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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이상태(2020-11-01 19:30:59, Hit : 600, Vote : 50
 (열린칼럼) 변화산 위와 아래 (마태복음 17) (출애굽기 15)

(강해설교) 변화산 위와 아래 (초막과 라파엘)
(본문성구) 마태복음 17 (출애굽기 15)  


[1]
공관복음(共觀福音)(Synoptic Gospels) (describing some events from
a similar point of view)이라 불리는 세 복음서를 마가복음... 마태복음...
누가복음의 순서로 차례로 함께 비교하며 읽어봅니다. 변화산에서 일어난
사건의 일부를 마가와 누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
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이에 엘리야와
모세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더라 (마가복음 9:2-4)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서 있는 두 사람을 보더니 (두 사람이 떠날 때)(누가복음 9:32-33)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
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마가복음 9:5-6) (개역개정본)


[2]
유대인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던 초막절과 관련된 전승(傳承)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베드로가 "초막 셋을 짓겠다"라고 하는 말이 전후(前後) 맥락
(脈絡)도 없이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변화산에서 (지금 자기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을 보며) 베드로가 한 말은 "자다가 봉창(封窓)
두드린다"는 속담이 뜻하는 것 같은 엉뚱하고 허무맹랑(虛無孟浪)한 소리는
아닙니다. [Peter’s (seemingly nonsensical) talk about building three
booths is neither laughable nor mistaken.]

매년 초막절이 다가오면 유대 사람들은 초막절과 관련하여 선지자들을 통해
전해지는 여러가지 예언들을 떠올립니다. 예(例)를 들면 다음과 같은 예언
(豫言)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살아남은 사람
들이 해마다 올라와서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스가랴 14:16-21 참조). 즉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올 것인데 그것이 아마도 초막절 기간에 올 것이라고 유대 사람들은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According to Jewish expectation of "the Days
of the Lord," YHWH would take control of the world affairs and usher in
the reign of Shalom during the Feast of Booths.]

(변화산의 사건이 초막절 기간에 일어났던 ... 일어나지 않았던 ... 상관없이)
(구약을 대표하는)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함께 대화하는 모습을
목격(目擊)하게된 베드로는 "우리가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하나님의 통치
와 평화의 시대가 드디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초막 셋을 짓겠습니다"라고 말한 것 같습니다.


[3]
그런데 "예수님은 누구이신가(?)"라는 물음에 대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가복음 8:29; 마태복음 16:16) 라고 고백을
했던 베드로에게 심각한 문제점이 하나 있는 듯합니다. 그의 문제점은 예수님
께서 (앞으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베드로가 (그
말씀을) 도무지 마음속에 받아들이지를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붙들고 "이런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마태 16:22) 라고 강하게
항변을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마태 16:23; 마가 8:33).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의 흐름속에서 베드로가 변화산의 사건을 겪게 됩니다.
그 순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서 [변화산의 사건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의 과정은
생략을 하시고 곧바로 "영광"의 최종단계로 구원 계획을 진행하시는 것으로
(즉 자기가 바라고 원해왔던) 소망적 사고가 거의 무의식적으로 돌출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런 까닭으로 인해 (베드로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
이더라" (또는) (베드로는)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라고
마가와 누가는 그 상황을 묘사한 듯합니다 (마가 9:6; 누가 9:33 참조).

이에 드디어 하나님께서 직접 음성을 들려주시게 됩니다. 베드로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겠나이다"라는 말을 할 즈음에 ... 마침 (홀연히) (빛난) 구름이
와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덮습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소리가 들려
옵니다: "이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 즉 나의 택함을 받은 자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마가 9:7) (마태 17:5; 누가 9:35 참조).


[4]
16세기 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유화 (oil painting) 작품
이라는 평을 받았던 그림이 있습니다. 이 그림은 (르네상스 시대 미술과 조각
예술의 대가로 알려진) 미켈란젤로와 쌍벽을 이루었던 화가 라파엘(Raphael)
의 마지막 작품인 <예수님의 변형 (The Transfiguration of Christ)>입니다.
라파엘이 몇 년간에 걸쳐 그리다 사망함으로 인해 이 그림속에는 미완성으로
남겨진 부분들이 (incomplete areas) 있다고 헙니다.

변화산의 사건을 그린 당시 대부분의 (기독교) 성화에서는 예수님의 변화산
위에서의 변형만을 볼 수 있는데 라파엘의 그림 <예수님의 변형>은 변화산
위와 아래에서 전개되는 사건들을 화폭 위에서 아래로 연결하여 그렸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인물이나 사건을 주제로 그린 성화들을 살펴 보면 (한 순간의
장면을 포착하여 그린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펼쳐지는 여러 장면
들을 화가가 (뇌리에 뎃상으로 담았다가) 자신이 전하고자 의도하는 적절한
메시지의 장면들을 화폭 위에 (편집하여) 그린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5]
라파엘이 마태복음서에 기록된 변화산의 사건을 토대로 그렸다고 전해지는
<예수님의 변형>의 상단에는 변형된 모습의 예수님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듯한 구름을 배경으로 공중에 떠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오른쪽과 왼쪽에)
모세와 엘리야가 역시 공중에 떠있습니다 (마태복음 17:3 참조).  

그리고 그들 아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야고보와 베드로와 요한이 그려져
있습니다. 카톨릭교회의 설명에 따르면 이들 세 사람의 위치 배열은 (야고보
는) 믿음/ (베드로는) 소망/ (요한은) 사랑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의 색깔도 믿음/소망/사랑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바울 사도의 신학적 영향력이 느껴집니다 (고린도전서 13:13 참조).]

그림의 상단 왼쪽 가장자리에 무릎을 꿇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 복음서에서는 전혀 언급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  (카톨릭 교회에 따르면) 성자 야스투스와 파스토르로
인데 한 명은 (라파엘에게 그림을 부탁한)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과 관계가
있고 다른 한 명은 (그림이 완성되면 전시할려고 했던) 성당과 관계가 있는
카톨릭 성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폭의 성화속에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 외에도 무언가 미묘하게 얽힌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6]
그림의 하단에는 변화산 아래의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산 아래 남아 있던
아홉 명의) 제자들 중 한명이 손가락으로 산 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단
오른쪽에는 한 소년이 서 있는데 그의 모습에 대한 (평론가들의) 해석들이
엇갈립니다. 눈이 약간 뒤집힌 듯하고 몸이 비틀린 듯한 아이가 아버지의
부축을 받고 있는 모습은 (아직 간절히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
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난 한편으로 (우리가 그림을 살펴 보면)
소년이 땅 바닥에 엎드러져 있지 않고 일어서서 입을 벌리고 오른 손을 위
로 들고 있습니다. (그가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은) 그를 사로잡고 괴롭혔던
귀신이 (예수님의 명령을 듣고) 그 아이에게서 떠나갔다는 것을 암시한다
라는 (즉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그림을 보는 듯한) 해석도 있습니다.

또 달을 상징하는 푸르스름한 색깔이 그림 여러 곳에 사용되었는데 아이의
간질병 증상을 달의 변화와 관련하여 생각했던 중세기 사람들의 관념이 그
그림에 반영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평론가들도 있습니다. 참고로 (밤하늘에
떠 있는 푸르스름한) 달과 인간의 정신이상증세(精神異常症勢) 간에 연관
성이 있다는 주장은 19세기 중반까지도 의학 상식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특히 그림 속에서 흥미로운 것은 하단 거의 중앙에 있는 여인의 모습입니다.
무릎을 꿇고 양손으로 아이를 가리키며 그의 얼굴은 (왼쪽에 있는) 아홉 명
의 제자들 쪽을 보고 있습니다. 아이의 병을 고쳐달라고 제자들에게 간곡히
애원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복음서에서는 언급이 없지만) 이 여인은 간질병
걸린 아이의 어머니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미술평론
가들은 그림의 구도상 균형을 위해 (왼쪽에 있는) 제자들과 (오른쪽에 있는)
서기관들/무리들 사이에 그려 넣어진 미술적 기법이라고 해석들을 합니다.
[한 폭의 성화에 담긴 인물들에 대한 추측과 해석들이 매우 다양합니다.]


[7]
변화산 위에서 일어났던 사건만을 화폭에 담았던 대부분의 미술가들과는 달리
화가 라파엘이 변화산의 위와 아래를 함께 화폭에 담은 의도는 무었이었을까?  

아마도 라파엘은 변화산 위에서 펼쳐지는 예수님의 변형의 찬란한 광경과 함께
산 아래에서 펼쳐지고 있는 (인간들이 겪는) 고통과 갈등을 선명하게 대조하여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생애의 마지막 작품에서 라파엘은 (인간을
괴롭히는 죄와 악한 세력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하려 이 땅에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찬란한 영광을 모든 사람에세 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한문에서 의롭다는 의미의 의(義)란 글자는 (순결한 하나님의 어린) 양(羊)이
(죄의 본성을 지닌 모든 인간의) 자아(自我) 위에 올려진 (위와 아래의) 합성어
입니다. 이와 같이 변화산 위와 아래의 합성그림인 <예수님의 변형>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참고로 "라파엘"이란
이름을 히브리어로 표기하면 "여호와 라파" ("치료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출애
굽기 15:26 참조). Raphael in Hebrew רָפָאֵל [Rafa'el] means "God has hea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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