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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이상태(2020-08-10 18:45:28, Hit : 630, Vote : 71
 (열린칼럼) 시내 광야 변곡점 (#1) (출애굽기 32) (요한복음 4)

(강해설교) 시내 광야 변곡점 (#1)
(성경본문) 출애굽기 19/20/24/32


[1]
이번 주일에도 강해설교를 시작하면서 (나눌 말씀의 전반적인 배경과 사건들의
흐름과 관련하여) 몇 가지 사항을 성도님들에게 질문형식으로 물어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략 40 여년 정도 광야에서 생활했다고 합니다.  [물음 #1]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산 앞 (시내 광야)에서 장막을 치고 머물렀던 기간은 얼마
정도입니까? [물음 #2] 이때 이곳에서 일어난 일이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기록에서 차지하고 있는 분량은 어느 정도입니까? [물음 #3] 여호와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두 (증거) 돌판에 (친히) 새겨 모세에게 주시기 전에 이미 그 십계명이
선포되고 기록이 되었습니까?


[2]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산 앞 (시내 광야)에서 장막을 치고 머물렀던 기간은 얼마
정도입니까?" 라는 첫 번째 물음과 두 번째 물음에 대한 답은 (기록된 년/월/일에
특히 유의하며) 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를 읽으면 대충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19: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In the third month after the children of Israel had gone
out of the land of Egypt, on the same day, they came to the Desert of Sinai)
(2) 그들이...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이스라엘이) 거기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출애굽기 40:17) [둘째 해 첫째 달... 초하루]에 성막을 세우니라 (......) (40:38)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레위기 1:1)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시니라 (......)
(레위기 27:34) 이것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이니라

(민수기 1: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와 같이 이르시니라 (......)
(민수기 10:11-13) [둘째 해 둘째 달 스무날]에 구름이 증거의 성막에서 떠오르매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따라 행진하기를 시작하니라

위에 언급한 것처럼 [출애굽기 19:1 부터 레위기 전체 그리고 민수기 10:13 까지]
기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대략 (11 개월/ 거의 일년) (just short
of a year) 동안 시내 산 앞 시내 광야에서 머물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세 번째 물음과 관련하여 출애굽기 19장부터 다시 살펴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 산 위로 불러 올리시고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할 말씀들을
주십니다. 모세가 산 아래로 내려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들 앞에 진술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전해들은 백성이
일제히 응답합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This is an
open-ended commitment of Israel to God, to obey whatever words God may
command over the course of Israel’s history.] 모세가 백성들의 말을 여호와께
다시 전합니다 (출애굽기 19:3-9 참조). 그후 셋째 날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내 산
꼭대기에 강림하시고... 또 모세를 부르시고... 모세가 산 위로 올라가 말씀을 듣고
내려옵니다 (출애굽기 19:16-25 참조).

출애굽기 20장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십계명]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20:1-17; 신명기 5:1-21 비교참조). 그리고 출애굽기 21
장부터 23장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종... 폭행... 책임과 배상... 도덕... 공정
... 안식년과 안식일... 등에 관한) 여러 가지 법령을 주십니다.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시내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그가 기록한) [언약서]를 가져다가 이스라엘 백성들 앞
에서 낭독하여 들려줍니다. 그러자 온 백성들이 전과 같이 응답합니다: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이에 모세가 (제단에 뿌린) 피를 백성들에게
뿌리며 선포합니다: "이는 모든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연약의
피니라" (출애굽기 24:3-8 참조).

이 모든 일들이 있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너는 산으로
올라와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 내가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이에 모세가 산 위에 올라 가서 사십 주야를 머무릅니다 (출애굽기 24:12-18 참조).
이와 같이 출애굽기 19장부터 24장까지의 기록을 차근히 살펴보면 여호와 하나님
께서 십계명을 두 (증거) 돌판에 (친히) 새겨 모세에게 주시기 전에 이미 십계명이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선포되었고 (다른 여러 가지 법령들과 함께) 모세에 의해
[언약서에] 기록이 되었습니다.


[4]
금 송아지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이후) 광야 생활에서 (제일차) 변곡점
(變曲點)(대변혁의 전환점)에 해당하는 사건입니다. 사건은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서 아론에게로 와서 말하니라:
When the people saw that Moses delayed coming down from the mountain,
the people gathered together (to/unto/against) Aaron, and said to him (32:1).

이 시점이 모세가 시내 산에서 내려오기 며칠 전 즈음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신명기 9:11-12; 10:1-5, 8-11 참조). 그들은 모세가 죽은 것으로 추정(단정)한
듯합니다.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산 위에서) (음식을 먹지 않고) 지낼 도리가
없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맹렬한 불길에 의해 타죽었을 것이라
생각한 듯합니다. [참고로 후대에 대제사장들이 대속죄일에 지성소(至聖所)에
들어갈 때는 죽음을 각오하고 허리에 긴 밧줄을 묶고 옷가장자리에는 딸랑딸랑
소리가 나는 방울을 달고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론]에게 몰려 온 이유는 추정이 어렵지 않습니다. 산 위로
올라가기 전에 이미 모세가 그의 부재(不在)시에 대비해 지시를 해놓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모세
가 그의 부하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모세가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며 장로들
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라 아론과
훌이 너희와 함께 있으리니 무릇 무슨 중대한 일이 있는 자는 그들에게로 나아
갈지니라" (출애굽기 24:1-14 참조).

그런데 백성들이 왜 (훌에게 가지 않고) [아론]에게 갔을까(?)라는 의문이 제기
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의 기록을 근거로 한 추측은 ... 아론은 모세의 (친)형
입니다. 그리고 아론은 이미 (모세와 함께) 오래 공동대표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출애굽기 4:29-30; 5:1,4, 20 참조). 훌은 아론보다 훨씬 후에 지도자의 한 사람
으로 등장합니다 (출애굽기 17:10; 24:14 참조)  

(출애굽기의 기록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유대 랍비들의 다음과 같은 추측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상대하기에 (훌보다) 아론이 더 만만하지
않았을까 ... 훌이 (아론보다) 훨씬 더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을까 ...
(아론 보다 더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생각되는) 훌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된 생각에 대해 끝까지 허락을 하지 않았다가 백성들에 의해 살해 되었을
것이라 추측하는 일부 성경학자들도 있습니다. 모세가 금 송아지 사건에 대해
추궁할 때도 아론만 등장합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24장 이후에) 훌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를 않습니다. (출애굽기 31:1-5 비교참조)]


[5]
모세가 40일 동안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출애굽기 24:18 참조) 그가
산 위로 올라가기 전에 며칠 정도 산 위에 올라가 있겠다고 이스라엘의 백성들
에게 말을 했는지 (아니면 자기도 알지 못해서) 말을 하지 않고 올라갔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어쨋든 기다림에 지쳤는지 ...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백성들이 [아론]
에게로 와서 다음과 같은 요구를 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32:1).  이때 사용된 "신"이란 히브리 단어는 "elohim"입니다. 대부분의
영어번역본에는 (복수형) "gods"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단어는
(단수형) "God"으로도 번역이 가능합니다. 참고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1:1) 에서 [하나님]의 히브리어는 "elohim"입니다.  

성경공부에서 흔히 제기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백성들이 아론에게 요구하는
것이 그들이 섬길 (여호와가 아닌) 다른 "신(들)"을 (other "gods" to follow)
만들어 달라는 것일까? ...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a physical form of God) 만들어 달라는 것일까? 라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성경학자들의 논쟁 이슈 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타나실 때는 대부분은
구름 기둥과 불 기둥 가운데 (in the cloud and in the fire) 나타나셨습니다
(출애굽기 13:21; 24:16-18 참조). 그리고 시내 산 위에 임재하실 때는 연기와
우레 (즉 번개와 뇌성) 속에 강림(降臨)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9:16-19 참조).
그러나 백성의 눈에 보이는 어떤 뚜렷한 형상으로 나타나신 적은 없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우리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
(Faith is the conviction/evidence of things unseen)"라고 정의했습니다
(히브리서 11:1 참조). 하지만 인간은 본질적으로 무언가가 (인간의/육신의)
눈에 보이기를 원합니다. 인간이 우상을 만드는 근본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대해 (종교학에서는) "신을 눈으로 볼 수 없으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말들이 있습니다. [That is... the root of idolatry is that men think (the)
God is not present unless they see (the) God physically.]

이스라엘 백성이 아론에게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인 듯합니다. 참고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미 우상에 대한 관심과 끌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레위기 17:7; 여호수아 24:14; 에스겔 20:7-8 참조). 아마도 이런점들을 미리
예견하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거듭 엄중한 경고의 말씀을
하신 듯합니다: "너희는 나를 (어떤 신상으로도 만들지 말라) (나를) 은으로
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절대 만들지 말라" (출애굽기 20:23 참조).


[6]
아론과 백성들 간에 (이미 몇 차례 회동과 설득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회동 때마다 아론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올터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라고 백성들을 설득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론이 처음부터 백성들의 뜻과
요구에 동의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Aaron did not willingly lend
himself to such a seemingly insane demand of the people.]

그런데 백성들의 태도가 점점 사나워지고 과격해져서 거의 반란 (rebellion)
수준에 이르게 되면서 아마도 아론이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드디어 이들의 요구에 굴복한 (듯) 아론이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가져오라"(32:2) 고 말합니다. [(성) 어그스틴과 같은 신학자는
(백성들에게 단호이 "NO!"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던) 아론이 일종의 시간끌기
작전 (gaining time tactics)으로 이렇게 귀중품들을 가져오라 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즉 백성들이 개인 소유의 금 고리와 같은 귀중품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겠지요.]

그런데 (아론의 예상과는 달리) "눈에 보이는 신"을 갖고자 하는 백성의 열망
내지 욕망이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장신구와 귀금속들이 빨리 모였습니다.
[IMF 위기때 한국에서 "금 모으기"에 동참한 사람들이 참 많았다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물론 정황은 많이 다르지요!] 이렇게 모여진 금을 가지고 (어떤
기구와 도구를 사용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론이 금 송아지를 깎고'
빚어 만듭니다. [어느 정도의 크기였을까? 실물 크기였을까? 전체가 순금 이
었을까? 아니면 나무로 송아지 형상을 먼저 만들고 그 위에 금을 입혔을까?]

(연속적으로 세 번째) 그런데 다음과 같은 물음이 자연히 생깁니다: "하고많은
동물들 중에 왜 (금)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을까?" (기왕 만들려면 하늘을 나는
독수리 형상이 송아지 보다 낫지 않았을까?) 고대 문화권과 관련된 여러 자료
들과 성경의 기록을 비교 검토해보니 다음과 같이 추측 결론이 나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거주할 때 (이미) 애굽의 신들을
섬겼습니다 (여호수아 24:14; 에스겔 20:7-8 참조). 애굽인들은 그들의 눈에
보이는 갖가지 사물들을 신들이라 섬겼는데 ... 여러 동물들도 신(들)가운데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동물은 황소/송아지 였습니다. 특히
애굽의 여러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살아있는 삼년 된 숫소(송아지)를 애굽의
대표신 (아피스)의 상징으로 숭배했습니다. [흥미롭게도 힌두교에서는 뼈대
있는 암소를 숭배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오랫동안 눈으로 보았었고 (신으로) 섬기기도 했었던 (bull/ox) 숫소/송아지
형상들을 모방하여 금 송아지를 만들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역시 참고로
이스라엘 백성이 앞으로 들어가게 될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여러 족속들도
(바알 신의 상징으로) 황소/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섬겼다고 합니다.]


[7]
(아론이 만든) 금 송아지 형상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 끼리 선포
합니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32:4). (*) 다시금 제기되는 의문입니다. 아론이 "이방 신"의 형상을 만들어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을 섬기도록 하였을까? 아니면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에 익숙한  송아지의 형상으로 즉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상징물로 만들었을까?

이에 아론이 금 송아지 앞에 제단을 쌓고 다음과 같이 공포합니다: "내일은
여호와의 절기(축제일)이니라" (32:5). 이 공포를 통해 아론이 백성의 관심/
주의를 여호와 하나님께 돌릴려고 애를 쓰는 듯하다 (라고) 추측하는 성경
학자들도 있지만 ...  어쨌든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계명을 깨뜨린 것입니다.

시내 산 위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 하였도다.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
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
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출애굽기 32:7-8 참조)


[8]
시내 광야에서 벌어진 (이스라엘 역사의 변곡점이 되는) 금 송아지 사건의
발단은 "모세가 시내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백성들이 모여 말하되
..." (32:1) 입니다. 기다림에 대한 인내심의 부족 ... 무언가에 대한 불만과
불안 ... 그리고 (신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도) 백성들 개개인이 원하는대로
하고 싶다는 본성을 자제하고 통제하지 못함으로 인해 사건이 벌어집니다.

코로나(COVID-19) 사태로 인해 교회예배실에 함께 모여 드리던 주일예배가
중단된 가운데 (2020/03/15 주일부터 지금까지) 비대면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대면예배를 대체하여) 설교문과 설교녹음파일과 동영상
등을 인터넷에 올리고 성도들은 (각자의 처소에서) 간략한 예배순서에 따라
(가정)예배를 드리도록 권장했습니다. (2020/08/02 주일부터는) 목회자와
예배부가 교회예배실에서 준비하고 진행하는 주일예배에 성도님들은 (각
처소에서) 줌(Zoom) 방식을 통해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예배하는가(라는)
시간과 장소와 방식의 문제가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방식과
어떤 순서로 (하나님께) 예배하든간에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예배의 기본
핵심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속에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
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
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한복음 4:23-24 참조).              




(열린칼럼) 시내 광야 변곡점 (#2) (출애굽기 32) (골로새서 3)
(열린칼럼) 독수리 날개로 업어 (출애굽기 19/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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