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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이상태(2020-05-10 00:04:44, Hit : 441, Vote : 6
 (설교칼럼) 여호와의 구원 (열왕기하 19) (마가복음 7)

주일예배 (2020/05/10)
강해설교: 여호와의 용서와 구원
본문성구: 이사야 55 (역대하 7) (열왕기하 19) (마가복음 7) (아가 2)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너희는 여호와가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이사야 55: 6-7)



[역대하 7장]        

[1]
구약성경 <역대하>(1장부터 9장까지)에는 솔로몬 왕에 관한 기록이 담겨있습니다.  
이 기록들 중에서 성경학자들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연구해오는 부분이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며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역대하 7:14)(개역개정) 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If my people who are
called by My name humble themselves, and pray and seek My face and turn
from their wicked ways, then I will hear from heaven and will forgive their sin
and heal their land" (2 Chronicles 7:14)(ESV).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이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한 시점이 언제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역대하의 기록을 열왕기상에 실려있는
솔로몬 왕에 관한 기록과 서로 비교해 보세요.]

[2]
솔로몬 왕이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聖殿)을 건축한 후 칠 일 동안 봉헌식(奉獻式)을
거행하고 이어서 칠 일 동안 초막절(草幕節) 절기를 지키고 팔일째 되는 날 이스라엘
백성이 거룩한 모임을 가집니다 (열왕기상 8:62-66; 역대하 7:1-10 참조). 예배를
드리고 난 후 여호와께서 밤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십니다. [여호와의 전이 건축되기
이전에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 번제(燔祭)를 드리고 난 후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신 일이 이미 있었습니다 (열왕기상 3장 참조).]

[성전 건축과 봉헌식 후 다시] 나타나신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듣고 이곳을 너희들의 제사를 받을 성전으로 삼았느니라 / (앞으로)
내가 만일 하늘 문을 닫아 비가 내리지 아니하거나 메뚜기 떼를 보내어 온 땅을 황폐
하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백성들 가운데 유행하게 할 때에 /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인 너희가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며 나의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너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고 이 땅을 고쳐주리라" (역대하 7:12-14).

여호와의 말씀속에는 (여호와가 임재하고 머무르시는) 성전과 관련하여 "경고(警告)"
와 "약속(約束)"이 담겨있습니다. 경고(warnings)에는 하나님께서 때때로 가뭄이나
메뚜기 떼나 전염병 등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divine judgment)하시겠다는 매우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확실한 약속(reassurances)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할 때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용서해 주시겠다는 내용입니다.
[This is the immediate context.]

[3]
여호와께서 말씀을 계속하십니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내게 등을 돌리고 내가 너희
에게 준 율례와 법도를 버리고 떠나가서 다른 이방의 신들을 섬기고 경배하면 / 내가
너희에게 준 이 땅에서 너희를 뿌리째 뽑아내고 내 이름을 위하여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도 아낌없이 버릴 것이라 그리하여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너희가 한낱 속담
거리와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리라 / 이 성전이 지금은 비록 높아 보일지라도 그런
때가 이르면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마다 크게 놀라 서로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 된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성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물을 것이라 / 그러면 대답하기를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
버리고 다른 여러 이방 신들을 따르고 섬김으로 여호와께서 이런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셨다' 하리라' (역대하 7:19-22).

여호와께서 하시는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우리는 모르지만) 솔로몬 왕은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히 알았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십여
년에 걸친 광야생활을 마치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시점(時點)에서 지도자 모세가
그들에게 행했던 고별 연설문/설교문인 <신명기>에 담겨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신명기 28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받을 복"과 "불순종함으로 받을 저주"가 매우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명기 28:1-19, 20-68 참조) (신명기 28:3-6 & 28:16-19 비교).
[This is the larger context]  

(**) 그런데 조목조목 내용을 훑어보면 "복"에 대한 내용보다 "저주"에 대한 내용이
두 배 이상 (카운트에 따라 거의 네 배 정도) 많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의견들을 나누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복"과 "저주"가 모두 조건부(條件附)
라는 점입니다. [Here both divine blessings and divine curses on (the people of)
Israel were conditional on their obedience or disobedience.] [한편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과 다윗과 맺으신 언약은 "무조건적 언약"이었습니다.]
[Abrahamic Covenant and Davidic Covenant were unconditional covenants.]

[4]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제 광야생활의 막바지에 이르러) 모압 땅에서
(약속의 땅)(The Promised Land) 가나안을 바라보고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을 계속 읽어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구체적으로 계속 반복되고 있는 말씀들
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신명기 29장]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29:10) .... "여호와께서 이 언약과
맹세를 오늘 이곳에서 너희들과만 맺는 것이 아니니라 / 오늘 여기에 서 있는 너희들
뿐만 아니라 ... 너희들의 후손과도 맺는 언약이라" (29:14-15) .... "너희들 중에는 이
[저주의 경고를] 듣고도 심중에 이르기를 '내 마음대로 (내 고집과 방식대로) 살아도
내게는 평안이 있고 만사형통하리라' 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그런 사람들이 있으면 ...
여호와께서 이 율법 책에 기록된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시리라" (29:18-21).

"너희 뒤에 올 세대의 후손들과 먼 땅에서 온 자들이 주께서 이 땅에 내리신 재앙(災殃)
과 질병(疾病)을 보고 ... 온 땅이 풀 한 포기조차 자랄 수 없이 황폐하게 된 것을 보고
'어찌하여 여호와께서 이 땅에 무서운 재앙을 내리셨는가' 물으리라 그러면 사람들이
대답하기를 '그 백성이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
굳게 세우신 언약을 버리고 ...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섬기고 절한 까닭이라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땅에 이런 재앙을 내리시고 그들을 이 땅에서 뿌리 뽑아 다른 나라들로
멀리 보내 버리신 것이라' 할 것이라 (29:22-28).  

[5]
계속해서 [신명기 30장]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만일 너희에게 저주와 재앙이 내려서
너희가 세계 모든 나라들 가운데 쫓겨나 흩어지게 되었을 때 너희가 (오늘날 주신) 이
말씀을 기억하고 너희와 너희 자손이 마음을 여호와께로 돌이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희를 불쌍히 여기시고 포로된 생활에서 돌아오게 하시되 흩어 보내셨던 여러 민족들
가운데서 다시 모아 이 땅으로 데려오실 것이라 ... 그리고 여호와께서 오히려 너희를
미워하고 괴롭히는 적들에게 저주의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 그러므로 너희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 듣고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다시금 너희에게 복을 주시리라" (30:1-10).

사십여 년간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온 모세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신명기 34 장 참조).
모세가 죽은 후에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의 인도하에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 강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 그 땅을 차례로 정복합니다 (여호수아 1장 – 24장 참조).

[6]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땅 정복과 정착의 과정을 돌보았던 지도자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사사기(士師記)>(The Book of Judges) 시대를 맞습니다. <사사기>에
담긴 기록을 보면 <신명기(申命記)>(Deuteronomy)에서 이미 분명히 선포된 (하나님의)  
"축복(祝福)과 저주(詛呪)"의 약속이 수백여 년에 걸쳐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어떻게 임
했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때를 따라) 하나님이 세우신 사사(Judges)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린 기간을 성경학자들은 약 삼백오십여 년 정도로 추정합니다.]

특히 사사기 2장에는 <사사기>전체를 요약한 듯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즉 수백여 년
동안 되풀이되는 순환(循環)의 역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이방
신들을 섬깁니다 .... 여호와께서 (다른 나라들에 의한 공격과 지배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십니다 ....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민족의 지배하에 신음하며 여호와를
찾습니다 .... 여호와께서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사사(士師)를 세워 이방인들의
지배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십니다 .... 이스라엘 백성은 감사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다시 섬깁니다 ....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이방 신들을
섬깁니다. [성경학자들은 사사기 2장을 "The Cycles of the Judges"라고 부릅니다.]

[7]
<신명기>와 <사사기>의 역사 속에 담긴 언약들을 요약하여 하나님께서 솔로몬 왕에게
다시 강조하십니다. (위에서 언급하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금 마음에 새깁니다:  

"내 말을 잘 들어라 /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나의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서]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며 나를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며
그들의 땅을 고쳐주리라 ...... 그러나 너희가 만일 돌아서서 나의 율례와 계명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겨 숭배하면 내가 너희에게 준 이 땅에서 너희를 뿌리째 뽑아 버리고 이
성전도 내가 버리겠노라 / 그 때가 되면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놀라서 이르되 어찌하여
여호와께서 이 땅과 이 성전을 이렇게 되게 하셨는고 하면 / 대답하기를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숭배하고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셨다 하리라 ...." (열왕기하 9:1-9)
(역대하 7:12-22)

(**) 여호와 하나님의 간절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솔로몬 왕은 말년에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다른 이방의 신들을 섬기게 되고 ...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 왕국에 임하여
나라가 남쪽과 북쪽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주변
여러 나라의 침략을 받고 고통을 겪게됩니다. [<사사기>에서 주기적으로 펼쳐지던 장면
들이 이스라엘의 역사속에서 곱이곱이 재현(再現)되는 것을 성경의 창문을 통해 들여다
보면서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Déjà vu"라고 해야할까요?]



[열왕기하 19장]        

[1]
구약성경 <열왕기(列王記)>와 <역대기(歷代記)>에는 솔로몬 왕과 (그의 뒤를 이어)
남유다 왕국과 북이스라엘 왕국을 통치했던 여러 왕들에 관한 기록이 담겨있습니다.
(열왕기 기록에 따르면) (남유다 왕국의) 히스기야 왕은 북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하는 것을 목격합니다(722 BC). 왕이 된후 그는 (남유다 왕국에 있는
이방 신들을 섬기는 산당들을 모두 파괴하고) 여호와만을 섬기는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시도합니다. 그는 여호와를 따르고 의지했던 "의로운" 왕으로 열왕기에 기록됩니다.
[참고로 히스기야 왕에 관한 기록은 <열왕기하>(18장-20장)와 <이사야>(36장-39장)
그리고 <역대하>(29장-32장)에 담겨 있습니다. 그의 재위(在位) 기간은 대략 (기원전)
715-685년(BCE)으로 정도로 추정되는데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이사야/ 미가/ 호세아는
히스기야 왕의 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들 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族譜)에 다윗과 솔로몬과 함께 그의 이름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1:9-10 참조).]

(우리가 지난주간 화요일과 수요일에 묵상했던) 열왕기하 19장의 기록은 앗스르 제국의
산헤립 왕이 [히스기야 왕의 조공을 받고 잠시 예루살렘 성의 포위를 풀었다가 ...] 다시
예루살렘 성을 공략(攻略)하려 시도했을 때의 위기 상황입니다 (701 BC). (**) [앗수르
제국의 남유다 왕국 침공(侵攻)과 이러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 대처(對處)하는 히스기야
왕의 전략(戰略) 그리고 선지자 이사야의 역할과 예언 등에 관해서는 <역대하>(32장)
<열왕기상>(18장-19장) 그리고 <이사야>(37장) 기록들을 읽어 보세요.]  

[2]
내가 처음 <열왕기하>19장을 읽었을 때 나의 관심을 끌었던 구절이 있습니다. "그날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군대의 진영으로 들어가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이튿날) 아침에 일찍이 (앗수르 군사들이) 일어나 보니 (앗수르 군인들이) 죽어서 사방에
온통 즐비하게 널려 있더라" (열왕기하19:35).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때로부터 이
내용을 읽을 때마다 나의 궁금증(宮禁症)이 더해 갔습니다.]

결국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전해주신 여호와의 예언대로] 앗수르 왕 산헤립이 크게 놀라
군인들의 시체를 그대로 둔채 허겁지겁 예루살렘 근처에서 철수합니다 (701 BC). 그리고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돌아가 그곳에서 지냅니다. [참고로 앗수르 제국의 궁중역사기록
에 따르면 약 이십 년 정도 세월이 흐르고 ... 어느 날 산헤립이 자기가 섬기는 신 니스록의
신전에 들어갔을 때 (왕위 후계자 지명 문제로 불만을 품은) 그의 아들 아드람멜렉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681 BC).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산헤립 자신이 후계자로 세웠던 (그의
아들) 에살핫돈이 앗수르의 왕이 됩니다 (열왕기하 19:36-37 참조비교).

앗수르 제국의 군대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사건은 구약성경 <열왕기하>와 <이사야>에는
기록이 되어있지만 앗수르 제국의 역사 기록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왜 기록이
없을까요?] 일반적으로 고대 역사 기록들은 왕들의 정복과 승리를 자랑하기 위해 주로
궁중 역사가들에 의해 기록되고 편찬(編纂)되었는데... 앗수르 궁중의 역사 기록자들이
산헤립 왕과 앗수르 군대의 불가사의한 “패배를 기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라고 성경학자들은 추측합니다. [참고로 우리가 사용하는 "궁금(宮禁)"이란 말 한자를
풀이하면 "왕(궁)에서 (금)지하다”의 의미입니다. (궁)(宮) + (금)(禁)]

[3]
그런데 (고대 앗수르 제국의 왕궁에서 금지함으로 생겨난 듯한) 나의 궁금증이 역시 고대
문헌(文獻)을 통해 다소나마 풀리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기원전 5세기 경에 활동했던)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와 (기원전 3세기 경에 활동한) 바벨로니아 출신의
역사가 베로수스(Berossus)가 남겨놓은 자료속에 들어 있습니다. 구약성경 <열왕기하>와
<이사야>에 기록된 내용과 헤로도투스와 베로수스가 남겨놓은 기록의 내용을 비교해 보면
흥미로운 차이점이 있습니다.

먼저 구약성경 <열왕기하>기자는 (위에 이미 언급했던 대로)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그날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군대의 진영으로 들어가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 (이튿날) 아침에 일찍이 (앗수르 군사들이) 일어나 보니 (앗수르 군인들이)
죽어서 사방에 온통 즐비하게 널려 있더라" ("And it came to pass on a certain night
that the angel of the LORD went forth, slew one hundred and eighty-five thousand
in the camp of the Assyrians, and when men arose early in the morning, behold
there were the bodies – all dead.")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이집트의 문헌을 토대로) (on the basis of the Egyptian
version of the same story) 다음과 같이 기록을 했습니다: "어느 날 수많은 들쥐들이
(field mice) 앗수르 군대 진영에 몰려들어서 군인들의 활과 화살줄과 창의 손잡이들을
다 갉아 먹은지라 / 많은 적군이 죽었고 살아남은 자들은 무기를 버려둔 채 도망하니라."

바벨로니아 출신으로 점성학/천문학과 고대역사학에 정통했던 베로수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앗수르 왕의 군대 진영에 괴질(怪疾)역병/감염병이 발병하니라... 이 역병
으로 인해 앗수르 왕은 공포에 질렸고 허겁지겁 살아 남은 군사들과 함께 자기 나라로 피해
도망하니라." [베로수스의 기록은 (1세기에 활동했던) 이스라엘의 유명한 역사가 요셉프스
(Josephus)에 의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살았던 배경과 역사를 기록하는 방식들은 달랐지만) 헤로도투스와 베로수스의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옵니다. (페스트 균과 같은) 세균에 감염된
야생(野生) 들쥐들과 (들쥐들에게 기생하는) 쥐 벼룩들이 앗수르 군대 진영 주변에 머물
면서 이들에 의해 (일종의) 흑사병과 같은 역병(疫病)이 순식간에 앗수르 군인들 사이에
널리 퍼지게 되고 이로인해 엄청나게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
과학/의학 지식을 어느 정도 접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상당히 납득이 가는 설명입니다.  

(**) 그런데 <열왕기>기자는 왜 앗수르 군대 파멸의 원인 즉 군인들의 사망의 원인을 "들쥐"
또는 "역병"으로 인한 것으로 기록하지 않았을까? 왜 "하나님의 사자(使者)/천사(天使)"의
손에 의해 앗수르 군인들이 죽은 것으로 기록을 했을까? 고대 이집트나 바벨로니아와 비교
해 볼때 이스라엘 사람들의 과학/의학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하나님의 사자”
라는 이런 기록 방식은 유대인들의 세계관/신앙관과 관계가 있는 것일까? 이런 물음들에
대해 성경학자들은 어떻게 설명을 할까? [서로 의견들을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4]
<열왕기하>19장의 사건을 묵상하던 중에 홀연히 남미(南美) 대륙에 존재했었던 잉카
(Inca) 제국이 생각났습니다. (15-16 세기에) 찬란했던 문명을 자랑하던 잉카 제국이
스페인의 (탐험/침략/정복자) 피사로가 이끄는 불과 168명이란 소수의 스페인 군인들에
의해 무너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널리 읽혀진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
The Fates of Human Societies) (1997)의 저자 재러더 다이아몬드 (Jared Diamond)
교수는 “당시 잉카 제국 지도자의 오만과 판단 착오 그리고 무지 때문에 스스로 파멸의
무덤을 팠다”라고도 했습니다. 어쨌든 “과연 잉카 제국 멸망의 주요 원인은 무엇일까?"
라는 의문은 많은 역사가들의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런 의문점에 대해 제기된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학설들 중에 하나는 천연두입니다.
16세기 초에 유럽 전역에 유행했던 천연두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는데
이런 질병을 겪으면서 스페인 사람들은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 내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스페인 침략자들이 가지고 온 천연두 바이러스 앞에서 견딜수 있는 내성(耐性)이
없었던 잉카인들은 대규모로 쓰러졌습니다. 그당시 잉카제국의 왕실의 많은 사람들마저
천연두로 사망하게 되면서 잉카 제국은 큰 혼란에 빠지고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잉카제국의 멸망은 결국 남미 원주민들의 일시 찬란했던 문명의 비극적 종말로 이어졌
습니다. [학자들의 학설들 중 하나입니다. 물론 하나의 제국이 멸망하는 원인들은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에 한 두 개로 잘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요즈음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면 (코로나19로 인해서인지) 나의 생각들이 자주 전염병이
바꾼 우리 인류의 역사로 연결지어 질 때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살면서 지금
까지 이런 일은 처음 겪어본다"라는 말을 하게 만든 코로나19가 앞으로 우리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후세 역사가들은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상황을 어떻게 기록할까?

이러한 의문이 생길 때면 항상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읊조려지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영원을 사모(思慕)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시종(처음과 끝)을 사람으로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도서 3:10)



[마가복음 7장]

[1]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생활방역(防役)/
개인방역수칙(守則)/ 사회적 거리두기/ 생활 속 거리두기 등등입니다. 세계보건기구와
세계 모든 나라에서 국민들에게 코로나19 감염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지켜야 할 개인
방역 기본수칙(基本守則) 을 세웠는데 그중에서 첫번째 사항으로 올려지는 것은 (흐르는
물과 비누로 30초 이상) "손 씻기"입니다. 즉 "세수(洗手)" 준수입니다.

이번주일 강해설교 성경본문들 가운데 들어있는 마가복음 7장을 읽으면서 다소 기분이
묘해집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손 씻기"를 철저히 하는 듯한데 이와는 대조적
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기본적 "손 씻기" 위생관리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이 보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처해있는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아마도 손을 씻지 않고 빵을 떼어 먹는
제자들의 모습이 동영상으로 찍혀져서 뉴스 시간에 방영이 되면 SNS 등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의 비난과 지탄(指彈)의 댓글 세례를 받게 되었겠지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모범시민으로 질병관리본부 홍보물(弘報物)에 등장을 하겠지요. 또한 예수님의 사역과
제자들의 활동은 사람들의 경계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지요. 따라서 (코로나19 사태에
우리가 대처해야하는 상황에서) 이 사건을 찬찬이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듯합니다.

[2]
첫 번째로 살펴볼 것은 "바리새인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지켜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잘
씻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정결의식을 지킨다" (마가복음 7:3-4)는 구절에서 "장로들의
전통"("the tradition of the elders")이라는게 도대체 무엇인가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지 셋째 달에 시내 광야 (the Wilderness of Sinai)에
다다랐습니다. 그곳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와의
언약을 잘 지키면 너희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라"
(출애굽기 19:5-6 참조).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제사장의 나라/ 거룩한 민족"
등을 확대 해석하여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막과 성전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에 관한
규례들을 이스라엘 백성 모두의 삶에 적용시켰습니다. 한 예를 들자면 제사장들이 성막
(만남의 장막)에 들어갈 때나 제물을 바치기 전에 먼저 (놋쇠로 만든 특별 그릇에 담아
둔) 물로 손과 발을 씻어야 하는 규례(規例)가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30:17-21 참조)  
유대 랍비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제사장들에게만 적용되는 이 규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확대 적용시켜서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음으로 식사와 같은 일상의
모든 것들을 거룩하게 할 수 있다고 해석하고 가르쳤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이야기 하는 "장로들의 전통"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율법을 철저히 잘 지키도록 하기 위해) 후세에 율법사들이 기본적인 모세의 율법에다
여러 가지 세부 사항들을 계속 덧붙인 것들입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이 로마제국의
통치하에 놓이게 된 상황에서 유대인들의 신앙을 굳건히 지키기 위해서는 이런 "장로
들의 전통"의 철저한 적용이 필요하다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 "손 씻기"는 단순히 "적절한 위생(衛生)수칙" (proper
hygiene guidelines)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
들이 손을 씻지 않고 빵을 먹는 행동은 바리새인들의 눈에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거룩한 제사장 나라"에 속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민족의식(民族意識)에 위배
(圍排)되는 것입니다. 이런 행위는 개인적인 일탈(逸脫)을 넘어서서 선민 유대인들의
사회적 종교적 규범에 어긋나는 아주 위험한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내세우는 논리(論理)를 하나씩 차례로 짚어봅니다. 먼저 ... 여호와 하나님
께서는 택함 받은 백성들이 하는 모든 일들 가운데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신다/ 여호와를
공경하는 제사장의 나라의 모든 백성은 제사장들과 같이 거룩하게 행동해야 한다/ 또한
(여호와께서는) 여호와의 산에 오를 수 있는 자와 여호와의 거룩한 곳에 설 수 있는 자는
"손이 깨끗한 자" (시편 24:3-4)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는 제사장들에게 성막에서의
일을 하기 전에 꼭 손을 씻도록 명령하셨다/ 음식을 먹는 것도 여호와 앞에서 거룩한 일에
속한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백성은 제사장들과 같이 손을 깨끗이 씻고 음식을 먹어야 한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펼치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차례 차례로 전개하는 논리적인 근거를 듣고 보니 바리새인들의 주장에도
일리(一理)가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세계역사 특히 기독교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인
(지금으로부터 오백여 년 전에 일어났던) 종교개혁(宗敎改革)(Reformation)에서 루터와
같은 인물들이 주창(主唱)했던 "만인제사장론(萬人祭司長論) (Priesthood of All Saints)"
과도 무언가 연결이 되는 듯 합니다.

[3]
두 번째로 살펴 볼 것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강조하는 "정결의식"(淨潔儀式) 입니다.
유대랍비들의 문헌에 따르면 ("장로들의 전통"을 따라 행하는) 바리새인들의 "정결의식"
["ceremonial washing(s)"]은 다음과 같은 순서입니다: 먼저 (아무 물이나 사용하면 물이
깨끗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집에 특별한 돌항아리를 준비하여 거기에 미리 물을
담아둡니다. 손을 씻기 위해 물을 돌항아리에서 떠내는데 적절한 양이 있습니다. 적절량은
달걀껍데기 한개 반(one and one-half egg shells)을 채울 정도입니다. 떠낸 물을 손가락
으로부터 손목 방향으로 조금씩 부은 후에 한쪽 손을 움켜쥔 주먹으로 다른 쪽 손바닥을
(깨끗이) 문지르고 비빕니다. 그리고 다시 다른 쪽 손주먹으로 다른 쪽 손바닥을 정성들여
문지르고 비빕니다. 그리고나서 다시 남은 물을 손에 붓는데 이번에는 손목에서 손가락
방향으로 붓습니다. 마지막으로 손을 깨끗하게 헹구는 동작에 해당하겠지요.

그리고 이렇게 손을 씻는 정결의식을 행하면서 읊조리는 기도문이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율법을 주셔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또 손을 씻으라 우리에게 명하신 우주의 주재이신
하나님이여 높임을 받으소서" ("Blessed be Thou, O LORD, King of the Universe, who
sanctified us by the Laws and commanded us to wash the hands!”)

<범국민 손씻기 운동본부>라는 단체에서 제안한 "올바른 손씻기 여섯단계"가 생각납니다.
예전에 찾아 보았는데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손바닥과 손바닥을 마주 대고 문질러
준다. (2) 손가락을 마주 잡고 문지른다. (3) 손등과 손바닥을 마주 대고 문질러 준다. (4)
엄지 손가락을 다른 편 손바닥으로 돌려주면서 문지른다. (5) 손바닥을 마주대고 손깍지를
끼고 문질러준다. (6) 손가락을 반대편 손바닥에 놓고 문지르며 손톱 밑을 깨끗하게 씻는다
[유대인들의 “손씻기” 정결의식과 비교해 보니 참 흥미롭습니다.]

코로나19 감염 확산 방지와 개인 위생 방역을 위해 (적어도 30초 동안 흐르는 물에 비누로)
"손씻기"를 강조하면서 의료기관이나 행정기관에서 권장하는 노래들도 생각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Happy Birthday to You...)" 한번 부르는데 15초 정도가 걸리니 두번 정도
부르라고 합니다. 또 "반짝 반짝 작은 별 (Twinkle Twinkle Little Star...)"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의 손 씻는 정결의식에 소요되는 평균 시간은 어느 정도였을까?]

바리새인들과 랍비들이 이 정결의식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을 보여 주는 여러 개의
사례들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는 말 중에 "손을 씻지 않고 떼어 먹은 빵은 똥/오물과
마찬가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손을 씻는 정결의식을 어쩌다 한번 빠뜨린 랍비가 유대교
에서 출교(黜敎) 당한 기록도 있습니다. 심지어 (로마 총독에 의해) 감옥에 갇혔던 랍비는
죄수들에게 마시도록 지급되는 소량의 물을 마시지 않고 모아서 "손씻기" 정결의식에 사용
하고 갈증으로 인해 죽을 고비에 이르렀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렇게도 정결의식을 중요하게 여기고 진지하게 실행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율법교사)
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씻지 않은) 부정한 손으로 떡을/빵을 먹나이까?" (마가복음 7:5) [이렇게 논리적인 근거를
배경으로 지적하는 물음에 누구든지 대답을 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듯합니다.]

[4]
세 번째로 살펴 볼 것은 예수님의 반응과 응답입니다. "내가 수양이 부족했다/ 이제부터는
제자들을 꾸짖고 잘 가르쳐서 손 안 씻고 빵 먹는 버릇을 고치도록 하겠다/ 앞으로는 이런
일로 구설수에 올라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치는 일은 없도록 주의하겠다" 등등 요즘 우리가
뉴스에서 이따금 들어 볼 수 있는 정치인들이나 유명인들의 사과문 같은 것을 기대했는데 ...
예수님의 반응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가 역시 모르고 있는 어떤 사실(事實)(fact)이나 진실
(眞實)(truth)을 예수님은 알고 계시기 때문일까? 너무나도 논리적인 바리새인들의 주장의
근거도 (우리는 지금까지 몰랐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미 분명히 알고 계셨을거야....]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만을 지키는도다"(마가복음 7:5-8).

그 후에 예수님께서 군중(群衆)들을 다시 불러 모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 말을 잘
듣고 깨달으라 / (몸)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니라  
다만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마가복음 7:14-16).

군중에게 말씀을 마치시고 예수님께서 (어느) 집 안으로 들어가시자 제자들이 (예수께서
군중에게 하신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깨달음이 없느냐 (너희도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였느냐)? (몸) 밖에서 (몸) 속으로
들어가는 것들이 너희를 더럽게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희가 아직도 알지 못하느냐?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들이 참으로 그 사람을 더럽히느니라 / 보아라 악한 생각들은 모두
사람속에서 (마음에서) 나오지 않느냐? 이 모든 악한 것들이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
히고 있느니라" (마가복음 7:17-23).

[5]
우리가 살펴보는 마가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 군중들 / 제자들)
세 그룹의 사람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나는 (우리는) 성도님들 각자는 어느 그룹에 속해
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떤 깨달음이 있습니까? (성경본문에서 문제로 제기된)
"정결의식"에 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실(事實)과 진실(眞實)은 과연 무엇입니까?
[진지하게 의견들을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최근에 한국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교단소속의 어떤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비상식적인
훈련을 시켰다는 뉴스보도가 나오면서 큰 파장이 일었습니다. 그 교회에서는 리더십이 되기
위해서는 <고린도후서 6장 훈련>이란 이름의 6개월 훈련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데 리더십의
훈련목록에는 "환란/ 궁핍/ 곤란/ 매맞음/ 갇힘/ 수고로움/ 잠자지못함/ 먹지못함..." 등등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훈련 계획서에는 "겨울에 얼음 물에 한 시간 들어가기...
곰팡이 난 음식 먹기 ... 밀폐된 공간에 혼자있기 ... 밤에 공동묘지에서 매 맞기 ... 자동차
트렁크 속에 갇혀있기 ..." 등등 갖가지가 훈련수칙이 기재되어 있다고 합니다. (**) [예전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행하던 "정결의식"과 오늘날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이런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난훈련"의 배경을 비교해 보고 ... 의견들을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아가 2장]

[1]
"오늘 아침에는 봄의 행복감이 가득히 느껴집니다. 콘도단지를 산책하는데 봄의 햇볕이
따스하고 이따금씩 얼굴에 살짝 살짝 와 닿는 바람이 산뜻하고 감미롭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콘도 단지 주변의 숲과 여기저기 서 있는 나무들 사이에서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새들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한국에서는 "새가 운다" 미국에서는 "새가 노래한다"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하지요.] 오늘 아침에 내 귀에 들리는 이 소리들은 노래인 듯합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에) 집 주변을 산책할 때면 사알짝 (표준어아님) 궁금해지기 시작
했던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전에 비해 새들이 (노래하고 지저귀는) 소리들의 볼륨이
조금 작아진 듯한데 왜 그럴까?] 코로나 19 이전에 내가 듣고 느꼈던 새들의 소리는
"무언가 경쟁하는 듯... 스트레스를 받은 듯... 새들의 목청에 좀 무리가 갈 듯한" 볼륨
이었는데... 최근 몇 주 동안에 내가 듣고 느끼는 새들의 소리는 무언가 차분하고 별로
목청에 무리가 없이 흘러 나오고... 이소리 저소리가 서로 하모니를 이루며 자연속에
스며드는 듯한데... 무슨 이유일까?" [(2020/05/01) 영성일지 내용중에서]

그런데 며칠 전에 우연히 한 조류학자(ornithologist)의 글을 읽고서 "아하(Aha)"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행기와 자동차 등등의 교통량이
현격히 줄어들면서 소음(騷音)(시끄러운 소리)도 많이 줄었다는 것입니다. 소음 공해
(騷音 公害)가 줄어들자 (노래하고 우는) 새들의 소리도 볼륨이 작아졌다는 것입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어느 공항(空港) 근처에서 여객기가 상공에 날아 갈 때 주변
새들의 소리를 측정해보니 120 데시벨(dB) 이상이었는데 (코로나19 이후) 하늘 위에
비행기가 거의 날아다니지 않을 때 같은 지역에서 측정한 새 소리들은 60데시벨(dB)
정도라고 합니다.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의 크기가 거의 두
배 정도 차이가 나타난 것입니다. 인간의 문명이 굴러가는 시끌시끌한 소리들이 잠시
멈추니 새들이 받는 스트레스도 줄어들고 소리지를 경쟁의 필요성이 사라진 듯합니다.
(With the overall decrease in traffic, there is less noise pollution. When the noise
pollution is much less, birds are singing more quietly than they did before. That
means (when the noise levels are lower) birds have less noise to compete with.)

[2]
지난주간과 마찬가지로 (코로나 19로 인해 사람들을 만나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번
주간에도 하루에 한 두번 정도 아름다운 자연의 세계로 나아가 들풀도 보고 푸른 초록
잎사귀가 무성해지는 나무들도 보면서 <아가>(Song of Songs)(Song of Solomon)의
구절들을 묵상하곤 했습니다.

"이제 추운 겨울도 다 지나고 내리던 비도 그쳤구나 /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구구구’ 들리는구나 /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발하는구나 ...." (아가 2:11-13)

<아가(雅歌)> 구절을 묵상하는 중에 뇌리에 떠오르는 노래 가사가 있습니다. 내가 어릴
적에 누나들을 따라 가끔씩 부르기도 했고 특히 그당시 여자 아이들이 모여 고무줄넘기
놀이를 하면서 많이 부르던 노래 <봄맞이 가자>라는 한국 동요(童謠) 가사입니다.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 / 너도나도 바구니 옆에 끼고서
달래 냉이 씀바귀 나물 캐오자 / 종달이도 높이 떠 노래 부르네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 / 시냇가에 앉아서 다리도 쉬고
버들피리 만들어 불면서 가자 / 꾀꼬리도 산에서 노래 부르네

<아가>의 구절을 묵상할 때면 떠오르는 노래가 또 있습니다. 윤석중 선생님이 가사를
붙인 <동무들아 오너라>라는 노래... 어린 시절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노래입니다.

동무들아 오너라 오너라 오너라 / 동무들아 모여서 같이 놀자
어여쁜 새들이 방긋이 웃는다 / 동무들아 모여서 같이 놀자
동무들아 오너라 오너라 오너라 / 동무들아 모여서 같이 놀자
즐겁게 즐겁게 방긋이 웃는다 / 동무들아 모여서 같이 놀자

그런데 이 노래의 원곡은 <사랑스러운 아우그스틴(O du Lieber Augustin)>이라는 오지리
(墺地利)(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민요 입니다. 이 노래는 (14세기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
병처럼) 17세기에 다시 페스트 대역병이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비엔나(Vienna)에 덮쳐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시체들이 거리에 즐비했던 암울한 시기에 만들어졌습니다.

이 대역병은 유럽대륙을 휩쓸고 바다를 건너 섬나라 영국에까지 이릅니다. 수학물리학자
뉴턴이 런던에서 창궐하는 역병을 피해 고향으로 갔다가 사과나무 아래에서 만유인력을
발견했다는 에피소드가 생각납니다. [코로나 19로 인해서도 어디선가 '만유인력'과 같은
위대한 발견을 하는 사람도 나타나겠지요.] [참고로 <봄맞이 가자>와 <동무들아 오너라>
가사와 노래가 우리교회 홈페이지 <영혼의울림방>에 올려져 있습니다.]

[3]
새로운 한주간이 시작됩니다. 나는 (코로나 19의 상황속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은혜로운
한주간을 기대와 소망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하며 시작해야겠습니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 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 주 하나님의 큰 뜻을 내 알 듯 하도다 (아멘)




(설교칼럼) 여호와의 오늘 (여호수아 24) (누가복음 19)
(설교칼럼) 여호와의 언약 (이사야 55) (마태복음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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