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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란노 강론 | 금요성경강해, 토요말씀묵상, 주일설교후기 등을 나누는 방입니다. |


  이상태(2020-11-30 05:22:47, Hit : 456, Vote : 94
 주일설교 (2020/12/06): 얼마나 어려운지 (이사야 64) (시편 80) (마가복음 10) (#1) (#2)

주간묵상 (2020년 대강절/대림절 첫째 주간)


(월요일 묵상) (이사야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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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6   오늘날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8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9   여호와여 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여호와여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화요일 묵상) (시편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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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셉의 자손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의 보좌에 앉아 계신 여호와여 빛을 비추소서
2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 지파 앞에 주의 능력을 보이사 우리를 구원하소서
3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시키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4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의 기도에 대하여 어느 때까지 노하시리이까
5   주께서 주의 백성에게 눈물의 양식을 먹이시며 많은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
6   우리를 우리 이웃에게 먹을거리가 되게 하시니 원수들이 우리를 보고 마구 비웃나이다
7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시켜 주소서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구원을 얻게 하소서


(수요일 묵상) (마가복음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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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24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얘들아 (재물을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6  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 하니라
27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하시니라) (28-31)


(목요일 묵상) (마가복음 10) (#2)
==============================
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금요일 묵상)  
=============
금요일에는 성도님들 각자가 자유롭게
성경말씀과 묵상 나눔글을 올려주세요.



이상태 (2020-11-30 07:27:13)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여호와는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오늘도 내가 주를 기다리나이다
윤사랑 (2020-11-30 07:52:06)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광태 (2020-11-30 10:22:38)  
우리는 주가 빚으신 토기입니다. 깨끗한 그릇으로 주의 때에 주의 방법으로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아멘.
홍은기 (2020-11-30 13:01:50)  
저에게 있는 오래된 불순종이 제 삶을 사로잡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이 아버지이신 것과 저는 진흙이며,
하나님은 저를 빚으시는 토기장이이신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최연 (2020-11-30 13:50:14)  
저의 자아가 살아서 주님이 빚으시기에 힘든 사람이 아니길 기도합니다.
매일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빚을 수 있는 믿음의 사람 되길 원합니다.
이강은 (2020-11-30 16:10:55)  
하나님께서 유대민족에게 긍휼을 베푸셨듯이
저의 스스로 할 수 없음을 정시하고
주님만을 부르짖을 때에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하나님의 통치를 기쁨으로 순종하는 자,
주님을 기억하고 범사를 행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이선미 (2020-11-30 18:52:01)  
나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잊지 않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절대주권을 기억하며 살기 원합니다. 나를 온전한
그릇으로 빚으시기 위해 일그러진 나를 깨뜨리실 때 섭섭해 하지 않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뜻에 합당한 그릇이 되어감을 믿어 감사하게
하옵소서.
진문균 (2020-11-30 22:34:44)  
입술로만 주님을 고백하고 생각과 행동은 주님을 따르지 않는 외식의 삶이 되지 않기를 간구합니다.
박지은 (2020-11-30 23:20:48)  
하나님 아버지!
진노중에도 긍휼을 베푸시는 주님의 선하심을 의지해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새로운 날과 새로운 기회로
죄인인 우리들이 숨을 쉴 수 있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의 찬송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침을 주시고 나를 빚어가실때에
순종함으로 내 삶에 변화가 일어나기 원합니다.
내 하루의 모든 순간순간 마다 주님께서 함께주시어
더욱 주님의 길을 따라갈 수 있는 담대함과 지혜를 부어주시길 원합니다.
이과훈 (2020-12-01 01:05:45)  
본문의 이사야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한 기준이 높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진노하신지 오래된 상황을 안타까워합니다 (5). “우리” (6-7)의 죄악된 행동들은 소멸되기에 충분한 행동입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이렇게 어그러진 모습까지 하나님께 내놓습니다. 부족하고 연약함을 인정하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의지하여 다시 지으신 모습 그대로 회복시켜주시길 구합니다 (8-9).
본문은 나같은 사람이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냐는 물음에 대한 답을 제공합니다. 이사야는 죄악되고 어그러진 모습때문에 소멸돼도 어쩔 수 없는 우리이지만 그것때문에 더욱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 그리고 은혜를 구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처음부터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 받은 은혜가 아니기에 우리가 얼마나 죄악된 상태이든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참혹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아무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의 어그러진 상태도 하나님께 내어드립니다. 이렇게 걱정이 가득하고 힘없이 상황에 휘둘리며 살도록 저를 지으신 것이 아닌데 저는 이러한 상태에서 계속 죄악을 더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뜻대로 저를 사용하길 원한다면 토기장이 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주도권을 내어드리고, 나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데 집중하는 것이 저의 역할임을 다시 마음에 새깁니다. 하나님께서 “너무 분노하지 마시고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기를 구합니다 (9). 오늘도 저를 불쌍히 여겨 주셔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주를 붙잡기를 애쓸 수 있게 도와주세요. 함께하실 성령님 기대합니다.
최연 (2020-12-01 05:46:21)  
작은 일에도 넘어지는 저를 봅니다.
그래도 주님께서 저의 연약한 부분을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을 이제는 고백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사랑과 빛으로 오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장은경 (2020-12-01 05:47:15)  
하나님이 주권자이심을 말씀을 통해 다시 기억하고 나를 돌아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나를 보게 하시고 주님의 보혈로 내 안에 죄악들에서
멀어지게 하시고 은혜를 부어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기뻐받으시는 기도가 올려지기를 기도드립니다.
박준혁 (2020-12-01 06:50:51)  
어제 누나와 함께 목사님 주신 주일 말씀을 많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가족이고 남매이지만 제가 수업해서 열심히 수업료를 모아서 제가 사고 싶은 것을 사고 싶을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살 수 있을 거 같이 마음이 설래다 보면 돈을 모으는 기쁨이 있기도합니다.
그러다가 집에 갑자기 돈이 들어갈 일이 있으면 누나는 아무고민없이 내놓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제가 부끄러울때가 많았습니다.

얼마전에 저녁식사를 하고 아빠가 쥐포를 구어주셨습니다.
한국에서 할머니가 보내주신거고 손바닥 만한 쥐포가 몇 장 있었는데
아빠가 한 사람당 쥐포 한마리씩 먹게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한 사람이 한장씩 먹을 수 있다니... 누나 표정이 좋아보엿습니다. 누나는 신기하게 쥐포를 좋아합니다.
그동안 치과치료 받으라 딱딱한 것들을 못먹었는데 이번에 쥐포를 보더니 눈이 또롱또롱해졌습니다.

아빠가 쥐포를 구으시는 동안에 코속에 고소하고 구수한 생선냄새가 납니다. 비린내가 나지만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구어지는 동안에 냄새를 코속으로 깊이 드리 마시고 이것으로 만족하고
제 쥐포를 누나에게 주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박준혁 (2020-12-01 06:53:57)  
다 구어지고 한사람에게 한 장씩 아빠가 키친타올을 말아서 뜨거운 쥐포를 호호호 하면서 나눠주셨습니다.
이제 맘속에 드디어 기대하던 시간, 우리누나에게 멋지게 쥐포를 주려고 하다가 문뜩 제 눈이 아빠 손으로 갔습니다.

아빠가 “한 사람당 한 장씩 줄께 “ 라고 말했는데 자세히 가만이 들여다보니까
세상에나 아빠 쥐포가 두장인겁니다. 한장처럼 보이게 하고 두개를 겹쳐서 두 손으로 꼭 쥐고 있는겁니다.
와 대박입니다. 목사님인데 쥐포 앞에서는 그냥 아저씨입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것은 바로 이부분입니다.
아빠가 두개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본 순간 제가 누나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 쥐포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바뀐겁니다.
누군가 두개를 갖고 있으니 나누려고 마음먹었던 내것을 내놓기가 싫어지는 겁니다.
누군가가 더 많이 갖게 될때 나누려던 마음까지 바뀌는 것입니다.

쥐포랑 재산이랑은 비교할 수 없겠지만
누군가가 많이 재산을 쥐고 있는 것을 본 순간 내 손에도 뭔가가 있어야 마음이 편할 것이고
나도 더 많이 갖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바로 물질이 주는 힘인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엔 엄마를 지켜보았습니다.
엄마는 자기것을 이미 벌써 다 찢저서 모두가 더 먹게 하고 계셨고 다들 더 많이 먹으라고 다 나누셨습니다.
아빠도 멋쩍어 하시면서 “다 장난이야..아빠가 장난친건야 그리고 원래 부성애보다 모성애가 더 커 ” 라고 하셨습니다.

짧고 재미난 이야기지만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부자청년의 이야기와 연결해서 다양하게 생각했습니다.
지금 저랑 누나는 부자이지도 않고 아직 청년이지도 않습니다.그리고 어떤 지위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제 목사님이 우리에게 생각해보라고 하는 부자청년이야기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병이어 기적에 자신의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내놓은 한 아이를 기억합니다.
자기의 도시락을 내어놓음으로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시고 모두가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인생은 그 이후에 어땠을까요?
자기의 모든것을 내놓음으로 모두가 먹게 되는 장면을 본 그 아이는 잘 나누고 살지 않았을까요?

누나가 아마 밤에 우리가 오늘 어제 성경공부 한 것을 올릴 것입니다. 저는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최정진 (2020-12-01 07:36:26)  
약할 때 강함주시는 주님! '끝까지' 주님 얼굴 보기 원하옵니다. 브니엘의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님, 야곱의 투지를 닮아가기 원합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신 것과 같이 이제는 내 인생을 통치하여 주시고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일관됨'으로 기도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의 복을 위해 나아갑니다. 성령님이시어, 내가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바꾸어 주시옵소서. 아멘.
박지원 (2020-12-01 08:11:13)  
우리는 주님의 자녀가 될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깨끗한 의의 옷을 입히시며 우리를 자녀삼으셨습니다.
언젠가 그 옷이 어울리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내가 되기 원합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오늘보다 내일 더,
하나님과 가깝게 동행하기 원합니다.
윤사랑 (2020-12-01 09:04:28)  
하나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저희를 지켜주실것일 믿습니다.
정은선 (2020-12-01 09:12:35)  
성경에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죄 앞에 넘어질때도 마음이 약해질때도 시험에 들 때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넘어지더라도 다시 회개하고 일어설
힘을 주시고 그 가운데 회복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도와주세요.
박지은 (2020-12-01 12:07:40)  
1. 어제 목사님께서 설교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한주간은 부자청년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보세요.”

마태 마가 그리고 누가복음에는 부자청년이 슬픈 기색을 하고 갔다는 이야기만 있지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 청년의 입장이라면 이 순간부터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여생을 살게 될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가복음 10장 17절의 ‘한 사람’은 마태복음에서는 청년으로,
누가복음에는 어떤 관원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세군데 말씀을 정리해보면 그는 젊고 재물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영생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라고 “다” 라고 말씀하신 것은
혹시 강조하시기 위한 표현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뉴스에서 종종 전재산을 다 사회에 환원했다는 기사를 종종 접합니다.
전재산을 기부했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것들은 제외한 것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22절에 예수님께서는 질문자가 재산이 많은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문자적 해석이든 강조법적 해석이든 어떤 경우라도
그 말씀을 실천할 마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예수님을 떠나간 것이 아닐까요?
박지은 (2020-12-01 12:12:31)  
2. 심리학자 Milton H. Erickson이 어떤 노부인과 나눈 대화를 읽어 본 적이 있어서 잠시 나눴습니다.
어느날 한 노부인이 심리학자 밀턴 에릭슨을 찾아와 이야기 나눈 케이스를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우리 집 요리사가 해 주는 음식을 먹고, 집안일도 집사가 다 해줘요. 
나는 정원 가꾸는 일만 하는데도 행복하지가 않아요. 너무 외로워요...”

이에 밀턴이 “그럼 정원에서 가꾼 꽃을 마을 사람들의 생일날 몰래 선물해보세요. 익명으로 축하카드도 쓰고요. 
그러면 얼마 안 가 행복해질 것입니다”라고 답변해주었습니다.
그날 이후 노부인은 새벽에 일어나 생일을 맞은 사람의 집 앞에 자신이 가꾼 제비꽃이 심긴 화분과 카드를 놓고 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에는 ‘천사가 선물한 꽃’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정원에 뿌린 씨가 꽃이 되어 돌아오듯, 부인이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준 씨앗이 선물이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물론 이 이야기를 통해 저희가 나누고자 하는것은
단순한 선행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런 나눔과 선행은 영생을 언급하지 않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몰라도 가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누는 행위만 조명한다면 이 말씀이
그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말씀에 국한된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게 많다면 그것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쓸것인지가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삶을 비추어 보며
하나님께서 진짜로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박지은 (2020-12-01 12:22:45)  
3. 예수님과 부자 청년의 대화는 공관복음에 모두 나옵니다.
그리고 이 대화는 "영원한 생명", 즉 구원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기독교의 중요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이 청년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을 “내가 무슨 일을 하여야”라는 질문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청년은 영원한 생명을 선을 행하는 것으로 얻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청년은 젊음도 있고, 사회적인 지위도 있고, 큰 재산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해결하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영생의 문제였습니다.

모든 것을 다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이 사람을 목마르게 했던것일까?
이 목마름은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이 갖고 있던 목마름과 같은 것일까?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게 되는지를 묻는 질문에 예수님의 답변이 이러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 (마가복음 10장17절 앞부분)

이 말씀을 뒤의 상황과 연결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이 사람은 나름대로 바르게 살아보려고 애를 썼을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그 지점까지 나아가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그 지점까지 나아가면 영생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예수라는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자신의 의로워지려는 노력을 인정해주고, 칭찬해 줄지 모른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직접적으로 답변하지 않으시고, 반문하심으로 답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다’는 선의 기준이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는 메세지를 주시는 듯 합니다.
사람들이 선의 기준을 절대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상대적인 인간에게서 찾으려고 했던 것은 바르지 않다고 말씀 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뿌리내리고 있는지 점검하기 원합니다.
모든것을 허락하실 수 있고 또 거두어가실 수 있는 하나님만을
의지해야함을 다시금 마음에 새깁니다.
이인범 (2020-12-01 13:05:14)  
공의를 행하시는 가운데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저의 삶에도 공의로 역사하셔서 스스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없는 삶을
돌이키시고 자비를 베푸셔서 다시 하나님께 엎드릴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해주세요. 사랑 안에서 그 모든 것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언제라도 잊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나의 삶 하나님의 손길 아래
있음을 고백합니다
박지은 (2020-12-01 13:40:38)  
4. 질문을 던지신 예수님께서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7 뒷부분-19)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 지키라고 말씀하신 말씀은 십계명 중에서 몇 번째 인지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6, 7, 8, 9, 5번째 계명입니다. 십계명 중 1-4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계명, 5-10계명은 사람에 대한 계명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청년에게 지키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에 대한 계명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계명이었습니다.
 
그 시대에 당시 하나님의 백성들도 하나님에 대한 계명은 철저하게 지키려고 했던 반면에, 사람에 대한 계명은 소홀하였기 때문이었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에 청년의 답변이 이러하였습니다.

(20)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청년은 자신이 십계명을 어긴 것이 없고, 다 지켰다고 자신만만하게 답변했습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든 계명을 지켜왔기에 그는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라고 당돌하게 되묻고 있습니다.

박지은 (2020-12-01 13:44:46)  
5. 저희 남매는 상상을 다시 해보았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이 계명들을 풀어서 다시 물으셨다면
이 청년이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부분부터 저희의 상상입니다. 
“네가 직접 사람을 죽인 적은 없을지라도 말로, 눈길로 다른 사람을 저주하고 죽인 적이 한 번도 없느냐?”
“네가 여성과 부정한 관계를 가진 적은 한 번도 없을지라도 이성을 보고 음욕을 품은 적이 한 번도 없느냐?”
“네가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친 적은 없을지라도, 다른 사람의 물질에 조금도 손해를 끼친 적도 없느냐?”
“네가 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는지는 몰라도,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섭섭하게 해 드린 적은 없느냐?”라고 물었다면
이 청년이 고개를 떨구었을 것입니다.



청년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

그런데 만약 이 청년이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재산을 둘로 나누어서, 
절반은 장애인들에게, 또 절반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일에 기부하고, 예수님께 돌아왔다고 가정해 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 이 사람에게 “네 구원이 완성되었으니 이제는 네 마음대로 살아라”라고 하셨을까?
과연 "구원"이 단지, 선행을 행한다고 해서 받는 것일까?



예수님의 말씀에 청년의 반응이 이러하였습니다.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

가난한 사람에게 재산을 나누어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 청년에게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 
그의 많은 재물은 그로 하여금 예수님을 따르게 하는 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나타난 그의 마지막 뒷모습입니다. 굉장히 쓸쓸한 것 같습니다.   
자신이 놓지 못하는 결정적인 한가지... 재물...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이 청년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박지은 (2020-12-01 13:49:24)  
6. 23-30절은 부자 청년의 모습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가르친 내용입니다.

(23-24)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의 반응이 이러하였습니다.

(25)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

제자들은 갑자기 좌절감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은 그 어느 면으로 봐도 제자들보다 못한 면이 없었습니다. 
그 사람은 세상적인 조건을 잘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열심도 있었습니다. 
저런 사람도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누가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하는 탄식입니다. 
제자들의 탄식소리가 너희 남매에게도 나오는것 같습니다.



목사님이 정해주신 부분은 아니지만 본문 뒷부분까지 쭉 읽어보니 제자들의 반응을 보게됩니다.

부자 청년에 비하면 베드로가 가진 것은 정말 적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강조)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랐습니다”라는 베드로의 고백을 귀하게 받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영생을 상속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베드로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른 장면을 생각할때 
준혁이와 저는 베드로의 가정이 걱정 되었습니다. 
저렇게 예수님만 따라가면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베드로가 속한 공동체가 잘 돌보아 주었을까… 
만약 자녀들이 있다면 일찌감치 아버지의 그물을 가지고 물고기를 잡으러 다녔을까.. 
그렇다면 아버지에게 원망이 없었을까…
박지은 (2020-12-01 13:51:03)  
7.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보겠습니다.
 
부자 청년은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영원한 생명을 자신의 행위로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영생을 상속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스스로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주시면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상속)이 됩니다. 

그렇다면 그러기 위해서는 오직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힘으로 삼아야 하는데, 
자기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는 삶과 자신이 가진 재산을 힘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100 명이 먹을 수 있는것을 내 품에 품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100명에게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물고기둘 떡 다섯개 자기의 도시락을 전부 다 내어드린 어린 아이처럼...
두렙돈을 다 드린 과부처럼…
오직 하나님을 나의 힘으로 삼고 작은 것부터 나누는 훈련을 하겠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잊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홍은기 (2020-12-01 14:40:30)  
오늘 본문 시편기자는
나라가 망하고, 눈물의 양식을 먹고 이웃의 조롱거리가 되는 상황에서도,
삶의 울타리가 무너져서 인생의 열매가 짓밟히는 상황에서도
그의 간구는 주의 얼굴빛을 비춰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저도 늘 주의 얼굴빛을 구하며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이강은 (2020-12-01 17:02:01)  
생사가 목자에게 달려 있는 양들과 같이
우리의 인생은 온전히 주님께만 달려있습니다.
답답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주님의 빛을 구하며 기도하기를 쉬지 않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이선미 (2020-12-01 18:19:19)  
하나님을 등지고 서서 어둡다 불평하지 않기 원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절망적이라 탄식하지 않기 원합니다.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바로 보아 하나님 은혜의 빛을 향해 나아가게 하옵소서. 하나님 은혜의
빛으로 내 영혼에 드리웠던 그림자가 거둬지게 하옵소서.
임성희 (2020-12-01 22:29:37)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세상에서 구원받은 롯이 생각납니다.
죄가 당연시 되는 세상에서 구별 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이과훈 (2020-12-02 01:10:15)  
본문의 시편 기자는 큰 고통 가운데서 (4-6) 하나님의 구원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1-3). 눈물이 끊이지 않고 (5), 이웃의 비웃음을 받는 상황에서 (6) 하나님으로부터 회복과 구원을 구하는 간절함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노하여 벌을 주시는 것 같을 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기억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며 (1) 빛을 비추시고 (1), 능력을 보이사 구원하시는 (2) 분이십니다. 눈물이 날 정도로 비참하고 비웃음을 받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주의 얼굴의 광채”(7)를 구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의 상태처럼 되어가는 것 같아서 두렵습니다. 힘들고 비참한 가운데 주위 사람들로부터 비웃음까지 받는 상황이 저의 상태와 별로 달라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들에 매몰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구원과 회복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음을 기억하여 힘이 들수록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겠습니다. 제 능력으로 안되는 것들은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선하신 뜻대로 저를 인도해 가실 줄 믿겠습니다.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시고 주의 일을 나타내시기를 기대합니다 (합 3:2). 오늘도 하나님께 시선을 집중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도와주세요.
박지은 (2020-12-02 01:53:48)  
오늘 말씀을 보며 하나님과 깊은 만남들을 가졌던 모세가 떠오릅니다.
하나님과 더욱 가깝고, 곧 말씀과 가까운 삶을 살아
깊은 회복과 변화가 있도록 인도해주세요.
주께 가까이 우리를 이끌어주세요!
전현주 (2020-12-02 03:14:21)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시키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장은경 (2020-12-02 04:06:33)  
이스라엘의 고통이..하나님의 진노가 어디서부터 시작됨을 깨닫고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지를 시편기자를 통해 보여 주시는것 같습니다.
나를 지으시고,부르시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나를 돌아 볼 수 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도..하나님께 긍휼하심을 구하며 구원을 얻을 수도 없음을 다시한번
되새깁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주신 생명의 빛이 내 안에서..우리 안에서 꺼지지 않고 빛을
비출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매일 주님 앞에 나아가게 하시어 빛으로 비추사 내 안에 어둠을
바로 보게 하시고 그 어둠을 물리치시는 성령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최연 (2020-12-02 08:25:58)  
나에게 재물이 많고 적음이 주님의 은혜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주의 은혜를 은혜인지 모를때 교만과 불평 불만이 생기는 것을 경험합니다.
주님 주신 것에 감사하며 기쁨으로 은혜를 누리는 삶이 되길 원합니다.
이인범 (2020-12-02 11:03:16)  
북이스라엘이 고통받고 멸망할 때 드린 기도 같습니다.
심판 가운데도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지만
그렇다고 그 심판이 가볍지는 않습니다.
과연 이 기도를 드린 사람이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열 지파가 사라진 것을
보았다면..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기도드렸던 회복과 구원이 임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심판이 임하기 전 하나님 앞에 엎드림으로 그 심판을 피할 수 있기를,
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을 보고 감사할 수 있는 인생이
되길 기도합니다.
윤사랑 (2020-12-02 11:57:15)  
천국으로 들어갈수록 한발짝 한발짝 가게 도와주세요
이광태 (2020-12-02 12:16:14)  
자본주의가 유일한 경제 시스템으로 인식되는 현실 속에서 재물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주께만 마음을 두고 초점을 맞추는 삶 되기를 원합니다. 아멘.
박지원 (2020-12-02 13:53:04)  
하박국이 생각나는 오늘의 말씀입니다.
벌 하시는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고
항상 다시 한번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와
회복의 약속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항상 하나님과 함께 하고 싶지만 혹 그렇지 못할 때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든 열려있다는 것을 기억하여
신속히 돌아올 수 있기 원합니다.
이강은 (2020-12-02 16:41:25)  
세상의 온갖 재물에 애착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에만 눈을 두길 원합니다.
마음의 중심을 온전히 하나님께 두어
구원의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세요.
홍은기 (2020-12-02 17:21:16)  
유한한 이 세상에서 영혼에 잇댄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버려야 할 것을 버리도록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욕망인지 소망인지 제 자신도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지켜보고 바라보고 있는 자녀들의 얼굴 앞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길 원합니다.
이선미 (2020-12-02 18:29:08)  
마음 중심에서 재물을 떨쳐버릴 수 없어 예수님을 떠나갔던 부자 청년을
떠올리며 내 마음 중심에는 무엇이 있나 생각합니다. 내 생각과 계획
으로 가득한 마음을 비우고 그 중심에 십자가를 두기 원합니다. 날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매일 바라보기 원합니다. 구원은 나의 노력
으로 얻는 것이 아님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무는
오늘 되게 하옵소서.
진문균 (2020-12-02 21:47:56)  
세상의 것들이 저를 집어 삼키지 않기를 간구합니다.
강인구 (2020-12-02 23:00:31)  
본문에 나온 부자 청년의 예를 보면서 마가복음 12:29-31의 말씀을 다시 새겨봅니다.
가장 중요한 두 계명,
네 마음을 다 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부자 청년이 지켜온 계명은 (살인하지 마라/간음하지 마라/속이지 마라/네 부모를 공경하라)
어떻게 보면 기독교가 아니어도 우리가 살면서 지켜야 할 사회적/윤리적 약속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가장 중요한 두 계명은 크리스쳔을 다른 사람과 구분짓는 기준입니다.
나의 기준으로 나는 구원을 받을 사람이다라는 오만한 생각을 버리기 원합니다.
내가 할 일은 전심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고 구원은 하나님의 일임을 마음 깊이 새겨봅니다.
박지은 (2020-12-02 23:36:43)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것이고
이 땅에서 우리가 잘 사용할것들이지
그것들을 주인삼거나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두어서는 안되는것을
말씀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살아갈때에
하나님 외에 눈에 보이는 다른 것들을 의지하는것은
생각보다 너무나 쉬운 일입니다.

내 삶 가운데 오직 하나님 말씀에 대한 믿음이 큰 힘을 발휘하고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놀라운 일들을 늘 경험하기 원합니다.
제 연약함을 주님께 고백할때에
하루하루 조금씩 더 성숙하고 지혜롭고 담대한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이과훈 (2020-12-03 01:29:08)  
예수님이 사역하시던 당시에는 재물이 많은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증거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인식에 반대되는 선포를 하십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5). 하나님께 복을 받은 부자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면 하나님께 복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나 (26)라고 제자들이 질문합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27).
예수님께서는 일관되게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주장하셨습니다. 재물이 많으면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마 6:24).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 집중돼야 하는데 재물을 관리하는데 시간과 마음을 쓰게됩니다. 더 큰 문제는 재물이 많으면 하나님보다 재물에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24).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실 것을 신뢰해야 하는데 재물이 자신을 지켜주고 자신의 필요를 채워줄 것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조금 앞에서 부자 청년이 바른 습관과 좋은 마음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의지하던 재물을 포기하라는 명령은 실천하지 못해 근심하며 갔던 것과도 연결됩니다.
오늘 본문은 제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에게 의지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실제로 도움을 주는 것 같은 외부 요인 (유력자나 재물)보다 하나님을 더 우선시 하는지, 또 하나님께서 이러한 것들보다 더 능력이 있으셔서 우리를 돕는 것을 믿고 있는지 질문합니다. 이에 대한 대답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그러한 믿음을 원한다고 고백하겠습니다. 이곳 저곳 지원하며 나와 다른 사람들을 비교하다보니 내가 가지지 못한 부분들이 더 많이 보여 착잡할 때가 많은데 이제는 의지할 수 없는 요소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로 다짐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제 진로와 인생을 인도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그 길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마음을 원합니다. 오늘도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여 필요한 곳에 마음을 두고 그 마음을 지킬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도와주세요. 함께하실 성령님 기대합니다.
장은경 (2020-12-03 04:57:49)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세상의 재물과 욕심이 내 마음에 있다면 내 자신이 낮아짐도. 하나님 앞에 긍휼을 바라며
무릎 꿓을 수도 없음을...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첫째
계명부터 지키고 있지 않은 것임을 생각합니다.
하물며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어떻게 지키며 살 수 있을까..억지로 노력한다고
되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오늘도 세상을 향한 저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시어 긍휼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혀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더욱더 힘쓰며 내것에만 집중하는
어리석은 마음을 사하시고 예수님의 행하심을 본받아 그 사랑의 발끝 만큼이라도 내 일상에서
따를수 있는 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강은 (2020-12-03 10:04:49)  
군중으로부터 꾸짖음을 당하더라도 움츠러들지 않고
더욱 크게 예수님을 부르던 맹인 바디매오와 같이
구원 앞에서는 주변의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주님께만 있음을 기억하겠습니다.
정은선 (2020-12-03 10:05:09)  
하나님 외에 세상에는 마음이 가고 의지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삶 속에서 온전히 하나님만이 우리의
주인이시고 구원자이심을 다시 한 번 기억하길 원합니다.
그것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허락하여주시고 매일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여 넘어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이광태 (2020-12-03 10:24:11)  
어떤 상황에서도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기를 원합니다. 주를 더욱 찾고 아뢸 때 인도하소서. 아멘.
윤사랑 (2020-12-03 11:59:52)  
항상 맞는길을 따를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최연 (2020-12-03 13:29:12)  
바디매오가 겉옷을 내버려 두고 예수님께 뛰어가는 장면을 상상해 봅니다.
저에게 있는 낡고 누더기 같은 죄 짐을 벗고 바디매오같이...
앞이 보이지 않지만 예수님께서 계신 곳을 향해 뛰어가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 시선이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던 바디매오의 간절함을 봅니다.
주님... 주님을 간절히 구하고 또 구합니다.
박지원 (2020-12-03 14:29:31)  
재물과 구원의 상관관계를 생각해봅니다.
부자의 기준은 무엇일까...
내가 부자라고 칭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얼마 이상을 소유해야 부자가 된다는 기준도 명확하지 않고,
누군가를 부자라고 할 잣대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부자'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도 모호해집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 하니라"
이 말씀도 부자가 꼭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누가 구원을 받았는지는 하나님만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통계를 통해, 구원의 받은 사람들과 받지 못한 사람,
그리고 부자인 사람과 부자가 아닌 사람의 상관관계를
그래프로 그려본다면 어떨까 상상해보았습니다.
아마 구원 받은 사람들의 평균적인 부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평균적인 부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건 아닐까..

물질은 기대기가 참 쉽습니다.
필요도, 문제도 모두 돈이 있으면 해결이 한결 쉬워집니다.
그렇기에 돈에 집중하게 되고 돈을 먼저 찾게 됩니다.
그렇기에 맘몬이라 부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언제쯤 물질로부터 자유하여 하나님을 먼저 볼 수 있게 될까요.
물질로 둘러쌓인 세상에선 참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영적인 것, 하늘의 것을 바랄 수 있도록
나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시켜주시기 원합니다.
이인범 (2020-12-03 15:09:13)  
지난주 본문의 부자 청년이 생각납니다
모든 것을 팔아 나눠주고 따라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슬퍼하고 근심하며 떠나간 청년을 보고
그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재물과 하나님의 말씀 사이에서 말씀을 선택하지 못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대로만 끝났다면 매우 절망적이었을 것입니다.
재물의 강력을 넘기 어렵고 재물 외에도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것들을 모두 극복하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한다니..
제자들의 말처럼 과연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 희망이 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홀로는 나의 연약함을 넘어 천국을 바라볼 수 없지만
구원으로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떠나간 부자 청년 또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으리라 믿습니다.
그 손길이 나에게도, 우리 모두에게도 오늘 역사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홍은기 (2020-12-03 15:55:35)  
바디매오가 다시 보게 되었을 때, 보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은 얼마나 많았을까요?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주님,
제가 보고 싶은 것만을 따라가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만을 따르길 소망합니다.
이선미 (2020-12-03 18:44:06)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긍휼하심을 구한 바디메오를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보게하실 수 있음을 믿고 그 믿음을 입으로 고백한
바디메오를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자신의 약함을 알고
그 약함을 고침받기 원하는 자에게 향하시는 것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치유의 손길이 닿아야 할 나의 약한 부분을 의식하며 살아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실 때에 즉시 대답할 수 있게
하옵소서.
임성희 (2020-12-03 21:36:48)  
세상에서는 멸시와 천대를 받았을 바디매오를
주님께는 그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보이지 않으나 듣는 귀를 열어 주님을 기다린 바디매오가 받을 당연한 복인 듯 합니다.
분별 할 줄 아는 귀를 그리고 나를 돌아 보실 이유를 쌓아가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진문균 (2020-12-03 22:12:35)  
제 삶의 모든 순간에서 주님의 신뢰를 붙들고 나가며 그 믿음을 드러낼 수 있기를 원합니다.
박지은 (2020-12-04 00:45:35)  
주님의 자비를 구하는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세요.
양들이 주인을 찾듯이 주님을 간절히 찾을때에
우리 삶에 큰 깨달음과 큰 위로가 있을 수 있음을 믿습니다.
이과훈 (2020-12-04 01:25:08)  
바디매오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고 그것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실천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질타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소리쳐 불렀고, 예수님께서 무엇을 원하냐는 질문에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51)라고 바로 대답했습니다. 이것이 쉽지 않은 것은 베데스다 연못에서 예수님을 만난 서른여덟 해 된 병자 (요5:5-9) 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제 자신을 돌아봐도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헷갈려서 엉뚱한 것을 바라는 때가 많음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가장 적절한 때에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정작 우리는 본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것을 구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다가 실패하고 하나님을 탓하기도 합니다. 이같이 나에게 필요한 것도 모른채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을 원망한다면 그보다 안타까운 일이 없을 것입니다.
본문을 묵상하며 제가 원하는 것과 무엇인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참 많은 것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그것들 중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니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진주의 진가를 알지 못하는 돼지 (마 7:6)가 저의 모습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준다고 하셨는데 (마7:11) 나는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조건을 가진 일자리에 대해 원하는 바는 있지만 무엇이 필요해서 어떤 것들을 기도로 구해야 할 것인지 분명치 않습니다. 바디매오의 필요를 주위 사람들은 신경쓰지 않았던 것을 보면 (48) 저의 필요를 주위 사람들로부터 발견하는 것도 잘못된 방향인 것 같습니다.
빙빙 돌았지만 결국 결론은 “나는 나의 필요도 알지 못하니 하나님께 맡겨야하겠다” 라고 내리려고 합니다. 나에게 가장 좋은 것도 하나님께서 아시고 나의 필요도 하나님께서 아시니 하나님께서 제 인생의 결정권자 인도자 되어 주시기를 구합니다. 저도 하나님의 높으신 뜻 안에서 지금 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찾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을 때면 바디매오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께 힘을 다해 구하겠습니다. 제가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세세하게 조율하시며 제 인생을 이끌어가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영광스러운 길을 기쁨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저와 함께 해주세요.
장은경 (2020-12-04 02:28:16)  
보이지 않고 가진 것 없는 정말 비참한 현실속에 소외되어 살고 있었을 바디매오..
그의 이름을 지금 내가 알 수 있음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이름이 기록되는게 쉽지 않았을 텐데
그가 예수님을 따라 끝까지 주의길을 잘 따랐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에겐 유일하게 보호해주는 것이 겉옷이었을 텐데..
예수님의 부르심에 그 마저도 벗어 던지고 뛰어 나아가는 모습을 생각하니 내 마음이 울립니다.

오늘은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들에게 시선이 갑니다.
그들중에 소리치며 예수님을 찾는 바디매오를 보고 그에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은 한명도
없었을까..예수님을 따르는 그들중에 얼마나 바디매오와 같이 간절히 나의 약함을 구하며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외치며 매달릴 수 있었을까..그들 속에 나를 봅니다.
외치며 구하는 바디매오의 소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듣는 이는 예수님 밖에 없는것 같습니다.
나역시 예수님을 따른다 하며 살고 있지만 그 따름이 어떠한 마음과 생각으로 따라가는 것인지..
예수님이 보여주시고 말씀하시는 것들을 믿음으로 행함이 있는지..구원의 확신과 믿음이 내 안에
얼마나 뿌리내려 있는지..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에 섞여 그냥 흐르듯이 가고 있는지...생각해봅니다.

나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오늘도 그 무리들 속에 있는 저이지만 주의 손길의 간절히 구합니다.
내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은혜가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어 주님의 마음에 더 가까이 나아가는 하루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박준혁 (2020-12-04 04:13:56)  
화요일 저녁에 미주리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연주가 있었습니다.
코로나때문에 오케스트라 모두가 함께 연주하지 못하고
듀엣, 트리오, 콰르텟 여러팀들이 이렇게 나누어서 공연을 했습니다.
공연은 유튜브 실황으로 방송이 되어졌고, 전문 방송사람들이 와서 조명도 노아주고
사회를 봐주고 해서 저는 긴장을 많이 했습니다.

사실은 무엇보다 긴장이 되었던 것은
콘서바토리에 속한 저같은 고등학생들은 자기 악기 레슨 선생님들이 다 와준겁니다.
저는 콘서바토리에 소속되어서 연주는 하지만 이 곳에서 개인 레슨은 받지 않습니다.
연주를 앞두고 저만 선생님이 없습니다. 선생님들은 자기 학생들이 카메라에 잘 나오도록 챙겨주고
악보 뮤직스탠드 위치도 높이도 다 챙겨주는데 나는 아무도 없습니다.
자기 학생들에게 인커리지를 시켜주고 튠도 해주고 두려움 없이 잘 하도록 도와줍니다.
마음이 구멍이 뻥 하고 뚫린거 같습니다. 하루종일 하고 있던 마스크가 더 답답하게 조여옵니다.
어디에 눈을 두어야 할지 잘 모르겠고 혼자서 제 악보를 만지작 거리고 다리가 조금씩 떨립니다.
첼로는 의자에 앉아있으니 부럽기만합니다.
인디애나에서 우리 선생님 스튜디오에서 저는 늘 비올라 혼자라서 사랑도 독차지 받고
“애디 애디” 이름도 여기저기서 들리고 그러는데
오늘 이 연주회에서는 제 이름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박준혁 (2020-12-04 04:21:45)  
모두 리허설 잠시 쉬는 시간이 되어 바로 인디애나의 내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습니다.
“ 선생님, 콘서바토리 학생들은 다 자기 선생님이 와 주었어요.
내 앞에는 아무도 없어서 마음이 이상하게 힘들어요.튠이 잘 되었는지,
오늘 내가 실수 안할지 걱정이 많이 되요"

선생님이 바로 문자메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Hey Eddy! Don’t worry about it too much,
and I will be watching and listening over your playing,
so do not be worried and play your heart out!”
문자를 받고 눈을 감고 호흡을 깊이 들이마시고 그래도 여전히 떨리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문자 메세지가 선생님의 목소리로 바뀌어 내 귀에서 용기를 줍니다.

얼마전에 아빠가 병원에서 어떤 환자를 만났는데 간증을 나눠주었다고 합니다.
그 환자가 예전에 큰 체험을 했는데 자기가 타고가던 트럭이 큰 사고가 나는 그 순간에
어떤 음성을 들었는데 “ We will be alright “ 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 음성이 예수님의 음성으로 확신했고 You will이 아니고 We will 이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이 함께 하고 계심을 확신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 간증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창가로 가서 깜깜해진 밖을 보며 기도를 했습니다.
저에게는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진않았지만 이렇게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서
“Eddy! Together, we will play fantastically!”
[We will] 예수님이 함께 연주해주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 직접 음성주시진 않았지만 이렇게 계속 생각하니 마음이 가라앉잤습니다.
떨리지도 않고 두 번의 무대를 잘 마쳤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와 함께 연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혼자인 순간에 어쩔줄 모르는 상황에 무엇인가 늘 생각나게 해주시고
저에게 힘을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눈앞에 선생님도 하나님도 내 눈에 보이지 않으셨지만
저는 선생님의 목소리와 하나님의 음성을 생각하게 해주셔서
혼자가 아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인구 (2020-12-04 08:02:47)  
세상의 눈으로 보면 부자 청년은 '첫째'로 구원받을 것 처럼 보이고 맹인 바디매오는 '꼴찌'로 구원받을 것 처럼 보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부자 청년은 계명도 철저히 지키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으로 결점이 없어보이는 사람이었을 것이고,
세상 사람들의 눈에 맹인 바디매오는 도무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는 절대 속하지 않을 사람처럼 여겨졌을 것입니다.
부자 청년은 스스로 자신이 구원받을 '첫째'다 하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반대로 맹인 바디매오는 나같은 죄인도 구원받을 자격이 있을까... 아마 '꼴찌'다 하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부자 청년은 구원이신 예수님을 떠났고, 맹인 바디매오는 눈을 뜨고 구원이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마가복음 10:31)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사람들은 나를 구원받을 '첫째'로 볼까 '꼴찌'로 볼까? 또 나는 나를 '첫째'로 생각하나 '꼴찌'로 생각하나?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대해 깊이 묵상해 봅니다.
이강은 (2020-12-04 10:41:34)  
로마서 1장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정은선 (2020-12-04 11:45:51)  
이미 영적인 눈으로 예수를 보고 예수의 능력을 알고 있었던
바디매오의 믿음이 참 가슴을 울립니다. 너무나도 확실한 믿음으로
담대하게 외칠 수 있었던 바디매오처럼 저도 주님 앞에 내려 놓고자
하는 문제들을 가지고 주님을 부르기를 원합니다. 저의 믿음 없음을
아시고 그 가운데 능히 능력 주시고 이끌어 주실 것임을 믿습니다.
이인범 (2020-12-04 12:47:49)  
오늘 본문은 읽으면서 많은 의문을 갖게 했습니다.
수요일 본문과 같은 장에 나왔기에 어떻게 연결되어있을까 싶어
성경을 펼쳤지만 그 연결고리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 두 본문의 사이에는 예수님께서 스스로가 죽고 부활하실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과 세베대의 아들들이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고 싶다고 말한 것이 나옵니다. 바디매오 이야기 뒤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 사이에 왜 바디매오 이야기가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그저 있었던 일들을 사건의 순서대로 나열했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공관복음들에도 같은 위치에 이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앞은 예수님께서 공생애의 마지막을 바라보시며 예루살렘에
가시기 전 이땅에 오신 목적을 제자들에게 설명하시고
모든 사람들을 섬기고 목숨을 대속물로 주기 위함을 설명한 시점입니다.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 그 일을 행하실 때가 됐는데
바디매오 얘기가 잠시 나오는 것이 흐름을 방해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또한 특이한 점은 바디매오의 이름은 마가복음에만 나와있습니다.
여리고에서 멀리 떨어진 로마에 박해받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쓰여진 책에
왜 이런 디테일을 넣었을까 하는 점이 궁금합니다. 원래 마가가 고침받은 사람들의
이름을 다 적는가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혈루병 앓던 여인, 친구들이 지붕을 뜯으며 데려온 중풍병자 등등).

또 다른 의문점은 마태복음에는 맹인이 두 사람으로 나와있습니다. 둘 다 고침을 받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적혀있는데 왜 마가복음(그리고 누가복음)에는 바디매오만
나와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바디매오에게 물으신 질문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는
이 본문 바로 앞 세베대의 아들에게도 동일하게 하신 질문입니다.
그때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보좌 좌우편에 앉기를 원했습니다.
바디매오가 눈을 고쳐달라고 한 것이나 세베대의 아들들의 요청이나 전부
영적인 어떤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바디매오에게는
그저 눈을 뜨게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자신들의 권력에 대한 욕심을 나타낸 야고보 요한과
간절한 마음으로 눈을 고쳐달라고 말한 바디매오와는 다르겠지만...
완전히 이해가 되진 않는 것 같습니다.

며칠 더 공부하며 생각해보려합니다.
박지원 (2020-12-04 15:17:38)  
수많은 장님중 바디매오가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 주위의 수많은 다른 장님들은 여전히 어둠 속입니다.

왜 바디매오였을까? 왜 바디매오는 소리쳤을까?
장님으로 지낸지 오래 됐으면 그 삶에 적응해버렸을 수도 있는데..
장님이 된지 얼마 안 돼서 더 절박했던 것일까?
아버지 디매오의 이름이 언급된 것도 연관이 있을까?
(바디매오가 이미 디매오의 아들이란 뜻인데
굳이 한번 더 쓰여있는 이유는 헬라인을 위한걸까..)
여러모로 생각해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라고 말씀하시며 한 말씀으로 간략하게 정리하십니다.
저는 이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목사님께서 풀어주실 말씀을 기대하며
더욱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선미 (2020-12-04 18:44:22)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요 8:11)

죄로 얼룩진 나의 과거보다 변하여 새 사람이 될 나의 미래에
더 관심을 가지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나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지만 나는 나의 죄를 기억해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기
원합니다. 죄를 기억함이 죄로부터 멀어지는 첫 걸음임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전현주 (2020-12-04 22:47:50)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배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출34:6-7)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맘으로 오늘 하루도 살기 원합니다!!
박지은 (2020-12-04 23:34:05)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편 27편 1절).

생명의 능력이시며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
어둠속에서 방황하는 영혼을
빛으로 비추어주신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더욱 깊이 묵상하는 이 기간이 되도록 함께해주세요!
장은경 (2020-12-05 03:58:31)  
요한복음 15장 12절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아멘.
홍은기 (2020-12-05 05:11:44)  
[시편 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이선미 (2020-12-05 19:38:45)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요 10:27)

주님 곁에 늘 머물기 원합니다. 주님 음성에 더욱 친숙해지기
원합니다. 주님을 잘 알아 주님 말씀에 즉각 반응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선하신 인도를 신뢰하여 내딛는 발걸음에
두려움이 없게 하옵소서.

주일설교 (2020/12/13): 무화과 두 광주리 (시편 25) (예레미야 24) (마가복음 10) (고린도후서 5) [70]
주일설교 (2020/11/29): 슬픈 기색을 띠고 (신명기 8) (#1) (#2) (마가복음 10) (빌립보서 4)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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