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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이상태(2020-03-22 06:04:29, Hit : 450, Vote : 15
 (설교칼럼) 살피시는 하나님 (창세기 16) (시편 33)

주일예배 (2020/03/22)
가정예배 (설교 요약본)
======================
본문성구: 창세기 16:1-14
설교주제: 살피시는 하나님


[1]
전세계가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불안해하는 가운데 각 나라마다 필사적으로
여러가지 방역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는 소식들이 들려옵니다. 지난주간부터 미국의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강의실에서의 ("in-person"/"face-to-face") 대면(對面)수업을
중단하고 온라인(online) 수업으로 전환(轉換)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디애나주립
대학교 (IU)를 포함한 많은 대학교의 행정당국에서는 기숙사(寄宿舍) 건물들을 닫고
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가도록 한다는 소식입니다. 특히 외국인 학생들 (international
students) 에게는 가능한한 본국(本國)으로 돌아가 (온라인 수업으로) 이번 학기를
마치도록 권장하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학기중에 갑자기 (어느 정도) 친숙해진 교정을 떠나 집으로 또는 본국으로 (억지로)
돌아가야하는 학생들의 심정이 어떠할까 ...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보는 중에 불현듯
내 눈 앞에 거주(居住)하고 있던 집을 갑자기 떠나는 한 여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오랫동안 몸 담고 살았었던 (이브람과 사래의) 집에서 나와서 어디론가 가야하는
하갈(Hagar)이란 여인의 모습입니다.


[2]
(주중에 읽고 묵상한) 창세기본문(16:7-14)에서 우리는 광야에서 지쳐 신음하는
하갈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시간을 거슬로 올라가) 이 사건의 발단을 찾아 볼려
합니다. 창세기 기자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사건의 실마리 정보들을 제공해
줍니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사래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창세기 16:1-6 참조)(개역개정본)

어떤 까닭으로 인해 (애굽 여인) 하갈이 (히브리 사람) 아브람-사래의 가정과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 우선 본문성구에서 암시되고 있는 아브람–사래–하갈
세 사람의 [삼각]관계의 배경을 살펴보아야 겠습니다. 그리고 갈등의 [삼각]
관계에서 (한 여인이 다른 한 여인에게서 도망치는 이런 일이 벌어짐에 있어)
아브람과 사래와 하갈 각자의 책임 소재도 들여다보아야겠습니다.

첫 번째로 [한 집안의 가장(家長)으로서] 아브람의 판단과 행적을 살펴봅니다.
아브람이 거주하던 지역에 기근이 들었을 때 아브람이 온 가족(친족)을 이끌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창세기 12:10-20 참조). (애굽으로 내려간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그리고 아브람이 (사래와 말을 맞추고) 애굽 사람들에게 (아내인) 사래를 누이
라고 소개했습니다. [이렇게 말을 짜고 맞추는 계략이 자기 신변의 안전보호를
위해 아브람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결국 사래가 애굽 왕 (바로)의
궁으로 (이)끌려 들어갔습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리라는 것을 아브람은 이미
예상을 했을까?)

그런데 아브람은 (사래로 인해 아니 이 사태로 인해) 일종의 보상금을 애굽 왕
으로부터 받습니다. (자세한 숫자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남종과 여종 (즉 노비)
(奴婢)와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 등등을 (선물내지 위로금이란) 명목으로 하사
받게되는 것입니다. [미루어 짐작컨데 하갈은 보상으로 하사 받은 노비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 [한 가정의 안주인으로서] 사래의 책임 여부(與否)를 잠시 살펴봅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원하건데 당신이 내 여종에게 들어가세요 내가 혹시 내 여종을 통하여
자녀를 얻을 수도있지 않을까요" (창세기 16:2 참조). [사래가 도대체 무슨 근거로
여호와께서 자기의 출산을 막으신다고 말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밝혀진 고대근동지역의 법들을 살펴보면 사래의 제안이 불법(不法)은
아닌 듯합니다. [그런데 사래가 남편 아브람에게 왜 이런 제안을 했을까? 창세기
기자가 속 시원히 털어놓지 않는 사래의 무슨 숨은 동기(動機)가 있는 것일까?]
어쨌든 간에 아브람이 아내 사래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세 번째로 [집안 여주인 사래의 몸종의 신분으로서] 하갈의 언행을 살펴봅니다.
"하갈이 임신하매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우습게
여긴지라)" (창세기 16:4 참조). [몸종 하갈이 사래을 어떤식으로 멸시했을까?]

이에 사래가 흥분하고 아마도 분기탱천(噴氣撑天)하여 남편 아브람을 닦달하는
장면이 연출됩니다. "내가 받은 이 모욕은 당신이 다 받아야 옳도다... 당신과 나
사이에 (누가 잘못했는지)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창세기 16:5).
[하갈의 언행을 살펴보려했는데 오히려 사래의 언행이 더 나의 눈길을 끕니다]
어찌하여 사래가 이렇게도 당당하게 여호와의 판단까지 들먹거리며 아브람을
몰아붙일까 ? 사래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일까? [좀더 알아 보아야겠습니다.]

그러자 아브람이 사래에게 말합니다: "당신(너)의 여종은 당신(너)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너)의 눈에 좋을 대로 행하라” (창세기 16:6) [이렇게 말을 할 때
아브람의 얼굴 표정이 어떠했을까? 사래의 기세에 눌려 풀이 죽은 얼굴일까?
아니면 사래의 닦달에 몹시 짜증이 난 얼굴일까?]

[지금까지의 취재 결과에 따라 임시 결론을 내리자면] 하갈이 (주인 아브람과
사래의 집을 떠나) 결국 가출하는 사태와 관련하여 (창세기 12장부터 찬찬히)
아브람과 사래와 하갈의 언행과 태도를 살펴보니 (세 사람 모두) 제각기 비판
받고 지적 받고 책임져야 할 부분들이 있습니다.

특히 (창세기 16:1-6) 내용을 묵상하는 중에) 떠오르는 한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나름대로 알고
있었을 아브람과 사래가 (특히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워지게 되는 아브람이)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에 과연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고
분별력과 지혜를 간구했었을까?]


[3]
(배경을 훑어보고 난후) 다시 광야의 샘 가로 돌아와서 하갈의 모습을 봅니다.
바로 그때 여호와의 사자(使者)가 등장하고 하갈을 향해 무언가 묻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16:8)
[이 묻는 말에 대해 의문이 생깁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갈의 이름과 사래의
몸종이란 사실까지도 다 알면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왜 모를까?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듯이) 묻는 것일까? 하나님의 사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렇게 물어보는 것일까?] (내가 곰곰히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하갈이
대답을 합니다: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창세기 16:8).

(하나님의 사자가 이미 하갈과 사래와의 관계를 알고 있는데) 왜 하갈은 "내
여주인 사래"를 이렇게 되풀이할까? 하갈 나름대로 여주인인 사래에게 깊은
한(悍)이 맺혀 있는가보다... 무언가 사래에 대한 억울함과 원통함과... 특히
여주인 사래에게 갑질당한 응어리가 가슴속 깊이 그대로 남아있나보다...

그런데 왜 하갈은 "어디로 가느냐"라는 천사의 물음에는 대답을 하지 않을까?
(아마도) 하갈은 애굽에 있는 친정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까? (어쩌면)
"너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라는 천사의 질문을 받고 하갈은 (과거로
부터 지금 이순간까지 지내온) 그녀의 삶을 돌이켜 보고 또 (앞으로 전개될)
여러가지 상황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지 않았을까?


[4]
인류역사의 흐름속에는 다양한 시대와 문화와 제도가 있었습니다. 고대로부터
오랜 기간 동안 인간사회에 뿌리 내리고 있었던 여러가지 제도에 대한 인식과
관점은 시대에 따라 달랐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도 종살이와 노예
제도 등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다수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6장에서 우리가 함께 살펴보고 있는 [이 사건이 일어난 시점으로부터]
이 천 여년이 지난 후에도 노예제도와 종살이가 유지되고 있었는데 초대교회의
교인들 중에 종(노예)였던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갈에게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手下)에 복종
하라"(창세기16:9)고 말하는 것을 듣는 순간 (내 가슴속에서 무언가 불편함이
느껴집니다. 동시에 (신약에 기록되어 있는) 초대교회시절 (사도) 베드로가
종이나 노예신분의 성도들에게 했던 권면(勸勉) 말씀들이 생각납니다:

"종들이여 모든 일에 두려운 마음으로 주인에게 복종하십시오. 선량하고
너그러운 주인에게 뿐만 아니라 까다롭고 못된 주인에게도 그렇게 하십시오.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당할지라도 공의로운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여러분이
참고 견딘다면 그것은 칭찬을 받을 만한 일입니다" (베드로전서 2 장 참조).
[사래는 하갈에게 선량하고 너그러운 여주인이었을까? 아니면 까다롭고 못된
여주인이었을까? 하갈은 부당한 일도 참고 견디는 여종이었을까? 아니면...?]

(사도) 바울이 (주인에게서 도망을 쳤던) 노예 [오네시모]를 위해 그의 주인
[빌레몬]에게 보낸 손편지의 내용도 생각납니다: "나는 지금 오네시모를 그대
에게 돌려보냅니다... 오네시모를 따뜻하게 맞아 주십시오" (빌레몬서 참조).
[하갈이 사래에게로 돌아갔을 때 사래가 하갈을 따뜻하게 맞아주었을까?]

(하갈의 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여호와의 사자가 하갈에게 희망적인
소식을 전해줍니다: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게 하여 그들의 수가 셀 수도
없이 많게 해주리라" (창세기 16:10). 그런데 이 희망적 예언이 "너의 여주인
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복종하라"는 명령과 한 쌍으로 묶여있는 듯합니다.
[여기에 무슨 특별한 신학적 의미가 있는 것일까?]


[5]
오늘 살펴보는 성경본문(창세기 16 장) 말씀에서 특히 나의 관심을 끄는 점은
(오랫동안 잠잠히 계시던)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사래와 하갈) 세 사람
중에서 (신분상으로 보아) 가장 낮고 약한 위치에 있는 하갈에게 (천사를 통해)
나타나 주시고 하나님의 준비하신 미래의 계획을 알려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취약계층의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갈이 낳게 될 아이의 이름까지 지어주십니다. "이스마엘"이란
이름은 "여호와께서 (하갈의) 부르짖는 고통/신음 소리를 들어주셨다"는 의미
입니다. [“Ishmael” means “The Lord hears (your affliction)]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전해주고 하나님의 사자가 하갈의 곁을 떠나갔습니다.
광야에 홀로 남은 하갈은 감격에 겨워 (혼잣)말을 합니다: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창세기16:13). 오늘 함께 나누고 있는 성경
말씀의 핵심이 바로 하갈의 이 말 속에 들어있습니다: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You-Are-the God-Who-Sees)"

하갈이 부른 하나님의 이름은 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의 계시
(啓示)를 깨달은] 하갈의 신앙고백이 되었습니다. 하갈은 떨리는 입술을 열어
하나님의 이름을 반복해서 읊조립니다: "엘로이" (나를) 살피시는 나의 하나님...
(나를) 지켜보시는 (나의) 하나님 ... (내가 나의) 눈으로 확인한 (나의) 하나님...
눈으로 (나를) 확인하시는 (나의) 하나님...

광야에서 자기를 친히 "살피시고" 광야의 샘가에서 자기를 일으켜 세워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갈은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Beer-
Lahai-Roi)" ("나를 실피시는 살아계신 분의 샘")(16:16) 이라 불렀습니다.


[6]
우리의 신앙여정(旅程)에서 언제나 우리를 "살피시는 하나님"의 체험이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걸어 온 신앙여정을 찬찬히 되돌아 보며 걸어온 나의 신앙의
자취를 찾아보기 원합니다.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두려움과 공포의 광야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마련하고 계신) 미래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이어
지는 소망과 구원의 (손)길을 볼 수 있기 원합니다.

우리를 "살피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외쳐 부르며 담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원합니다. 코로나19 (COVID-19) 감염 확산으로 인해 (맨눈으로는 볼 수가 없는
그래서 너무나 두려운) (왕관)바이러스 앞에 전세계 사람들이 움추려 떨고 있는
상황에서 "브엘-라해-로이" ("나를 살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샘")에서 흘러
내리는 은혜와 평안의 물줄기가 우리의 영혼을 촉촉히 적시기를 간구합니다.

오늘도 영혼의 울림방에서 울려 나오는 [나의 소망 되신 주]를 찬양합니다.
나의 소망 되신 주/ 내 앞에 늘 계시니/ 내 마음의 꽃들은 피어나 노래하네
나의 소망 되신 주/ 내 곁에 늘 계시니/ 내 마음의 샘물은 기쁨의 강이 되네
오직 주님만 사모합니다/ 오직 주님만 경배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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