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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이상태(2020-04-26 00:35:54, Hit : 442, Vote : 10
 (설교칼럼) 여호와의 외침 (이사야 55) (요한복음 7)

주일예배 (2020/04/26)
가정예배 (강해설교요약)
본문성구: 이사야 55:1-3
설교주제: 여호와의 외침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1)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2)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55:3a)


[배경(背景)]

[1]
인류역사에 "검은 죽음(Black Death)" 또는 "대역병(Great Plague)"으로 알려져 있는
흑사병(黑死病)은 14세기 유럽 전역을 휩쓸면서 당시 유럽 총 인구의 (적어도) 30%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합니다.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들 중에서 다음과 같은
기록도 있습니다: "매일 밤낮으로 수백명의 사람들이 죽어갔다 ... 역병이 세상을 온통
뒤엎고 있다 ... 머지 않아 온 땅이 묘지로 덮일 것이다. 나는 다섯 아이들을 내 손으로
묻었다 ... 이 수많은 죽음을 눈 앞에 보며 사람들은 세상의 종말이 왔다고 믿고 있다."  

유대교인/ 기독교인/ 이슬람교인 등등 종교를 가릴것 없이 (소위 신을 믿고 있었던)
신자(信者)들이 남겨놓은 일기장이나 편지 등의 일부 내용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흑사병(페스트)에 대한 정확한 의학(醫學)지식이 거의 없었던 시대에 사람들이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그들이 믿는 신(들)에게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이
함께 모여 "예배와 기도와 염송(念誦)으로 밤을 지새우는 가운데" 흑사병으로 인한
집단감염은 더욱 크게 확산되었고 (결국 믿음이라고들 착각한) 무지(無知)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 [이런 집단 행동이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을까... 긍정적 측면이 있었을까...
의견들을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결과적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절대권위를 행사하던 교회는 흑사병으로부터 신도(信徒)
들을 보호하지 못했고 죽음으로부터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로 인해 교회의 권위와 (특히
교회와 성직자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요즈음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후 한국에서 행정당국의 간곡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불교나 천주교와는 대조적
으로) 개신교의 많은 교회들이 현장 예배를 강행하는 모습들을 지켜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 [왜 교회들이 우리 사회의 모범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가 교회를
염려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을까... 진지하게 의견들을 나누어보면 좋겠습니다.]


[2]
흑사병으로 인해 (정치/ 사회/ 경제/ 종교 등 모든 분야에 걸쳐서) 인류의 역사 특히
유럽의 역사는 돌이킬 수 없는 전환기(轉換期)를 맞이하게 됩니다. 오랜 세월 지속
되었던 사람들의 관념과 인식체계의 "패러다임(Paradigm)"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지금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이 중세기의 흑사병과 같이 (지금
까지 우리가 익숙하게 여겨왔던 (근대/현대문명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패러다임"
의 큰 전환을 가지고 올 것이라고 예측(豫測) 하는 전문가들의 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 [종교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과 종교인들의 신앙생활 그리고 특히
종교 행사와 예배의 형식 등과 관련하여 앞으로 어떤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을까...
우리의 생각들을 함께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흑사병으로 인해 십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는 중세 이탈리아의 도시 피렌체를
배경으로 이탈리아 작가 보카치오가 집필한 <데카메론(Decameron)>(1353)이란 작품이
생각납니다. 열 명의 사람들이 흑사병을 피해 어느 조그만 마을의 별장에 모여 나누는
모두 백 개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는데... 당시의 사회상(社會相)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콜레라 역병(疫病)으로 인해 봉쇄(封鎖)된 한 도시를 배경으로 알제리아 출신의
불란서 작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가 쓴 <페스트(La peste)(The Plague)>(1947)
라는 작품도 생각납니다. 역병으로 인해 특정 지역에 "갇히게" 된 (신부/ 의사/ 신문기자/
사회활동가/ 공무원/ 판사 등등)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역병에 대한
인식(認識)과 그들의 심리상태(心理狀態) 그리고 "갇힌" 상황에서 역병에 대처하는 다양한
모습과 태도들을 볼 수 있습니다. (**) [코로나 19로 인해 이런저런 형태로 "갇힌" 상황에
있는 우리들도 각자의 일상(日常)의 변화와 심리상태를 함께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3]
여호와 하나님을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유일신(唯一神)으로 믿고 섬겼던 이스라엘 백성
들에게는 (이방신을 섬기는 이방인의 나라 바벨론 제국에 의해) 예루살렘 성읍과 성전이
파괴되고 유다 왕국의 지도층을 포함한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사건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衝擊)이었습니다. [요즈음 표현으로 총체적(總體的)
"트라우마 (Trauma)"를 경험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의 민족 정체성 (正體性)과 신앙관(信仰觀)에
대해 엄청난 의문(疑問)들을 품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여호와는 과연 전지전능
하신가 ... (전지전능하다면) 왜 이런 굴욕적(屈辱的)인 일이 우리들에게 일어났는가 /
여호와가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과 다윗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고 계시는가 / 우리는 과연
여호와의 선택을 받은 민족인가 / 여호와가 우리를 버리셨는가 / 여호와가 우리를 다시
구원해 주실 것인가..." (**) [우리는 신앙생활 가운데 이러한 "의문을 품은 적이 없는가"
함께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바벨론 유수(幽囚) (The Babylonian Exile/ Captivity))는
출애굽(Exodus) 이후... 광야에서의 방황생활을 거쳐... (남유다/북이스라엘) 왕국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삶을 규정하고 있었던 (종교적 정치적...)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흔든
사건이었습니다. 특히 히브리성경의 <선지편>에 담겨있는 예언들 가운데 많은 부분이
"바벨론 유수" 전(前)과 후(後)에 일어나는 사건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4]
구약성서 학자들은 [이사야서 40장부터 55장까지를] 길다랗게 펼쳐진 파노라마 사진과
같이 연결된 문맥(文脈) 으로 보고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여기에 담겨 있는 예언들을
묶어 <위로의 예언> (Words of Comfort)이라고 부르는데 중심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의
바벨론 포로생활입니다.

<위로의 예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사야 40장부터 48장까지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유배(流配)된 상황과 관련된 예언들이고 [이사야 49장부터
55장까지는] 포로생활에서 살아남은 자들과 후손들이 유배에서 풀려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과 성읍을 재건(再建)(Reconstruction) 하는 것과 관련된 예언들입니다.  
즉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유배생활이 끝이난다는 것을 전해주는] "위로의 예언"과
[유다 땅으로 귀환(歸還)한 후에 무슨 일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계획하도록 하는]
"소망의 예언"입니다. "위로(Comfort)"와 "소망(Hope")은 우리의 영혼이 항상 간절히
바라고 기다리는 것들입니다.

[이사야서 40장 – 55장] <위로의 예언>의 큰 물줄기는 (다음과 같이) 예언의 첫마디부터
시작합니다: "너희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라 /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Comfort, O Comfort My people) / 너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크게 외치기를] 이제
너희의 유배(流配) 기간이 끝이났느니라 / 너희들의 죄의 값이 다 치루어졌느니라 / 이제
너희가 용서함을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이사야 40:1-2 참조) 이와 같이 시작된 여호와의
"위로(慰勞)"의 물줄기는 높고 낮은 계곡을 감돌아 굽이굽이 흘러서 (우리가 지난 월요일
/화요일에 묵상했고 주일에 다시 함께 살펴보는) 이사야서 55장으로 이어집니다.


[강해(講解)]

[1]
두 주일 전 즈음에 (04/12) 뉴스 보도에서 여러 사진들을 보았습니다. 공중에서 찍은 사진
들입니다. 특히 나의 눈길을 끌었던 사진 속에는 엄청나게 긴 차량(車輛)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지어 서 있습니다.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시 (San Antonio in Texas)의 식량
저장 배급소 (Food Storage Distribution Center)(a.k.a. Food Bank)에서 무료 식량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10,000 여 대가 넘는 차들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종으로 팔려갔던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후 (여호와 하나님이 예언했던 대로 칠 년 대풍년이 끝나고)
칠 년 대흉년이 시작되면서 먹을 식량을 구하러 각처에서 줄지어 몰려오는 사람들에게 곡물
저장 창고를 열어 곡식을 판매하는 장면이... 수천 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다시 나의 뇌리에
이렇게 떠오릅니다 (창세기 41:53-57 참조).]

세계에서 가장 부강(富强)한 나라요 식량(食糧)이 가장 풍족한 나라로 알려진 미국에서...
이렇게 식품 배급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나 긴 행렬을 눈 앞에서 본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습니다. 컴퓨터 스크린의 사진을 들여다 보면서 갖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 [코로나19사태가 장기화(長期化)하여 각나라와 세계의 경제체계가 붕괴되면 어떻게
될까 ... 소위 선진국이라 자타가 공언하던 많은 나라에서도 지금의 경제상황은 거의 전시
(戰時) 내지 공황(恐慌) 수준인데 ... 코로나19 감염병이 중남미(中南美)와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으로 확산이 되면 어떻게 될까... 함께 의견을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 학교에서 점심식사시간이 되면 옥수수 빵이나 옥수수 죽을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미국에서 원조물품으로 보내온 옥수수 가루로 만든 것이
었지요.) 한국동란(The Korean War)의 깊은 상처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던 시절이었는데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의 학생들 중에 상당수가 고아원에서 기거(起居)하는 고아(孤兒)들
이었습니다. 거리에 나가면 6/25전쟁에서 팔이나 다리를 잃은 상이(傷痍)군인들과 구걸
(求乞)하는 거지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농촌 지역의) 식량 사정이 어려운 때를
가리키는 "보릿고개"라는 용어가 신문과 라디오 뉴스에 자주 등장했습니다. (먹을 것이
귀하고 부족하다 보니) 어른분을 만나면 "진지 드셨습니까"라는 물음이 예의바른 인사의
기본이었습니다. ("진지"는 끼니로 먹는 밥/음식의 높임말 입니다.)

"[오호라] 모두 와서 음식을 (사) 먹어라 / 돈을 내지 말고 값도 지불하지 말고 포도주와
젖을 거져 마셔라"는 외침이 나의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내가 어렸던 시절에 누군가가
길 거리에서 이렇게 외쳤다면 길 가던 사람들이 특히 걸인(乞人)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
을까... 지금까지도 내전(內戰) 중에 있는 시리아의 난민촌(難民村)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외친다면 난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 [우리들이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2]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 오라... 오라" (개역개정)(이사야 55:1)
(2020/04/20)(월요일) 묵상나눔으로 올려진 글들 중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사야 55장은 '오호라' 라는 감탄사로 시작됩니다. 이 감탄사의 뉘앙스가 어떠한 것인지
궁금해서 다른 버전의 성경과 영어 성경을 찾아보았는데 감탄사가 아예 빠져있는 번역본
들도 있고 'Ho'로 나와있는 성경도 있었습니다. 번역에 따라 이 감탄사가 등장하기도 하고
생략되기도 하는 것을 보니 그렇게까지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어는 아닌 것일까? 하는 궁금
증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성경 말씀에 의미없이 그냥 쓰인 단어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이
'오호라'라는 감탄사에는 그 뒤에 이어지는 말씀이 주는 기쁨과 즐거움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고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바르게 이해한 것이 맞을까요?]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오라" ("Ho everyone that thirst(eth) Come...)(KJV)  
“오호라"라고 우리말로 번역된 히브리 단어의 표기와 발음은 (הוי) (hôy)입니다. [위의 묵상
나눔글에서 언급된 것처럼 대부분의 현대영어번역본에는 이것이 빠져있습니다.] 그런데
오래전 (1611 년에) 출간된 이래로 가장 널리 읽혀졌던 킹제임즈역본 (King James Bible
/ King James Version)에는 "Ho"라는 (감탄사) 번역이 들어 있습니다. (*) [내가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 성경 (Hebrew Bible Masoretic Text)에 적혀있는대로 이구절의 처음 다섯
단어를 (히브리어 순서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하나씩 영어로 (차례대로) 번역하여
표기하면 "Ho / all-of / thirsty / come / to-the-waters" 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모여 사는 곳에서는 때때로 중요한 소식을 공동체 구성원들 모두에게
동시에 전달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즉 중요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통신수단(通信手段)이
필요한 것입니다. 요즈음 한국에서는 코로나 감염 방역과 관련하여 각종 필요한 정보를
행정당국이 수시로 스마트폰의 앱(Application)을 통해 전달하고 일반 시민들은 거의
실시간으로 필요한 공지사항을 점검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연일 구설수
(口舌數)에 오르는 도날드 트럼프가 새벽마다 날리는 "트위터(Twitter) 트윗(Tweet)"을
통한 전달방식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최첨단 통신기술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생소(生疏)한 용어가 하나 있습니다. "외치는 자"(The Town-Crier)입니다.

(근대/현대/최첨단 통신수단 발달 이전의) 역사 자료들을 보면 거의 모든 시대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한꺼번에 중요한 소식을 전하는데 가장 널리 사용되어 왔던
수단은 "외치는 자"(The Crier)였습니다. 성경에서도 "외치는 자"라는 용어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구약성경 <잠언서>에는 의인화(擬人化)된 "지혜(智慧)"가 번잡한 길 한
복판이나 높은 곳이나 성문 어귀에 서서 "목청껏 외치는" 모습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 [선지자 이사야가 활동했던 시절에도... 선지자 예레미야의 시절에도 ...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 하던 시절에도 "외치는 자"들이 있지 않았을까...]

(역사 자료들을 보면) 신약성경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는 "외치는 자"들이 활동했었던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자라나신 나사렛 동네에서도 "외치는 자"가 저녁이
되면 마을의 가장 높은 곳이나 지붕 위에 서서 마을공지사항을 외치곤 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마을에서 이장(里長)이나 통장(統長)이나 반장(斑長)이 확성기로 마을 사람들
에게 어떤 소식을 전달하면 "외치는 자" (Town-Crier)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 설교자들은 "외치는 자"의 역할을 제대로 잘 감당하고 있을까요?]

중세기의 자료들을 살펴보면 유럽의 마을마다 거리에서 (눈에 띄는 색깔의 옷을 입고)
("Oyez / Oyez / Oyez") 라고 외치며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외치는
자"들은 (오늘날 한국에서 노란색 옷을 입고 기자들 앞에 서서 홍보하는 공무원들처럼)
마을에서 여러가지 중요한 행정업무와 공지담당 역할을 했었다는 기록들이있습니다.
[참고로 "Oyez" 라는감탄사는 "Hear Ye"라는 의미인데 "Ye"는 오늘날 영어의 "You"
(복수형)의 옛날식 표기입니다.]

"오호라"라는 감탄사는 "(지금부터 내가 전하고자 하는 말을) 잘 들어라"고 큰 소리로
외쳐서 먼저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시키고 난후에 공지사항을 전하는 "외치는 자"들의
첫 마디였습니다. 지금도 미국의 연방대법원(U.S. Supreme Court)과 연방지방법원
(federal courts)에서 재판을 시작하는 개정(開廷)을 알릴 때 법원 보안관이 법정 앞에
서서 외칩니다. (다음은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 The Honorable,
the Chief Justice and the Associate Justices of the Supreme Court of the United States.
[Oyez! Oyez! Oyez!] All persons having business before the Honorable, the Supreme
Court of the United States, are admonished to draw near and give their attention, for
the Court is now sitting. God save the United States and this Honorable Court.

(**)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때 입을 열고 첫 마디로 외쳤던
"오호라"(라는) "외침"은 고대와 중세시대 사람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소리였을 것입니다.
그 "외침"소리가 들리면 사람들은 하던 일들을 멈추고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을 것
입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배경이 되었던 시대와 문화와는) 너무나도 다른 시대와
문화권에 살고 있는 우리가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오호라"와 같이 간략한 용어나 단어
하나가 역사속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3]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모두 나와 물을 마셔라/ 돈 없는 자들아 너희들도
모두 와서 음식을 (사) 먹어라 (사)먹되 돈을 내지 말고 값도 지불하지 말고 포도주와
젖을 (사서) 거져 마셔라" (이사야 55:1 참조)

(이방 땅 바벨론에서의 오랜 유배생활이 끝나고) 이스라엘 백성이 유다 땅으로 돌아오게
되는 역사적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제적 재정적
상황이 어떠했을까?"란 문제에 대해 알아 볼 수 있는 자료를 찾는 일은 쉽지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추측하건데) 유배지에서 먹을 것과 마실 것 등 기본적인 생필품이 넉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국 유다 땅으로의 귀환을 앞두고 이런저런 어려움이 분명히
컸을 것입니다.  [일제 시대 (식민지 강점기)에 일본으로 끌려가서 살다가 팔일오 광복
(光復)을 맞아 고국으로 돌아왔던 사람들의 경험담을 가끔씩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보따리에 꼭 필요한 것들만 담아서 한국행 배를 타야했던 사람들의 갖가지 심정이 직접
피부로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해방의 감격과 기쁨도 있지만 "앞으로 무엇을 해서 어떻게
먹고 살아가야 할까"라는 두려움과 염려가 얼마나 컸을까...] 선지자 이사야의 "오호라"
라는 외침으로 시작하는 예언들은 그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해있던 상황과 심리를
잘 반영(反映)하고 있는 듯합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 어떻게 실현되었을까?"를 곰곰히 살펴보는데... (고국 유다 땅
으로의 귀환과 관련하여) 선지자 예레미야가 전했던 예언이 생각납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포로된 그 땅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다시 돌아보고 너희에게 약속한 나의 선한 말을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예레미야 29:10 참조). [이 예언은 느부갓네살 왕에 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바벨론 유수가 진행되는 동안에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아 있게 되었던) 예레미야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에게 보낸 편지에 담겨있습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예레미야의 이 예언은 (수십 년이 지난 후에)...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왕이 (바벨론을 완전히 정복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생활에서 해방시키고
고국 (유대 땅)으로의 귀환(歸還)을 허용했을 때에 이루어집니다 (536 BCE).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미리 알려주신) 하나님의 예언의 실현(實現)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매 고레스가 다음과 같은 공문(公文)을 페르시아 전
지역에 돌리도록 하였다" (에스라 1:1-3 참조)  (*)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感動)
시키매"라는 이 표현은 어떤 심리적 영적 현상을 묘사한 것일까... 지난주일 강해설교
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은 일종의 "inner stirrings" 예언이었을까...]  

(선지자 이사야와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전해졌던) 하나님의 예언의 성취(成就)를
(우리들에게 알려주는)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이 고레스 왕이 선포한 메시지 중에 담겨
있습니다: "포로로 잡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디에 살고 있든지 (그들의) 이웃에
사는 사람들이 그들을 도와 주라 / 그들에게 금과 은과 세간을 나누어 주고 (귀국) 여행
길에 필요한 물건들과 타고 갈 짐승들도 마련해주라" (에스라 1:4 참조)  (*) [이스라엘
백성들의 귀국 길에 필요한 비용(費用)과 이동(移動) 수단 등등 예상되는 여러가지
어려움에 대해 페르시아 제국이 (여러 페르시아 주민들을 통하여) 지원금(支援金)을
마련하여 이스라엘 귀향민들에게 긴급하게 지급하라는 취지(趣旨)의 포고문 입니다]  

(**) [고레스 왕의 이스라엘 백성 귀환 지원(支援) 방식과 관련하여 오늘날 코로나 19
사태로 인한 위기(危機) 가운데 각국 정부가 (특히 한국정부가) 어느 정도 규모의 지원
자금을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신속하게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지급해야 할 것인가
에 대해 함께 생각을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고대 바벨론 제국의 유적지 (오늘날의 이라크)에서 (1879년에) 발굴(發掘)되어
지금까지 대영박물관 (The British Museum)에 소장(所藏)되어 있는 (진흙으로 구워
만든) 원통형 문자판이 있습니다. 이 원통을 역사학자들은 <고레스의 원통 (Cyrus
Cylinder)>이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이 원통의 표면에 (다양한 문화권과 민족들을
포함한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을 세운) 고레스 왕(Cyrus the Great)을 칭송(稱頌)하는
내용이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담겨있습니다: "인종과
민족의 구별없이 (이제는 멸망한 바벨론 제국에) 포로로 잡혀 왔던 모든 사람들을 그들
각자의 본국으로 돌려보낸다 / 그들이 섬기는 신들의 성전들을 재건하는데 필요한 기초
자금을 페르시아 왕실이 지급한다..." (*) [구약성경 <에스라>서에 기록된 내용과 이런
자료를 비교해 보면 성경과 역사를 더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4]
"[오호라] ... 돈 없는 자들아 너희들도 모두 와서 음식을 (사) 먹어라 (사)먹되 돈을
내지 말고 값도 지불하지 말고 포도주와 젖을 (사서) 거져 마셔라" (55:1) "너희가 어찌
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
하느냐" (55:2a) "(너희는) 내게 듣고 (또)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너희의 영혼이) 좋은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이사야 55:2b)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선포된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을 묵상하는 가운데 (히브리성경)
<지혜서>(智慧書)에서 여러번 읽었던 의인화(擬人化)된 "지혜(Wisdom)"의 "외침"이
내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어리석은 자들아) 모두 이리로 오라... 와서 내가 차려 놓은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라." (잠언 9:1-5 참조) [곰곰히 생각해보니 "지혜"의 외침은
인간의 육신의 필요보다도 다른 차원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기 위함이 분명합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의 물줄기는 인간의 [육신(肉身)을 위한] "마실 것과 먹을 것"에서
인간의 [영혼(靈魂)을 위한] "하나님의 언약" 즉 "생명의 양식"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흐릅니다. 인간들의 "육신"의 결핍(缺乏)과 "영혼"의 결핍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속에
언제나 담겨있습니다. 온전한 생명을 위해서 이 두 가지 결핍이 다 채워져야 합니다.

오랜 바벨론 유배생활 동안 (대다수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육신"의 배고픔을 겪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정확한 숫자는 알 도리가 없지만) (최소한 일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질적/육신적 결핍(material/physical deficiency)과 정신적 고통 (psycho-
logical torment)과 함께 깊은 "영혼"의 고갈(枯渴) (spiritual thirst)을 경험하며 간절히
여호와 하나님을 찾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예전에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에서 풀려난 후 광야생활 중에도 종종 표출되었던 것 처럼) 바벨론
유배지에서도 (시름시름 죽어가는) "영혼"의 결핍은 무시한채 "육신"의 평안(平安)만을
추구하며 살았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여호와께서 (일차로) (c.605 BCE)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 잡혀 간 포로들에게 전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
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 너희는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고... 거기에서 번성
하라 /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개역개정) (예레미야 29:4-10 참조).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 차례에 걸쳐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c.605/597/587 BCE)]

예레미야를 통해 예언의 세밀한 내용이 포로로 잡혀 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해지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목적은 [그들의 포로 생활이 곧 끝날 것이라는 등의 "가짜 뉴스
(fake news)"를 퍼뜨리는 "거짓 선지자들(false prophets)"의 말에 속지 말고] 포로
생활이 상당히 길 터이니 미리 잘 대비(對備)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육신의 평안만을
추구하라는 말씀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언대로) 그들의 억류(抑留) 기간이
점점 길어지게 되자 실향(失鄕)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는 민족의 정체성과 신앙의
끈을 놓아 버리고 오로지 육신의 평안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많아졌을
것입니다. (**) [코로나 19로 인해 당초 예상보다도 오랜 기간 "갇힌" 상황 속에 있는
우리들의 신앙상태는 어떠한지요? 함께 나누어보면 어떨까요]

(예언대로 "칠십 년이 차서")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국 유다
땅으로 돌아가게 하였는데 이 때 유다 땅으로 돌아간 이스라엘 사람들의 숫자 보다도
바벨론에 그대로 남기로 했던 사람들이 숫자가 더 많았을 것으로 성경학자들은 추측
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 <에스더>서는 귀향하지 않고 바벨론의 살던 곳에 그대로
남았던 사람들과 후손들의 이야기입니다.]  (**) [왜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벨론
땅에 그대로 남아 있기로 했을까... 함께 생각들을 나누어보면 좋겠습디다.]

한편 (유다 왕국의 지도층 사람들과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으로 끌려간 후) 유다
땅에 그대로 남겨진 사람들은 정치/경제/사회 체제(體制)가 붕괴(崩壞)되는 것을 경험
했을 것입니다. [정확한 상황을 알아 보기에는 역사적 자료가 부족합니다.] ... 그리고
(50년 60년 7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드디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던) 백성
(아마도 대부분은 포로들의 후손들)이 고국으로 돌아 왔습니다.

당시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여러가지 상황을 생각해봅니다. (포로로 잡혀가지 않고)
그대로 유다 땅에 머물러 살고 있었던 백성들과 바벨론에서 돌아 온 백성들이 평화롭게
서로 도우며 살았을까... 아니면 그들 사이에 토지소유/ 경제활동/ 소득분배 등등을 둘러
싸고 심각한 갈등(葛藤)이 있었을까? [이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5]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구약성경(Old Testament) 역사편의 마지막에 <에스라>(Ezra)와
<느헤미야>(Nehemiah) 가 있습니다. <에스라>서에는 바벨론 포로생활 이후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건축하는 과정과 유대교 개혁((改革)운동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서에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과 유대교의
언약과 율법의 갱신(更新)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참고로 (위에 언급 했던 것
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 차례에 걸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 갔는데... 포로생활 후
고국으로 돌아 올 때도 세 차례에 걸쳐 세 명의 지도자들의 영도하에 귀환이 이루어
졌습니다: 스룹바벨 (c. 537 BCE) / 에스라 (c. 458 BCE) / 느헤미야 (c. 444 BCE)]

그런데 바벨론 유수가 끝나고 거의 삼 세대(世代) 정도 세월이 흐른 후에 (유다 땅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회상(社會相)을 보여주는 기록이 성경에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자식들이 많은데 우리가 먹고 살려면 어디에서 곡식을 구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는
모두 같은 피를 나눈 동족(同族)이고 우리 자식이나 그들의 자식이나 귀하기는 마찬
가지인데 우리는 빚을 갚을 형편이 되지 못해서 우리의 아들딸을 그들의 종으로 내어
주게 되었구나..." (느헤미야 5:1-12 참조). (*) [느헤미야 5장에 기록된 이런 사건들이
정확히 언제쯤 일어났는가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다양합니다.]

"빚(Debt)"이란 문제와 관련해서 참고로 18세기 후반까지만해도 영국에서 (신대륙의
영국식민지) 미국으로 이주(移住)한 사람들 중에는 빚을 갚기 위한 "종살이 계약"을
했던 "계약노동자" (indentured servants/laborers)들이 많았습니다. "계약노동제"
(indentured servitude)는 일종의 노예제도(Slavery)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영국의 작가 챨스 디킨스(Charles Dickens)가 쓴 소설에는 빚을 갚지 못한 채무자
(債務者)들을 (그들의 가족이나 친지들이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어
두는 "채무자 감옥"(Debtor’s Prison)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역사 자료를
보면 18세기와 19세기 영국에서는 매년 약 10,000 여 명이 "채무자 감옥"에서 생활
했다는 기록들도 있습니다.  


[6]
여호와의 언약을 마음에 새기고 여호와의 율법을 준수(遵守)하겠다고 수시로 맹세하는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하면 (우리가 위에서 본) <느헤미야>에 나타난 이스라엘
사회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레위기 19:18)는 말씀과 "가난하고 약한 자와 나그네를 항상 도와주라"는
기본적인 말씀이 실천되기는 커녕 소위 야생 동물세계의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는 듯한 그런 사회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게도 이런 충격적인
모습은 인간의 역사를 우리가 살펴 볼 때 대부분의 사회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는 현실
(現實)입니다. 궁극적으로 인간의 영혼을 살리는 개혁운동이 때를 따라 필요합니다.]

"[오호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이사야 55:1-3a 참조). 선지자 이사야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셨던 여호와 하나님께서
(페르시아 제국의 왕에 의해 유다의 새로운 총독으로 임명된) 느헤미야의 입을 통해서
또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끌려갔던 우리 동족 유다 사람들을 도로 찾았
거늘 너희는 너희 동족을 다시 팔고자 하느냐/ 너희의 하는 일이 옳지 못하도다/ 이방
인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야 할 것이 아니냐?"
(느헤미야 5:6-13 참조)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언약과 율법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자는 충고입니다. 그것만이 그들의 "영혼이 살 길"이라는 충고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바벨론 포로 생활의 전후(前後)를 깊이 살펴보면...
(선지자 이사야와 여러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적절한 때를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물질적 궁핍을 채워주실 것을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성실히 이루
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때를 따라 개혁이 필요함을 알리는 "외침"의
경고(警告)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죽어가는 총체적 영혼을 살려 주셨습니다.


[7]
물질적 궁핍(窮乏)과 (개인과 국가의) "빚"채무(債務) 문제 등등에 관해서 경제학이나
재정학을 전공한 후배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곤 했던 때가 많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는 개인의 게으름이나 사치와 낭비 또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무리한 투기(投機)
등으로 "빚"을 진 사람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불의의 사고로 인해 모든
재산을 잃고 "빚"을 지거나 사회제도상의 문제로 인해 가난에서 좀처럼 헤어나기가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오랫 동안 유지되어 온 선별적 차별적
사회구조로 인해 경쟁사회에서 처음부터 뒤쳐져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생략]

공동체의 규모가 클수록 개개인이 "왜 가난한가 왜 빚을 지게되었는가" 등등 원인의
분석과 이에 대한 해법이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영국과 미국 등 여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차별 철폐 조치"(Affirmative Action) 그리고 특히 구약성경에 언급된
"희년"(Jubilee) (레위기 25 장) 등에 대한 더 깊은 관심과 연구가 필요해 보입니다.
[우리들도 함께 의견을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한국에서는 (04/15) 총선(總選) 이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사태 [긴급재난지원금]에
대한 이견(異見)들이 여전히 분분하다고 합니다. "국민 중에 소득순위 70% 이하에게
지급하자"는 정부당국 (기재부)의 안(案)으로부터 "소득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다 지급하자"는 의견까지 서로 팽팽하다가 이제는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되 상위층
에게는 기부금 형식으로 반환하도록 설득하자"는 등... 언젠가는 결론이 나겠지요.  

전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에게 특히 한국의 정책(政策)입안자(立案者)들과 (수시로
뜬금없이 의견이 왔다갔다 하는) 국회의원들에게 간곡히 부탁하고 싶습니다: "이런
난국(亂局)(難局)에 (구약성경에 기록된) "느헤미야"라는 인물을 보고 본받으세요.
[참고로 "느헤미야"란 이름은 "하나님의 위로"/"하나님이 도우시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한번 언급합니다. (물질적) 가난과 빈곤의 문제와 그에 따라 파생하는 "빚"의
문제는 인간 역사의 모든 시대에 끊임없이 제기되는 실존적(實存的) 문제입니다.
어떤 형태의 사회이던 기득권 층은 꾸준히 등장합니다. 따라서 그들이 지배하는
사회구조와 그들에게만 유리한 사회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개혁운동이 때를 따라
필요합니다. 진정한 개혁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특히 지도자들이) (특별히
종교인들이) "영혼"이 살 길을 간절하게 찾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8]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오호라"] 외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우리에게 또 외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라" (마태복음 5:3-10 참조).

[요한이 기록한] "오호라" 예수님의 "외침"이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기록된 약속과 같이 그의 배에서 (속에서) 생명수의 강이
흘러 나오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7:37-38 참조)

오늘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의 입을 통하여 외치시는 "외침"에 우리의 귀를
기울입니다: "너희는 이 세상의 헛된 풍조를 더 이상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 참조). (아멘)




(설교칼럼) 여호와의 언약 (이사야 55) (마태복음 11)
(설교칼럼) 여호와의 만찬 (이사야 25) (요한복음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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