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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이상태(2020-09-07 17:45:23, Hit : 627, Vote : 69
 (열린칼럼) 주의 영광을 보이소서 (출애굽기 33) (이사야 55)

(강해설교) 주의 영광을 보이소서
(성경본문) 출애굽기 33 (이사야 55)


[1]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도우소서 ...
주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나의 간구를 들어주소서 ...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일종의) 줄당기기 (Tension)를 계속 이어 가십니다.
모세의 끈질긴 중보기도는 계속 이어집니다 (출애굽기 32:7-14; 32:30-35; 33-1-6;
33:12-16 참조).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의 간곡한 애원과 논리적 주장을 차례로
받아들이시고 모세에게 하나님의 결정을 알려주십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계속 "친히" 가시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친히] 가리라 ..." "My Presence will go (with you)..." (33:14)
[대부분의 영어본에 나와 있는 "너희와 함께"(with you)란 말은 히브리 원문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영어성경에 "(My) Presence"라고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 원문
에는 "(나의) 얼굴 (Face)"이라는 히브리 단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Presence"
(in English) is literally "Face"(in Hebrew)(= Peneh).]


[2]
(구약성경에서) "여호와의 얼굴"이라는 표현은 여러 가지 (단계와 차원의) 의미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실체(實體)/본체(本體)를 의미할 때가 있습니다. 또한
여호와께서 모세와 "대면(對面)(대할대+낯면)하여 (얼굴을 맞대고) 말씀하셨다"
라고 기록되어 있을 때는 긴밀(緊密)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직접 모세에게 전달되는 그러한 깊은 관계를 의미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가 친히 가리라" "(내 [얼굴]이 너희와 함께 가리라)" (33:14) 라고
말씀하실 때 또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33:17) 라고 말씀하실 때 ... 모세는 "여호와의
얼굴"의 여러 의미들 중에서 여호와께서 의미하시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분명
하게 알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용기를 내어 여호와 하나님께 더
어려운 부탁/요청을 합니다: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Show me
Your Glory, Please! I beseech You!)" (33:18)  

오랜 세월 동안 성경학자들이 과연 모세가 말하는 "(주의) 영광"이란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몹시 궁금해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더
긴밀한 무엇인가를 원했던 것 같다라고 추측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얼굴도
볼 수 있고 모세라는 이름도 알고 계신데 반해... 사실상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주님과 저 사이에
이러한 일로 맺어진 관계보다는 좀더 친숙하고 깊은 개인적인 관계를 원합니다.
(LORD I really need more than a business relationship with You...) 하나님
께서 이름은 말씀해주셨지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라고 하시는데...) 그러한
이름은 너무 애매모호합니다. 그러하오니 제가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3]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러한 모세의 간청에 응답하십니다: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으로] (내 모든 영광을) 네 (얼굴)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서 선포하리라..." ("I will make all my goodness pass before you, and
will proclaim (before you) the name, ‘the Lord’”] (33:19).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속성(屬性)이 다 영광스러운데 (그중에) 여호와께서 특히 "선하신 것"으로
여호와의 영광을 (강조하시고) 나타내시는 것이 눈길을 끕니다.]  

예수님의 사역 기간에 일어났던 한 가지 일이 생각납니다. 어느날 한 관원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달려와서 무릎을 꿇고 묻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선한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시니라" (마가복음 10:17-18 참조) (**)
예수님을 "선한" 분이라고 우리가 부를 수 있을려면 예수님께서 만물가운데 (유일
하게 "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알고 인정해야만 하겠지요.

여호와께서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은혜 베풀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이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I will be gracious to whom I will be gracious,
and I will show mercy on whom I will show mercy)" (출애굽기 33:19 참조).
(일단)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푸셔서 모세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시겠다고 암시하시는 듯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모세 사이에 (요즘 말로
일종의) "밀당"의 팽팽함 (tension)이 느껴집니다.


[4]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내 얼굴을 보지는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아
남을 사람이 없음이라 (No one shall see Me and live)" (33:20). "나를 보고
살아 남을 사람이 없다"는 말씀을 읽는데... (창세기에 기록된) 야곱의 생애에
있어서 일어났던 한 사건이 생각납니다. 야곱이 (형 에서와의 만남을 앞두고
너무나도 불안한 가운데 긴 밤을 보내게 되는데) ... 얍복 나루에서 정체불명
(正體不明)의 존재와 거의 밤이 새도록 목숨을 건 씨름을 하게 됩니다 ...

그리고 ("야곱"이란 그의 부정적인 의미의 이름처럼) 오랜 세월 다른 사람들의
발목을 걸어 넘어지게 했었던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하는 자라는 긍적적 의미
의)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축복을 받고난 후) 야곱이 혼잣말을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대면
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도다." 그래서 그는 그 곳의 이름을 브니엘
(Peniel)(하나님의 얼굴)이라고 지었습니다. 야곱이 브니엘을 떠날 때에 동녘
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었는데 그는 (씨름할 때) 엉덩이 뼈를 다침으로 인해서
절름거리며 걸어갑니다. (창세기 32:30 비교 참조)  

야곱이 체험한 얍복 나루 씨름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바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 들어 주실 수 없는 이유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경우에도 모세가 원하는 바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 들어주신다면 모세는 결국 그의 목숨을 잃게 됩니다. 모세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영광도 보고... 그를 골치 아프게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언쟁도
더 이상 하지 않고... 영원한 안식도 얻을 수 있는...) 일석이조(一石二鳥) 아니
일석삼조(一石三鳥) 이상의 상당한 유익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입장
에서 본다면 모세가 해야할 중요한 일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모세를
죽게 할 수가 없는 듯합니다.


[5]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모세의 요청을 수락(受諾) (받을수+허락할락)
하십니다. 물론 (어떤 인간도 여호와 하나님을 전체적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부분적인 수락입니다. 즉 모세가 볼 수 있는 것은 완전한 영광이 아니라 일종의
후광입니다. [Moses was ultimately allowed to see not God’s face (that is
the full manifestation) but sort of God’s back (i.e. after-glow left behind).
Such after-glow was as much as our human nature could endure.]

예전에 이따금 건강검진을 받을 때 엑스레이로 목과 가로막 사이의 흉곽 촬영을
했습니다. X-Ray 기계 앞에 서면 간호원이 어깨 위로부터 가슴을 가리는 (마치
방탄용 덮개 같은) 약간 무거운 보호막이를 (protective gear like a bullet-proof
vest) 걸쳐주는데 강력한 방사선으로 부터 장기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모세의 대화를 통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성경적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 영광이 온 땅과 하늘에 가득한)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참으로 티끌같은 존재인) 인간과 의사소통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무한한 존재인) 여호와 하나님과 (유한한 육신을 입고 있는) 인간과의 사이에
"실질적 교제(authentic communion)"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일어난 모세의 직접 체험은 이러한 실질적 소통을 증명해 주는 본보기 입니다.
(Moses' is the model for us of such divine-human communion.)  


[6]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의 요청을 완전하게 (100 퍼센트) 들어주시지 않았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상기(想起) 시켜주는 점이 있습니다. 성경 전체를 살펴보아도
본래 하나님은 보았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No man has seen God at any time)
(요한복음 1:18 참조).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인간도 여호와 하나님을
완전히 알 수는 없다는 것이 성경적 진실입니다. [The fact that Moses’ request
is only partially granted reminds us that God is still God. No human being,
not even Moses can know or comprehend God completely.]  

여호와 하나님의 무한(無限)하심과 우리 인간의 유한(有限)함을 다시금 깨닫는
가운데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나의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으니라/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시고 ... 싹이 나게 하여 씨를 뿌리
는 자에게 뿌릴 씨앗을 주며 먹을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그
일에 형통함이니라 (내가 맡긴 사명을 다 이루느니라)" (이사야 55:8-1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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