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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이상태(2020-04-19 01:32:36, Hit : 447, Vote : 14
 (설교칼럼) 여호와의 만찬 (이사야 25) (요한복음 11)

주일예배 (2020/04/19)
가정예배 (강해설교요약)
=======================
본문성구: 이사야 25:1-9 (6-9)
설교주제: 열방을 위한 여호와의 만찬


[배경]
구약의 대표적 예언서인 이사야서에는 (우리 인간의 일반적인) 시간의 개념을 초월하는
여러 예언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예언이 전해졌던 시점에서
보면)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사건들]이었지만 (지금 우리의 시점에서 보면) 역사속에
이미 일어난 [과거의사건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일어나지 않은 사건들 즉
앞으로 언젠가 일어날 사건들이) 글자 그대로 "예언(豫言)(預言)"으로 담겨있습니다.

일전에 우리가 함께 살펴 보았던 (이사야서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는) "종의 노래" (The
Servant Songs) 처럼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의 특징은 한 개의 예언이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데 그 예언이 여러 시대에 걸쳐 (역사적으로) 이미 일어났고 (앞으로) 또 일어
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예언서에 대해서는 더 깊은 고찰(考察)이 필요합니다.

이사야 [25장]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사야 24장부터 27장까지를 하나의 문맥
(文脈)(context) 으로 보아야 한다고 성경학자들은 강조합니다. 이사야서 [24장]에는
"온 땅에 임하게 될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예언들이 담겨있습니다: "사람들로
인해 온 땅이 오염이 되었도다... 모든 성읍은 텅텅 비었고 모든 집들은 문이 닫혀 드나
드는 사람이 아무도 없도다... 모든 기쁨이 슬픔으로 변했고 모든 즐거움이 거리에서
다 자취를 감추었도다... 그 날에 이런 재난이 온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나리라."
(이사야 24:5-13 참조). *[지금 전세계가 처해 있는 상황을 눈 앞에 보는 듯합니다.]

이사야 [25장]에도 부분적으로 심판에 관한 언급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25장]에
담겨있는 예언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기쁜 소식입니다. 이사야서
[26장]에는 하나님의 "구원"에 관해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날에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구원하셨다 (노래하리라)" (이사야 26:1 참조).
그리고 이사야 [27장]에서는 하나님의 회복과 구원의 메시지가 열방에 선포됩니다:
"정녕 그날에는... 흩어져 사는 모든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거룩한 산 곧 시온 산
위에서 여호와께 예배하리라" (이사야 27:13 참조).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 이 예언은 나라을 잃고 바벨론 이방 땅에 갇혀 유배생활을
하고 있던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선포되었던 예언들입니다. *[한편 이 예언은 현재
코로나19 로 인해 암울한 상황속에 갇혀있는 우리에게 선포되는 예언들 같습니다.
어둡고 불안한 긴 밤이 지나가고 ... 밝고 환한 빛이 온 땅에 비추일 그 날이 반드시
오리라는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1]
(2020년) 부활주일이 지난 후 첫날인 (04/13)월요일에 우리가 함께 묵상했던 이사야
[25장]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송축하나이다 / 이는 여호와께서 옛적부터 놀라운 일들을 계획
하시고 그 계획을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이루시기 때문이니이다" (이사야 25:1 참조).  

이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사도 바울의 말씀이 뇌리에 떠오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 얼마나 풍성하고 깊은지요... 하나님의 판단을 우리가 감히 헤아릴 수
없고 하나님의 행하시는 길을 우리가 감히 더듬어 찾을 수가 없도다... 누가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알 수 있으랴... 이 세상 모든 만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와서 여호와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결국 여호와께로 돌아가는도다 여호와 하나님께 영원토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로마서 11:33-36 참조).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과연
진정으로 이러한 신앙고백을 할 수 있을까?]


[2]
선지자 이사야는 (성도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를 차례로 기록합니다:
"정녕 여호와께서는 힘없고 가난한 자들에게 피난처가 되시고 곤경에 빠진 자들의 요새
이시며 폭풍우를 피할 도피처가 되시나이다" (이사야 25:4 참조).

그런데 현재 전세계가 처해 있는 상황에서는 이 말씀을 납득((納得)하기가 힘듭니다.
(각 나라와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코로나감염병 비상재난이 선포된
상황에서 최근에 나오고 있는 통계자료에 따르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를 당하고 있다고합니다.

특히 여러 인종이 모여 살고 있는 미국에서는 코로나감염병 확진자와 사망자 가운데
(대체로 생활수준과 교육수준이 낮은 계층에 속하는) 흑인들과 히스패닉계 사람들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여러 통계들이 발표되고 있습니다.
(For example, in New York City, the Afro-American and Latino communities are
currently bearing a larger burden than other ethnic groups in terms of the number
of the reported COVID-19 confirmed cases and deaths.) *[이와 같은 통계에 대한
전문가들의 분석들은 여기서 생략합니다. 그러나 가정에서 예배/성경공부를 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한편으로... 사회적 거리두기(Social-distancing)와 지역봉쇄 등이 강력하게 시행되고
있던 지난 몇 주 동안에도... 수퍼마켓 고용자들/ 청소원들/ 의료보조원들 등 대부분
저소득층 내지 취약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보호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의 위험에 노출된 채... 날마다 필수 작업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음
으로 인해 많은 중산층과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집에서 재택근무(在宅勤務) 등을
하며 일상생활을 유지해 갈 수 있다는 것이 역설적(逆說的) 현실입니다.

그리고 (코로나19의 타격을 가장 심하게 받은 뉴욕 시에서는) 대부분의 식당과 가게등이
문을 닫으면서 이런 곳에서 일하던 (비정규) 아르바이트/알바생들이 일자리가 없는 동안
(집안에 갇혀 지내는 노인들과 장애인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여러 봉사활동에 참여하여
생필품을 노약자들의 집으로 배달해주고 있다는 소식들이 들립니다. 이런 봉사활동들이
펼쳐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극심한 가뭄 기간 동안 요단 앞 시냇 가에 갇혀있던 선지자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날라다 주던 까마귀들이 생각납니다.  

국민들의 복지와 안전을 위해 일할 책임을 맡은 각국 정부의 지도자들이 맡은바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연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보여주는 것같이)
우왕좌왕 하고 있을 때에도... (까마귀들과 같이 부지런히 일하는 여러 시민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시는 것일까...?  

(노벨상을 수상했던) 저명한 경제학자가 어저께 방송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계속 생각
납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앞으로 전세계가 빈부간의 격차를 줄이는데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게 되고... 각 나라의 정치지도자들은 국민의 기본복지를 위해서
더 폭넓은 정책을 수립하고 더 적극적으로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의 모든 생각을 뛰어 넘는) 역설적 방법으로... 코로나19와 같은 큰 재난을
통해서도...궁극적으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시는 것일까...?]


[3]
선지자 이사야는 (우리 성도들과 세상 모든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송축해야 하는
이유를 계속 선포합니다: "전능하신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맛있는 음식과 최상의 포도주와 좋은 고기로 풍성한 잔치를 베푸실 것이라" (25:6 참조).

이 예언의 말씀 앞에서 한참 동안 나의 생각이 멈추어 섰습니다... 대부분의 식당들이
문을 닫았고 생필품을 구입하러 마켓에 갈 때도 마스크로 코와 입을 철저히 가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꼭 필요한 식품만 빨리 골라서 마켓안에서
머무르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등 주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상황에서... 선지자
이사야가 전하는 "풍성한 잔치/연회/만찬"의 예언은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 거리가 먼
하나의 "소망적 사고" (Wishful Thinking) 처럼 들립니다. *[과연 언제쯤 이런 예언이
"소망적 사고"가 아닌 현실이 될 수 있을까...?]

나의 묵상이 계속 되는 중에 [가나의 혼인잔치]가 생각납니다. 혼인예식에 참석한
하객(賀客)들을 위해 마련했던 포도주가 다 떨어지는 비상사태가 발생합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는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재난이 선포될 뻔한
잔칫집의 분위기가 오히려 "최상의 포도주"가 충분히 공급되면서 기쁨이 더 충만해
졌습니다. "예수께서 이 첫 번째 표적/기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한복음 2:11 참조)라고 기록된 것을 보니
[과연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도 이루어졌는가 봅니다.]

그리고 (04/14) 화요일에 함께 묵상했던 (마가복음 5:21-43) 말씀도 생각납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 도착하셨는데 회당장의 어린 딸이 이미 죽어서  
집안에 통곡 소리가 가득합니다. 마치 그 동네에 재난사태가 선포된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아이가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가셔서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말씀을
하십니다: "달리다 굼" [참고로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아람어 "달리다 굼"은 "달리다
(Talitha)"와 "굼(Kum)" 즉 (호격) "어린 소녀야" 와 (명령형) "일어나라"의 합성어
입니다.] 그러자 소녀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야이로가 사람을 불러 소녀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었겠지요. *요즈음에는 피자와 콜라를 배달시켜 주어야할까?]

그리고 나서 회당장 야이로는 조문객((弔問客)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아마도 당장 음식을 마련하고 잔치를 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부활의 기적에다) 초상집을 잔칫집으로 바꾸는 기적을 더하셨구나
*[이사야의 예언이 회당장 야이로의 집 뜰안에서 현실로 이루어지는구나...]

언젠가 이곳 블루밍턴에도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 현실이 되어 우리가 잃어버렸던
봄의 환희를 다시 찾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과 포도주와 고기로
풍성한 잔치를 베푸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 모두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어서 그날이 오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4]
여호와 하나님께 (우리가) 경배해야 할 이유가 또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덮고 있던 수건을 (모든 백성이 걸치고 있던 수의를) 벗겨주시고
모든 나라들 위에 덮여 있던 천도 다 제거하시리라" (25:7 참조). 이 예언에서 눈길을
끄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얼굴을 덮고 있던) [수건]("veil") (걸치고 있던) [수의]
("shroud")라는 단어와 (덮여 있던) [천]("sheet")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들을 보는 순간 나의 뇌리에 연상(聯想)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04/08)수요일
몇 가지 식품을 사러 Kroger Store (슈퍼마켓)에 갔습니다. 주차장에 도착해서 차를
세우고 보니 (놀랍게도) 카트를 밀며 오가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얼굴에 무언가를
쓰고 있습니다. (공장에서 만든 듯한) (정규) 흰색 마스크도 있고... 집에서 손수 만든
듯한 (비정규) 얼굴 가리개도 있습니다. [아내도 집에서 천조각들을 가지고 마스크를
하나 만들어 쓰고 찍은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주었는데... 제법 괜찮아 보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전에 내가 마카로니 서부영화에서 보았던 은행 강도들이 얼굴을
가렸던 것처럼 그렇게) 큼직한 스카프로 얼굴을 둘러 감고 있습니다. 몇 주 전만해도
Kroger 마켓이나 거리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었는데 드디어
인디애나 블루밍턴 마을에도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력이 이렇게 나타나는구나.
*[나도 마스크를 꺼내 쓰고서... 마켓으로 들어가야겠네... 상의 자켓/재킷 포켓에서
마스크를 끄집어 내는데 얼마전 영성일지에 내가 기록했던 에피소드가 생각납니다.

[영성일지의 내용입니다] (*) 오늘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 평소처럼 집 밖으로 나가
새벽산책기도를 마치고... 집안으로 들어와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책상 앞에 앉는 순간
나의 뇌리를 스쳐가는 생각이 있습니다: "오늘은 마스크 [한 장]을 [꼭] 마련해야겠다."
이상하게도 오전 내내 그 생각이 수시로 떠오릅니다. ("왜 [한 장]일까... 왜 [한 장]을
오늘 꼭 마련해야 할까?") 나 스스로 물어 보고 나 스스로 답을 반복합니다: "[한 장]만
있으면 충분해... 이따금 식품 사러 마켓에 갈 때 쓰고... 갑자기 외출을 해야할 일이
생기면 쓰고... 그리고 돌아와서 잘 빨아서 다시 사용하면... 한 장으로도 충분할거야"
정오가 되어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는데... "오늘은 마스크 [한 장]을
[꼭] 마련해야겠다"란 생각이 또 떠오릅니다. (참 집요하구나!) (그런데 당장 어떻게
마련하나... 어디에 연락을 해야할까?) 그러다 오후 세 시가 좀 지나서 어떤 성도님이
[중간과정 생략] 보낸 카톡이 왔습니다. 열어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한국에서 직계가족에게 보내줄 수 있는 마스크가 몇 장 왔습니다... 목사님 마스크
가지고 계신가요... 일단 적지만 한 개라도 목사님댁 우체통에 넣어 드릴께요" [이게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면 성경학자들이 말하는 "inner stirring" 예언(豫言)(預言)일까?
[(04/02 영성일지에서)]

현재 미국에서는 개인이 마스크를 구하고 싶어도 구할 방도가 거의 없는 듯합니다.
설령 (아마존으로) 주문을 해도 언제 도착할지 기약(期約)이 없습니다. 최신 보도를
보니 전세계적으로 국가들 간에 마스크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각 주들 간에도 마스크와 의료장비 구입을 위해 경매수준에 이르는 치열한 가격전쟁
(Bidding War)이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으로 한국에서는 몇 주 전까지는
마스크 대란(大亂)이란 용어가 뉴스 보도에 자주 등장하곤 했는데... 지금은 한 주에
한 사람이 마스크를 2장씩은 구입할 수 있다고 하니 다른 많은 나라들의 사정과 비교
해 볼 때 참 부러운 상황입니다. 무엇보다도 현재 한국이 전세계에서 코로나19 방역
모범국가로 손꼽히며 많은 주목을 받고 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5]
나의 마스크 [한 장]에서 다시 눈길을 돌려 이사야의 "수건"과 "천"을 들여다 봅니다.  
"민족의 얼굴을 [덮고 있던 수건을/걸치고 있던 수의를] 벗겨주시고 모든 나라들 위에
[덮여 있던 천]을 제거하시리라" (25:7) 에서 "수건/수의" 그리고 "천"이란 것의 의미에
대해 성경학자들은 여러 가지 다양한 해석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내 나름대로
해석 하나를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을 통하여 소개합니다]

(우리말 <개역개정>에서 "덮고 있던 수건"이라고 번역된) [수건]("surface covering
veil")은 다윗 왕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예루살렘 성읍에서 피신(避身) 하는
장면을 묘사할 때도 암암리에 사용되었습니다: "다윗이 그의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산 길로 올라가니라" (사무엘하 15:30 참조). 그후 압살롬이 반역에 실패하고 죽임을
당했을 때 압살롬의 사망 소식을 전해들은 다윗 왕의 모습 묘사에도 사용되었습니다:
"다윗 왕이 그의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슬피 울었더라" (사무엘하 19:4 참조).
즉 (머리나 얼굴을 가리거나 덮는) "수건"은 죽음과 애도(哀悼)의 상징입니다.  

참고로 한글<표준새번역본>에서는 "(덮고 있던) [수건]"과 "(덮여 있던) [천]"을 모두
"수의"(壽衣) (shroud)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천주교와 개신교의 학자들이 함께
번역작업을 한 <공동번역개정판>에는 "머리/얼굴을 가리는 [너울]"이라 번역 했습니다.
그리고 성서원에서 발간한 <쉬운말 성경>에서는 "덮고 있는 (검은) 수건"과 "덮여 있던
(검은) 천"으로 번역을 했는데 (죽음의) 암울한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검은"
이라는 색깔 수식어를 덧붙인 듯합니다. 이런 다양한 번역본들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구약성경(Hebrew Bible)과 신약성경(Greek Bible)의 히브리어/헬라어 원본의 번역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리고 변화하는 시대 감각에 맞추어 계속 개정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번역자들이 (나름대로) 어떤 의도를 가지고 번역을 했던 간에
전체적 문맥에서 "수건"과 "천"은 "죽음"을 상징하고 또한 "죽음과 같은 상황"을 묘사
하는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수건"과 "천"의 사례들을 찾아 보던 중에... 불현듯 요한복음에 기록
되어 있는 한 사건이 생각납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큰 소리로 "나사로야
(이리로)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그 싸맨 것을 풀어주라 그가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하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1:43-44 참조).  

그리고 또 생각나는 성경속의 장면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의 무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예수의 몸을 둘러 감았던 "수의"(壽衣)가 ("세마포"/"삼베 자락"이) 흩어진 채 놓여
있고 또 예수의 머리를 싸맺던 ("얼굴을 가렸던") 수건은 수의와 함께 흩어져 있지 않고
따로 한 곳에 잘 개켜져 있더라 (요한복음 20:6-7 참조). [아울러 예전에 부활절이
다가오면 항상 뉴스매체에서 다루곤 했던 <The Shroud of Turin>도 생각납니다.]


[6]
선지자 이사야는 (성도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송축해야 하는 핵심적인 이유를 말합니다:
"정녕 여호와께서 죽음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 여호와께서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주시고 여호와의 백성이 당한 모든 수치를 천하에서 말끔히 없애 주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사야 25:8 참조).

성경학자들이 (해석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부분은 "여호와께서 죽음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우리말 성경번역에는 "(여호와께서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시리라" <공동번역개정판> 또는 "멸하실 것이라" <개정개역>등으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 여러 곳에 나와 있는) 이 히브리어 단어를 정확하게 번역
하면 "(여호와께서 죽음을 영원히) "삼키시리라" 입니다. 대부분 영어번역본들을 보면
("He will [swallow up] death forever")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삼키다"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나의 뇌리에 떠오르는 몇몇 그림들이 있습니다. "삼키다"
라는 의미를 매우 강렬하게 보여주는 그림들입니다. 그중에 하나는 스페인의 화가 고야
(Goya)가 그린 <Saturn Devouring His Son>(1823)입니다. 이 작품은 희랍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주제로 그린 것인데... 내가 어릴 때 이 그림을 처음 보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미술평론가들은 "현대 인간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제대로 이해
하는데 꼭 필요한 그림"이라고 높이 평가하기도 합니다. [참고로 (고야보다 훨씬 이전에
활동했던) 네덜란드의 화가 르우벤(Peter Paul Rubens)이 그린 작품도 있습니다. 역시
<Saturn Devouring His Son>(1636) 라는 제목입니다. 아마도 르우벤이 그렸던 그림이
고야에게 영향을 끼친듯 합니다.) (*) [참고로 가정에서 예배드릴 때 어린 자녀들이 함께
있으면 이 그림들에 대한 언급은 잠시 생략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위에 언급한 미술가들의 그림에서 내가 받았던 충격과 같이... (우리말로) "삼키다"라는
표현이 전해주는 어감(語感)은 무언가 으스스하고 으시시합니다. "삼키다"라는 표현과
관련하여 성경에서 대표적으로 기억되는 것은 (레위 지파에 속했던) 고라의 사건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고라와 그의 추종자들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땅이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유물을 [삼키고] 그들이 산 채로 스올 (무덤
또는 땅 속 깊은 구덩이)로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했다는 것을
깨달아 알리라..." 모세의 말이 끝나자마자 땅이 갈라지고 고라와 고라를 추종하던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재물을 집어 [삼키니라]...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이 우리도
[삼킬까] 두렵도다"하고 부르짖으며 도망하니라 (민수기 16:1-34 참조).

한편으로 "삼키다"라는 표현이 (신학적인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사용된 경우들도 종종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느껴지는 분위기는 여전히 "으스스"합니다....) 예를 들자면
"아론의 지팡이가 애굽 요술사 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출애굽기 7:8-13 참조)
"(생명이) 사망을 [삼키고] 승리하리라" (고린도전서 15:51-55 참조) 등등 입니다.

"사망을 [삼키고] 승리하리라"는 말씀이 담겨있는 (사도 바울이 부활에 관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세히 설명한) 고린도전서의 내용을 묵상할 때마다 나에게 들려오는 듯한
소리가 있습니다... (나사로가 죽어서 무덤 속에 누여 있는 때에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이것을 믿느냐?" (요한복음 11:25-26 참조).

("죽음을 삼키는" 영원한 생명의 소식과 함께) "여호와께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주시고 여호와의 백성이 당한 모든 수치를 천하에서 말끔히 없애 주시리라" (25:8)
하신 예언 말씀은... 밧모 섬에 유배(流配)되었던 요한에게 환상 중에 다시 전해집니다.
"보좌 한 가운데 계시는 어린 양께서... 성도들을 생명수의 샘으로 인도하시고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라" (요한계시록 7:17 참조)
"이제 더 이상 죽음이 없고 슬픔도 없고 눈물도 없고 아픈 것도 없을 것이라... 보라
이제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노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모두 다 기록하라"
(요한계시록 21:4-5 참조).


[7]
(처음 배경설명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사야 [24장]부터 [27장]까지는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너무나도 암울했던 시대와 연관된 예언들이 담겨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함락(陷落)되고 여호와의 성전(聖殿)이 파괴되고 많은 사람이 이국 땅으로
잡혀가는 [전쟁과 고난의 시기가 올 것에 대한] 예언들이 많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나 (2020/04/19) 주일예배를 준비하며 우리가 묵상했고 오늘 함께 살펴보는
본문 (이사야 25:6-9) 말씀은 고난의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하여 구원의 빛을 보게
될 그날에 관한 예언입니다. "그날에 사람들이 소리 높여 말하기를 보라 여호와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였더니 우리를 구원하시는
도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으니 우리가 모두 기뻐하며 즐거워하자!"
(이사야 25:9 참조).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에서 구원을 얻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홍해를 건너고)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곳에서 일년 정도를 머물러 있을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하나님께서 시내 산 위에 강림하시고... 모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모세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과 함께
여호와께로 올라가서 멀리서 경배하고... 하나님을 뵈옵고 함께 먹고 마셨더라"
(출애굽기 24:1-11 참조).

[고요한 가운데 눈을 감으니] 여호와의 산에서 베풀어진 만찬의 장면이 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합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향하여 노래하는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의
찬양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의지하였더니 우리를 구원하셨도다... 우리가 모두 기뻐하며 즐거워하자!"


[8]
여호와 하나님께서 (생명의 말씀을 담아) 우리들에게 주신 성경에서 "구원"이라는
단어는 "죄"와 "사망"으로부터 그리고 우리 인간이 겪는 모든 "고통"과 "속박"으로
부터의 자유함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04/15)수요일과 (04/16)목요일에 묵상했던 성경본문의 사건을 다시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명하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여있더라 /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의
수족을 싸맨 것들을 풀어주어 다닐 수 있게 하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1:43-44 참조).

예수님의 말씀들을 다시 한마디씩 들어봅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그를 풀어주어
다니게 하라" 예수님께서는 "죽음"으로부터의 구원과 (싸매인)"속박"으로부터의
자유를 선포하십니다.

나사로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후에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예수께서
(다시) 베다니 마을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사는 곳이라 / 그 곳에서 예수를 영접하는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다는 일을 하고
... 나사로는 식탁에 함께 앉아 예수님과 환담(歡談)을 나누고 있더라 그때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를 가져와서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의 발을 정성껏
닦으니 향유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하더라 (요한복음 12:1-3 참조)

"죽음"으로부터 구원받은 후 나사로가 마르다와 마리아와 함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집에 모시고 만찬(晩餐)을 합니다. [고요히 내 눈을 감으니] 그들이 부르는
찬양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의지하였더니 우리를 구원하셨도다... 우리가 모두 기뻐하며 즐거워하자!"


[9]
기독교의 여러 절기 가운데 ("모든 성도들을 기념하는") "만성절"(萬聖節)이 있습니다.
중세기부터 기독교 (특히 카톨릭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지키고 있는 만성절(萬聖節)은
특히 (죽은) 성도들을 추모(追慕)하는 날입니다("All Saints Day"). 이날이 오면 카톨릭
신도들은 조상들의 무덤을 찾아가 추모예배를 드리기도 합니다. 만성절 추모예배에서
많이 읽혀지는 성경말씀은 오늘 우리가 살펴보았던 (이사야 25:6-9) 입니다.

주일예배를 드릴 때 우리는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
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들이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I believe in the Holy Spirit... the Communion of Saints...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and the Life everlasting"). 신앙고백에서 "성도들이 서로 교통/교제하는
것"은 단순히 살아있는 성도들간의 교제 뿐만 아니라 (지금은 이 땅에서 얼굴을 마주
볼 수 없는 이미 이 땅에서는) "죽은" 모든 성도들과의 교제도 의미합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처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산 자와 죽은 자"들 모든 성도의
교제가 가능하다면... 우리는 "모세와 아론과 칠 십인의 장로들"과도 함께 성도의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들과 시내 산 위에 올라가 여호와 하나님을 뵙고 함께
만찬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베다니 마을의 마르다/마리아/나사로의
집에서 예수님과 함께 만찬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만군의 여호와
께서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베푸시는 풍성한 잔치"에 모든 성도들과 함께
참석할 수 있습니다.  


[축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의 수족을 묶고 있는 듯한 이 힘든 시기가 지나고... 우리
모두 얼굴을 가리고 있는 수건을 벗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평화의 인사를
나눌 그날을 소망가운데 기다립니다... 그날이 오면 우리는 함께 떡을 떼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모아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목소리 높여 송축(頌祝) 할 것
입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였더니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도다 / 우리가 모두 기뻐하며 즐거워하자!" (아멘)




(설교칼럼) 여호와의 외침 (이사야 55) (요한복음 7)
(설교칼럼) 살리시는 하나님 (열왕기상 17) (살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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