈 것인가는 제 선택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듣게 되듯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복된 삶인지 매일 느끼며 살면 좋겠습니다.
저울질 하지 않고, 또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알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면 정말 좋겠습니다.

이제 저는 대학생활이라는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엽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하나님, 우리 부모님의 하나님이 아닌
제 하나님과 일대 일로 대화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더 많은 자유와 더 많은 선택의 순간들 속에서
지혜로운 선택들을 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박지원 (2020-05-20 14:01:07)  
첫 계수 때 이스라엘 성인 남자의 수는 603,550명이었고,
두번째 계수 때에 성인 남자의 수는 601,730명이었습니다.
그들의 수가 크게 바뀌지 않고 유지된 것 같습니다.
출애굽 후부터 첫 계수 때까지는 그 수가 많이 늘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첫 계수 이후부터 두번째 계수 때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의 수가 많이 늘지 않고 유지되었습니다.
전염병이 휩쓸고, 하나님의 진노 이후에도 그 수를 늘리지 않고
유지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윤사랑 (2020-05-20 14:03:09)  
오늘 큐티는 세상 이야기랑 성경과 썩어보겠습니다.
요즘 모두 아시겠지만, 코로나 전염병이 이 세상을 덮고 있습니다.
오늘 묵상도 코로나처럼 병 이야기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감염이 되었던 이야기 입니다. 현재 상황과 같습니다.
전염병이 신속히 사라지고, 기도할수 있는 마음을 주세요.
홍은기 (2020-05-20 14:54:33)  
[화요일] 민수기 26장 성경공부입니다.

1.지금 서 있는 이 곳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서 있는 곳은 모압평지입니다.
모압평지 앞에는 요단강이 있었고, 맞은편에는 여리고성이 있었습니다.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눈 앞에 둔 그 곳에서 하나님은 이십 세 이상의 인구조사를 명하십니다.
그렇게 지파별로 집계된 이스라엘의 총인원은 601,730명이었습니다.

모압평지에서 이뤄진 이번 인구조사는 두 번째 인구조사인데,
첫 번째 인구조사는 민수기1장에 기록된 바와 같이 “시내광야”에서 있었고
당시 집계된 인원은 603,550명이었습니다. 첫 번째 인구조사 때보다 1,820명이 줄어들기는 했습니다.
60만명의 장정으로 이뤄진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는 민수기 1장의 시내광야 때나,
민수기 26장의 모압평지 때나 크게 변함이 없습니다.
장정만 60만인 대군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요단강가에 이르는 여정은
그 규모만으로도 대장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수기 26장에서 계수된 60만 대군은 민수기 1장에서 계수한 60만 대군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광야여정에서 하나님을 멸시하고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은 이들은 모두 죽었고,
하나님을 보고 그의 목소리를 들은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민수기 26장 모압평지에 남아 있습니다.
홍은기 (2020-05-20 14:57:35)  
2. 두 번째 인구조사는 왜 하셨을까요?

민수기 26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구를 두 번째로 조사한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민수기 1장에서 행한 첫 번째 인구조사는 가나안 정복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군대로 재편성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인구조사는 군대로 재편성하는 데만 그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앞으로 가나안 땅을 분배할 것을 염두에 두고 행한 조사였습니다.
“오직 그 땅을 제비 뽑아 나누어 그들의 조상 지파의 이름을 따라 얻게 할지니라”
이렇게 조상의 지파를 따라 앞으로 땅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3.제비뽑기

제비를 뽑아 땅을 나눈 것에 대해 아이들이 신기해 했습니다.
성경 속에서 제비 뽑는 장면 중에 기억나는 것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사가랴 제사장이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한 것,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 때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던 장면,
제비가 뽑힌 배에 타고 있던 요나 ….

하나님은 왜 제비를 뽑게 하셨을까?
제비를 뽑는다는 것은 사람의 의지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일의 결과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이 부분에 잠시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잠시 나눴습니다.
주중에 다시 나누기로 했습니다.)
제비뽑기에 대한 방법도 이미 민수기 26장 52절-56절을 통해 하나님이 자세히 말씀해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지파는 그들의 인구 비례에 따른 기업 분배를 원칙으로 하되,
인구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제비뽑기로 기업을 분배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정된 땅은 각 지파 조상의 이름을 따라서 얻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비뽑기를 통해 기업을 분배한 것은
땅 분배가 결코 인간의 생각이나 권위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의해 결정되어지도록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사실을 의심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
의문을 나눴습니다.
홍은기 (2020-05-20 15:04:24)  
4. 거대한 죽음의 메세지

이 거대한 죽음은
가나안 땅 앞에선 그들의 후손들에게 전해지는 메세지로 지은이는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죽음이 어떤 메세지를 준다는 것일까 나눠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멸시하지 말고 ‘응시’하며,
하나님께 귀를 막지 말고 ‘청종’하라는 말씀인 것 같다고 했습니다.
약속의 땅은, 하나님을 응시하고 청종하는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은총이라고
강력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야심차게 그리고 가슴 벅차게 시작했던 출애굽 여정은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과 원망 그리고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의 철퇴를 맞는 장면으로 이어지고
25장까지 결국 출애굽 1세대가 다 죽는 결과를 초래하고 맙니다.

5.하나님은 왜 숫자를 유지시키셨을까..죽음의 징표들

목사님께서 주신 본문은 아니지만 르우벤 지파 엘리압의 아들 중에 다단과 아비람이 있었고,
이들은 고라의 무리와 함께 당을 지어 “여호와께 반역”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론의 아들들 중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과 “다른 불”로 분향을 하다가
죽임을 당했다고 기록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고 자신의 생각대로 분향하던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은,
먼저 기록된 다단과 아비람의 죽음과 함께 하나의 징표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고됩니다.

뿐만 아니라 본문은 더 큰 죽음이 있었음을 기록합니다.
"모세와 제사장 아론이 시내 광야에서 계수한 이스라엘 자손은 한 사람도 들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반드시 광야에서 죽으리라 하셨음이라
이러므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오늘 민수기 26장이 언급하고 있듯이 출애굽 1세대는 자신들의 불신앙과 불평으로
광야에서 모두 죽었지만 출애굽 2세대의 숫자도 동일하게 60만명이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악으로 인한 실패로 처절하게 보이지만…
또다시 결국에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인해 60만명은 유지되고
하나님의 계획은 결코 실패되지 않음을 다시 느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거슬렀던 다단과 아비람의 죽음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던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멸시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죽음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후손들에게 온 삶으로 남긴 메세지,
하나님을 응시하고 청종하라는 그 말을 가만히 마음에 새겨봅니다
이선미 (2020-05-20 18:22:11)  
'결과'만 보는 사람을 의식하기 보다 '마음의 동기'까지 살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살기 원합니다. 세상이 칭찬하는 결과가
이기적인 동기와 교만한 과정으로 이루어진 것이면 회개하기
원합니다. 세상이 수근대는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의 방법 따랐음을
고백하며 기뻐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악한 마음의 동기로 인해
하나님을 두려워 하기 보다 선한 마음의 동기로 인해 하나님을
기뻐하게 하옵소서.
진문균 (2020-05-20 22:17:36)  
공의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
백은지 (2020-05-20 22:41:43)  
상황들 앞에 두려움이 나를 지배하지 않기 원합니다. 겸손히 주님앞에 나아가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 할 수 있기 원합니다. 주시는 말씀을 따라 바른길을 택하고 또 행하는 믿음의 자녀로 주님 인도해주세요.
박지원 (2020-05-20 23:38:26)  
마음이 어렵습니다.
영안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고 육안으로 세상을 봅니다.
그러면서 계속 육안에 비치는 세상의 것들로만 채워나가려 합니다.
어떻게 이 세상에 살면서 하늘의 것들에 마음을 둘 수 있을까..
당장 땅의 것들에도 만족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하늘의 것을 바랄 수 있을까..
오늘 본문에서의 다윗을 보며 제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나의 마음을 주님께로 돌려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이과훈 (2020-05-21 00:56:03)  
자신의 역량을 정확하게 가늠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데는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 인구 조사는 군사력을 알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이기에 (1), 다윗의 측근인 요압은 다윗에게 인구 조사를 그만 둘 것을 간언합니다 (2-3).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을 충동하신 것이므로 (1) 인구 조사는 진행되고 (8-9) 결국 다윗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벌을 받아 전염병으로 칠만 명이 목숨을 잃습니다 (15).
본문을 묵상하니 하나님을 믿는다면 자신의 역량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더 신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스라엘의 경우 특히 그러했습니다. 이제까지의 전쟁에서 뛰어난 전략이나 압도적인 군사의 수로 이겼던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이기도록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인구조사는 그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이제까지 이스라엘의 능력보다 더 큰 승리를 거두게 하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행동이었습니다. 주위의 만류도 소용 없었고 결국 다윗이 의지하려고 했던 군사력이 전염병으로 인해 크게 감소되는 결과만 가져왔습니다 (15).
저도 하나님을 더욱 신뢰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제 인생을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여기까지 이끌어 오셨는데 부족한 내 실력만 바라보며 바꿀 수 없는 일을 걱정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께 더욱 의지하고, 집중하고, 제게 허락하신 일들을 감사함으로 감당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저의 약함과 무능력함에 집중해서 하나님이 일하실 수 없게 만드는 우를 범하지 않겠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충동하신 것이긴 하지만) 인구조사 때문에 도리어 인구가 줄어들었던 다윗의 이야기를 교훈 삼아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에 의지함으로써 자신을 갉아먹고 하나님을 슬프게 하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오늘도 쓸데없는 것에 시간과 마음을 낭비하지 않도록 성령님께서 도와주세요.
이인범 (2020-05-21 01:35:44)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인구조사를 하는 것.
다윗의 행동만 보면 민수기에 나온 두번의 인구조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가기위해 전쟁을 준비하던,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인구조사를 행한 이스라엘 민족과는 달리 다윗은 다른 마음을 두고 인구조사를
시행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사무엘하 24장 1절에는 이스라엘에 대해 분노하셔서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게 시켰다고 되어있지만
인과관계를 생각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사무엘하 22장에 하나님께 승리의 찬송을 부르던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의 분노를 사는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승전이 욕심을 키운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겉보기에는 같은 행동이더라도 그 마음에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그 처한 상황에 맞는 행동인지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지는 것을 봅니다.
오늘 내가 하는 것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하고 있는지, 내가 처한 상황에서 해야할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바른 방향으로 인도해주시길 기도합니다.
박지은 (2020-05-21 01:57:03)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저는 늘 하나님의 뜻과 나의 계획이 부합하기를 원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하고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홍은기 (2020-05-21 02:32:09)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바로 제 본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고 말은 했지만
어느 순간 지금의 삶에 안주하려하며
지금의 나됨을 여러 사람들 앞에서 과시하려는 모습들을 봅니다.
나약한 인간이기에 끊임없이 이러한 유혹에 현혹되곤 합니다.
다윗과 이스라엘을 시험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오
다윗과 이스라엘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다시금 마음을 다잡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장은경 (2020-05-21 04:01:06)  
다윗을 충동케 하신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진노를 치시려 다윗을 충동케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충동이란 마음을 흔들어 어떤일을 하도록 부주키는 것이라 생각해 보면
다윗에게도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 싶었던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던 것일까..마음과 생각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그 또한 드러내어 보게 하신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치시려 지도자인 다윗의 죄를 드러내시어 징계하시지만 그 징계가..사랑하는 자,택한자들이 하나님 앞에 올바로 살아가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매임을 깨닫습니다.
몸과 마음이 느슨해 지고 약해져 있을 때 오는 마음과 생각들을 더욱 더 경계하여 죄에서 멀어지게 하소서.
하나님을 경외함이 내 안에서 떠나지 않도록 붙잡아 주시어 때에 따라 주시는 축복과 징계하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그에 따르는 감사와 회개의 열매가 은혜안에 잘 맺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이강은 (2020-05-21 05:19:3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충분한 복을 주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에 만족하지 못하고 금방 또 다른 것을 두려워하거나
그 반대로 교만에 빠지기도 합니다.
어떤 상황 가운데에서도 두려워하지도, 교만하지도 아니하고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께만 두고 살아가길 원합니다.
박준혁 (2020-05-21 11:43:57)  
While reading the scriptures from Deuteronomy and Joshua,
I wondered if the “murder hornets” were referring to actual,
real-life hornets or if it was a symbol of God’s wrath.

If the “murder hornets” were actually referring to real hornets,
I would first have to see if they could survive in the desert and the extreme temperatures.
I searched up online and found out that hornets can be
found in the deserts and the Palestinian regions.
The stingers of the hornets contain poison and can kill a human being if stung multiple times.
In conclusion, I believe that the hornets
were real and actually could have influenced the battles that the Israelites had to fight.

A more modern reference to “bees” is the character
Bumblebee from the movie “Transformers”.
He is a very quick and strong fighter that supports Optimus Prime,
the protagonist “leader” in the movie.
Sometimes, Bumblebee changes the flow of losing battles to winning battles.
홍은기 (2020-05-21 11:49:58)  
**“생명의 양식”에 관해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의 한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제자들 중에서 여럿이 이 가르침을 듣고 (수군수군 거리다) 말합니다.
:”도대체 이 말씀은 뭐가 뭔지 참 어렵도다 누가 이런 것을 제대로 알아 들을 수 있느냐?
[그러고 나서 (요한의 기록에 따르면) 그때부터 예수의 제자들 중에 많은 사람이 그를 떠나가고
다시는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도 내 곁을 떠나려 하느냐?”
[코로나 19를 겪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던져지는 질문이 아닐까?]

목사님께서 지난 주 설교 중 언급하신 말씀 요한복음 6장 오늘 아이들과 나눴습니다.

오병이어 기적 때문에 포만감을 얻은 군중은 결코 예수님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은 상상 속에서 예수가 다스릴 왕국의 부와 번영을 꿈꿉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들의 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6:35)이기에, 자기의 살과 피를 먹으라(6:56)고 명합니다.
자신을 먹어야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산다고 가르칩니다(6:57, 58).

이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 없습니다.
군중이 듣고 싶은 이야기는, 내가 너희의 왕이다. 부족함 없이 채워주겠다.
포만감과 행복과 만족, 부와 번영을 주겠다고 약속하면 그만이지,
나의 살과 피를 먹으라는 듣기에도 끔찍한 소리는 군중의 기대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자신들의 기대에 어긋나자, 다수의 제자는 그곳을 벗어납니다.
그리고 열두 제자의 마음도 흔들립니다. 66, 67절입니다.
홍은기 (2020-05-21 11:54:09)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너희도 가려느냐”라는 주님의 말씀이 가슴을 칩니다.
모든 이들은 각자의 기대, 각자 기대하는 마음을 품고 하나님 앞에 옵니다.
그리고 기대를 반영하여 하나님을 정의합니다.
진학, 취업과 결혼, 승진과 시험, 건강, 부와 명예, 복을 주시는 왕으로 규정합니다.
그러나 열정도 잠시, 자신의 기대를 저버리면 “너희도 가려느냐”라는 주님의 음성이 무색하게 등을 돌립니다.

코로나로 이 어려운 시기를 경험하며
우리의 기대와 다르며 상상도 할 수 없던 일들을 펼쳐 보여주시는 하나님이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성경 본문 중 전염병이라는 단어가 성경에서 나올 때마다
우리가 벌을 받고 있음에 오싹해지기도합니다.
손발이 다 묶인 채 어찌할 바를 모를 때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의 감정으로 치닫기도 합니다.


특히 먹고 사는 문제에 당면한 저희들에게는 참으로 답답합니다.
아이들과 이 문제들을 나누면서, 이번 한주간 나누는 많은 말씀들을 대하며
부모로서 아이들도 혹여나 하나님을 떠나게 될까 눈치를 보게됩니다.
인류에게 의식주의 문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생존을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먹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먹어야 합니다.
먹고 사는 것이 인류의 과업이지만, 순서에 따라 삶의 의미와 방향은 전혀 다릅니다.

생명의 떡,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눈다는 것은 참된 삶으로 초대받는 일입니다.
참된 삶의 의미를 발견하여 ‘너도 가려느냐’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주님,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생명의 떡을 먹었기에, 기꺼이 나의 몫과 권리를 나누는 사람입니다”.
비록 내게 아무것도 없고 빈 들에서 허기진 배를 움켜쥐며, 광야에서 목마름과 배고픔에 쓰러지더라도,
스스로 계신 하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만나와 메추라기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만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가 주님 안에 있으며, 주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에 우리는 결코 다시 주리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도 세상속에 허기짐을 이 생명의 떡으로 채워나갑니다.
우리에게 지혜를 허락해주시고 용기를 허락해 주십시오.
주님의 깊은 사랑을 더욱 느끼길 소망합니다.
박지은 (2020-05-21 12:18:12)  
1. 오늘 수요일 본문은 몇 차례나 저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동시에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사무엘하 24장 1절).
다윗이 인구조사를 실시하게 된 배경 이면에는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그 동기였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언급만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어떤 죄를 지었는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다시” 진노하셨다는 표현을 통해
그들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를 반복해서 저질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복되는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충동시켜
인구 조사를 실시하도록 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시려고 다윗의 감정을 흥분시켜 인구조사를 하도록 하셨다고 이해해도 될까요?

그런데 그렇게 내용을 따라가다, 저는 당혹스러운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다윗이 백성을 조사한 후에 그의 마음에 자책하고 다윗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하 24장 10절).

본문 1절에서 성경은 다윗이 인구조사의 실시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반복된 죄를 짓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시기 위함이셨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0절은 다윗이 그 일로 자신을 자책하며
하나님께 죄를 지었음을 고백하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 연출됩니다.
박지은 (2020-05-21 12:18:59)  
2. 본문 1절은 인구조사가 하나님의 의도로 시작되었음을 밝히고 있는데,
다윗은 왜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며 자신이 죄를 저질렀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일까요?
오전부터 시작해서 저를 당혹스럽게 한 본문은
저녁을 먹고 난 지금까지도 몹시 혼란스럽지만 계속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이에 왕이 그 곁에 있는 군사령관 요압에게 이르되 너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로 다니며
이제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인구를 조사하여 백성의 수를 내게 보고하라 하니” (사무엘하 24장 2절).
다윗은 요압에게 인구 조사를 실시하도록 명령했지만,
인구조사를 군대장관인 요압에게 시켰다는 것에서 저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인구가 몇명인지 세어보려고 했다면 군대장관보다는 다른 이에게 명령하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다윗의 인구조사 목적이 순수한 인구 조사라기보다는 군사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었음을 유추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다윗이 왜 본문 10절에서 자책하며 자신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다고 고백하고 있는지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이해가 됐습니다.

다윗이 오늘 인구조사를 하면서 다른 사람도 아닌 총사령관이었던 요압을 통해 인구조사를 실시하는 모습은
이 인구조사를 바탕으로 향후 전쟁에 대비하겠다는 인간적인 계산이 깔린 행동으로 느껴집니다.
총사령관 요압에게 지시한것은, 곧 앞으로 전쟁에 있어 하나님보다는
자신의 군사력을 의지하겠다는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의 일면이 아니었을까요?
또는, 자신이 지닌 군사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살펴봄으로
이스라엘의 강함과 자신이 지닌 권력을 자랑하고자 하는 교만함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다윗의 의도를 간파했던 요압이었기에
본문 3절에서처럼 다윗에게 “어찌 그런 일을 하려고 하며 또 기뻐할 수 있느냐?”고 충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압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 많지 않아서 아닐 수 도 있습니다.)
이후 인구조사를 마친 다윗은 그런 자신의 모습에 양심의 가책을 받고,
주님께 자신의 어리석음과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게 됩니다.
하지만 다윗의 인구조사는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백성 7만명이 전염병에 걸려죽게 되는,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징계의 통로가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징계하시는 과정에 다윗의 교만함이 일조했음을 알 수 있지만,
만약 우리가 오늘 본문의 내용만으로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분명 하나님께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감정과 생각을 조정하시는 분으로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다음주 목사님께서 올려주실 역대상 21장을 살펴보며 공부를 더 해보기를 기대합니다.
같은 사건을 성경 다른곳에 기록한 내용들이 있다면
분명히 살펴볼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면 의문들을 조금씩 풀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박지은 (2020-05-21 12:20:53)  
3. 다윗이 심히 자책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 그 다음날, 하나님께서 선지자 갓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너는 가서 다윗에게 전하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너는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사무엘상 24장 12절).

선지자 갓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세 가지의 옵션을 주고 있습니다.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아뢰어 이르되
왕의 땅에 칠 년 기근/흉년이 있을 것이니이까 혹은
왕이 원수에게 쫓겨 석 달 동안 도망하실 것이니이까 혹은
왕이 다스리는 온 땅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퍼질 것이니이까” (사무엘상 24장 13절).

우선, 하나님께서 심판의 순간에서도 다윗에게 선택권을 주신다는 것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어릴때 엄마에게 혼날때 엄마가 “몇대 맞을래?”라고 말하신것이 갑자기 기억이 나면서
그때 당혹스러웠던 기분이 상기되었습니다.

처음에 이 말씀을 볼때에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선택권을 주셨기 때문에
오로지 다윗에 선택으로 인해 전염병이 돌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전제를 두고 생각해볼때에
전염병의 기간이 다른 두 재앙보다는 짧아서 다윗이 전염병을 골랐나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딱 한 재앙, 정확하게 기근이면 기근, 또는 전염병이면 전염병, 이라는
명확한 선택이 아닌, 조금은 모호한 대답을 합니다:
“내가 고통 중에 있도다 청하건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많으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사무엘상 24장 14절).

물론 그 상황에서 한가지를 명확하게 고른다는것이 쉽지는 않았을거라 생각은 됩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사람의 손에 빠지는 것”은 도망다니는 것이고
“여호와의 손에 빠지는것”은 기근이나 전염병이라는 생각을 하며
기근이나 전염병을 택한다는 의미로 대답을 한것일까요?

다윗 왕이 이스라엘 초대 왕이었던 사울왕을 피해 다녔던 시간들이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아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노라”라고 말하며
다른 두 재앙 중 하나를 하나님께서 선택하시면 그것을 달게 받겠다는 말이었을까요?
박지은 (2020-05-21 12:22:12)  
4. 어찌보면 하나님께서는 죄를 범한 이스라엘 백성을 징계하시기 위해 다윗을 꼭 사용하시지 않아도 되셨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뱀을 보내셔서 그들을 징계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을 벌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다윗의 인구조사 이면에는 다윗의 교만함을 이용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넘어뜨리려는 사탄의 계략이 있었던걸까요?

저는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로부터 제일 많이 듣는 말이 교만함을 주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도 들어서 교만의 기역자만 들어도 눈이 감길 정도입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의 인생에 자리에 내가 주인이 되는 순간 교만함의 옷을 입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옷은 순식간에 나에게 입혀지고 그 옷은 벗기가 힘듭니다.
교만함은 나를 나 되게 하신 하나님을 잊고 그 앞에서 잘난 체하고 뽐내는 일입니다.
교만은 당사자를 쓰러뜨림은 물론이고,
그가 속한 공동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킵니다.

하나님 아버지! 말씀과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 교만함을 멀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박지원 (2020-05-21 12:39:15)  
[인간들에게 주어진 자유의지(自由意志)와 하나님의 절대주권(絶對主權)의 상호 관계
(相互關係)는 신학자/성경학자들의 오랜 논점의 대상이요 불가사의(不可思議)입니다.]


1 장 칼뱅은 <기독교 강요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21장에서
하나님께서 어떤 이들은 구원에 이르도록,
또 어떤 이들은 멸망에 이르도록 예정하셨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로 선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한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Pre-destination 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운명론과도 비슷해 보입니다.
Pre-destination 을 신봉하지 않는 사람들은 흔히
"우리가 뭘 어떻게 하던지 이미 다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굳이 전도 등을 하며 열심히 살 필요가 있는가' 라며 반박합니다.

2 에라스무스는 그의 저서 <자유의지론 (De libero arbitrio diatribe sive collatio)>에서
사람에게는 자유의지가 있고, 그 자유의지로 인해
영원한 구원으로 인도되기도 하고 벗어나기도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Free will 이라고도 하는 이 주장은 인간이 선택을 하기 때문에
성경의 약속들도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회개와 세례의 교리도
자유의지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루터는 인간은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비판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맹렬히 반박했습니다.

3 절대주권과 자유의지의 논쟁은 끝이 없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두가지 이론이 서로의 헛점을 공략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저 쓸데 없는 공허한 논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 논쟁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며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고,
나의 행동을 그에 비춰 생각해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박지원 (2020-05-21 12:39:39)  
4 절대주권과 자유의지 모두 존재한다는 양립론이 있습니다.
저는 두가지 양립론을 생각해두고 있습니다.
뚜렷한 근거는 없지만, 저 혼자 생각해왔던 저만의 양립론에 대해 나누어보겠습니다.

5 (A)
아직 학교에서 수업을 하던 때에,
저는 학교에 주차를 하기 위해 매일 일찍 집을 나섰었습니다.
같은 시간에 도착을 해도 주차 할 수 있는 자리가 있는 날이 있었고,
그렇지 않은 날이 있었습니다.
여느때처럼 주차자리를 찾으러 일찍 등교를 하던 어느 하루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주차 자리를 찾는 것은 나의 자유의지이고,
학교에 주차 자리가 있고 없고의 문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내가 주차자리를 찾고자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절대주권으로 자리를 만들어주셔도 나는 거기에 주차할 수 없고,
내가 아무리 자리를 찾으려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마찬가지로 저는 그 곳에 주차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즉, 자유의지, 절대주권 둘 중 어느 하나가 어긋나도 일은 성사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비유의 치명적인 헛점은 나의 컨트롤 밖에 있는 모든 변수들을
하나님 탓, 혹은 덕으로 돌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소 위험할 수 있는 가설인 것 같습니다.
박지원 (2020-05-21 12:40:04)  
6 (B)
저의 다른 한 가설은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획을 세우셨다' 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자유의지로 행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시점에서, 하나님은 이미 다 알고 계획하셨기 때문에
pre-destination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시로 요셉의 형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에게 악한 마음을 품고 요셉을 팔아버렸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선한 계획의 일부가 됩니다.
절대주권과 자유의지가 양립하게 되는 것입니다.

7 성경을 보다 보면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없나?'
라고 생각하게 되는 몇가지 예시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사무엘하 24장에서 다윗은 백성의 인구를 조사합니다.
하지만 이것에 대해 성경은 '여호와께서 ... 다윗을 충동하사' 라고 서술합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자유의지가 없었는가' 질문하게 됩니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은 다윗이 선택의 여지가 없도록
빙의를 하시거나 로봇처럼 조종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의 마음, 혹은 의지를 사용하셔서 다윗이 그것을 택하도록 유도하셨습니다.
다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출애굽기 14장 8절에는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 바로를 완전히 사로잡아 반항할 수 없게 하신 것일 수도 있지만..
저의 생각에는 사실 당연하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이
바로에게는 탐탁치 않게 여겨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겪어야했던 10가지 재앙들만 생각해도
멀쩡히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낸 다는 것은 사실상 흐름이 어색합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바로의 마음이 완악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출애굽기에서 더 거슬러 올라가 창세기 3장 15절에는 원시복음이 나와있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선악과를 따먹은 것을 아담과 하와가 고하자마자
하나님은 그들을 향한 벌과 함께 복음을 넣어두셨습니다.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을 것을 먼저 알고 계셨기 때문에
이미 앞서 복음을 준비해두신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8 우리의 선택을 미리 아시고 준비하신 하나님을 묵상하며 하루를 마무리 합니다.
홍은기 (2020-05-21 18:19:46)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

부자나 가난한 자나 지식이나 경험이나 재능이나 경력이나 열심이나 상관없이
구속의 비용은 누구에게나 동일합니다.
성막 유지를 위한 속전을 이스라엘의 성인이 반드시 내야하는 이유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만큼 성막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하며,
성막 유지를 위한 책임을 지는 것이며,
자신의 정체성이 이 성막에 있음을 드러내는 증거가 되는 것임을 새롭게 생각하게됩니다.
구속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며, 저의 정체성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하겠습니다.
이선미 (2020-05-21 19:06:56)  
출애굽 구원의 은총을 감사하여 하나님께 드렸던 '속전'이 빈부의 구분
없이 반 세겔로 똑같았음을 주목합니다. 소유의 관점이 아닌 '존재의
관점'으로 모든 생명을 똑같이 귀중히 여기시는 하나님 아버지...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생명값으로
반 세겔 속전이 되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십자가를 바라보는 오늘 되게
하옵소서. 가진 것으로 가치를 정하는 세상에 살지만 모든 것 위에
'생명'을 두는 우리되게 하옵소서.
이광태 (2020-05-21 19:14:01)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는 주님의 계획과 방법을 인정합니다. 기쁨과 감사로 드리기를 원합니다.
윤사랑 (2020-05-21 20:22:31)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쳐서 재물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생명을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생명바쳐서 그리고 온 힘으로 기도하고, 가난한 자가 있으면 돕고,
오늘도 주신 생명안에서 좋은 하루가 되도록 도와주세요.
임성희 (2020-05-21 20:47:13)  
나의 생명에 대한 속전.
내가 무엇으로 드릴까 생각해 봅니다.
세상에 살면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 매일 달려가지만
대속에 대해 무엇으로 값을 치렀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장 먼저 할 일을 가장 뒤에 두고 있었습니다감사합니다. 주님.
김나영 (2020-05-22 00:55:46)  
사람의 관점으로 보았을때는 모든것에 차이가 있고 차별이 있으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저희모두가 사랑하는 자녀임이 감사합니다.
저희의 생각과 관점을 뛰어넘는 주님을 신뢰하며 매일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백은지 (2020-05-22 00:57:08)  
하나님 아버지 말로다 형용할 수 없는 그 사랑을 기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갑니다..인도하시는 끝날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며 주 뜻 이루어가는 삶이 되어질 수 있도록 인도해주세요.
이과훈 (2020-05-22 01:00:29)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에 대해 같은 대가를 지불합니다. 재산이나 신분 등 외적인 조건이 그 무게를 조금도 바꾸지 않습니다. 조건보다 외양보다 더 귀한 생명 자체의 무게를 알려주시니 이것을 마음에 새기고 중요한 것에 집중하겠습니다. 다른 사소한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겠습니다. 우리의 생명의 값을 지불해 주신 예수님께 감사하며 오늘도 생명을 얻고 생명을 흘려 보내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함께 하실 성령님 기대합니다.
박지은 (2020-05-22 02:30:17)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 받은 큰 은혜를 깊이 묵상하며
그 은혜를 늘 기억하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주님의 자녀로서 제가 마땅히 할 일들을
책임감을 가지고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강은 (2020-05-22 03:17:57)  
하나님이 매겨주신 생명의 값은 누구에게나 동일합니다.
나의 능력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주님이 하라고 하신 일에
순종하고 따르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세요.
이인범 (2020-05-22 04:04:07)  
오늘의 본문은 조금의 의아함을 들게 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돈을 낸 자에게는 병을 내리지 않고
돈을 내지 않으면 병을 주시겠다고 말하시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마치 영화나 이야기 속의 악역들의 행동 같습니다.

하지만 생명을 대속하다는 말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떠오르게 합니다.
사망의 권세라는 "질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 동일한
생명의 값을 치뤄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대신 값을 지불해주셨습니다.

출애굽기에서의 이 명령은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값을 치뤄야 하고
그 생명의 값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동일하다는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한 예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후에 예수님의 하신 일과 그 의미가
전달될 수 있게 먼저 기초를 쌓으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에 주신 계명과 율례들은 그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문화와 인식 속에서 하나님의 것을 배우고 받아드릴 수 있는 수준에
맞춰서 주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나에게 주신 가르침도
그 자체로 절대적인 진리가 아닌 내가 받아드릴 수 있는 정도의 것이 먼저
주어지고 그것을 통해 후에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되는 건 아닐가 싶습니다.
지금까지 배워온 것들을 돌아보아 중간단계의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고
믿고 있지는 않는지, 오늘 배울 것을 잘 하고 있는지 점검하기 원합니다.
장은경 (2020-05-22 04:33:57)  
하나님 앞에 우리 모두가 소중한 한 생명 한 생명으로 계수 되었음에 감사드립니다.
구원과 생명이 하나님에게로 부터 나옴을 그 크신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과 정성들이 하나 하나 모아져 올려지게 됨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로 받은 생명의 무게를 깊이 생각합니다. 귀한 생명의 삶이 헛되지 않게 거룩한 향기로 올려지기를 기도드립니다.
박지원 (2020-05-22 04:52:10)  
반세겔을 내야한다는 말을 곰곰히 생각해보았습니다.
부자라고 해서 더 내야하지 않고 가난하다고 해서 덜 내지 말고...
딱 그만큼 내어야 생명을 대속받는다고 합니다.

지금의 환율로 생각하면 얼마를 내야할까 생각해보다
이내 부질없는 생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예수님의 피로 그 값을 대신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얼마를 내야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대신 치러주셨으니 우리가 치러야할 값이 없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잠시 눈을 돌려 주님의 은혜를 묵상하는 하루를 보내기 원합니다.
윤사랑 (2020-05-22 06:51:25)  
온!ㄹ 큐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어려운 큐티를 극복하는 힘을 주실것으로 믿습니다
정은선 (2020-05-22 10:21:25)  
속전이 무엇인지 찾아보았습니다. "죄의 보상금으로 바치는 돈..."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구원의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고
예수의 피로써 우리 죄를 대신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귀하게 받은 그 생명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를 잘 지켜나가기를 기도합니다.
박지은 (2020-05-22 11:59:43)  
(**) 삭개오의 이야기는 누가복음에만 담겨있기 때문에
만일 마가나 마태가 삭개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면
각각 그들의 복음서 어느 문맥에 무엇과 연결지어 넣었을까 궁금합니다.

저는 성경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누가복음에만 있는 삭개오의 이야기가
각각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어느 곳에 들어가면 좋을까 생각해볼때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건 정말 복음서를 줄줄 꿰고 있는 사람만 가능하겠다…싶었습니다만
제 수준 안에서 그래도 한 번 시도해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누가복음에서 삭개오가 나오는 본문은
여리고성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있던 사건이기 때문에
저는 예수님의 장소 이동에 초점을 맞추어서 배치를 해보겠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바디매오가 고침을 받은 (마태복음 20장 29절-34절) 이후에 넣거나
아니면 재물 많은 부자청년이 나온 후에 (19장 마지막) 에 넣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박지은 (2020-05-22 12:00:16)  
마가복음으로 가보겠습니다.
마가복음 10장 52절 이후, 바디매오가 고침을 받는 뒷 장면은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10장 앞 이야기로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육신의 눈을 뜨고 있던 12명의 제자들이 모두 십자가의 길을 출세의 길로 바라보고 있는 사이,
육신의 눈을 뜨지 못해 구걸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거지 바디매오가 주님께 나아옵니다.
시각 장애인인 그는, 예수님의 음성앞에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옵니다.
앞 못보는 그가 그의 유일한 재산인 겉옷도 두고 예수님께 달려가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52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시각장애자인 동시에 거지였던 그는 믿음으로 예수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보지 못하다가 보게 된 자가 아니라, 이미 믿음으로 예수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믿음으로 예수를 보았고 육신의 눈으로도 그 예수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배치를 가정 해본다면, 그 후 세리장인 삭개오라는 자가 예수님 앞에 나타납니다.
삭개오도 배디매오와 같이 예수님의 참된 제자의 길을 걸어 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참된 제자들은 과연 누구이고
그 제자들은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알려주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십니다.

이상 가상의 삭개오의 이야기를 마가복음에 배치해보았습니다.
홍은기 (2020-05-22 12:04:29)  
(**) “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준다/ 주고 있다” 라고
삭개오가 (지금 행하고 있는) 현재 자선 행동으로 번역하면 삭개오의 이야기 전체의 해석이 [신학적으로] 몹시 미묘해집니다.
이 부분은 성경을 좀더 깊이 연구하기를 원하시는 성도님들을 위해 소개한 것입니다.

[미래시제]

예수님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내가 오늘 네 집에서 묵어야겠다.

삭개오: 주여 보십시오, 제 소유물의 반을 떼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누군가를 속여 얻은 것이 있다면 네 배로 갚겠습니다.

[현재시제]

예수님 :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내가 오늘 네 집에서 묵어야겠다.

사람들 : (수군수군하며) 뭐야, 저런 죄인 집에 묵으려고 들어가시나봐.

삭개오: 주여 보십시오.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하지만 사실 저는 그래도
지금까지 제 소유물의 반을 떼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왔습니다.
누군가를 속여 얻은 것들은 네 배로 갚아왔고요.
( 수군거리는 사람들 쪽을 바라보며 자신을 제발 그만 그렇게 봐달라고 변호하는 눈빛을 보낸다)
홍은기 (2020-05-22 12:05:59)  
어린 시절 저희 교회에 부흥회가 열리면 사람들이 가득차서 예배당 복도 까지 앉아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부흥회 마지막 날이 되면 단골 손님으로 삭개오가 자주 등장했습니다.

“자, 삭개오와같이 오늘 구원받은 우리들…여러분의 소유를 나누십시오.
이 구원에 대한 감사한 만큼 헌금하십쇼. 이것이 구원받은 자로서의 합당한 삶입니다.”

저는 정말 이런 설교를 참 자주 들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심지어 직장을 갖고 목사님들의 설교를 편집하는 라디오실에서도
삭개오의 이야기는 늘 헌금과 후원금을 모으는데 종종 쓰이는 것을 많이 들었습니다.

삭개오와 관련된 시제를 [현재시제]로 하고 싶은 이유는
미래시제를 사용한 수많은 설교가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었기 때문입니다.
신학적인 의견을 갖고 해석했다기 보다는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삭개오 본문시제는 현재시제이길 선택하여 해석해보았습니다.
박지원 (2020-05-22 13:06:26)  
[삭개오의 말을 ("앞으로 이렇게 하겠다"는) 미래 행동으로 보면
전체 문맥의 흐름이 자연스럽습니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우리가 흔히 듣고 있는 [죄인의 회개/결단]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구원]의 전형적(典型的)인
공식(公式)(salvation formula)에 잘 들어맞습니다.
그런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준다/주고 있다"라고
삭개오가 (지금 행하고 있는) 현재 자선(慈善)행동으로 번역하면
삭개오의 이야기 전체의 해석이 [신학적으로] 몹시 미묘(微妙)해집니다.]

1 누가복음 19장 8절의 KJV입니다.
"Behold, Lord, the half of my goods I give to the poor;
and if I have taken any thing from any man by false accusation,
I restore [him] fourfold."
이것을 저의 생각대로 다시 한국말로 직역을 해보면
"보십쇼 주님, 저는 가난한 자에게 제 소유의 반을 주고요,
누군가로부터 부당하게 가져온게 있으면 네배로 갚습니다." 입니다.
현재 진행형이나 미래형의 시제들은 과거에 해오지 않았던 행위라도
그 행위를 지금 하고 있거나, 앞으로 할 예정이 있으면
언제든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시제들입니다.
하지만 현재형 시제를 쓰기 위해서는
과거에 이미 했었던 일들이 쌓여야만 현재형으로 쓸 수 있습니다.
과거에 쌓아둔 일들이 현재 시제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2 그렇다면, 삭개오는 누가복음 18장 18-23절에 나오는 부자청년처럼
삭개오 나름의 선한 법칙(부자청년의 경우에는 율법)을
준수하며 살아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들어간다며 수근거릴 때
나름의 항변을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박지원 (2020-05-22 13:06:45)  
3 하지만 그 뒤 예수님의 답변이 인상적입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그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변호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왜 부자청년도 율법을 잘 지켰는데, 그는 근심하며 돌아가고
삭개오는 예수님께서 이리 변호해주시는 걸까 궁금해졌습니다.

4 나름의 고민을 거쳐 생각한 결론을 나누어보겠습니다.
부자청년도 삭개오의 차이가 무엇이었을까를 먼저 고민해보았습니다.
-부자청년도 삭개오도 나름 '선한 행실'을 하고 있었습니다.
둘의 차이를 살펴보자면, '어떤 관리' 라고 표현되어있는 부자청년은
사람들에게 꽤 인정을 받고 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반면에 세리장이었던 삭개오는, 부유했을지는 모르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멸시를 받고 있었습니다.
둘의 평판히 극명하게 갈려있었지만,
이러한 차이만으로 둘의 다른 결말을 설명하기엔 부족해보입니다.
-또 다른 차이는 그들이 행했던 '선한 행실'의 차이입니다.
부자청년은 율법을 잘 지켰고, 세리는 자신의 소유를
가난한 자에게 나누고, 잘못된 행실에 대해 네배로 갚았습니다.
박지원 (2020-05-22 13:08:54)  
5 둘의 행실을 보며 조금 더 깊이 들어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행실의 차이가 그들의 마음의 차이와 연결되었습니다.
이 마음의 차이는 누가복음 18장 9-14절의 내용과도 연결이 지어졌습니다.
누가복음 18장 9-14절에는 바리새인과 세리가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바리새인은 자기가 옆의 세리처럼 더럽지 않음에 감사하고
자기가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며 십일조를 드린다고 기도하는 반면,
세리는 감히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만 치며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기도합니다.

6 부자청년을 보면 그는 율법을 잘 지켰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재산을 나누지 못하고 근심했습니다.
아마 위의 이야기의 바리새인과 같은 마음가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재산을 나누는 행위를 할 수 있는가 없는가가 중요하다기보단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의가 높아지고 쌓여가는 것에 대한 경계인 것 같습니다.
삭개오의 경우, 위의 이야기의 세리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이 잘못한게 있다면 그것을 똑바로 대면하여
율법에서 두배로 갚으라는 것보다 더 많이 갚았으며
자신의 소유를 나눌 수 있을만큼 하나님 앞에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한 눈에 알아보시고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로다"
라고 선포해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홍은기 (2020-05-22 13:26:33)  
[목요일] 출애굽기 30장 성경공부 내용입니다.

1.속전이라는 단어가 주는 심리적 어려움

본문에서 계수에 포함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신령한 특권은 먼저 생명의 속전을 지불하고 나서야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생명의 속전을 반 세겔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누구든지 반 세겔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부유하다고 해서 많이 내는 것도 아니고, 높은 사람이라고 생명값을 더 내는 것도 아닙니다.
누구든지 한결같이 반 세겔입니다. 모든 영혼의 생명값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같은 값의 속전을 치른다는 것은 만민이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받는데 평등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생명의 무게나 생명의 가치는 다 동일합니다.
가난한 사람이든, 부유한 사람이든, 몸이 좀 큰 사람이든, 좀 작은 사람이든, 좀 더 배운 사람이든,
좀 못 배운 사람이든,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생명의 무게나 가치는 하나님 앞에서 다 동일한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저희들이 함께 잘 나눴습니다.

그런데 값을 지불해야 한다라는 말을 자꾸 들으니 아이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어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사야에서 유명한 말씀
“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이 말씀이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뭔가를 지불 해야한다는 것이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회막에 들어가기 위해 입장료를 내야하라고 하시는 것 같기도하고
생명과 돈이라는 두 단어가 연결되는 것이 마음이 어렵다고 했습니다.
홍은기 (2020-05-22 13:37:07)  
2 .가난한 자와 부자가 차등을 두면 어떠했을까?

반 세겔은 찾아보니 당시 노동자의 이틀 품삯이라고 합니다.
생명의 속전으로 바치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은 액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노동자와 같은 빈곤한 사람에게는 반 세겔이 적당할 수 있겠지만 부자에게는 하찮은 액수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부자와 가난한 자에 대해 차등을 두면 어떨까요?
각기 형편에 따라 속전을 바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평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의 공평은
모두가 동일한 죄 아래서 심판을 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명의 속전으로 가르치시는 것 같습니다.


3.속전의 사용처
이처럼 성소의 세겔로 생명의 속전을 내게 하는 이유는 속전을 어디에 사용될까요?
16절을 보면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속전을 취하여 회막 봉사에 쓰라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리라”고 말씀합니다.

회막 봉사는 속죄 제물을 바쳐서 제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성막은 제사가 있음으로 유지됩니다.
속전을 회막 봉사에 사용함으로써 회막 봉사가 유지되고,
회막 봉사를 통해서 죄가 용서되는 속죄가 있고
그로 인해 생명을 얻는다는 뜻으로 이해되었습니다.
홍은기 (2020-05-22 13:40:30)  
4. 속전, 신앙의 행위만 강조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요?

속전의 의미를 모르게 되면 인간은 결국 다른 죄를 만들어 내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속전을 바치는 것을 신앙의 가장 중요한 행동으로 여긴다면
바치지 않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엄중한 죄로 규정하는 분위기가 될 것 같습니다.

속전을 바치지 않는 것이 죄가 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속전을 바치는 것은 회막 봉사를 통해서
죄가 용서되지 않으면 안되는 자신을 바라보는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전을 바치지 않는 것은 단지 하나님께 바쳐야 할 돈을 바치지 않는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죄가 용서되어야 할 존재로 보지 않는 죄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전을 바치는 것에 초점을 두고
하나님이 마치 바치는 것을 받아주시는 것처럼 오해함으로써
지금도 교회가 바치는 것을 신앙의 행위로 강조하는 것입니다.
속전, 성전세와 관련한 나눔은 마무리를 못 한 채 내일 이어서하기로 했습니다.
임성희 (2020-05-22 19:18:20)  
순간순간 다가오는 여러가지 일들 속에서
지혜로움이 필요합니다.
나에게 이로운 것을 먼저 추구하기보다는
더불어 잘 어울려 살아가는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선미 (2020-05-22 19:29:28)  
율법 위에 계신 예수님...그러나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실족을 막기
위해 율법 아래로 내려가시는 예수님...율법을 따라 반 세겔 성전세를
내시어 복음전파를 방해 할 요소를 미리 차단하시는 예수님을 주목
합니다. 내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하는 기준에
복음전파의 사명을 두기 원합니다. 나의 짧은 생각으로 인한 말과
행동의 실수로 복음이 전해질 길이 막히지 않도록 성령님 도와 주옵
소서.
장동은 (2020-05-22 22:29:19)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라고 배려해 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기 원합니다. 나의 생각이나 말로 인해 타인이 시험받을까 한번 더 생각하고 배려하는 제가 되도록 하나님 함께해 주세요..
백은지 (2020-05-23 01:20:23)  
성령님 함께 하시어 정결한 마음을 허락해주세요..마음속 간직한 소원이 온전히 주의 뜻안에 거하기에 맡겨진 일들을 지혜롭게 행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모든갓 위에 함께하시는 주님만을 의지하기 원합니다 주님 인도해주세요.
이과훈 (2020-05-23 02:41:59)  
성전에 세를 바치는 것은 생명을 얻은 것에 대해 감사하며 작지만 분명한 대가를 지불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출 30). 그런데 이것이 나중에는 관습과 율법으로 굳어져 단순히 징수의 수단이 된 것 같습니다 (24).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껍데기만 남아버린 “생명의 속전”(출30:12)을 거부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실족하지 않기 위해” (27) 성전세를 내십니다.
껍데기만 남았을지언정 생명의 속전을 지불하셨던 예수님을 봅니다. 원래의 의미가 퇴색되고 다른 사람들이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상황을 아셨지만 자신과 베드로의 몫을 지불하셨습니다. 약한 사람들이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제 삶에도 사람들이 정석을 따르지 않고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자신의 입맛대로 악용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행동들에 마음이 흔들리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쪽이었습니다. 바로잡을 힘도 없고 협조를 하자니 마음이 동하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만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번 비슷한 경험을 하고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제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현명한지 조금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가 중심을 잘 잡고 지킬 것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원래 의미가 있는 행동이라면 일단 협조하고 약한 사람까지 함께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쓸데없는 것에 마음을 휘둘리지 말고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강은 (2020-05-23 04:36:54)  
예수님께서 다른 사람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해
베드로를 시켜 성전세를 내게 하시는 모습을 보며
저도 다른 이를 실족시키지 않도록 언제나 조심해야겠다는 것을 배웁니다.

또한 이와 반대의 관점에서, 제 자신이 남의 행동 때문에
실족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저도 모르게 누군가를 판단하여 실족하는 일이 없도록
마음의 중심을 바로 잡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장은경 (2020-05-23 05:29:29)  
성전세로 기념 하게 하신 이유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구원하시고 그 생명을 대속해 주셨는지 계속해서 기억하고 감사하며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라고 하심을 생각합니다.
이 세상을 살며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생명안에 기뻐 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임을 늘 마음의 중심에 두어 기념하는 행위가 내 생각과 판단안에 머물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의 뜻 안에서 역사하심을 보고, 경험하며, 그 사랑을 전하며 끝까지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인범 (2020-05-23 06:19:06)  
반 세겔의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게실 예수님께서
그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지켜나가는 자들의 마음이 실족하지 않게
그 규율에 따라 행동하십니다.
옳고 그름을 아시지만 그 행동은 또한 배려에 기반을 두셨습니다.
행동의 기준에 옳고 그름의 잣대뿐 아닌 배려의 마음을
더해 살아가기 원합니다. 무엇이 선한지를 알고 행하게 해주세요
정은선 (2020-05-23 12:37:40)  
이 땅의 삶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모습 하나하나로 인하여
참 많이 배우게 됩니다. 그들을 실족하지 않게 하시려는 주님의
마음을 보며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무엇이 옳고 틀린지 먼저 생각하게 되는
저의 마음이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또 베드로의 낚시를 통해 보여주신 기적은
이 땅의 삶에 있어 주님의 방법으로 공급하시고 채우시는 부분이
은혜가 됩니다. 주님 앞에 나의 자아를 내려 놓고 주님 닮아가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그 가운데 주님의 방법으로 채우고 이끄실 주님을 기대합니다.
박지은 (2020-05-23 12:56:08)  
사람들이 성전세에 대해 질문했을 때
베드로는 속으로 가룟 유다가 관리하고 있는 재정 안에서
성전세를 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께 먼저 성전세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던걸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세를 걷는 사람들이 베드로와 나눈 대화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길을 가는 도중에는 이 문제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문제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은 집으로 들어가신 후였습니다.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베드로는 세상의 왕들은 아들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세금을 받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그러면 아들들은 세금을 내는 일을 면제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비록 예수님이 세금 낼 돈을 베드로에게 주시기는 했지만 그냥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동전을 삼킨 고기를 섭리적으로 준비하시고 때에 맞추어 베드로에게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한 세겔의 돈을 얻기 위해 베드로는 바다에 가서 낚시를 해야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하나의 이적을 베푸시지만
그 과정에서 역시 베드로의 수고를 요구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박준혁 (2020-05-23 13:16:20)  
While reading today’s scripture, I wondered why Peter didn’t even have 2 drachma coins with him.
Was it because they became the disciples of Jesus?
Did they give away all of their money to the point of not even having money for the temple tax?

In general, I think people feel the most devastation
not when they do not have large amounts of money,
but when they do not have enough to pay for relatively smaller things.
It is interesting to me that Peter
did not even have 2 drachma coins to pay for the tax,
allowing me to think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having financial difficulties and being a follower of Jesus.
홍은기 (2020-05-23 13:49:38)  
[금요일] 마태복음 17장 성경공부입니다.

짧은 말씀이지만
오늘 말씀은 아이들로부터 여러가지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반세겔도 없는 베드로에 대해 준혁이는 감정적으로 접근했고, 이상하게 많이 슬퍼했습니다.
지은이는 이런 종류의 기적에 대해 다른 곳을 좀 더 찾아보자고 채근을 했습니다.

1.예수님은 이미 아신다.

베드로가 세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예수님은 이미 베드로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베드로야, 너 갈릴리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라.
그리고 잡아 올려지는 고기의 입을 보면 한 세겔의 돈이 있을 것이다.
그 돈을 가지고 너와 나를 위해서 세금으로 바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단 이렇게 되려면 뭔가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길을 가다가 갈릴리 호수에다가 한 세겔 되는 동전을 빠뜨려야 합니다.
그리고 동전이 떨어져 진흙 속에 파묻히면 안됩니다.
그 전에 물고기가 동전을 집어 먹어야 합니다.
이 장면을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물고기가 그 동전을 배 속에 삼키기 전에 베드로가 던진 낚시 바늘에 물고기가 걸려야 합니다.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은 하나님이 아니면 될 수가 없는 사건입니다.
모든 사건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홍은기 (2020-05-23 14:02:15)  
2. 성전세는 얼마나 의무적이었나?

당시에 이 성전세는 엄격하게 시행되었는지 아닌지는 저희들 수준으로는 알수가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당연하게 성전세를 내었겠지만, 만약 개혁적인 사람들이 있었다면
이 제도에 불만이 많고 부패했다고 느꼈다면 내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으로, 이들이 이처럼 성전 세를 성실하게 납부하지 않았었는데 이유는
로마에 돈을 주고 사고파는 직분이 된 예루살렘의 제사장 제도에 반감이 있었다고 합니다.
(뭔가 배경을 속 시원히 알면 좋겠는데 제가 유추 할 수 있는 부분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예수님에게 성전세를 내지 않느냐며 물었던 질문은,
강제성을 지녀서 세금을 걷기위한 질문이라기 보다는
예수님의 정치적, 종교적 지향점을 물어보면서 예수님과 제자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질문으로 느껴집니다.

이에 주님은 누군가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하시기 위해 세금을 내시게 됩니다.
솔직히 예수님의 대답이 "오해할까봐..." 라고 말씀하시는 것에 조금 실망스럽기도 하다고 했습니다.
그냥 단순히 오해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뭔가 조금은 부족한 대답으로 느껴집니다.

3. 마사치오의 “성전세” 그림

이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들을 많이 나눴습니다.
한 그림 안에 베드로가 세 번 나옵니다.
이 이야기를 담은 그림이 혹시 그 시대에 세금을 잘 내자고 분위기를 띄우려고 했던 게 아니냐고
우스개 소리를 지은이가 잠시 했습니다.
시간의 흐름이 한 그림안에 들어있는 모습... 흥미롭게 이야기 나눴습니다.
어쩜 하나님의 시선 속에 우리의 인생도 이렇게 이미 다 아실 수도 있겠구나....
우리 인생의 짧은 이야기든 긴 이야기든 한 폭에 다 그려질 수 있겠구나...

하나님 아버지...
크로노스의 흘러가는 시간들 속에서
카이로스의 순간들을 맛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선미 (2020-05-23 19:01:34)  
하나님 아버지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기 원합니다. 받은 것을
헤아려 감사하기 원합니다. 세상 누구의 종이 아니고 세상 무엇 아래
있지 않은 자유함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십자가의
보혈로 죄의 구속에서 우리를 풀어 주신 은혜를 되새기며 죄 아래
살지 않고 은혜 아래 살게 하옵소서.

주일설교 (2020/05/31): 예상치 못한 결실 (사사기 7) (역대상 21) (마태복음 16) (누가복음 22) [141]
주일설교 (2020/05/17): 여호와의 오늘 (신명기 30) (여호수아 24) (누가복음 19) (히브리서 3) (시편 95)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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